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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맘이어도 괜찮아

일과 육아의 ‘어중간함’에 대하여

사무실 불 켜놓고 퇴근하는 ‘속사정’ 생기지 말아야

  • 전지원 서울대 국제이주와포용사회센터 선임연구원 latermotherhood@gmail.com

일과 육아의 ‘어중간함’에 대하여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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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여름 미국 잡지 ‘더 애틀랜틱(The Atlantic)’에 에세이 한 편이 실렸다. 제목은 ‘왜 여성은 아직도 일과 가정, 둘 다를 가질 수 없는가(Why Women Still Can’t Have It All)’.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으로 일한 앤마리 슬로터(Ann-Marie Slaughter · 현 프린스턴대 교수)가 당시 10대인 아들을 돌보고자 국무부를 떠나면서 던진 질문이었다. 

변호사 출신으로 프린스턴대 우드로 윌슨 공공국제정책대학원 학장을 거쳐 국무부 고위 관료까지 지낸, 최고 커리어를 가진 여성이 전한 “엄마이면서 톱 프로페셔널로 일하는 것은 초인(Super Human)이거나 부자가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토로는 전 세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슬로터는 당시 유행하던, ‘여성이 좀 더 적극적으로 사회와 조직에 참여해야 한다’는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가 불을 지핀 ‘린인(Lean In)’ 담론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아무리 자녀가 있는 여성이라도 커리어가 절실하고 야심이 충분하다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주장은 일·가정 양립이 도저히 불가능한 사회경제적 구조를 여성 개인의 절실함 부족 탓으로 돌리는 것이라는 비판이다.


엄마의 프로페셔널? 초인이거나 부자이거나

2012년 ‘더 애틀랜틱’에 실린 앤마리 슬로터의 에세이. [‘더 애틀랜틱’ 홈페이지 캡처]

2012년 ‘더 애틀랜틱’에 실린 앤마리 슬로터의 에세이. [‘더 애틀랜틱’ 홈페이지 캡처]

슬로터는 38세에 첫아들, 40세에 둘째아들을 낳은 ‘늦맘’이다. 그는 결혼과 출산이 늦어지는 추세를 지적하면서 20, 30대 초반에 출산해 사회적으로 한창 활동할 무렵 자녀가 성인이 된 힐러리 클린턴이나 매들린 올브라이트와 달리, ‘늦맘’이 많은 현 세대의 여성은 한창 활동할 나이에 자녀가 돌봄의 손길을 많이 요구하는 10대 청소년이 돼 또 다른 도전을 마주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자신은 국무부 일을 매우 사랑했지만, 사춘기를 맞은 아들이 힘겨워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고 했다. 교수인 남편이 육아를 주도적으로 담당했지만, 아들이 엄마를 필요로 한다고 느꼈을 때 “(사표를 내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성과보다 장시간 근무를 높이 평가하는 문화, 사무실 위주의 경직된 업무 환경, 유연하지 않은 업무 스케줄 등 ‘일상적인’ 걸림돌이 해결되지 않으면 엄마는 물론, 연로한 부모나 배우자 등 가족 돌봄의 부담을 지고 있는 사람은 누구라도 커리어를 지속하기 어렵다는 게 슬로터의 견해다. 그는 여성에게 돌봄 부담과 희생이 집중된 현실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 “우리 사회는 왜 가족을 우선시하는 사람은 일에 소홀할 것이라 여기고, 가족을 돌보는 일에 가치를 부여한 사람을 리더로 삼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던졌다.




출산 포기한 정규직, 출산 때문에 계약직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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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7년이 지난 슬로터의 글을 다시 꺼낸 이유는 이 글에 담긴 고민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은 여전히 출산과 양육의 대가를 오롯이 치른다. 늦은 나이에 어렵게 엄마가 된 한 친구는 얼마 전 오랫동안 열정적으로 일궈온 커리어를 접고 ‘알바’ 격의 자문 일을 택했다. 그는 “일을 완전히 그만둔 것은 아니지만, 일도 육아도 어중간한 것 같아 씁쓸하다”고 털어놨다. 40세에 접어든 이 친구가 본격적인 커리어 트랙에 다시 올라설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또 다른 늦맘은 “아이를 낳기 전보다 5배쯤 더 열심히 살고 있지만, 어디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밤 10시 무렵 아이가 잠들자마자 일하고, 아이가 자고 있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다시 일하며, 나머지 시간은 육아와 가사에도 힘쓰지만 일과 육아 무엇 하나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 여성들도 ‘출산의 대가’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일례로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같은 해 박사학위를 딴 촉망받는 두 동기가 있다. 한 명은 몇 년 뒤 모교의 정교수가 됐지만, 두 아이의 엄마인 다른 한 명은 뒤처진 연구 업적과 중단된 커리어로 인해 여전히 계약직 연구원으로 머물며 ‘자리의 불안함’에 시달리고 있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그는 동료들에게 수없이 사과하는 e메일을 보내고, 밀린 일은 아이가 잠든 새벽에 몰아서 한다. 정교수가 된 이 역시 씁쓸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연구 업적을 쌓으려 임신을 미루다 결국 아이를 갖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포브스’에 실린 ‘일하는 엄마에게 압박은 진짜(The pressure is real for working mothers)’라는 기사는 미국 밀레니얼 워킹맘이 겪는 압박과 고충을 ‘Overwhelmed(압도됨, 짓눌림)’라는 한 단어로 요약한다. 많은 워킹맘이 육아와 업무 부담에 시달리다 아이가 아프거나, 잦은 야근으로 아이를 픽업할 시간에 자주 늦게 되면 ‘이렇게까지 해서 버틸 가치가 있는가’라고 되물으며 사직을 심각하게 고려하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 유명 정치 컨설턴트인 메리 마탈린은 심지어 출근하는 차 안에서 ‘나는 왜 이 일을 하지?’라고 몇 번이나 울면서 자문했다고 한다. 어딘가 익숙한 풍경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늦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일과 육아 양립이라는 불가능한 과제에 용감하게 도전하고 있다. 10년째 워킹맘의 삶을 ‘견디고’ 있는 한 친구는 “경제적 이유로 맞벌이를 놓을 수 없기도 하지만, 나중에 아이가 커서 내가 해온 일을 돌아보며 ‘엄마가 나를 키우면서도 최선을 다해 일했구나’라고 알아준다면 그것만으로도 보상은 충분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나 역시 ‘위대한 연구자 되기’가 일찌감치 틀린 일일지 모르지만, 세상에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연구를 하고자 발버둥치고 있다. 아마 많은 여성이 비슷한 각오를 가지고 오늘도 ‘열일’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글에서 슬로터는 “누구나 가정을 갖길 원한다면 가질 수 있어야 하고, 원하는 커리어도 지킬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 방법을 제시했다. 그중 몇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이렇다. 첫째, 장시간 근로와 대면 근무 위주의 문화 바꾸기(Changing the Culture of Face Time). 그는 가장 늦게까지 일한다는 인상을 주고자 외투를 의자에 걸어두고 사무실 불을 켜둔 채 퇴근했다는 동료의 사연을 들려주면서 ‘오랜 시간 일하는 것이 곧 일을 잘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일·가정 양립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메신저, e메일, 화상전화 같은 다양한 기술이 발전한 요즘 시대야말로 가능한 시간, 원하는 곳에서 일할 수 있는 유연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적기라는 것이다(그렇다고 삶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지만). 

둘째, 가족을 우선시하는 것을 일에 소홀한 것으로 여기는 문화를 바꾸기(Revaluing Family Values). 슬로터는 아이를 돌보며 일하는 것에 필요한 조직력, 헌신, 집중력, 인내력은 마라톤에 출전하는 것에 비견할 만한데도 아이를 돌보는 부모는 마라톤 연습을 하는 직원에 비해 일에 덜 열심이라고 여겨진다면서, 가정과 돌봄에 가치를 두는 사람이 존중받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어디에서건 돌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지 않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대학원 학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오후 6시에 퇴근하면서 일부러 “아이들과 식사하기 위해 집에 간다”고 밝혔고, 어느 자리에서든 자신을 소개할 때 두 아이의 엄마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남녀 모두 좀 더 많은 사람이 돌봄에 대해 이야기하고 돌봄 부담을 존중한다면 가정보다 일을 중시하는 문화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돌봄 가치’ 인정해야 저출산 해결책 나와

워킹맘에 대한 슬로터의 관점이 기존 관점과 구별되는 부분은 그가 돌봄을 단순히 여성 문제로만 바라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이 아빠는 물론, 결혼하지 않았거나 자녀가 없는 경우에도 우리는 모두 가족 돌봄을 병행해야 하는 의무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따라서 돌봄을 병행할 수 있는 근무 환경을 만드는 것은 비단 엄마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일이다. 또한 돌봄 부담을 가진 이와 함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장애를 가졌거나 다른 문화에서 온 사람과 함께 일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것은 다양한 재능과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조직의 경쟁력을 위한 노력이다. 

한국은 남녀 모두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는 사회다. 돌봄으로 커리어를 포기하는 것은 남녀 모두에게 큰 비용이다. 따라서 한국이 초저출산을 겪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늦맘, 그리고 늦아빠가 돌봄과 일을 병행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지 못한다면 초저출산은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디폴트 항목이 되지 않을까.






주간동아 2019.11.22 1215호 (p70~72)

전지원 서울대 국제이주와포용사회센터 선임연구원 latermotherhoo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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