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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서로 다르지만 동등하다는 자각이 혐오를 벗어나게 할 것

왜 독일인은 유대인을 혐오하게 되었나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인간은 서로 다르지만 동등하다는 자각이 혐오를 벗어나게 할 것

  • (9)전진성 부산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전진성 교수.

전진성 교수.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대해서 듣게 되면 대개는 그것을 아주 예외적인 현상으로 보면서 히틀러 일당을 비난하거나 그런 지도자를 숭배했던 독일 민족이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독일인들의 유대인 혐오는 다른 혐오들과 마찬가지로 비도덕적인 행위로만 보기에는 너무도 뿌리 깊은 역사적 원천과 정치적 맥락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번 강의는 인류 문명사회에 내재된 혐오가 어떻게 구체적 현실 속에서 발현되고 새로운 혐오를 조장해가는 지에 대한 생생한 사례를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인종주의는 과학적 발명품이자 식민지시대 산물

‘홀로코스트’는 그리스어를 조합한 합성어입니다. 우리말에서 가까운 말은 ‘번제’가 있습니다. 제물을 불태워 신에게 공양을 드린다는 의미인데 나치가 유대인을 가스실에서 대량 학살한 뒤 바로 화장터에서 불태웠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미지가 겹치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라는 용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쇼아’라는 히브리어를 더 선호한다고 합니다. ‘쇼아’는 대재앙을 의미합니다. 

독일인들의 유대인 학살은 유대인들에 대한 인종적 편견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이걸 반유대주의, 즉 안티 세미티즘(anti-Semitism)이라고 합니다. 왜 독일인들은 유대인을 그토록 혐오했을까요? 



우선 그리스도교 문명권은 원천적으로 유대인에 대한 호감을 갖기가 힘듭니다. 예수님을 배신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게 한 장본인들 아닙니까. 물론 더 실제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유대인이 너무 눈에 잘 띄는 이방인 내지는 이교도였다는 점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유대인은 선민의식이 굉장히 강하고 유대교를 바탕으로 종족적 정체성을 유지해왔기 때문에 유럽 안에 살면서도 따로 모여 살았죠. 이처럼 너무 가까우면서도 너무 먼 존재라는 점이야말로 혐오의 대상이 되기에 아주 적합했던 것입니다. 흑사병이 돌거나 전쟁이나 기근이 날 때마다 유대인들은 늘 희생양이 되었죠. 하지만 이런 것은 인종주의적 편견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오늘 강연에서 다루어 보고자하는 반유대주의는 전통적인 유대인 혐오와는 매우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은 유럽 열강들의 식민지배에 대해 들어보셨을 겁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점차 구대륙인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으로 유럽의 지배권이 확장되어가면서 소위 ‘유색 인종’에 대한 편견이 고착됩니다. 백인종에 비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열등한 존재라는 생각이 당연시되면서 인간 간에 등급을 나눠 차별하는 관행이 자리잡게 됩니다. 

인종은 근대의 과학적 발명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어의 인종, 레이스(race)‘는 스페인어 ’raza‘에서 나왔습니다. 스페인은 포르투갈과 더불어 식민지배에 맨 처음 나선 국가죠. raza는 동물 혈통이나 품종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인간을 동물 기준으로 분류하는 새로운 풍조는 무엇보다 근대 과학에 의해서 정당화됩니다. 교과서에도 나오는 18세기 스웨덴의 자연학자 린네가 만들어낸 소위 분류학이라는 것이 인종을 과학적으로 정당화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인간을 포함한 자연 전체가 속명과 종명으로 분류되죠. 그리고 인간, 즉 호모사피엔스는 다시 피부색에 따라 나누어집니다. 

물론 그때만 해도 인종주의라는 건 없었습니다. 린네는 인종주의자가 아니었죠.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면서 과학은 노골적인 인종주의 색채를 띠게 됩니다. 소위 우생학이라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인간을 유전학적으로 개량하겠다는 새로운 과학인데요.
우생학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프렌시스 골턴이란 학자는 사람 두개골을 측량해 수치화해서 지능 ,계급, 인종을 나눴습니다. 그는 두개골을 통해 빈민, 범죄자, 유대인을 식별해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골턴은 독일 사람이 아니라 영국 사람이었습니다. 인종주의는 독일인들만의 것이 아니고 해외 식민지를 지녔던 유럽 제국주의 열강들의 일반적인 생각이었던 겁니다. 유럽 열강들은 식민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 다양한 생각, 기술, 행동 방식을 창출해 가는데, 이를 통칭하여 식민주의라고 합니다. 

식민주의는 자연과학으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그것을 감각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데는 미학과 미술사라는 학문분야가 의외로 기여했습니다. 독일의 미술사가 빙켈만은 백인종의 선천적으로 아름다운 용모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고대 그리스 조각이야말로 모든 예술의 이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원래 고대 그리스 조각품에는 알록달록한 색채가 입혀져 있었으며 단지 그것이 세월이 흐르며 벗겨졌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우리는 이 강연의 첫 번째 명제에 도달합니다. ‘인종주의는 근대유럽의 식민주의에서 비롯된 산물이다.’

●공산당을 지지하느니 나치를 지지하겠다

독일인들은 영국이나 프랑스보다는 상대적으로 인종주의가 약했던 편이었습니다. 19세기 후반에 가서야 통일된 민족국가를 이루기 때문에 식민지 침탈 면에서 다른 열강들에 뒤쳐져 있었지요. 

그런데 젊은 야심가였던 빌헬름 2세가 1888년에 황제로 즉위하면서 모든 게 바뀝니다. 그는 비스마르크를 퇴임시키고 독일 제국을 세계 으뜸 열강으로 만들겠다며 적극적인 식민지 쟁탈전에 나섭니다. 아프리카 남서부와 동부 몇몇 지역을 급하게 차지하고 너무 심하게 수탈을 하니까 원주민들이 봉기를 일으키자 무참하게 짓밟습니다. 

서아프리카. 현재 나미비아라고 하는 지역에서는 원주민들 씨를 말릴 정도로 대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일부 역사가들은 나치 대학살의 전조가 이미 이때부터 보였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독일의 이런 무리한 공세는 결국 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고 1918년에 결국 독일제국은 패망하고 사라지게 됩니다. 그런데 왜 하필 독일에서, 식민주의가 제대로 자리잡지도 못했던 곳에서 극단적인 인종주의가 생겨나게 된 것일까요. 

사실 독일은 프랑스나 여타 유럽 국가들에 비해 유대인들에 대해서 훨씬 개방적인 편이었습니다. 19세기 초에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유대인 해방이 이루어져 유대인들이 시민권과 자유를 획득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은 독일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근대 독일의 핵심적 지식인들과 예술인 중에 상당수가 유대인입니다. 시인 하이네, 철학자 레싱, 음악가 멘델스존, 화가 리버만,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 물리학자 아인슈타인 모두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들이 다른 인종, 사회를 좀먹는 쥐 같은 존재로 표현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의 이유는 다름 아닌 반공주의 때문이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에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면서 유럽 국가들은 자기들 나라로 공산주의가 전파될까봐 전전긍긍하게 됩니다. 그래서 등장한 게 파시즘입니다. 1920년대 이탈리아에서 1930년대에 스페인과 독일에서 파시즘 또는 나치즘이 등장하게 되는 거죠.

파시즘이란 말은 이탈리아어로 ‘묶음’ 즉 강고한 단결을 강조하는 정치이념입니다. 국가 전체를 군대 막사처럼 단일하게 만드는 체제입니다. 

1920년대 독일에서는 패전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좌우대립이 격화됩니다. 거리에서 공산주의자들과 극우 세력 간에 패싸움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29년 세계공황이 닥칩니다. 독일로서는 전쟁 배상금에 허덕이다 약간 회복되는 듯 했는데 직격탄을 맞은 거죠. 

독일 기득권층이 느낀 위기의식은 대단했습니다. 공산당 세상에 사느니 나치당을 지지하겠다는 심리가 신생 정당인 나치당을 1당으로 만듭니다. 나치가 무슨 의미인지 아시나요? 민족사회주의입니다. 독일어로 Nationalsozialismus인데요. 영어로 National Socialism이죠. 여기서 중간 말을 빼서 Nazi라고 부르는데 소련식 좌파 사회주의가 아니라 우파 사회주의를 의미합니다. 

나치는 스스로를 소련 공산세력으로부터 유럽을 지키는 십자군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소련을 침공해 스탈린과 한 판 승부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스탈린이 승리하게 되죠. 이러한 와중에 민족공동체의 단결을 꾀하고자 유대인을 희생양으로 삼게 된 것입니다.

●반유대주의는 인종주의와 반공주의의 결합

왜 하필 유대인이었을까요. 

독일 사회에서 유대인은 독일인의 돈을 빼앗아 자신들의 재산을 불리는 수전노, 악덕기업가의 이미지와 함께 공산주의자라는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사회의 비주류였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급진화 되기가 쉬웠다고 할 수 있겠죠. 칼 마르크스를 비롯해서 카를 리프크네히트, 로자 룩셈부르크, 레온 트로츠키 등이 다 유대인 혈통입니다. 나치는 악덕 자본가와 공산주의자 이미지 중 두 번째 이미지를 좀 더 활용했습니다. 이번 강의의 두 번째 명제는 바로 ‘독일의 반유대주의는 인종주의와 반공주의의 교묘한 결합’이라는 것입니다.
 
순결치 않은 유색 인종에 대한 혐오는 붉은 공산당 무리에 대한 혐오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반공주의가 인종주의를 제치고 주도권을 얻게 됩니다. 

이러한 역사적 경과를 통해 우리는 인간 사회에 만연된 혐오가 단지 도덕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역사적인 원천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럽의 식민주의는 타 문명 사람들을 유색인종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범주 안에 가두고 열등한 식민지 피지배층으로 착취했으며 그것은 냉전기에 또 다른 방식의 혐오로 이어졌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사고해야 될까요? 우리는 꽉 막힌 식민주의적, 인종주의적, 냉전적 편견의 감옥을 벗어나야 합니다. 서양 근대문명이 만들어낸 각종 이분법, 선진국 대 후진국, 우월함 대 열등함, 우리 대 그들이라는 이분법을 이제는 벗어나야 합니다. 

오늘 강연의 세 번째 명제이자 결론은 ‘인간은 모두 서로 다르지만 동등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결코 서로 같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동등하다는 자각이야말로 인류 문명의 고질적인 혐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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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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