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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난한 조약체결 과정 보여주는 ‘한미동맹의 탄생 비화’ [서평]

  • 김학준 단국대 석좌교수

험난한 조약체결 과정 보여주는 ‘한미동맹의 탄생 비화’ [서평]

남시욱 저 한미동맹의 탄생 비화 (청미디어)

남시욱 저 한미동맹의 탄생 비화 (청미디어)

최근 몇 해 사이, 특히 문재인정부의 출범 이후, 국내에서 자주 회자되는 말들 가운데 하나가 한미동맹이다. 문재인정부가 ‘탈미친중(脫美親中)’의 길을 걸으면서 한미동맹에서 벗어나려는 것으로 해석되는 언행을 보이는 데 대해, ‘우익보수 세력’ 또는 ‘자유주의 세력’은 한미동맹을 굳게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함에 따라, 이 네 글자는 주요한 화두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러면 한미동맹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물론 1953년 8월 8일에 서울에서 가조인되고 이어 10월 1일에 워싱턴에서 조인됐으며 1954년 11월 17일에 서울과 워싱턴에서 동시에 발효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의미한다. 이 조약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이 지닌 일반적 인식은 “이 조약은 이승만 대통령의 끈질긴 요구를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받아들여 성립됐으며, 이 조약이 있었기에 북한의 재침을 방지할 수 있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 인식은 대체로 정확하다. 그렇지만 이 조약이 성립되고 발효될 수 있었던 과정 그 자체에 대해서는 이 주제를 깊이 연구했거나 그들의 저서를 읽은 사람이 아니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위에 적시한 이 책은 바로 이러한 현실인식에서 출발했다. 다시 말해,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매우 험난했던 한미동맹의 성립과정을 많은 일화들을 포함시키면서 쉽고도 재미있게 설명하면서, 오늘날의 한반도상황에서 한미동맹이 갖는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했다. 

이 책의 장점들 가운데 하나는 1차 자료의 발굴과 활용이다. 한국 측이 소장한 1차 자료는 물론이고, 미국 측이 소장한 자료 모두를 샅샅이 살핀 것이다. 미국 측의 자료 가운데 조약체결 과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수행한 월터 로버트슨 국무부 극동차관보의 회상록을 콜럼비아대학교 구술사연구실에서 찾아내 광범위하게 활용한 것이 돋보인다. 저자는 이어 이 주제에 관련된 연구저술들을 두루 섭렵했다. 그 바탕 위에서, 기존연구들이 제시한 해석을 부연하기도 하고, 반박하기도 했으며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도 했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문리대 정치학과 졸업 이후의 60년을 저널리즘과 아카데미즘 두 영역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업적을 쌓았다. 동아일보사 수습기자 1기로 언론계에 입문한 이후 주일 특파원과 편집국장을 거쳐 문화일보사 사장으로 봉직했으며, 고려대학교와 세종대학교에서 각각 석좌교수로 봉직했다. 이 과정에서,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주로 국제정치학을 전공해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미관계에 대한 저자의 관심은 우선 그의 서울대학교 외교학박사학위논문 ‘딘 애치슨과 미국의 한반도정책: 한국전쟁시기를 중심으로‘ (2015)으로 나타났다. 6·25전쟁 발발 전후 시기 트루먼 행정부에서 봉직한 국무장관 애치슨은 1950년 1월 미국 전국기자클럽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미국의 극동방위선을 발표하는 가운데 한국을 제외시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어떤 연구자들은 그의 이 연설이 소련과 북한으로 하여금 남침을 결심하는 데 일조했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이 애치슨에 초점을 맞춰 당시의 트루먼 대통령이 집행한 한반도정책을 분석했던 것으로, 이 논문이 호평을 받자 그는 곧 이 논문을 바탕으로 ‘6·25전쟁과 미국: 트루먼·애치슨·맥아더의 역할’ (청미디어, 2015)을 펴냈다. 

저자는 이 책의 연장(延長)으로 바로 위에서 적시한 책을 펴낸 것이다. 따라서 이 두 책은 하나의 짝을 이룬다. 서로 보완하는 이 두 책을 통해 우리는 이승만 대통령 시기 전반기 (미국의 입장에서는 트루먼 대통령~아이젠하워 대통령 시기)의 한미관계 또는 6·25전쟁 전후의 한미관계를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러면 모두 8개 장 및 부록 1·2로 구성된 이 책이 말하고자 한 내용 또는 논지는 무엇이었나? 

첫째, 이승만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신생 대한민국의 국가안보를 위해 1차적으로 한미군사동맹이 절실하게 요청된다고 인식했다. 소련이 자신의 ‘위성국가’ 북한을 앞세워 대한민국에 대해 무력침공을 시도할 것이라는 정확한 위기의식을 그는 지녔던 것이며, 그러한 위기의식으로부터 그는 1949년 5월 17일에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포함한 세 가지 자구책을 트루먼에게 제시했다. 그러나 트루먼은 이 제의에 부정적이었고 심지어 1949년 6월 29일에 주한미군 철수를 완료했다. 

둘째, 이 대통령이 우려했던 대로 1950년 6월 25일에 소련의 지원과 중공의 동의 아래 북한의 남침이 시작되자 트루먼 대통령은 다행스럽게도 유엔 기치 아래 미군을 파병하는 결정을 내렸을 뿐만 아니라 맥아더 사령관이 지휘하는 유엔군이 북한군을 패퇴시키자 38도선 이북으로의 진군을 지시해 유엔과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남북통일을 추구했다. 

불행히도 중공군이 개입해 유엔군과 대한민국군은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루먼은 휴전으로 돌아섰고 그의 후임인 아이젠하워도 휴전을 추구했다. 그렇지만 작은 나라의 대통령 이승만은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들에 맞서 맹렬히 반대했다. 

셋째, 트루먼 행정부와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모두 이 대통령을 휴전반대로부터 휴전지지로 돌아서게 하기 위해 우선 이 대통령을 제거하는 계획, 이른바 에버레디 계획을 세웠다. 

다행히도 미국정부는 이 계획을 포기했다. 그 대신에 다른 방법으로 이 대통령을 압박했다. 이 시점에 이 대통령은 휴전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체결을 제시했지만,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이 제의를 거부했다. 여기서 이 대통령은 대담한 승부수를 던졌다. 미국 정부와 아무런 협의도 없이 자신만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1953년 6월 18일에 유엔군포로수용소에 수용된 2만 7000여 명의 반공포로를 석방한 것이다. 

세계를 놀라게 한 이 쾌거는 아이젠하워 행정부로 하여금 이 대통령으로부터 휴전에 대한 동의를 받아내려면 그가 줄기차게 요구해온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에 응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도록 만들었다. 이로써, 저자의 표현으로, 한미동맹의 성사를 위한 두 나라 사이의 ‘외교전쟁’은 막을 내렸다. 

넷째,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위한 미국과의 외교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이승만 대통령 한 사람이었다. 변영태 외무장관, 손원일 국방장관, 그리고 때때로 회담에 참여했던 양유찬 주미대사, 임병직 유엔대사, 김용식 주일공사 등은 보조역에 지나지 않았다. 저자의 표현으로, 이 대통령은 홀로 ‘눈물겨운 투쟁’을 벌여 마침내 대한민국의 안전판을 마련한 것이다. 

이 책에서 특히 주목을 받아야 할 부분은 우선 ‘제3장 에버레디 계획’이다. 저자는 세 차례에 걸쳤던 이 계획을 1차 자료에 바탕을 두고 매우 치밀하게 분석했는데, 이 부분이 이 책의 학문적 깊이를 높이 평가하도록 만들어준다. 에버레디 계획에 관해서는 국내의 연구자들 사이에서 연구가 있었음은 사실이나 저자의 이 연구만큼 다각적이면서 심층적인 연구는 없었다. 

또 다른 부분은 ‘제7장 조약발효에까지의 험난한 여정’과 ‘제8장 아이젠하워-덜레스-로버트슨 라인’이다. 우리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는 과정이 험난했음은 알고 있었지만 발효까지의 과정이 그것에 못지않게 어려웠음은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저자는 일반적 통념을 깨고 후자 역시 매우 험난했음을 성공적으로 논증했다. 

제8장은 이 책의 품격을 한 층 더 높여주었다. 외교정책분석(FPA)에 관한 최근의 이론인 ‘국제관계의 인류학(an anthropology of International Relations)’을 원용하면서, 미국 정책결정자들의 성격적 특성과 이념적 성향을 비교분석하고 그 결론을 이 책 전체의 결론으로 삼음으로써, 이 책이 전통적 외교사의 범위를 뛰어넘게 만들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여러 제의 또는 일화를 소개했다. 

첫째, 장면 주미대사가 1951년 1월 17일에 러스크 국무부 극동담당차관보를 상대로 ‘한국의 망명정부를 하와이에 설립할 것’을 제의하자, 러스크는 필요하면 남부한국의 섬들이 검토대상이 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둘째, 1951년 5월 8일에 조지 마셜 국방장관은 한국을 방문해 8군사령관과 업무협의를 마치자 이 대통령을 예방하지 않은 채 귀국했다. 이 대통령은 이렇게 무례할 수 있겠느냐면서 격노했다. 이 무례에 대해 ‘보복’이라도 하듯, 이 대통령은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1954년에 아이젠하워의 면담시간에 늦게 갔다.
셋째,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국무부 극동차관보 로버트슨은 이 대통령과의 면담에 대비해 ‘예행연습’을 했다. 

넷째, 미국정부의 국가안보회의 기획처는 1953년 6월 25일에 한반도중립화안을 마련했다. 이 사실이 이 책에서 처음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저자는 이 사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함으로써 우리의 이해의 폭을 넓혔다. 

이 책을 통독한 뒤 서평자는 이 책이 이 대통령을 애국적이면서도 국제적인 큰 정치가로 평가하기에 충분한 자료가 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면서 새삼 아쉽게 느껴지는 사실은 그를 하야와 망명의 길을 걷게 만든 1960년 3·15 부정선거다. 그가 재임 때 비난받을 만한 일들을 저질렀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어느 것보다도 이 과오가 그의 전공(前功)을 애석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러한 과(過)가 있었음은 사실이라 해도 독립운동과 건국 그리고 한미동맹 성사의 공(功)과 함께 기억되고 평가되기를 바란다.





주간동아 1264호 (p57~59)

김학준 단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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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66호

2020.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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