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37

2020.05.01

귀족 문화의 상징 ‘욕조형 시계’에 박힌 다이아몬드의 가치 [명품의 주인공]

  • 민은미 주얼리칼럼니스트

    mia.min1230@gmail.com

    입력2020-04-3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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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누아 워치를 착용한 까뜨린느 드뇌브. [Getty Images]

    베누아 워치를 착용한 까뜨린느 드뇌브. [Getty Images]

    다이아몬드는 ‘보석의 황제’로 불린다. 화려한 빨강, 파랑, 초록 등 아름다운 색을 지닌 유색 보석을 뒤로하고 무색투명한 다이아몬드가 황제로 군림하고 있다. 어떻게 다이아몬드가 최고 보석이 됐을까. 많은 사람이 의아해하는 점이다. 다이아몬드라는 보석의 특성과 역사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다이아몬드는 다른 돌에서는 찾을 수 없는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우선 한 가지 원소인 탄소(C)로만 구성된 유일한 보석광물이다. 자연산 광물 가운데 경도가 가장 강한 광물이다. 경도(hardness)는 광물이 긁힘이나 마모에 견디는 능력의 정도를 말하는데, 다이아몬드는 모스(Mohs) 경도 기준으로 10이다. 광물 가운데 가장 높은 값이다. 또한 굳기에 관한 한 무적으로, 이런 굳기는 탄소가 강력하게 결합하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Diamond)라는 이름은 ‘정복할 수 없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아다마스(Adamas)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름만으로도 무적의 돌이라는 데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을까. 

    다이아몬드는 적어도 지하 150km에서 매우 높은 온도와 압력 조건만으로 만들어진다. 생성 시기가 최소 10억 년 전에서 33억 년 전이라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시간을 지닌 돌이다. 세상의 많은 사람이 갖고 싶어 하는 돌의 나이가 수십억 년이 넘었으리라고는 누구도 쉽게 믿지 못할 것이다. 이는 현대 과학이 밝혀낸 사실이다. 

    다이아몬드는 역사 속에서 그 가치를 드높여갔다. 이 돌은 1700년대까지는 인도가 유일한 산출지였다. 그 희소성으로 인해 당시 큰 다이아몬드들은 예외 없이 최고 권력자인 왕이나 귀족의 소유가 돼 지배자들과 관계를 맺게 됐다. 자연스럽게 힘과 권위, 특권의 상징으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징성에 곁들여 다이아몬드에는 재물로서 가치가 더해졌다. 다이아몬드에 대한 소유욕은 서로 뺏고 빼앗기는 피의 역사까지 초래했을 정도다. 

    다이아몬드를 논할 때 광채를 빼놓을 수 없다. 다이아몬드 광채가 보는 이들을 얼마나 매료해왔는지는 설명이 필요치 않을 듯하다. 다이아몬드가 대중화한 것은 1866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대규모 다이아몬드 광상(鑛床)이 발견되면서부터다. 과거에는 소수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으나 근래에는 예물로 다이아몬드를 구입하는 커플이 다수일 정도로 보편화돼 있다. 



    다이아몬드는 4월 탄생석으로,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을 의미한다. 다이아몬드는 주얼리는 물론, 시계에도 자리 잡아 눈부신 광채로 태양처럼 강렬한 개성을 선사한다. 시계와 다이아몬드를 조화롭게 결합해 둘의 장점을 극대화한 브랜드가 역시 까르띠에다.

    1912년생 까르띠에 베누아 워치

    베누아 워치를 착용한 로미 슈나이더(1967년)(왼쪽). 베누아 워치를 착용한 멜라니 로랑. [Getty Images]

    베누아 워치를 착용한 로미 슈나이더(1967년)(왼쪽). 베누아 워치를 착용한 멜라니 로랑. [Getty Images]

    세계 최고 주얼러 까르띠에는 1847년 프랑스 파리의 보석 아틀리에로 시작한 이래 173년 동안 주얼리와 시계 분야에서 장대한 역사를 만들어왔다. 지금은 시계 하면 손목시계가 일반적이지만, 130여 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손목시계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1888년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에는 포켓 워치와 샤틀렌 워치(핀에 매단 시계)가 유행했다. 하지만 까르띠에 창립자의 3대손인 루이 까르띠에는 손목시계에서 미래를 봤다. 또노 워치, 또뛰 워치, 탱크 워치, 베누아 워치, 팬더 워치, 파샤 워치, 발롱 블루 워치, 칼리브 워치…. 까르띠에 역사를 지켜온 수많은 모델이 이때부터 등장했다. 

    이 가운데 ‘베누아 워치’는 일상적인 물건의 놀라운 변신에 대한 예찬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프랑스어로 ‘욕조(bath tub)’라는 뜻인 베누아 워치는 루이 까르띠에가 욕조 모양에서 영감을 받아 선보인 최초의 ‘타원’ 형태의 시계다. 전통적인 원형 시계에 싫증을 느낀 루이 까르띠에는 새로운 형태의 시계를 만들고 싶었다. 기나긴 고민 끝에 평범한 원형 시계를 길게 늘려 우아한 타원형이 돋보이는 시계를 탄생시킨 것이 1912년. 목욕이 귀족적인 문화로 자리 잡고 있던 그 무렵, 베누아 워치는 귀족 문화의 심벌 및 귀족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크리스트교 도입 이래 프랑스인은 몸을 씻는 것이 신을 모욕하는 행위라고 생각해 목욕 문화가 더디게 발달할 수밖에 없었으며, 근대에 들어서야 귀족 위주로 위생 관념이 생겨나면서 ‘욕조’를 소유하고 목욕을 즐기는 것이 귀족 문화라는 인식이 퍼졌다. 

    1950년대 말까지 많은 수정을 거쳐 마침내 타원형에 로마 숫자 또는 아라비아 숫자가 다이얼에 새겨진 지금의 디자인이 탄생하게 됐다. 이 시계에 ‘베누아’라는 이름이 붙은 건 1973년이 돼서였다. 욕조를 닮은 듯한 모습 때문에 프랑스어로 욕조를 뜻하는 베누아(baignoire)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1912년 만들어진 시계가 베누아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61년이 걸렸다. 환갑이 넘어서야 이름을 갖게 된 셈이다.

    세련된 취향의 여성을 위한 시계

    베누아 워치. [© Cartier]

    베누아 워치. [© Cartier]

    베누아 워치는 진화를 거듭했다. 2009년 기존 베누아 워치 케이스의 볼륨감 있는 베젤 부분을 평평하게 가다듬고, 윤곽이 뚜렷한 유리를 사용해 정교한 곡선으로 완성한 ‘뉴 베누아’ 컬렉션을 론칭했다. 2019년 4월에는 오리지널 베누아 워치의 디자인을 그대로 유지한 채 새로운 디테일을 더한 베누아 워치를 내놓았다. 

    이렇게 몇 차례 리뉴얼을 거치며 새로운 모습들로 현재까지 지속돼온 베누아 워치 컬렉션은 영화와 패션계에 아이콘적인 인물로 남아 있는 프랑스 영화배우 카트린 드뇌브와 ‘누벨바그’(‘새로운 물결’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1957년경부터 프랑스 영화계에서 일어난 새로운 풍조)의 여신으로 불린 프랑스 배우 잔 모로, 오스트리아 출신의 배우 로미 슈나이더, 그리고 영화감독이자 가수인 멜라니 로랑 등의 여성들로부터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았다. 

    까르띠에는 이 시계를 ‘품위와 재치, 그리고 교양을 갖춘 세련된 취향의 여성을 위한 워치’로 규정하고, 까르띠에를 대표하는 여성 워치 컬렉션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베누아 와치에서 다이아몬드는 단순한 장식품이 아닌, 없어선 안 될 주인공이다. 대표적인 것이 베누아 주얼리 워치 컬렉션이다.

    베누아 주얼리 워치

    베누아 주얼리 워치. [© Cartier]

    베누아 주얼리 워치. [© Cartier]

    베누아 워치의 모든 제작 과정은 까르띠에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이뤄진다. 까르띠에는 오리지널 모델의 매력은 그대로 간직하면서 간결한 디자인과 정교한 피니싱 처리로 탄생시킨 베누아 워치를 선보였다. 1958년 처음 선보인 오리지널 모델의 디자인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좀 더 슬림한 시곗줄, 샌드 블라스트(금속제품 표면의 마무리 방법) 처리된 실버 다이얼에 새롭게 디자인된 로마 숫자, 케이스와 완벽히 결합한 케이스백, 30m 방수 기능 등 까다로운 메종의 품질 기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완벽함을 갖춘 시계다. 메종의 전통이 깃든 베누아 주얼리 워치에서 케이스를 빼곡히 채우는 다이아몬드는 그야말로 반짝이는 보석이다.

    베누아 알롱제 주얼리 워치

    베누아 알롱제 주얼리 워치 Medium 모델. Extra Large 모델(왼쪽부터) [© Cartier]

    베누아 알롱제 주얼리 워치 Medium 모델. Extra Large 모델(왼쪽부터) [© Cartier]

    까르띠에는 베누아 워치 탄생 이후 1960년대 또 한 번 업계를 놀라게 했다. 영국 런던 까르띠에 아틀리에에서 베누아 컬렉션 역사에 세 번째 장을 열어준 베누아 알롱제 워치가 탄생한 것이다. 베누아 워치를 오버 사이즈로 제작한 이 모델은 “오리지널 베누아 워치의 디자인은 그대로 유지한 채 새로운 디테일을 더해 더없이 우아하고 아름답게 재탄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윙잉 런던’(Swinging London․1960년대 역동적인 런던 모습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신조어가 나온 당시 시대상과도 어울린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여기서도 다이아몬드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까르띠에는 다이아몬드를 시계 전체에 세팅했다. 최소 수십억 년을 기다린 끝에 스스로 빛나는 광채를 내는 돌, 그런 돌이 더없이 화려한 실루엣으로 손목 위에서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게끔 만들었다. 


    [© Cartier]

    [© Cartier]

    손목 위에서 빛나는 다이아몬드는 시계를 그 이상의 의미로 만들었다. 시간을 확인하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개성을 표현하는 시그니처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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