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34

2020.04.10

베이스볼 비키니

기온이 낮으면 투수가 유리

봄에 강한 투수, 반면 타자는 몸 데우는 데 시간 걸려

  •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ga.com

    입력2020-04-13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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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왼손투수 김광현. [뉴스1]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왼손투수 김광현. [뉴스1]

    김광현(32·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이 생애 첫 미국 메이저리그 정규리그 선발 경기에서 승리 투수 타이틀을 따냈습니다. 

    김광현은 3월 30일(현지시각) 밀워키 브루어스 방문 경기에 선발 등판해 6이닝 무실점을 기록했습니다. 투구 수는 총 99개였고 삼진 8개를 잡는 동안 볼넷 4개, 안타 2개를 내줬습니다. 타석에도 세 차례 들어서 볼넷 하나를 얻어냈습니다. 

    김광현은 팀이 3-0으로 앞선 7회 말 라이언 헬슬리(26)에게 마운드를 넘겼습니다. 이후 존 갠트(28)가 1점을 내줬고 마무리 투수로 나선 지오바니 갈레고스(28)도 1점을 내줬지만 동점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경기는 결국 3-2 세인트루이스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2020 메이저리그 시즌이 열리지 못하고 있는데 무슨 헛소리냐고요? 

    앞에서 언급한 경기는 메이저리그 통계 사이트 베이스볼 레퍼런스에서 야구 게임 ‘아웃 오브 더 파크 베이스볼(OOTP)’로 시뮬레이션한 내용입니다. 축구에 풋볼매니저(FM)가 있다면 야구에는 OOTP가 있다고 할 정도로 이 게임 시리즈는 아주 정교한 시뮬레이션을 자랑합니다.



    봄광현, 봄슨, 봄체스, 봄영명

    그래서 이 게임 엔진은 김광현이 SK 와이번스 시절 봄에 유독 강했다는 것도 알고 있던 걸까요? 

    김광현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다섯 시즌 동안 3~4월에 15승(4패)을 거뒀습니다. 이 5년 동안 3~4월에 가장 많이 승리를 기록한 투수가 김광현입니다. 9이닝당 탈삼진(K÷9) 역시 9.29로 이 기간 60이닝 이상 던진 투수 가운데 제일 높았습니다. 김광현은 136과 3분의 2이닝을 던졌습니다. 

    코로나19로 시즌 개막이 늦춰지고 있는 건 한국 프로야구도 마찬가지. 이렇게 봄에 강한 선수들은 3~4월에 경기를 치를 수 없어 더욱 아쉬워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역시 60이닝을 기준으로 하면 3~4월 평균자책점이 제일 낮았던 투수는 LG 트윈스 타일러 윌슨(31)입니다. 윌슨은 2018년과 지난해 3~4월에 83과 3분의 2이닝을 던지는 동안 평균자책점 1.72를 기록했습니다. 이 기간 성적이 워낙 좋아서 그렇지, 나머지 기간에 기록한 평균자책점 3.38도 나쁘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요컨대 윌슨은 원래도 좋은 투수인데 3~4월에는 더욱 좋은 투수였던 겁니다. 

    윌슨 다음으로 SK 앙헬 산체스(31·현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평균자책점 2.07로 2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산체스는 나머지 기간 평균자책점 4.19를 기록했으니까 ‘봄체스’ 기운이 느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즌 전체 평균자책점을 보면 2018년 4.89, 지난해 2.62로 차이가 적잖지만 3~4월에는 2018년 2.13, 지난해 2.00으로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토종’ 선수 가운데는 안영명(36·한화 이글스)이 71이닝을 던져 평균자책점 2.66을 기록하면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남겼습니다. 문제는 나머지 기간에는 평균자책점이 5.97로 치솟았다는 점. ‘봄에만 강하다’는 관점에서 보면 안영명이야말로 ‘봄영명’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타자는 ‘야잘잘’

    워싱턴 내셔널스의 에릭 테임즈. [뉴스1]

    워싱턴 내셔널스의 에릭 테임즈. [뉴스1]

    투수도 그렇지만, 타자는 더욱더 원래 야구를 잘하던 선수가 3~4월에도 잘했습니다. 

    이 기간 100타석 이상 들어선 타자 가운데 OPS(출루율+장타력)가 가장 높은 건 NC 다이노스 에릭 테임즈(34·현 워싱턴 내셔널스)였습니다. 테임즈는 3~4월에 타율 0.337, 출루율 0.441, 장타력 0.651을 기록하면서 OPS 1.092를 남겼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 기간 테임즈의 전체 OPS는 1.201로 3~4월에 오히려 부진했다는 점입니다. 

    이어 두산 베어스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32)가 지난해 3~4월 OPS 1.090을 기록하면서 테임즈 뒤를 바짝 쫓았습니다. 100타석은 물론, 20타석 이상 들어선 타자 중에서도 페르난데스보다 3~4월 타율이 높은 선수는 없었습니다. 페르난데스는 5월 이후 OPS 0.836을 남겼습니다. NC 박민우(27)의 지난해 전체 OPS가 0.836이니까 5월 이후에도 아주 부진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계속해서 키움 히어로즈 박병호(34)가 타율 0.333, 출루율 0.456, 장타력 0.594를 기록하면서 토종 타자 가운데 제일 높은 OPS(1.050)를 남겼습니다. OPS가 1이 넘어가면 흔히 최우수선수(MVP)급 성적을 남겼다고 평하는데, 박병호 역시 이 기간 전체 OPS가 1.096으로 3~4월에 오히려 부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토종 타자 2위이자 전체 4위는 NC 양의지(33)였습니다. 양의지는 타율 0.350, 출루율 0.436, 장타력 0.606으로 OPS 1.042였습니다. 양의지는 이 5년 동안 통산 OPS 0.951을 기록했습니다. ‘봄의지’까지는 아니어도 양의지는 3~4월에 강한 타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적 기록을 살펴보면 SK 최정(33)이 3~4월에 홈런 39개를 날리면서 이 부문 1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최정은 타율 0.279, 출루율 0.415, 장타력 0.587로 이 기간 1이 넘는 OPS(1.002)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타점 부문에서는 KIA 타이거즈 최형우(37)가 106타점을 기록하면서 최정을 1타점 차이로 물리치고 선두를 차지했습니다. 

    굳이 봄에만 강한 타자를 뽑자면 NC 이원재(31)가 ‘봄원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통산 OPS 0.742를 기록 중인 이원재는 3~4월에는 타율 0.338, 출루율 0.403, 장타력 0.631로 OPS 1.034를 남겼습니다. 단, 73타석밖에 들어서지 않았기 때문에 순위권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날씨가 추우면 투타 중 누가 유리할까

    한국 프로야구 개막이 4월 20일 이후로 잠정 연기된 가운데 키움 히어로즈가 3월 24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자체 청백전을 가졌다. [스포츠동아]

    한국 프로야구 개막이 4월 20일 이후로 잠정 연기된 가운데 키움 히어로즈가 3월 24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자체 청백전을 가졌다. [스포츠동아]

    기상청에 따르면 서울지역 3월 하순 평균 기온은 10.6도, 4월 평균 기온은 12.5도입니다. 그러다 5월이 되면 17.8도로 오릅니다. 10월이 돼도 서울지역 평균 기온은 14.8도를 유지합니다. 그러니까 3~4월은 아직 야구를 하기에는 추운 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날씨가 추우면 투수와 타자 중 어느 쪽이 더 유리할까요? 

    한국야구위원회(KBO) 공식 기록원은 기록지에 매 경기 시작 시간의 기온과 습도, 날씨, 풍향·풍속 등을 적습니다. 이 기록을 기준으로 2009~2018년 기온별 OPS를 알아보면 △9도 이하 0.715 △10~19도 0.761 △20~29도 0.775 △30도 이상 0.791로 기온이 올라갈수록 OPS도 올라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날씨가 추우면 타자보다 투수에게 유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2015~2019년 5년간 3~4월 리그 평균 OPS는 0.755로 5월 이후 기록(0.787)보다 낮았고, 경기당 평균 득점도 3~4월에는 4.94점으로 5월 이후 5.34점보다 낮았습니다. 

    그런데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테임즈, 박병호, 양의지, 최정 같은 타자는 시즌 초반부터 자신의 방망이 실력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이렇게 환경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자기 몫을 다했기에 이들이 리그를 대표하는 타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 겁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런 기록이 이들이 겨우내 착실하게 다음 시즌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팀 기록을 봐도 마찬가지. 3~4월에 가장 좋은 성적을 남긴 건 두산이었습니다. 두산은 최근 5년간 3~4월에 87승 2무 47패로 승률 0.649를 기록했습니다. 프로야구 10개 구단 가운데 제일 높은 성적입니다. 두산은 437승 5무 278패(승률 0.611)로 이 기간 통산 승률이 가장 높은 팀이기도 합니다. 

    3~4월의 ‘플레이 볼’ 소리가 사라진 올해는 과연 어떤 야구가 야구팬들을 기다리고 있을까요? 아, OOTP로는 한국 프로야구도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으니 야구가 너무 고픈 분이라면 이 게임에 한번 도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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