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33

2020.04.03

늦맘이어도 괜찮아

코로나發 위기를 극복하는 슬기로운 육아생활

“영상회의 때 자녀 등장 괜찮다”는 작은 배려의 시그널 많아져야

  • 전지원 서울대 국제이주와포용사회센터 책임연구원

    latermotherhood@gmail.com

    입력2020-03-23 14: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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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IMAGES]

    [GETTYIMAGES]

    ‘방학이 길어지자 엄마들이 괴수로 변했다. 그중 우리 엄마가 가장 사납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돌아다니는 어느 초등학생의 그림일기를 보고 한참을 씁쓸하게 웃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유치원 개원과 초중고 개학이 연기된 지 대략 3주. 봄방학까지 합치면 벌써 한 달 넘게 엄마, 아빠가 집에서 자녀를 돌보는 중이다.

    9월 개학? 사표 써야 하나…

    최근 인터넷에서 널리 공유되는 휴교 및 재택근무 관련 콘텐츠들.

    최근 인터넷에서 널리 공유되는 휴교 및 재택근무 관련 콘텐츠들.

    감염 우려로 밖에 나갈 수 없는 아이들은 넘치는 에너지를 모두 집 안에서 분출한다. 여섯 살인 우리 아이는 남자아이치고는 무척 얌전한 편인데도, 요즘은 틈나는 대로 내 어깨 위에 오르려 한다. 아이 키우는 집인 줄 몰랐던, 항상 조용하던 윗집에서도 밤늦게까지 아이 뛰어다니는 소리,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린다. 처지가 짐작이 되니 차마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할 생각이 들지 않는다. 

    집안일에 하루 세끼까지 차리느라 바쁜 와중에도 이거저거 해달라는 요구를 쉴 새 없이 받다 보니 ‘내 귀에 캔디’처럼 달콤하던 아이 목소리가 더는 달콤하지 않다. 6세, 4세 두 아이를 키우는 한 엄마는 “하루에 ‘엄마’ 소리를 수천 번은 듣는다. 오전에는 ‘응, 왜~’ 하고 다정하게 대답하지만, 저녁이 되면 ‘아, 왜!’ 하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일과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모든 돌봄 시스템이 ‘일시 멈춤’ 상태다. 무증상 감염자가 적잖다고 하니 긴급돌봄서비스를 이용하기도 망설여진다. 유치원생 딸을 둔 한 직장 여성은 딸을 유치원 긴급돌봄교실에 보냈다. 하지만 며칠 뒤 텅 빈 유치원에 가고 싶지 않다고 서럽게 우는 아이를 붙들고 함께 울다 결국 무급휴직을 냈다고 한다. 



    평소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던 조부모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다. 노인층이 코로나19에 훨씬 취약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방과 후 몇 시간 아이를 맡기는 것과 온종일 육아를 도맡아달라는 것은 천지 차이다. 늦맘의 부모는 70, 80대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모의 건강이 특히 염려된다. 시터서비스 역시 사람과 접촉을 피해야 하는 현 상황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면 그나마 운이 좋은 편. 하지만 솔직히 아이를 돌보면서 평소처럼 일하는 것은 쉽지 않다. 7세 자녀를 둔 한 친구의 재택근무 소감은 이렇다. “아이는 온종일 TV를 보게 했고, 점심과 저녁은 즉석 국을 덥혀 먹이면서 하루 내내 업무에 매진했어. 그런데 회사에 출근한 동료들에게 눈치가 보이더라. 아이에게도, 회사에도 미안한 거지….” 

    연이은 개학 연기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복잡하다. 전염병 확산을 막으려면 꼭 필요한 조치이지만, 집에서 혼자 아이를 돌보는 일이 실로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개학한다 해도 막상 유치원이나 학교에 아이를 보낼 엄두가 나지 않을 수 있지만 ‘개학을 9월로 연기하자’는 주장에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9월까지 지금처럼 지내야 한다면 상당수 엄마는 일을 그만두는 것 외에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한창 활동할 때 피해 일합시다”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와 육아 문제를 다룬 뉴욕타임스(왼쪽)와 포춘 지 기사. [각 홈페이지 캡쳐]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와 육아 문제를 다룬 뉴욕타임스(왼쪽)와 포춘 지 기사. [각 홈페이지 캡쳐]

    미국이나 유럽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3월 17일자 미국 ‘뉴욕타임스’에 ‘악몽 같은 상황(It is a Nightmare Out Here)’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휴교령이 떨어진 상황에서 일과 돌봄을 둘 다 해내려 애쓰는 시애틀 부모의 사정을 전하는 기사다. 40대 여성 제이미 피치는 4세 아들이 TV를 보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는 동안 10개월 된 아기를 아기띠로 동여맨 채 온라인 미팅을 진행하는 상황을 ‘나쁜 꿈과 같다’고 묘사했다. 3월 19일자 미국 ‘디 애틀랜틱’은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전 세계 수많은 여성이 돌봄 부담으로 일을 그만두거나 소득이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여전히 여성이 돌봄을 도맡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규모가 작은 회사에 다니는 한 늦맘 친구도 “일을 그만둬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 중”이라고 털어놓았다. 재택근무를 하며 아이를 돌보고 낮에 못 한 일을 밤에 마무리하면서 버티고 있지만, 아무래도 생산성이 평소만 못 하고 회사에도 부담이 된다는 생각이 들어 견디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낮에 육아와 집안일을 하고 밤에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체력이 남아나지 않는다고도 했다. 남 일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3월 20일자 미국 ‘포천’은 ‘많은 부모가 코로나19로 인한 실직 위험과 돌봄 대안 부재라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며 ‘회사나 고용주가 그냥 재택근무가 아니라 세계적 전염병 상황에서의 재택근무(It isn’t just remote work; it’s remote work during a global pandemic)라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재택근무 중인 직원에게 도움이 될 만한 노력을 기울이는 회사들의 사례를 소개했다. 예를 들어 맥킨지는 아이들이 늦은 오후 시간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점을 고려해 업무를 조율하는 것은 물론, 전화통화 중에 아이가 방해하더라도 이해한다는 뜻을 직원들에게 전달했다. 콜로라도의 스타트업 스텔라는 정해진 시간에 고객 전화를 받는 일 외에는 모든 것을 유연하게 진행해도 좋다는 방침을 도입했다. 

    이러한 노력의 밑바탕에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돌봄 위기가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처음으로 겪는 글로벌 위기에 모두가 어렵고 힘들다, 특히 아이를 돌보며 일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안다, 괜찮다 등 작은 배려의 시그널이 부모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기둥’을 키워내는 일

    개학이 4월로 연기된 가운데 3월 16일 서울 시내의 한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교사가 신입생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뉴시스]

    개학이 4월로 연기된 가운데 3월 16일 서울 시내의 한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교사가 신입생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뉴시스]

    나도 이번에 재택근무를 하면서 처음으로 일을 그만둘까 고민할 정도로 쉽지 않은 몇 주를 보냈다. 안달하는 나에게 남편이 말했다. “일을 하루 이틀 하고 말 거냐. 일하다 보면 부족할 때도 있고, 더 많이 할 때도 있다. 누구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때가 있다. 내가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을 때도 언젠가 온다. 그렇게 서로 도와가며 사는 거 아니겠느냐”고.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영웅은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기꺼이 현장으로 달려간 의사와 간호사다. 이들도 어느 부모가 고이고이 키운 자녀다. 우리가 키우는 아이가 세계를 구하는 백신을 발명할 것이고, 모두의 영혼을 치유하는 예술을 창조할 것이며, 빈부격차와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아이들은 우리 사회를 지탱해나가는 중요한 기둥이 될 테다. 사회 구성원을 키워내는 일이 어찌 개인만의 일이겠는가. 이번 주도 아이와 진하게 부대낄 엄마, 아빠들에게 함께 힘내자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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