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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없다”는 변명, 결코 어리석지 않다

[궤도 밖의 과학] 시계로 측정한 시간 아는 것일 뿐, 시간 개념 이해는 무리

  • 궤도 과학 커뮤니케이터 nasabolt@gmail.com

“시간이 없다”는 변명, 결코 어리석지 않다

시간의 개념을 정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GETTYIMAGES]

시간의 개념을 정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GETTYIMAGES]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까지 명백하게 비가역적 순서대로 사건이 일어나는 비공간적 연속체는 과연 무엇일까. 좀 더 쉽게 말하면 당신이 지금 서 있는 장소와 무관하게 끊임없이 흘러가는 어떤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지구 자전 주기를 측정해 얻은 단위라고 하면 오히려 간단할까. 바로 시간을 정의하는 여러 표현들이다. 미국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은 시간에 대해 “아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때도 꾸준히 일어나고 있는 무언가”로 정의했고, 러시아계 미국인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시간을 “계속 생성되는 기억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저 담백하게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 같은 사람도 있는 걸 보면 시간의 개념을 정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1880년 영국 여왕 빅토리아에게는 고민이 있었다. 시간을 나타내는 표현이 명료하지 않다 보니 국정운영에 간혹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시간에 관한 시민들의 의혹을 없애고 최대한 명료하게 만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준비했다. 바로 시간을 법으로 정하는 것이었다. 법률에 따라 영국 시간은 그리니치 평균시로 통일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 해가 지고 한 시간 후부터 해가 뜨기 한 시간 전까지는 자전거를 탈 때 반드시 램프를 켜야 한다는 법이 있었다. 일몰 시각이 저녁 7시 13분이던 어느 날 잉글랜드 서부 브리스틀에서 고든이라는 남자가 경찰에 체포됐다. 저녁 8시 15분에 램프 없이 자전거를 탔기 때문이다. 시간이 법적으로 정의된 상태라 유죄를 선고받긴 했지만, 브리스틀은 위치상 그리니치보다 10분가량 늦게 해가 지기 때문에 8시 23분까지는 램프 없이 다녀도 괜찮은 상황이었다. 다행히 추후 항소를 통해 고든은 무죄를 인정받았다.

물리학에서 시간은 실존하지 않는다

시간의 물리학적 정의를 고민하기 전에, 정확한 시간조차 확실하게 결정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시간이 얼마나 오묘하고 복잡한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시간은 형체가 없고 감지할 수도 없는 대상이다. 시간을 느낀다는 우리의 착각은 아날로그시계 속 초침이 움직이는 기계적 소리이거나, 심장박동처럼 반복되는 생물학적 리듬에 따른 것일 뿐이다. 인간 감각으로 관측하고 파악할 수 있는 영역 밖에 존재하는 것이 바로 시간이다.

그리스어로 ‘꼬리를 삼키는 자’라는 뜻의 우로보로스(Ouroboros)로부터 파생된 ‘우로보로스 효과’는 자신의 꼬리를 물고 삼키는 뱀처럼 순환적 본질을 가리키는데, 문제를 개선하려고 하는 노력과 방법이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는 의미다. 시간은 시계가 측정해 나온 결과이고, 시계는 시간을 측정하는 장치다. 이 반복적인 두 문장이 뱀이 자신의 꼬리를 삼키듯 무한하게 돌고 돌면서 서로를 정의하다 보니, 제대로 된 정의는 나오지 않는다. 누군가 몇 시냐고 물어보면 시계를 보고 언제든 정확하게 답할 수 있다는 자신감 덕분에 우리는 시간을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시계로 측정한 시간을 인지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시간에 대해 명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시간여행은 SF영화 속 상상일 뿐

물리학에서 말하는 미래로 시간여행은 SF영화와 달리 시간의 간격을 압축해 매우 빨리 지나가버리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GETTYIMAGES]

물리학에서 말하는 미래로 시간여행은 SF영화와 달리 시간의 간격을 압축해 매우 빨리 지나가버리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GETTYIMAGES]

영화나 만화, 드라마 덕분에 우리는 시간여행에 익숙하다. 물리학적인 시간여행에 대한 이론적 가설은 꽤 많다. 우선 미래로 가보자.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첫 번째는 빛의 속도와 가까운 속도로 이동해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른 시간 지연을 일으키는 것이다. 달리는 버스 내부에 있는 공이 위아래로 운동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함께 버스에 타고 있는 사람의 시점에서는 수직 왕복 운동을 하겠지만, 외부에 있는 사람에게는 버스가 이동한 만큼 공도 함께 수평으로 이동하기에 공이 대각선으로 올라갔다 다시 대각선으로 내려오는 것처럼 보인다. 즉 관측자 시점에 따라 공의 운동 거리가 달라진다. 만약 공 대신 비슷하게 빛나는 광자라고 한다면 빛의 속도는 항상 일정하니 이동 거리가 늘어날수록 시간도 느려진다.

두 번째는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중력이 매우 무거운 블랙홀이나 중성자별 같은 천체의 근처로 접근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라 자신의 시간을 느려지게 만드는 방법인데, 강한 중력으로 인해 반대로 자신을 제외한 익숙한 모든 세상의 시간이 매우 빠르게 흘러가버린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미래로 시간여행은 SF영화와 달리 시간 간격을 압축해 매우 빨리 지나가버리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영화처럼 현재에서 사라지고 미래에서 나타나는 형태는 불가능하기도 하고, 생물학적으로는 ‘인체 냉동 보존’도 일종의 미래로 가는 시간여행이다 보니 크게 감흥이 없다. 그렇다면 과거로 시간여행은 어떨까. 빛보다 빠르게 달린다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우선 빛보다 빠른 물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빛보다 빠른 가상의 입자 타키온(tachyon)이 있긴 하지만, 실존 여부가 불분명하다. 또한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빛보다 빠르게 움직일 경우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게 아니라 허수 방향으로 흘러가버린다. 허수 역시 계산상 필요로 만들어진, 실재하지 않는 수라서 결론조차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다.

시간여행이라는 이야기를 편하게 늘어놓았지만, 사실상 SF영화 속 상상일 뿐이다. 과거 영국 물리학자 뉴턴은 시간에 따라 위치가 변하는 천체들의 운동을 명확하게 정리하고자 처음으로 시간을 정의했다. 그는 우주 자체를 절대적 시간이라 보고, 변화하는 우주처럼 시간도 흐른다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제 현대 물리학의 주류 견해는 많이 달라졌다. 간단히 살펴보면 물리학에서 시간 흐름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는 없으며, 물리학 법칙 역시 과거와 미래를 구분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시간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결론이다.

물론 시간에 관해서는 워낙 다양한 입장이 존재하기에 이것 역시 하나의 가정일 뿐이지만, 저명한 물리학자 상당수는 이러한 내용에 동의하고 있다. 사실 대부분의 물리학자에게 어떤 개념이 실재하느냐, 아니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 개념이 세상에 대해 기술하는 데 유용한 어휘냐, 아니냐가 중요할 뿐이다. 시간은 두말할 나위 없는, 매우 쓸모 있는 어휘라 실재를 논하는 것 자체를 그들은 시간 낭비라고 본다. 세기의 발명왕 에디슨은 이렇게 말했다. “변명 중에서도 가장 어리석고 못난 변명은 시간이 없어서라는 변명이다.” 하지만 적어도 물리학자에게 시간이 없다는 변명은 절대 어리석지 않다. 지극히 과학에 입각한 답변일 뿐이다.

불가능을 향한 과학자들의 끊임없는 시도

불가능을 향한 과학자들의 끊임없는 시도는 ‘시간 연구’에도 해당된다. [GETTYIMAGES]

불가능을 향한 과학자들의 끊임없는 시도는 ‘시간 연구’에도 해당된다. [GETTYIMAGES]

시간여행과 관련해 2014년 흥미로운 논문이 하나 올라왔다. 호주 퀸즐랜드대 연구팀이 광양자와 웜홀을 기반으로 시간성 폐곡선(closed timelike curves)의 실험적 시뮬레이션을 추진한 결과인데, 과거로 시간여행을 시도했다고 볼 수 있다. 연구진은 휜 시공간을 만들고 그 사이에 과거와 현재 2개 지점을 직통으로 연결하는 웜홀을 구축했다. 이후 웜홀의 한쪽 입구를 빛의 속도로 떨어뜨렸다 다시 다른 웜홀의 입구 근처로 옮겨놓으면, 그만큼 시간에 틈이 생기는데 이때 웜홀을 통과하면 이론상 과거에 도착하게 된다. 여기서 광양자 입자를 통과시킨 결과 현재에서 과거로 옮겨간 광양자를 관측할 수 있었다. 물론 시뮬레이션이긴 하지만, 적어도 광양자 입자를 통해 시간여행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연구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시간여행은 근본적으로 말도 안 되며 비과학적이라는 인식을 전환할 수 있는 실험이었다.

최근에 나온 시간여행과 일부 관련된 논문은 ‘IBM 양자컴퓨터에서 시간의 화살과 그 역전(Arrow of time and its reversal on the IBM quantum computer)’이라는 제목으로 2019년 3월 ‘네이처’에 게재됐다. 러시아 모스크바 물리 기술연구소에서 진행한 연구로, 양자컴퓨터의 상태를 과거로 되돌린다는 시도를 통해 고립된 계의 엔트로피는 감소하지 않는다는 열역학 제2법칙을 위반할 가능성에 관한 내용이었다. 시간의 역전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상 당구를 한참 치다 다시 당구공들이 삼각형으로 예쁘게 놓인, 당구를 치기 직전 초기 상태로 돌아가는 현상을 발견한 것에 가깝다. 이러한 알고리즘은 양자컴퓨터를 정확하게 만드는 데 유용하겠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시간을 되돌린다는 개념과는 다르다.

과거 인류는 모든 물질의 질량을 부여하고 사라진 힉스 입자를 찾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작은 마을 크기의 입자가속기가 필요했기에 불가능한 시도로 여겨졌다. 중력파라는 미세한 신호를 검출하는 것도 마찬가지였고, 심지어 블랙홀의 그림자를 찍기 위해서는 지구 크기만 한 전파망원경이 필요했다. 하지만 결국 과학자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실험장치인 대형 강입자 충돌기(Large Hadron Collider)를 건설했고,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LIGO)도 두 군데 설치했으며, 지구 전역의 전파망원경을 연결해 이벤트 호라이즌 망원경(EHT)을 가동했다. 현실에서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수많은 목표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통해 실현된 것이다.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거나 지금은 시도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해도 어쩌면 미래에는 당연히 이뤄질 수 있을지 모른다. 지금 우리에게 매일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혁신들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후손들에게는 그저 당연한 일이니까.

궤도는…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





주간동아 1293호 (p5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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