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60

2020.10.16

티앤씨재단 혐오 컨퍼런스 지상중계

바이러스를 품어 가장 아름다운 꽃이 된 튤립의 교훈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입력2020-10-16 19: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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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특훈교수
    이희수 교수.

    이희수 교수.

    저는 이슬람 포비아 문제를 혐오와 배제가 아닌 융합과 공존으로 전환하는 생각의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문화인류학자로서 혐오를 극복한 데 대해서는 나와 다른 생각, 다른 가치를 가진 사람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살펴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몇 가지 원칙을 되새기면서 시작해 봅시다. 

    우선 문화라는 것은 우월하다거나 열등한 개념은 아닙니다. 선과 악도 없죠. 문화는 다만 같고 다름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흔히 다른 것은 틀렸다고 생각하지만 절대 아닙니다. 다른 것은 다만 다를 뿐이죠. 이 너무나 쉽고 명확한 상식을 우리는 때때로 잊어버림으로써 불필요한 오해를 낳습니다. 

    두 번째, 모든 문화에는 자기만이 가지고 있는 향기와 색깔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문화적 잣대나 가치관으로 측정하고 판단하면 오해와 편견이 생깁니다. 이걸 인류학에서는 문화상대주의라고 하죠. 

    세 번째, 표피적으로 드러나는 한두 문화 요소를 갖고 문화 전체를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인문학적 사고나 영성이나 종교, 그 사람이 살아왔던 삶을 경제적 척도에만 맞추는 경향이 강합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영성이나 인문학적 깊이가 낮다고 판단한다면 정말 잘못된 접근이지요. 문화를 더 깊이 자세하게 들여다봄으로써 불필요한 오해를 피해 가는 것을 문화총체주의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싫든 좋든 함께 어울려 사는 다문화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단일문화보다 융합문화가 창의와 발전을 가져왔다는 것은 절대 불변입니다. 인류의 진보와 발전은 서로 다른 생각이 부딪치는 모순 속에서 창의력이 만들어집니다. 이런 원칙들을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앞으로 글로벌 리더로 성장하기 위해 우리가 갖춰야 될 기본적 덕목과 태도를 정립해 봅시다.



    ●십자군 전쟁에서 배운다

    일단 고정관념을 깨뜨리면 새로운 세상이 잘 보입니다. 항상 열린 마음으로 공부하면 혐오와 배제가 사라지고 따뜻한 애정이 생기게 되는 거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정말 필요한 덕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 그럼 역사적으로 혐오가 우리 삶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끼치고 아픔을 줬는지를 몇 가지 사례를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십자군 전쟁입니다. 흔히 이 전쟁은 기독교와 이슬람과의 갈등 충돌 분노의 전쟁으로 각인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전쟁이 이슬람 세계 자체에 끼쳤던 영향은 사실은 굉장히 미미합니다. 

    십자군 전쟁은 1096년부터 1365년까지 250여 년간 여덟 차례에 걸쳐 벌어졌던 중세 인류의 가장 큰 약탈과 피해를 준 전쟁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기독교 성전 예루살렘이 이교도에게 점령당하자 이걸 탈환하기 위해 진출했던 순수한 종교적 전쟁은 1차 때 정도였습니다. 나머지 일곱 차례 내지 여덟 차례 전쟁은 겉으로는 예루살렘으로 향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서로 다른 종교였던 그리스 정교나 비잔틴 제국 내 같은 유럽 국가끼리 치고받고 약탈하는 전쟁이었습니다. 이슬람 역사에서 십자군 전쟁을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하고 비종교적이고 반인륜적인 전쟁으로 규정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십자군 전쟁은 서구가 이슬람 세계를 공격하기 위한 종교적 명분으로 삼거나 정치 지도자들이 정치적인 야망을 위해 이용했던 역사적 비극입니다. 2003년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대 이라크 전쟁을 선언할 때나 2011년 9.11 테러 이후 대테러 전쟁을 선포할 때 ‘십자군 전쟁’을 거론하면서 이슬람 세계를 갈아엎고 제압해야 된다고 한 주장 자체가 세계 많은 지성이나 지구촌으로부터 비난받았던 이유입니다. 

    두 번째 혐오의 역사에서 대표적 사례가 홀로코스트 입니다. 아시다시피 유대인은 인류 역사상 가장 불행한 민족입니다. 2000년간 나라 없는 유랑 생활을 경험하면서 특히 유럽 세계 내에서 박해와 차별, 혐오와 배제의 일차적 대상이었습니다. 

    유럽에서 유대인들이 그토록 오랜 기간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었던 이유는 종교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복음을 거절하고 로마를 압박해 예수를 골고다 언덕에서 처형했다는 원죄 때문입니다. 그 결과 유대인들은 유럽과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흑사병, 페스트 과정에서, 또 마녀사냥에서 항상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16세기에 들어오면 악마의 지위에서는 내려오지만 ‘나쁜 민족’이 됩니다. 당시 종교 개혁을 주도했던 가장 진보적인 선각자였고 개혁자였던 마틴 루터의 악마론 서문에는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이제 지구상에서 악마를 제외하고 가장 흉측하고 광폭한 적은 유대인이다.’ 

    이전까지 1500년 동안은 유대인과 악마는 동일한 개념이었는데 마틴 루터에 와서는 악마 다음으로 나쁜 민족이 된 겁니다. 서구인들의 이런 반 유대주의 정서는 19세기 말까지 이어집니다.


    ●유대인들에게 지울수 없는 3가지 사건

    19세기 말이 되면 유대인들로서는 정말 지울 수 없는 3개의 대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데 첫 번째가 바로 대공황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대공황이 지하 경제를 장악하고 민족 경제를 좀먹는 유대인들의 농간이라면서 유대인들을 폭행하고 가게에 불을 지릅니다. 

    두 번째는 1881년 러시아 황제 차르 알렉산더 2세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암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러시아 정보당국은 제정 러시아를 전복하려는 유대인들의 음모로 보고 1882년 5월법을 제정해 수많은 유대인들을 체포, 구금 학살합니다. 이때 많은 유대인들이 폴란드, 헝가리, 체코, 독일, 오스트리아로 이주합니다. 

    또 다른 사건은 1890년대 프랑스에서 일어난 드레퓌스 대위 사건입니다. 적국인 독일 대사관에서 프랑스 고급 정보장교만이 다룰 수 있는 군 비밀문서가 유출되는데 프랑스 정보당국은 문서를 적국에 넘겨줄 수 있는 사람은 유대인의 피가 흐르는 드레퓌스 대위 이외에는 없다며 그를 진범으로 몰고 갑니다. 이때 에밀 졸라를 중심으로 한 프랑스의 지성과 시민단체들이 반발로 재조사가 시작되었고 결국 다른 사람이 진범으로 확인되면서 드레퓌스 대위는 석방됩니다. 19세기 말 이런 일련의 동시다발적 사건들은 유대인에게 엄청난 실망과 좌절감, 존재의 위기를 가져다줍니다.


    ●팔레스타인 분쟁의 씨앗

    1897년 8월 스위스 바젤에서 세계 최초의 제1차 시온주의자 대회가 열리는 데 ‘이대로는 우리가 다 몰살당하겠다. 우리가 이런 고통과 박해를 당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나라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나라를 갖자’는 정말 처절한 선언이 나오게 된 배경입니다. 

    하지만 반 유대주의가 팽배한 상황에서 유대인들이 나라를 갖는다는 것은 망상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절호의 기회가 1차 세계대전 때 찾아옵니다. 

    영국이 독일과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1915년 이집트 주재 영국 고등판무관이었던 맥마흔을 통해 당시 독일 편에 서 있던 아랍의 지도자였던 후세인을 만나 ‘전쟁에서 영국을 도와주면 전쟁이 끝난 후 팔레스타인을 포함해 아랍 국가의 독립을 보장하겠다’고 한 겁니다. 이게 맥마흔 선언입니다. 1916년에는 영국과 프랑스사이에 팔레스타인을 분할하여 영국의 위임통치를 결정합니다.

    그런데 2년 뒤인 1917년에는 이와는 모순된 ‘밸푸어 선언’을 발표합니다.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영국 외무장관 벨푸어가 유대인들이 영국 편에 서서 도와준다면 전쟁이 끝난 이후에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 국가를 창설해 주겠다는 것이었는데 이걸 믿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많은 유대인들이 영국 편에 가담하면서 영국이 승전국이 되는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일관성 없는 영국의 정책으로 인해 싹튼 분쟁의 씨앗이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중동 지역의 분쟁으로 이어지면서 수많은 아랍 인들의 희생을 발생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이라는 한 지역을 두고 아랍에게는 독립을,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 민족 국가 창설을 약속한 조약들이 오늘날 중동 분쟁과 팔레스타인 비극이 되는 근원적 핵심입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후 마무리 조약을 하지만 유대인들은 유럽에 살고 있었고 누구보다도 유리하게 유럽과 협상할 수 있는 입지에 있었습니다. 1943년 UN이 결성되면서 1947년 11월 열린 UN 총회에서 미국의 주도로 팔레스타인이 분할되면서 아랍의 분노 시대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유대인들

    홀로코스트는 유럽인들에 의한 유대인들의 대학살이고 비극인데 유럽에서 벌어졌던 유럽인들의 그 엄청난 죄악을 평화롭게 잘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땅에, 거기에 살고 있던 주민들을 몰아내고 이스라엘을 1948년 건국하면서 모든 비극이 잉태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땅에는 92%의 아랍인들과 8%의 유대인들이 2000년 동안 갈릴리 호수와 요단강이라고 하는 지극히 제한된 생태계지만 큰 마찰 없이 평화롭게 공존해 왔습니다. 그런 아랍과 유대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철천지원수가 되어 서로가 죽이지 못해서 안달하는 적대적 관계로 변모한 것은 1948년 이후이니 70여 년밖에 되지 않은 겁니다. 이 과정에서 조국을 되찾겠다며 극단적인 무장 테러 조직이 생겨날 수밖에 없겠죠. 

    피해자로 출발했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건국하면서 가해자로 돌변하는 슬픈 역사적 비극에서 우리는 커다란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넘는 세계적인 책임 있는 국가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5m가 넘는 분리 장벽을 통해서 팔레스타인 나라의 이동과 거주 이전을 부정하는 또 다른 아파르트헤이트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국제 사법재판소는 이 분리 장벽을 헐라고 했지만 헐리지 않고 않습니다. 

    UN은 이스라엘이 강제로 점령하고 있는 땅을 팔레스타인에게 돌려주라고 만장일치 결의안으로 표결했지만 아직도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반환될 정착지에는 유대인들이 들어서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지고 있습니다. 

    결국 1993년 오슬로에서 팔레스타인 대표 야세르 아라파트와 이스라엘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극적으로 적 점령지에 난민이 됐던 팔레스타인 국가를 창설해 주고 그 대신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는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불가침 조약을 선언합니다. 두 민족이 하나의 생태 공간에서 함께 평화롭게 잘 살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조약으로 라빈 총리와 테러리스트의 대부였던 야세르 아라파트는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역시 정치인들은 오슬로 평화협정을 휴지 조각처럼 던져버렸고 오늘날 팔레스타인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팔레스타인 분쟁을 통해 2000년 동안 평화롭게 공존했던 민족도 적대국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홀로코스트 뿐 아니라 20세기가 와서도 인류가 기억해야 될 혐오가 가져다줬던 3대 제노사이드 비극이 있습니다. 첫 번째가 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일어났던 터키의 아르메니아 대학살입니다. 120만~150만이 학살당합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때 600만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가 일어나고. 세 번째는 1954년~1962년, 8년 동안 알제리가 프랑스로부터 독립 전쟁을 하면서 100만 정도의 인명이 희생당하는 대사건이 일어납니다.


    ●한국을 은인의 나라로 기억할 예멘인들

    자, 그렇다면 이제 이슬람 이야기를 해볼까요. 

    왜 한국 사회는 유독 이슬람 포비아, 이슬람 혐오증, 이슬람 공포가 강할까요. 이 대목에서 역사적 공부를 좀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 최대 여론조사 기관인 퓨리서치센터 2019년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 이슬람인구는 약 18억 정도로 추산되고 이슬람 국가로 UN에 가입해 있는 나라는 57개국입니다. 현재 UN 회원국 수가 193개국이니까 지구촌 4분의 1에 해당되는 세계 최대 단일 문화권입니다. 

    우리 무역 의존도가 95%가 넘는데 지구촌 4분의 1에 해당되는 고객과 시장을 우리가 적대적 이해당사자로 만들어놓고 글로벌 전략을 얘기한다는 것은 허구는 아닐까요? 

    정말 이제는 냉정한 지성적 거리를 두고 이슬람 문화를 편견과 시나리오의 틀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는 자세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지난해 8월 제주도 예멘 사태가 하나의 좋은 본보기와 계기가 됐습니다. 저도 그 문제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난민 심사관들을 교육하고 난민 대표자들을 인터뷰하면서 두 달간 집중적인 시간을 보냈습니다만, 예멘은 UN에서 정한 최악의 고통스러운 난민 지역입니다. 

    남북 예멘이 나누어서 서로 내전을 벌이고 있고 사우디와 이란 군대까지 개입한 상황입니다. 제가 만난 예멘인들은 날아오는 미사일에 맞아 죽든지, 굶어죽든지. 콜레라에 걸려 죽든지 세 가지 선택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20대 젊은 남성들이 유럽으로, 아프리카로, 중동으로 떠났고 그 일부가 말레이시아를 통해서 제주도에 도착한 겁니다. 500명 정도가 합법적으로 입국한 거죠. 제주도는 외국인에 대해서 무비자 제도가 있기 때문에 무비자를 활용했든 악용했든 어떻든 합법적으로 입국한 겁니다. 

    합법적으로 입국한 이상 돌려보낼 수 없는 것이 국제 난민법의 기본 상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멘 난민들이 잠재적 테러리스트이며 잠재적 성범죄자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정말 세계인들의 웃음거리가 된 그런 상황을 살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국민의 절대다수가 인도적 체류 허가의 긍정적 입장을 보였습니다.

    현재 500여 명 난민들은 95%가 취업을 했고 제가 알기로는 금년 초부터 가족들에게 송금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생 그 사람들은 한국을 은혜의 나라로 생각할 것입니다.


    ●바이러스를 품어버린 튤립의 교훈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면 혐오가 가져다주는 사회적 폐해가 너무나 큽니다. 저는 인류학자로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갈등과 혐오보다는 공존의 장소를 좋아했고 그곳에서 큰 감동을 얻습니다. 이슬람과 아랍이 230년간 공존했던 시칠리아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팔레르모 대성당이 대표적입니다. 

    아래층은 이슬람 양식이고 돔과 북쪽은 기독교적인 양식입니다. 대성당 안 기둥에는 놀랍게도 코란 구절이 있습니다. 안내하는 수녀님께 ‘성당 기둥에 어떻게 이교도의 코란 구절이 버젓이 새겨져 있느냐’고 물었더니 수녀님은 빙긋이 웃으면서 이렇게 답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의아 했는데 내용을 보니 하나님의 훌륭한 말씀이 절절히 새겨져 있는 구절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두기로 했습니다.” 

    정말 멋지고 감동스럽지 않습니까? 자기와 다른 생각, 가치를 받아들여서 함께하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갈 수 없지만 저는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도 아주 감동스러운 장면을 보았습니다. 왼쪽에는 이슬람 사원이 있고 오른쪽에는 기독교 교회가 있었습니다. 이슬람 사원과 기독교 교회가 500년 이상 함께 공존한 공간입니다. 

    강의를 마무리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튤립 한 송이를 보여드리려 합니다. 셈페르 아우구스투스 튤립종이라고 하는 겁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한 송이에 1억 원을 호가했던 인류 역사상 가장 비싼 튤립입니다. 

    이 튤립은 다름 아닌 땅 속에서 바이러스를 받아들여 만들어진 변종입니다. 대부분의 튤립은 바이러스를 이겨내지 못하면 죽고 말지만 이 튤립은 바이러스와의 공존을 택해 인간이 상상하지 못했던 7개의 줄무늬가 있는 새로운 튤립을 피워낸 거지요. 

    바이러스는 이처럼 퇴치나 박멸의 대상, 혐오나 배제의 대상이 아닌 공존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 튤립으로부터 얻게 됩니다. 혐오보다는 사랑과 포용으로 이웃과 함께한다면 세상은 훨씬 보람 있고 또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 세상을 여러분이 만들어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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