주간동아 1321

2021.12.31

심상정·안철수, 거대 양당과 합치면 ‘제2의 자민련’ 된다

[김수민의 直說] 민주당·국민의힘과 연대, 명분·실리 모두 없어

  • 김수민 시사평론가

    입력2022-01-0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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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왼쪽)와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 [동아DB]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왼쪽)와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 [동아DB]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보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와 결합할 수 있다고 본다.”

    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2021년 12월 26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이재명-안철수 연대론이 제기된 것은 안 후보가 2015년 민주당을 탈당한 후 처음이다. 물론 정치권 반응은 신통치 않다. 국민의당 권은희 의원은 즉각 “부도덕·부패 연루 의혹에 갇힌 이 후보의 자력갱생이 어려우니 이런 달콤한 헛꿈을 꿀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맞받았다. 이 후보조차 “아직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며 송 대표가 자신과 상의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단일화만 해줬으면 정권교체 됐다”

    이재명-안철수 연대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은 많은 사람의 예측과 같다. 하지만 여전히 간과되는 부분이 있다. 이재명-안철수 연대가 불가능한 것은 단지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최근 대립해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양쪽이 손잡을 수 없는 구조적인 법칙이 있다. 같은 이치에서 이재명-심상정 연대도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윤석열-안철수 연대는 비교적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볼 사람이 많겠으나, 이 역시 현실 정치가 작동하는 원리와 동떨어진 ‘답정너 식 계산’에 가깝다.

    선거 연대에 소수파가 응하게 되는 가장 큰 압박은 “당신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책망이다. 이로 인해 소수파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부담감이다. 이를테면 “심상정 탓에 국민의힘에 정권이 넘어갔어!” “안철수가 단일화만 해줬어도 정권교체가 되는 건데” 같은 원성이다. 이런 부담감에 소수파 후보는 끝내 사퇴로 내몰린다. 그러나 이것 말고도 생각해봐야 할 게 3가지가 있다. 첫째, 거대 양당 중 한쪽을 반대한다면서 다른 한쪽을 도울 명분이 있는가. 둘째, 거대 양당 중 한쪽과 엮였을 때 후일을 도모할 수 있는가. 셋째, 자신의 독자 완주가 거대 양당 중 한쪽만 잠식하게 되는가.

    정의당이 민주당을 도울 명분은 바닥났다. 민주당은 2020년 총선에서 위성정당을 창당해 공직선거법 개혁 효과를 없앴을 뿐 아니라, 진보 진영이 요구하는 입법(공정경제3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차별금지법)을 후퇴시키거나 묵살했다. 자본의 탐욕이 그대로 드러난 대장동 개발은 결정적으로 양자를 갈라놓았다. 국회 국정감사 당시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는 이 후보를 ‘죄인’으로 규정했고, 이 후보는 심 후보의 문제 제기를 국민의힘과 동일선상에 놓았다. 안 후보가 윤 후보를 도와줄 명분 역시 윤 후보가 얽힌 고발사주 의혹이나 부산저축은행 부실 수사 의혹, 윤 후보 가족 리스크, 후보 본인의 역량 부재 이미지로 인해 점점 흐려지고 있다.



    선거 연대 명분이 떨어지니 거꾸로 거대 양당은 소수 정당에 달콤한 대가를 지불하려 할 수 있다. 송 대표는 안 후보와 연대를 논하면서 국민의당에 각료직을 배분하는 연합정부 구성을 시사했다. 정의당에 대해서도 “민주당이 내각 배분을 제안하면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늘 나온다. 소수 정당 후보가 당장에는 독자 노선을 강조하더라도 끝내 사퇴할 것이라는 예측도 그래서 나온다. 하지만 ‘자리 나누기’ 역시 소수 정당 입장에서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이번 선거에서 연대하면 당을 통합하지 않고도 대다수 국민에게는 ‘같은 편’으로 묶이기 때문이다. 연합정부를 구성하면 그런 인식은 더욱 강해진다.

    1997년 대선에서 DJP(김대중-김종필)연합이 소수파 참가자인 자유민주연합(자민련)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떠올려보라. 자민련은 집권과 동시에 국무총리직과 경제 부처 장관직을 포함해 내각의 절반을 가져갔다. 수많은 공공기관 단체장직에도 당 관련 인사들을 진출시켰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에 반대하는 표심은 한나라당으로 결집했고, 보수 본류를 자임하던 자민련은 치명타를 입었다. 2000년 총선을 앞두고 DJP연합은 와해됐으나, 자민련의 기반이던 충청권과 대구는 각각 ‘민주당 대 한나라당 양강 구도’와 ‘한나라당 독점’으로 넘어갔다.

    단일화 비용 2024년 총선서 청구

    정의당이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을 도우면 정의당은 민주당과 크게 하나로 묶인다. 2024년 총선은 2008년 총선 이후 민주당의 패배 가능성이 가장 큰 선거다. 민주당은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전국동시지방선거, 2020년 총선을 내리 이겼다. 그 후과로 민주당 심판 여론은 더욱 고조됐다. 이번 대선까지 민주당이 이기면 2024년 총선에서 패배 가능성이나 패배 수준은 더욱 커진다. 정의당이 민주당 곁에 서면 같이 벼락을 맞을 수 있다. 국민의당도 국민의힘의 자장(磁場) 밖에서 다음 총선을 치르고 싶을 것이다. 민주당에서 이탈하는 표심이 국민의힘보다는 국민의당으로 갈 수 있고, 국민의당의 존재 자체가 민주당 지지층의 이탈을 가속화할 수 있어서다.

    민주당이나 국민의힘 입장에서도 후보 단일화가 대선 승리에 불필요한 경우가 있다. 후보 단일화론은 기본적으로 “심상정과 안철수가 각각 이재명과 윤석열 표를 주로 잠식할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하지만 심 후보가 정권교체는 지지하지만 국민의힘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 쪽으로 세를 넓힐 것을 생각하면 민주당으로서도 심 후보의 사퇴를 원할 이유가 없다. 안 후보 또한 윤 후보가 도저히 할 수 없는 ‘민주당 지지층 잠식’을 한다면 국민의힘도 굳이 단일화 압박을 가할 필요가 없다. 민주당-국민의당이나 국민의힘-정의당은 이미 대립각이 굳어졌으므로 “심상정(안철수) 탓에 윤석열(이재명)이 졌다”는 소리는 진작부터 설득력이 없다.

    유능한 다수 정당은 다자 구도를 활용하고, 무능한 다수 정당은 양자 구도를 강제한다. 민주당이 유능하다면 정의당의 좌파 노선을 역으로 이용해 “우리는 중도적”이라고 홍보하고, 안 후보가 민주당보다 국민의힘 표밭을 더 많이 잠식하도록 판을 이끌 것이다. 국민의힘이 유능하다면 어차피 자신이 가져가지 못할 표는 이 후보가 아닌 안 후보가 가져가도록 놔두면서 민주당 확장을 저지하면 된다. 그러나 현재 거대 양당은 반대로 소수 정당에 이런저런 압력을 가하고 있고, 패배하면 책임을 뒤집어씌울 태세다. 대선 승리보다 ‘제3세력 분쇄’가 더 궁극적 목표인 것처럼 보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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