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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소박’이란 백신이 필요해요

[책 읽기 만보]

  • 한여진 기자 119hotdog@donga.com

지금 ‘소박’이란 백신이 필요해요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기교 너머의 아름다움
최광진 지음/ 현암사/ 320쪽/ 2만 원

황금만능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365일 ‘대박’을 좇아 주식, 암호화폐에 투자하고 부동산 시세를 뒤진다. ‘벼락 거지’가 되지 않기 위해 투잡, 스리잡을 뛰며 정신없이 달리기도 한다. 이런 물질문명에 취해 우리는 때론 의식하지 못한 채, 때론 알면서도 생태계를 파괴하고 환경을 오염시킨다. 이로 인해 지구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대박만 좇다가 쪽박 위기에 몰린 것이다. 책은 이런 대박만능주의 시대와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한국의 ‘소박’한 아름다움에 관해 이야기한다.

소박(素朴)의 소(素)는 누에에서 갓 뽑은, 염색하기 전 하얀 실을 의미한다. 박(朴)은 통나무를 가리키는데 벌채한 직후, 즉 다듬고 가공하기 전 원상태를 뜻한다. 일상에서 ‘소박’은 화려하지 않고 검소하다는 뜻으로 사용되지만, 미학적 의미는 인위적으로 가공되기 이전의 자연스러운 본래 모습을 의미한다. 노장사상(老莊思想)은 인위적인 손길이 가해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를 뜻하는 ‘무위자연’을 최고의 도덕적 이상으로 삼았다. ‘소박’에는 이런 사유가 담겨 있다. 노장사상은 중국에서 체계화됐지만, 소박미는 한국에서 꽃을 피웠다. 고도의 인위적 기교가 느껴지는 중국 예술과 달리 한국 예술에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무위자연’에서 기인한 소박미가 곳곳에 담겨 있다.

홍익대에서 예술학을 전공하고 호암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한 저자 최광진은 “한국은 분명 세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소박의 나라”라며 “소박의 미학으로 본다면 한국 예술에는 자연을 중시하는 심오한 미의식이 가득하다”고 말한다.

책은 총 4장으로 나눠 한국 특유의 담백하고 소박한 미의식을 이야기한다. 1장에는 한옥, 정원, 석탑에 이르기까지 자연과 더불어 소박한 삶을 영위하고자 했던 한국의 건축 문화가 소개돼 있다. 2장은 한국 도자기와 목가구, 3장은 조선 문인화를 통해 서양 미니멀리즘 정신과 견줄 만한 절제된 소박미를 읽어낸다. 4장은 백자 달항아리의 미학을 회화로 계승한 김환기, 문인화의 여백을 설치미술로 구현한 이우환의 작품을 통해 현대미술에서도 여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한국 소박미를 확인한다.



예술작품은 어떠한 미학적 안경으로 보느냐에 따라 가치가 전혀 달라진다. 지금까지 한국 예술은 초라하며 기교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왔다면 이는 소박의 미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200여 점에 달하는 달항아리, 사발, 석탑, 소반, 목가구, 한옥 등 선조들의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소박’이라는 백신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주간동아 1304호 (p64~64)

한여진 기자 119ho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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