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48

2020.07.17

아사히맥주 ‘고급화’ 전략, ‘NO재팬’ 1년에 고사 위기 [명욱의 술기로운 생활-36]

  • 명욱 주류 문화 칼럼니스트

    blog.naver.com/vegan_life

    입력2020-07-07 17:5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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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규제, 그리고 그로 인한 ‘노(NO) 재팬’ 불매운동이 시작된 지 1년이 됐다. 유니클로 같은 일본 기업들이 매출에 직격탄을 맞았고, 닛산 등 아예 한국시장에서 철수하기로 한 일본 기업도 나왔다. 주류시장에선 아사히맥주, 삿포로맥주가 사라지다시피 했다. 이들 일본 맥주회사의 요즘은 어떨까.

    한국 매출, 95% 감소

    지난해 7월 서울 중구 한 편의점에 비치된 아사히맥주 등 일본 맥주들.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시작된 지 1년이 된 지금 편의점에서는 일본 맥주를 찾아보기 힘들다. [뉴시스]

    지난해 7월 서울 중구 한 편의점에 비치된 아사히맥주 등 일본 맥주들.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시작된 지 1년이 된 지금 편의점에서는 일본 맥주를 찾아보기 힘들다. [뉴시스]

    일본 불매운동 전까지 한국은 전 세계 맥주 가운데 일본 맥주를 가장 많이 수입했다. 일본 맥주가 한국 맥주보다 더 맛있다고 여기는 소비자도 많았다. 한국에서 팔린 일본 맥주 수량을 생각하면 일본 맥주가 세계적으로 유명할 것만 같다. 하지만 딱히 그렇진 않다. 

    2019년 일본 맥주의 전체 수출액은 91억8000만 엔(약 1020억 원). 이 중 43.7%가 한국, 15.7%가 대만으로 수출된 금액이다. 세계 최대 맥주시장인 미국 등으로 수출은 연간 10억 엔으로, 대한국 수출액 대비 4분의 1에 불과했다. 일본 맥주시장 규모가 연간 20조 원이 넘는 것을 고려할 때 일본 맥주는 철저히 내수시장을 지향하면서 한국을 중요 교두보로 삼아 해외 진출을 시도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본 제품 불매운동으로 일본 맥주는 한국에서 90% 이상 매출을 잃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5월 아사히맥주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95%나 줄었다. 

    아사히맥주는 일본에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2018년 기준 일본 맥주시장 1위는 시장점유율 37.4%를 차지한 아사히맥주다. 기린맥주(34.4%), 산토리맥주(16.0%), 삿포로맥주(11.0%)가 그 뒤를 잇는다. 그런데 이 중 유독 1위 아사히맥주가 절체절명의 시기에 놓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 맥주시장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뉘어 있다. 맥아 비율 50% 이상인 정통 맥주, 50% 미만인 저가형 ‘발포주’, 그리고 맥아가 거의 들어가지 않아 ‘제3의 맥주’로 불리는 초저가 맥주다. 정통 맥주는 주로 요식업장에서, 발포주와 제3의 맥주는 편의점 및 소매점에서 팔린다. 



    일본에서 코로나19 확산세가 두드러졌던 4~5월, 발포주와 제3의 맥주는 오히려 매출이 증가했다. 일본 역시 ‘홈술’ ‘혼술’이 유행하면서 소비자가 편의점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저가 및 초저가 맥주를 즐겨 구입한 결과다. 반면 사람들이 식당에 가기를 꺼려해 정통 맥주 매출은 확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최근 일본 맥주업계가 발표한 5월 판매 동향에 따르면 매출 감소세가 산토리맥주 55%(62%), 기린맥주 41%(49%), 삿포로맥주 39%(44%)였다(괄호 안은 4월 매출 감소세). 한편 아사히맥주의 ‘슈퍼드라이’는 35%(52%) 감소했다. 수치상으로는 아사히맥주의 타격이 가장 적은 듯하다. 하지만 사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상은 정반대다.

    도쿄올림픽 불발에 위스키 공습까지

    일본 도쿄 지하철의 출근길 시민들. 일본에서는 코로나19 사태로 맥주의 음식점 소비가 줄고, 가정 소비가 늘었다. [뉴시스]

    일본 도쿄 지하철의 출근길 시민들. 일본에서는 코로나19 사태로 맥주의 음식점 소비가 줄고, 가정 소비가 늘었다. [뉴시스]

    아사히맥주의 2019년 제품 라인별 판매 비중을 보면 슈퍼드라이 등 고급 라인이 62%, 저가형 발포주 등이 38%이다. 즉 아사히맥주의 주요 수익처는 홈술/혼술시장이 아닌 요식업시장이다. 아사히맥주 고급 라인의 병맥주와 생맥주는 4월 80%, 5월 60% 이상 매출이 줄었다. 

    경쟁사인 기린맥주는 고급 라인 비중이 33%에 지나지 않는다(발포주 23%, 제3의 맥주 44%). 요식업 의존도가 아사히맥주의 절반 수준에 그치는 셈이다. 산토리맥주 역시 전체 매출의 68%가 저가 제품에서 나온다. 일본 불매운동 전 국내에서도 꽤 소비된 ‘산토리 더 프리미엄 몰츠’ 등 고가 제품의 매출 비중은 32%에 불과하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가 유독 아사히맥주에 악재로 작용하는 것이다. 

    특히 아사히맥주는 2020년 도쿄올림픽을 도약의 기회로 삼으려 했다. 올림픽을 통해 고급형 맥주에 더욱 힘을 쏟고, 밀레니얼 세대 및 여성 소비자를 더욱 확대해가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개최가 연기된 도쿄올림픽은 내년에 과연 개막할 수 있을지 여전히 미지수인 상황이다. 

    일본 맥주업계는 맥주 소비가 식당에서 가정으로 옮겨가면서 저가형 맥주가 가장 큰 수혜를 입을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일본 맥주회사들은 저가형 제품 개발에 목매달고 있다. 실제 기린맥주, 산토리맥주, 삿포로맥주의 저가 제품 매출액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10~30% 늘어났다. 하지만 이러한 제품은 이익률이 극히 낮다는 한계가 있다.

    국내 맥주, 소주도 ‘식당 의존도’ 높아

    여기에 더해 일본 맥주시장을 위협하는 또 다른 존재가 있으니, 바로 위스키다. 예전에는 기껏해야 위스키에 얼음을 넣어 마셨지만, 요즘은 맥주용 저그(Jug)에 탄산수를 타 마신다. 소주를 베이스로 하이볼을 만든 ‘주하이’ 신제품도 속속 나오고 있다. 이들 모두 맥주처럼 시원하게 마시는 술로, 맥주 소비자를 주 타깃으로 공략한다. 

    아사히맥주의 사정을 들여다보니 한국의 맥주 소주시장도 걱정된다. 한국 주류시장 역시 편의점 등 소매점보다 요식업 의존도가 훨씬 높기 때문이다. 매출 비중이 요식업 60%, 가정 40%이다. 아사히맥주, 그리고 국내 주류업체가 좀체 끝나지 않는 코로나19 사태의 고비를 어떻게 견뎌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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