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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 밖의 과학

창백한 푸른 점 속의 인류

올해 노벨상 받은 과학자들의 경이로운 성과

창백한 푸른 점 속의 인류

2019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왼쪽부터 존 B 구디너프, 스탠리 위팅엄, 요시노 아키라. [ƒ노벨미디어]

2019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왼쪽부터 존 B 구디너프, 스탠리 위팅엄, 요시노 아키라. [ƒ노벨미디어]

“내가 연구실 생활을 열일곱 살에 시작했다. 그 나이 때 연구를 시작한 놈들이 100명이라 치면, 지금 나만큼 사는 놈은 나 혼자뿐이야. 나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 학부 땐 수학 전공하고, 박사학위는 물리학으로 받고, 오래가는 리튬이온 배터리까지 다 만들었다. 고니야, 노벨화학상 하나 찔러봐라.”(영화 ‘타짜’의 곽철용 역으로 뒤늦게 각광받는 배우 김응수의 대사 패러디) 

매년 과학자들을 긴장케 하는 노벨상 발표의 시기가 돌아왔다. 그중에도 눈에 띄는 사람은 단연 역대 최고령 노벨상 수상자인 존 B. 구디너프(John B. Goodenough)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교수다. 올해로 97세인 구디너프 교수는 이름부터가 노벨화학상을 받기에 충분(Good enough)하다. 

1922년 독일에서 태어난 그는 예일대 재학 시절 수학을 전공했고, 시카고대에서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24년간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위치한 MIT 링컨연구소에서 컴퓨터 주기억장치(RAM) 개발에 힘썼고, 이후 영국 옥스퍼드대 무기화학연구소 교수로 부임하면서 에너지 연구를 시작했다. 그가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까지도 굉장히 무거운 휴대전화나 태블릿PC를 힘겹게 들고 다녔을 테고, 화석연료 없는 세상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계속 다른 분야를 찾아 떠나며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했던 개척정신의 과학자였기에 우리의 삶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었고, 그 공로는 노벨화학상으로 이어졌다. 

물론 구디너프 교수 혼자 해낸 것은 아니다. 스탠리 위팅엄 미국 뉴욕주립대 빙엄턴캠퍼스 교수와 요시노 아키라 일본 아사히가세이 명예연구원이 함께 수상했다. 노벨상은 한 분야의 상에 대해 최대 3명까지 수상하며, 오직 생존자만 받을 수 있다.


우주 진화의 비밀을 밝힌 물리학자

201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왼쪽부터 제임스 피블스, 미셸 마요르, 디디에 쿠엘로. [ƒ노벨미디어]

201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왼쪽부터 제임스 피블스, 미셸 마요르, 디디에 쿠엘로. [ƒ노벨미디어]

올해 노벨물리학상 후보로는 양자정보학 분야가 유력하다는 관측이 많았다. 지지난해 중력파의 발견으로 킵 손, 라이너 바이스, 배리 배리시 교수가 받았고, 지난해에는 레이저 물리학 분야에서 아서 애슈킨, 제라르 무루, 도나 스트리클런드 교수가 받았기 때문이다. 몇 년 안에 같은 분야에 상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에 천문우주학 분야에서 받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만큼 예측불허였다는 점에서 노벨상다웠다. 



2019년 노벨물리학상의 영예는 캐나다계 미국 물리학자 제임스 피블스, 그리고 스위스 천문학자 미셸 마요르와 디디에 쿠엘로에게 돌아갔다. 이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피블스는 사실 눈앞에서 노벨물리학상을 한 번 놓친 적이 있었다. 당시 이야기를 조금 해보도록 하자. 


코비위성으로 관측한 우주배경복사. [NASA]

코비위성으로 관측한 우주배경복사. [NASA]

1948년 러시아 출신 미국 천문학자 조지 가모는 그의 제자 랠프 앨퍼와 함께 빅뱅 이후 우주의 물질이 어떻게 현 상태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기막힌 아이디어를 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물질은 한 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우주가 팽창하고 식어가는 과정에서 단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초기 우주를 아주 작은 간장종지에 담긴 펄펄 끓는 매운탕이라고 했을 때, 그 그릇이 점점 커진다면 그만큼 매운탕은 식어갈 것이다. 만약 정말 빅뱅이 있었다면 현재 우주 전체에 퍼져 있는 매운탕의 온도를 계산할 수 있을 테고, 실제로 앨퍼는 우주 곳곳에 식어가는 미세한 온도까지 계산해냈다. 

이후 프린스턴대에서 연구하던 피블스는 전파망원경을 사용하면 앨퍼가 계산한 에너지를 실제로 관측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만들기 시작했으나, 불과 2시간 거리에 있던 벨연구소의 아노 펜지어스와 로버트 윌슨이라는 과학자가 이미 관측을 마친 후였다. 여기서 발견된 것이 바로 최초의 우주배경복사로, 펜지어스와 윌슨은 1978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피블스는 좌절하지 않았다. 온 우주에 우주배경복사가 균일하게 존재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완벽하게 균일하다면 전부 평형 상태에 놓이기 때문에 현 우주의 구조는 만들어질 수 없다. 적당히 불균일해 여기저기 물질이 뭉칠 수 있어야 별도 행성도 만들어진다. 그는 여기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중력적인 상호작용을 하는 암흑물질이라는 존재가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제 암흑물질을 고려한 우주배경복사의 미세한 변화를 측정하는 것만 남았고, 1992년 코비위성을 통해 우주에서 관측한 우주배경복사의 불균일함은 피블스가 예측한 결과와 정확하게 일치했다. 아쉽게도 빅뱅의 증거를 직접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빅뱅이론의 발전과 검토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 올해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것이다.


태양계 밖 외계행성을 발견한 천문학자

회전그네 놀이. [shutterstock]

회전그네 놀이. [shutterstock]

스위스 제네바대 교수인 미셸 마요르와 디디에 쿠엘로는 1990년대 초부터 외계행성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만약 태양계 밖에도 지구와 같은, 생명체가 살아가는 외계행성이 있다면 분명히 태양처럼 빛나는 항성 주위를 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먼저 태양과 비슷한 항성을 찾기 시작했다. 만약 태양과 비슷하게 빛나는 항성이 있고, 그것이 미세하게 흔들리면서 회전한다면 분명히 그 주위에는 지구와 비슷한 행성이 돌고 있으리라는 기대감이었다. 마치 부모가 아이의 두 팔을 잡고 회전그네 놀이를 할 때, 아이만 부모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체중 때문에 부모도 조금씩 중심축이 이동하는 것처럼 말이다. 

1995년 드디어 그들은 프랑스 남부 천문대에서 페가수스자리 51b를 발견했고, 이 행성은 태양과 비슷한 항성 주위를 도는 최초의 외계행성이었다. 크기는 목성보다 1.5배나 크고, 모항성과 거리가 매우 가까워 표면온도는 1000도를 육박했다. 심지어 공전주기는 거의 나흘밖에 되지 않아 지구 시간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생일파티를 할 수 있다. 

발견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당시 외계행성 연구자들의 관점을 완전히 바꿔놓았다는 사실이다. 기존 행성의 기원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고, 이후 행성 탐사 분야를 빠르게 성장시켜 수천 개의 외계행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칼 세이건은 저서 ‘창백한 푸른 점’에서 실제 창백한 푸른 점, 지구가 찍혀 있던 태양계 가족사진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창백한 푸른 점’의 경이

창백한 푸른 점. [NASA]

창백한 푸른 점. [NASA]

‘이렇게 멀리서 보면 지구는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 점은 우리가 있는 이곳이며, 우리의 집이자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이 저 점 위에 존재했고, 수천 개의 종교와 이데올로기, 모든 영웅과 비겁자,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과 그런 문명을 파괴한 사람들, 왕과 미천한 농부,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 꿈 많던 아이와 부모, 성자나 죄인이 모두 바로 태양빛에 걸려 있는 저 먼지 같은 작은 점 위에 살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외로운 하나의 점입니다. 이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안다면 우리는 서로를 더 배려해야 하고, 우리의 유일한 삶의 터전인 저 창백한 푸른 점을 아끼고 보존해야 합니다.’ 

사실 여기서 언급된 사진은 장비 고장의 위험으로 수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이를 무릅쓰고 칼 세이건의 주도에 따라 보이저 1호의 카메라로 지구 방향을 촬영한 것이다. 그는 지구가 광활한 우주에 떠 있는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고, 그의 말처럼 이 작은 점 하나 안에 우리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하지만 경이롭지 않은가. 이렇게 코딱지만 한 곳에서 옹기종기 살아 숨쉬고, 인류에게 공헌할 만한 위대한 연구를 하며, 그 연구 결과에 걸맞은 권위 있는 상을 수여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는 우주에서 가장 작은 존재지만, 우주의 시작부터 끝까지 무한하고 거대한 사고를 하는 유일한 생명체, 인류다.


궤도_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한 후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을 진행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






주간동아 2019.10.18 1210호 (p64~66)

  •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nasabol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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