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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한의 세상관심법

고독사는 사회적 범죄다

숨진 채 발견된 30대 여성 … ‘살아 있음’이 문제 해결의 기본임을 깨달아야

고독사는 사회적 범죄다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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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0일 부산 한 빌라에서 36세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시신이 심하게 부패한 점으로 미뤄볼 때 사망한 지 40여 일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고인은 수년 전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월세가 3개월가량 밀리고 공과금도 체납된 것으로 봐서는 생활고에 시달린 듯하다. 신경 안정을 위한 약물치료도 받아왔다고 한다. 

필자는 비극적인 고독사 뉴스를 접하면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떠오른 생각들을 말하고자 한다. 

첫째, 고독사는 사회적 방임이며 더 나아가 사회적 살인이다. 인간은 결코 혼자 살 수 없다. 사회적 존재다. 일부 사람은 사회적 고립을 스스로 택한다. 자폐성 장애를 앓는 사람은 타인에 대해 관심이 거의 없고, 사회적 상호작용을 할 능력이 결여돼 있다.


영원한 독립은 없다

그렇다고 자폐성 장애를 가진 이들이 고립된 삶을 살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사회가 할 일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이들에게 특수교육, 의료적 접근, 사회복지 혜택을 제공하며 사회적 참여를 권한다. 이들의 성공적인 재활과 사회 복귀가 얼마나 이뤄질지 그 결과와는 상관없이 많은 이가 노력을 기울인다. 비록 당사자나 가족이 보기엔 턱없이 부족한 노력일지언정 이것이 사회적 책무임에는 틀림없다. 

만일 누군가가 “당신 자녀는 운이 나빠 자폐성 장애인으로 태어난 것이니,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말고 알아서 불운과 역경을 극복하라”고 말한다면, 사회 구성원이 이에 얼마나 동의하겠는가. 인지상정이자 보편적 인류애 차원에서 ‘우리 사회가 그들을 보듬고 챙겨줘야 한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이러한 병이 아니라, 반복된 실패와 좌절로 고립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예컨대 반복되는 구직 실패와 연이은 실직, 만성적 가난, 심각한 질병, 사회적 네트워크의 상실로 고통받는 사람은 사회적 고립 상태에 빠져들기 쉽다. 이들에게 “스스로 자초한 일이니 알아서 해결하라”고 한다면 이는 무척 자인하고 비인간적인 언사다. 누가 고통받든, 누가 죽어나가든 나만 잘살면 된다는 이기주의는 우리 사회를 숨 막히는 공간으로 만든다. 따라서 누군가의 고독사는 사회적 방임이요, 더 나아가 사회적 살인이다. 우리 사회가 더는 방임과 살인이라는 끔찍한 만행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란다. 

둘째, 고독사 전에 우울증 같은 정신의학적 문제가 선행되는 경우가 많다. 혼자 산다는 것은 다른 이의 간섭과 통제를 받지 않는 달콤한 면과 누군가에게 의존할 수 없다는 쓰디쓴 면을 함께 지닌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의존에서 독립으로 가는 과정을 밟으며 성장한다. 부모 없이는 걷지도 먹지도 못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도 못하는 아이가 점차 커가면서 자신만의 생각과 행동, 가치관을 정립해간다. 그리고 성인이 돼 경제적, 정신적으로도 독립한다. 그러나 영원한 독립은 없다. 독립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부모를 찾고, 친구를 만나며, 배우자와 의논한다. 인간에게는 어느 정도 의존 욕구가 늘 있는 것이다.


예방책 절실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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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의존하고자 하는 대상이 더는 존재하지 않거나, 나를 지지해주기는커녕 비난한다면? 나는 이제 그에게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독립을 꿈꾼다. 그런데 막상 독립이 어렵다면? 그저 주저앉고 싶다. 앞으로 나아갈 열정과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우울증이 시작된다. 밥맛이 없고 잠도 잘 들지 못한다. 사회적 친교나 인정 욕구도 전혀 생기지 않는다. 앞으로 어떻게 살지도 막막한데, 당장 경제적 어려움까지 닥쳐온다. 우울증 외에도 불안장애, 사회공포증, 강박장애 등이 덤처럼 따라온다. 

셋째, 가족의 기능이 급속도로 약화되는 현상이 걱정된다. 가족은 사회의 최소 구성단위로, 친밀감과 사랑으로 연결된 소중한 집단이다. 서로 비슷한 상황에 놓인 가정은 모임을 가지며 연대한다. 예컨대 장애인이나 정신질환자 자녀를 둔 부모들이 함께 모여 정보를 공유하고, 고충에 대해 의논하며, 더 나아가 정부 정책과 관련해 한목소리를 낸다. 이것이 가족의 힘이다. 

고독사를 맞게 된 사람은 가족이 그에게 무관심했거나, 스스로 가족을 거부했을 공산이 크다. 다만 처음부터 가족과 그런 관계였는지 생각해본다면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고 헌신하는 것은 거의 본능에 가깝다. 하지만 자녀가 성장하면서 여러 부정적 사건을 겪으면 부모, 자식 사이에 갈등과 반목이 생길 수 있다. 사랑과 지지의 연대가 점차 느슨해지다 급기야 가족이 쪼개진다. 서로 함께 살기를 원하지 않고, 대화와 정서적 교류마저 차단한다. 비극의 결말로 걸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고독사를 예방하는 가장 중요한 방책은 가족의 순기능을 강화해 가족 해체를 막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죽음을 두려워하고 금기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절실하다. 우리 사회에서는 죽음이 너무나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필자는 이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특히 자살 문제가 심각하다. 유명 인사의 자살이 심심찮게 보도되면서 많은 사람이 ‘저렇게 성공한 사람도 죽음을 택하는데, 나처럼 보잘것없는 사람이 뭐 하러 살아 있나…’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다. 특히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일수록 유명인의 죽음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보통 사람들의 인식에도 문제가 있다. ‘오죽했으면 죽기로 했을까. 나라도 그랬을 것 같아’라는 생각은 자살을 합리화하고 미화하는 것으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죽음을 택하는 것은 비겁한 행동이다. 설령 죄가 있더라도 죗값을 치르고 다시 시작할 마음을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길 바란다. 언론도 변해야 한다.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것에 그치지 말고 안타까움을 표현하면서 죽음이 아닌 다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생존의 위대한 가치를 알려주는 보도에 힘을 쏟아야 한다. 

죽음은 결코 해결책이 아니다. 살아 있음, 즉 생존 자체가 여러 고난을 해결하는 노력의 기본이며, 자살은 결코 용납돼선 안 되는 이상행동임을 우리 사회가 명확히 인식했으면 좋겠다.






주간동아 2019.08.02 1200호 (p79~80)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학박사 psysohn@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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