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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쳐나는 폐플라스틱,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다”

2000도 시멘트공장 소성로에서 완전연소하면 물과 이산화탄소로 돌아가

  • 강태진 서울대 재료공학부 명예교수 taekang@snu.ac.kr

“넘쳐나는 폐플라스틱,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다”

인류의 수명은 감염병과 끊임없이 싸우며 연장돼왔다. 인류 역사에서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인구 감소’가 일어난 사건도 흑사병(1342~1353) 대유행이다. 중세 유럽에서 흑사병으로 1억 명 이상이 사망했다. 

감염병을 막으려면 물이 깨끗해야 한다. 이에 상수도시설은 로마시대 수도교 유적, 잉카의 마추픽추 유적에서도 볼 수 있듯 역사가 오래다. 인구가 늘고 도시가 팽창하자 로마의 물 공급원인 티베르 강물이 오염돼 수인성 전염병에 노출됐다. 기원전(BC) 4세기경 우물과 물탱크가 노후화돼 물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자, 로마 정부는 길이 16km의 아쿠아 아피아(Aqua Appia) 수로를 건설했다. 세계 최초의 상수도 시설이다.

세계 최초의 상수도 시설인 로마의 아쿠아 아피아.

세계 최초의 상수도 시설인 로마의 아쿠아 아피아.

로마는 100만여 시민에게 물을 공급하기 위해 파이프라인을 40km 떨어진 취수원에까지 설치했다. 수돗물이 도심에서는 지하 관을 통해 흘러갔지만, 지형적 장애물이 있는 곳에는 ‘수도교’로 알려진 수로시설을 설치했다. 2000년 전에 오늘날과 거의 흡사한 상하수도 시설을 만든 것이다. 이후 콜레라, 장티푸스 등 수인성 전염병이 거의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깨끗하고 안전한 식수 공급이라는 의미에서의 상수도시설의 역사는 100년 안팎에 불과하다. 프랑스 파리의 하수도가 대표적인 예다. 19세기 중반 콜레라가 전 유럽을 강타해 파리에서만 1만8000여 명이 사망했다. 영국에서 콜레라가 우물을 중심으로 번져나가자, 과학자들은 콜레라가 수인성(水因性) 전염병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이후 유럽 주요 도시에서 대대적인 상하수도 정비가 진행됐다. 

미 필라델피아는 1906년 하천에서 취수한 원수를 아무런 처리 없이 수돗물로 공급했다. 이 물을 마신 많은 시민이 수인성 전염병으로 희생됐다. 이때 ‘모래 여과’ 방법이 도입돼 장티푸스나 콜레라 발병률을 급격하게 감소시켰다. 이후 현재에도 사용되는 염소 소독법이 등장해 깨끗하고 안전한 물을 공급할 수 있게 됐다.



인류의 생명 구한 상수도시설

한편 로마인에게는 오늘날의 전염병 수준으로 납 중독이 널리 퍼져 있었다. 도시 내 수도관을 납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납은 금속 중에서도 채광, 정련, 성형이 쉽고 쇠보다 훨씬 낮은 온도에서 녹일 수 있어 수도관이나 그릇 등을 만드는 데 다양하게 쓰였다. 하지만 납이 인체에 흡수되면 대부분 뼈에 쌓이고, 신경계와 혈액 계통에 영향을 주어 신경 장애, 빈혈 등을 일으킨다. 로마 왕족이나 귀족은 포도주에 독특한 맛을 내기 위해 납을 감미제, 보존제로 첨가해 마셨고, 이들이 납에 중독돼 일찍 죽는 경우가 허다했다. 일반 시민도 납 중독을 시사하는 변비, 복통, 빈혈, 혈색의 변질, 관절통, 납관 제조공장 노동자의 기형 등 기록이 남아 있다. 

납은 물에 녹으면 독성을 발휘하지만, 19세기까지도 납이 인체에 해롭다는 것을 몰랐기에 유럽 곳곳에서는 납을 상수도시설에 사용했다. 배관을 의미하는 영단어 ‘plumbing’은 납을 의미하는 라틴어 단어 ‘plumbous’에서 왔다. 

우리나라는 개화기 부산의 일본인 거주 지역에 부분적으로 수돗물을 공급하는 시설을 운용했다. 1908년 서울 최초의 상수도시설인 뚝도정수장이 준공됐다. 당시 수도관은 주철관을 주로 썼고, 수명은 40년가량이었다. 수돗물은 주철관의 주요 성분인 철을 쉽게 용해해 철 산화물을 만들고, 알칼리 등과 반응해 탄산칼슘을 생성한다. 또 물 속 철 성분이 탄산이온과 반응해 탄산칼슘, 능철광, 철산화물 등을 주성분으로 한 스케일을 생성한다. 그런데 이것들이 쌓여 녹이 돼 수돗물이 흐르는 데 걸림돌이 되고, 때때로 녹물이 수돗물에 섞여 나온다. 또 수도관 외벽이 부식되는 문제도 있다.

심해 해양종 ‘유리슨스 플라스틱커스’

올해 태평양 심해에서 발견된 새로운 해양종, ‘유리슨스 플라스틱커스’. [강태진 제공]

올해 태평양 심해에서 발견된 새로운 해양종, ‘유리슨스 플라스틱커스’. [강태진 제공]

오늘날은 상수도관에 덕타일 주철관, PVC관, 석면 시멘트관 등을 주로 쓴다. 덕타일 주철관은 주철관의 부식 및 연성을 보완하고자 탄소, 규소, 망간, 인, 황 등을 섞어 관을 만든 뒤 내벽에 시멘트 몰타르 라이닝, 에폭시나 폴리에틸렌(PE) 코팅 등을 한 것이다. 

최근 북미에서는 수도관을 새로 설치할 때 내충격 PVC(폴리염화비닐)관을 많이 사용한다. 내충격성이 보강된 PVC관은 연성이 좋아 잘 깨지지 않고, 안정적인 화학 구조로 거의 부식되지 않는다. PVC나 PE 같은 플라스틱관은 전기가 흐르지 않는 비전도체이기 때문에, 수질이나 토양 환경에서의 관의 내면이나 외면에서 부식에 의한 녹과 스케일도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또 연성 PVC관은 일부 유기용재를 제외한 대부분 약품에 대한 내화학성이 우수하고, 염분이 함유된 물에도 잘 견딘다. 지진에 대한 안정성 또한 우수한데, 불안정한 지반이나 외부 충격에서 어느 정도 변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수명도 주철관은 40년여 년인 데 반해 PVC관은 100년이 넘는다. 물이나 산소에 의해 분해되거나 썩지 않아서 150년까지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썩지 않는 성질은 단점도 된다. PVC와 같은 플라스틱이 이산화탄소와 염소, 수소, 물로 분해돼 자연으로 돌아가기까지는 300~500년이 걸린다. 

올해 영국 뉴캐슬대학교의 해양생물학자 알랜 제이미슨(Alan Jamieson) 교수는 세계 최초로 심해에서 새로운 해양종을 발견했다. 태평양에서 가장 깊은 곳인 마리아나 해구(Mariana Trench)의 바다 속 7km 지점에서 길이 5cm 가량의 새우를 닮은, 그간 알려지지 않은 해양종을 찾아낸 것이다. 이 해양종의 뱃속에 0.65mm 가량의 미세 합성섬유가 들어 있어 이 생명체는 ‘유리슨스 플라스틱커스(Eurythenes Plasticus)’로 명명됐다. 플라스틱이란 단어가 분류학 기호로 처음 사용된 것이다. 해양 플라스틱 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차원이다.

현대기술에 합당한 환경 규제 필요

폐플라스틱과 폐타이어는 시멘트 공장에서 환경연료 재활용될 수 있다. [강태진 제공]

폐플라스틱과 폐타이어는 시멘트 공장에서 환경연료 재활용될 수 있다. [강태진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언택트(비대면) 소비가 증가하면서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대두됐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여야 하는 것은 당면과제지만, 그렇다고 플라스틱 없이 인류의 건강과 안전을 담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플라스틱을 높은 온도의 강렬한 불에 태우면 물과 이산화탄소로 바뀌어 공기 속으로 흩어진다. 플라스틱의 원료는 석유의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나프타에서 나온다. 즉, 플라스틱은 화석 연료와 같은 화학성분으로 구성돼 있어 일정 수준 이상의 높은 열을 가해주면 더 없이 좋은 연료가 될 수 있다. 불완전 연소를 하게 되면 다이옥신 같은 유해물질이 배출돼 문제가 될 수 있지만, 1200도 이상의 높은 온도에서는 완전 연소가 일어나 자연에 존재하는 이산화탄소, 물, 산소, 수소 같은 성분으로 되돌릴 수 있다. 

시멘트공장의 소성로(Kiln)의 연소 온도는 2000도다. 플라스틱을 자연으로 되돌리는 좋은 환경이다. 폐플라스틱을 유연탄의 대체제로 사용할 수 있어 자원의 순환 이용을 실천하고 유연탄 사용량을 줄여 온실가스 배출 절감에도 기여할 수 있다. 유럽에서는 시멘트 소성로를 활용한 순환경제 활성화 방안이 적극 추진되고 있다. 폐플라스틱을 시멘트공장 소성로에서 환경연료로 재활용해 환경 부담을 줄이고 산업 경쟁력을 높이려는 시도다. 시멘트 제조업이 ‘환경산업’으로 탈바꿈돼 가고 있는 것이다. 

폐타이어는 20년 전만 해도 환경 공해물질로 골칫거리였다. 하지만 현재는 없어서 못 구할 지경이다. 처음에는 폐타이어를 소각해주는 대가로 시멘트공장이 소각비를 받았다. 현재는 시멘트공장이 이를 돈을 주고 산다. 국내에서 구하기 어렵자 해외에서 수입해올 정도다. 이 사례를 본보기 삼아 폐플라스틱에 적용하면, ‘폐타이어 공해’라는 말이 사라졌듯 ‘플라스틱 공해’라는 단어도 잊힌 시절이 될 수 있다. 

플라스틱에 관한 환경 규제와 법 제도는 이러한 현대기술 변화에 합당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규제 일변도의 과잉 규제는 우리 산업을 위축시키며 국제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국민에게서 물질문명이 주는 행복감도 빼앗아간다.





주간동아 1248호

강태진 서울대 재료공학부 명예교수 taekang@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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