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53

2018.08.29

강양구의 지식 블랙박스

왜 8월 태풍은 한반도를 덮칠까?

북태평양 고기압 가장자리에 놓이는 시기…6월 대만, 7월 중국, 9월 일본 순

  • 입력2018-08-28 11: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8월 12일 태풍 ‘야기’의 영향으로 갑자기 소나기가 내린 서울 세종대로 일대 모습. [동아DB]

    8월 12일 태풍 ‘야기’의 영향으로 갑자기 소나기가 내린 서울 세종대로 일대 모습. [동아DB]

    호들갑 떨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더위에 정신을 놓은 나머지 너도나도 태풍은 왜 오지 않느냐고 입방정을 떨었다. 난센스다. 정말로 태풍이 오면 폭염 스트레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조마조마했는데 결국 태풍 ‘솔릭’이 지금 이 시각(8월 23일 오후 6시) 목포 남서쪽 해상을 지나고 있다. 

    솔릭은 2012년 태풍 ‘산바’ 이후 6년 만에 한반도에 상륙하는 것이다. 현재 솔릭은 서해를 따라 올라가다 충남 태안반도에 상륙해 수도권을 포함한 중부지방을 관통한 다음 동해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 2012년 산바 이전에 한반도를 덮친 태풍 ‘볼라벤’이 비슷한 경로로 이동하면서 큰 피해를 낳았다. 

    태풍 피해가 적기를 바라면서 이 자리에서는 태풍 경로를 둘러싼 궁금증을 해소해보자. 먼저 지난 6년간 태풍은 왜 한반도를 비켜갔을까. 

    태풍은 적도 근처에서 대기가 불안정할 때 생기는 작은 소용돌이에서 시작된다. 이 소용돌이가 열대지방의 고온다습한 공기를 잔뜩 머금고 발전하면 태풍이 된다. 일단 세상에 나온 태풍은 북태평양 고기압의 경계를 따라 움직인다.

    6년 만에 한반도 상륙

    북태평양 고기압과 태풍의 관계를 머릿속에 담고 나면, 태풍 경로에 대한 의문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혹시 이런 궁금증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왜 6월 태풍은 대만을 공격하고, 7월 태풍은 중국을 강타하며, 8월 태풍은 한반도를 지날까. 그러고 보니 9월 태풍은 일본을 덮친다. 똑같이 북태평양에서 생긴 태풍인데 왜 달마다 경로가 다를까. 



    바로 북태평양 고기압의 세력(모양) 때문이다. 6월에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동서로 길게 이어져 있다. 북태평양 고기압의 경계를 따라 이동하는 태풍은 무역풍(저위도에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부는 바람)을 만나 서쪽으로 이동하다 대만 등을 지나면서 피해를 준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태평양 쪽으로 약간 물러난 7월에는 양상이 달라진다. 

    북태평양 고기압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며 북상하던 태풍은 편서풍(한반도가 있는 중위도에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부는 바람)을 만나면 북동쪽으로 방향을 튼다. 7월 태풍이 중국 동해안을 따라 북상하면서 큰 피해를 주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솔릭 같은 8월 태풍은 세력이 좀 더 약해져 한반도에 걸쳐 있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경계를 따라간다. 

    그러니 8월 태풍의 이동 경로도 이전의 태풍보다 좀 더 동쪽으로 치우친 한반도를 지나간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 우리나라는 운이 좋지 않았다. 말복이 지나고 열대야가 사라지자마자, 다시 말하면 폭염의 원인이던 북태평양 고기압이 태평양 쪽으로 한 발짝 물러나자마자 그 틈에 태풍이 북상한 것이다. 약해진 북태평양 고기압이 한반도로 향하는 길을 열어준 꼴이라고나 할까. 

    이제 설명하지 않아도 뒤늦게 발생한 9월 태풍이 일본 열도에 피해를 주는 이유를 알 것이다. 9월쯤 되면 북태평양 고기압은 완전히 세력이 약해져 태평양 쪽으로 물러난 상태다. 그 경계는 일본 열도에 걸쳐 있다. 당연히 북태평양 고기압의 경계를 따라 이동하는 늦둥이 태풍의 경로도 중국이나 한반도가 아닌 일본 열도행이다. 

    물론 7월이나 9월에도 태풍이 한반도를 덮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6년 전 산바가 그랬다. 이유는 빤하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7월인데도 약할 때가 있고, 9월인데도 셀 때가 있기 때문이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일찌감치 약해지면 7월에, 늦게까지 힘이 있으면 9월에 한반도가 태풍 길이 된다. 

    지난 6년간 한반도가 태풍을 피한 것은 운이 좋아서다. 한반도가 태풍 피해를 가장 많이 입는 8월에 북태평양 고기압이 세거나 약하면 태풍 길은 중국 동해안(서해)이나 일본 열도에 생긴다. 이런 운 좋은 일이 6년이나 계속되면서 한반도는 태풍 무풍지대가 됐다.

      지구가 더워지면 태풍 빈도↓, 강도↑  

    태풍 ‘솔릭’의 예상 이동 경로. [동아DB]

    태풍 ‘솔릭’의 예상 이동 경로. [동아DB]

    솔릭보다 이틀 늦게 발생한 20호 태풍 ‘시마론’은 일본 열도에 피해를 줄 전망이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약해지면서 시마론은 8월인데도 좀 더 동쪽(태평양)으로 치우쳐 북상하며 일본 열도로 방향을 정했다. 그런데 솔릭과 시마론을 놓고 ‘후지와라 효과’를 걱정하는 과학자가 있다. 

    후지와라 효과는 두 태풍 간 거리가 대략 1000~ 1500km로 가까워졌을 때 서로 영향을 주면서 이동 경로 등을 바꾸는 현상을 일컫는다. 1921년 이런 현상을 학계에 처음 보고한 일본 기상학자 후지와라 사쿠헤이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렇다면 가까워진 두 태풍은 후지와라 효과로 어떻게 될까. 솔릭과 시마론은 8월 23일 거리가 1000km가량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무도 모른다. 보통 규모가 큰 쪽이 작은 쪽을 잡아먹는 현상이 많지만, 의외의 결과도 낳는다. 솔릭과 규모가 비슷했던 2012년 볼라벤은 직전에 북상하던 태풍 ‘덴빈’과 후지와라 효과로 애초 진행 방향이던 남중국해가 아닌 한반도로 직행했다. 1994년에는 초대형 태풍 ‘더그’가 뒤따르던 ‘엘리’와 후지와라 효과로 세력이 약해졌다. 

    기왕에 태풍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만 더 짚어보자. 지구가 더워지면 태풍의 양상은 어떻게 될까. 여러 가설이 있지만 과학자는 대부분 태풍의 발생 빈도가 적어지리라고 예상한다. 태풍은 저위도의 열기를 고위도로 옮기는 자연현상이다. 지구가 데워져 저위도와 고위도에 축적된 열기의 차이가 적어지면 태풍의 필요성이 감소할 수 있다. 

    그렇다고 안심하기는 이르다. 태풍의 평균 발생 빈도가 줄어드는 대신 한번 발생한 태풍은 훨씬 셀 수 있다. 예전보다 데워진 바닷물이 태풍에 좀 더 많은 열기(에너지)를 공급하면서 태풍이 세질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지구온난화 이후 태풍이나 허리케인 등의 위세가 강해지는 불길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아무튼 독자가 이 글을 볼 때면 솔릭이 한반도를 한바탕 할퀴고 지나간 후일 것이다. 부디 피해가 적기를 다시 한 번 간절히 바란다. 제발!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