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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야, 너는 계획이 다 있었구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 받던 순간의 재구성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오스카야, 너는 계획이 다 있었구나!

[GettyImages]

[GettyImages]

상상해보라. 한국 축구가 올림픽 금메달과 월드컵 우승을 동시 달성했다고. 한국 야구가 올림픽 금메달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우승을 한꺼번에 이뤄냈다고. 한국 테니스가 윔블던, 프랑스오픈, 호주오픈, 미국오픈 4대 메이저대회 석권(그랜드슬럼)을 1년 만에 이룩했다고. 

영화 ‘기생충’이 프랑스 칸영화제 황금야자상에 이어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아카데미) 작품상까지 수상한 일은 이를 능가하는 대사건이다. ‘한국 최초’를 뛰어넘어 ‘세계 최초’로, 세계 영화사 10대 사건으로 기록될 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펠리니도 못 한 일

스티브 마틴(왼쪽), 크리스 록 [AP=뉴시스]

스티브 마틴(왼쪽), 크리스 록 [AP=뉴시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이탈리아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는 20세기 최고 영화감독으로 꼽힌다. ‘길’ ‘8과 1/2’ 같은 영화로 유럽은 물론, 미국에서도 사랑을 담뿍 받았기 때문이다.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올해부터 국제영화상) 최다 수상(4차례)과 공로상까지 합쳐 오스카상을 5차례나 수상했던 그 펠리니도 작품상과 감독상은 못 받았다. 1960년 그에게 칸영화제 황금야자상을 안겨준 ‘달콤한 인생’도 아카데미시상식에선 의상상밖에 수상하지 못했다. 비영어권 영화로 황금야자상과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동시 수상조차 전례가 없었다는 얘기다. 

황금야자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 수상한 전례가 딱 두 차례 있었다. 빌리 와일더 감독의 ‘잃어버린 주말’(1945)과 델버트 맨 감독의 ‘마티’(1955)다. 두 작품 모두 미국 영화다. 비영어권 영화에게는 아카데미가 난공불락임을 보여준 사례였다. 그런데 그 어려운 일을 ‘기생충’이 해낸 것이다(세 영화 모두 아카데미 감독상도 함께 받았다). 기자를 포함해 영화 전문가들이 ‘기생충’이 국제영화상과 각본상 수상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예측한 이유도 여기 있다. “천하의 펠리니도 못 한 걸 봉준호가?”라고 스스로들 그어놓은 예측 선이었다. 

사실 작품상 최대 라이벌로 꼽힌 샘 멘데스 감독의 ‘1917’은 기술적으로는 놀라운 영화지만 작품성만 놓고 봤을 땐 ‘기생충’에 뒤진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전선에서 독일군 진지를 뚫고 아군에게 특수지령을 전하러 가는 영국군 병사의 24시간을 그린 이 영화의 내용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다만 카메라 컷 없이 하나의 숏을 길게 촬영하는 롱테이크 기법(원 테이크)을 영화 전체에 적용한 원 테이크 전쟁영화라는 점이 돋보인다. 



하지만 이 촬영 기법도 최초는 아니다. 2015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버드맨’(2014)이라는 선례가 있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전쟁터라는 드넓고 복잡다단한 공간에서 원 테이크 촬영에 성공한 기술적 성취와 아카데미가 늘 경의를 표해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라는 점에서 아카데미 입맛에 좀 더 맞지 않겠느냐고 판단했던 것이다. 아카데미의 전초전 성격이 짙은 골든글러브와 영국 아카데미에서 ‘1917’이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점도 이를 뒷받침했다.


선을 넘은 아카데미

브리 라슨, 시고니 위버, 갤 가돗 [AP=뉴시스]

브리 라슨, 시고니 위버, 갤 가돗 [AP=뉴시스]

그러다 보란 듯 한 방을 먹였다. ‘1917’은 촬영상, 시각효과상, 음향효과상 같은 기술 관련 상만 수상했고 작품상은 물론, 감독상까지 ‘기생충’에게 양보해야 했다. ‘기생충’에서 “선을 넘지 말아야한다”는 대사를 각인시킨 배우 이선균의 말처럼 “‘기생충’이 아니라 아카데미가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오스카상은 소수의 심사위원이 토론을 통해 상을 주는 다른 국제영화제와 달리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 8400여 명의 다수결 투표에 따라 수상자가 결정된다. 그래서 특정 영화에 상이 쏠리는 것을 막거나 상을 나눠주는 막후조정이 쉽지 않다. 하지만 시상식에서 수상 결과의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한 연출은 충분히 가능하다.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이번 시상식을 복기해보면 ‘기생충’이 작품상을 탈 수밖에 없었던 여러 요소를 읽어낼 수 있다. 

시상식 공동 사회를 맡은 배우 스티브 마틴과 크리스 록의 오프닝 멘트부터 심상치 않았다. 올해 감독상 후보에 여성이 없음을 콕 짚어 말하더니 흑인 차별 대목에선 이런 말이 오갔다. “아카데미는 지난 92년간 커다란 변화를 겪어왔습니다. 1929년(제1회 시상식이 있던 해)에는 연기상 후보에 흑인이 한 명도 없었는데 올해는 한 명이 있네요. 정말 대단해요.” 

아카데미는 2016년과 2017년 작품상, 감독상, 남녀연기상 수상자는 물론 후보에도 흑인이 단 한 명도 없어 몰매를 맞았다. 또 2018년과 2019년에는 ‘미투(Me Too) 운동’과 맞물려 연기상을 제외하곤 여성과 소수인종이 배제됐다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니 등줄에 땀이 흐를 만한 농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태연자약하게 그런 농담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동양인이 만든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이라는 히든카드를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음악상 시상자로 나선 여전사 3인방의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에일리언’의 여전사 리플리 역의 시고니 위버, ‘원더우먼’의 주인공 갈 가도트, ‘캡틴 마블’의 주인공 브리 라슨은 할리우드의 남녀차별에 대해 거침없는 미러링 농담을 던졌다. 셋이서 ‘파이터 클럽’을 운영하기로 했는데, 남성 회원의 경우 셔츠 착용을 금지하는 복장 규정을 둘 것이며 시합에서 패배하면 “할리우드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기자들의 (고통스러운) 질문에 답하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여성에게 배타적이라는 비판을 듣던 아카데미로선 썰렁하기 짝이 없는 농담이었는데 다음 순간 비밀이 풀렸다. 수상자가 영화 ‘조커’의 작곡을 맡은 힐두르 구드나도티르였는데 음악상 최초 여성 수상자였다.


제인 폰다의 등장이 말해준 것

제인 폰다 [AP=뉴시스]

제인 폰다 [AP=뉴시스]

이때 눈치챘어야 했다. 구드나도티르는 여성이긴 하지만 북유럽 출신 백인이다. 만일 작품상과 감독상을 ‘1917’이 가져갔다면 주요상은 물론 음악상, 촬영상(로저 디킨), 주제가상(엘튼 존과 버니 토핀), 의상상(재클린 듀런)까지 모두 ‘백인잔치’라는 오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게 뻔했다. 

하지만 그 반전을 눈치채기 시작한 것은 감독상 발표 때였다. 예상대로 ‘각본상’과 ‘국제영화상’을 받은 ‘기생충’이 감독상까지 수상하는 순간 봉준호 감독은 물론, 영화 전문가 모두가 얼어붙었다. 사실 확률은 낮았지만 ‘기생충’이 작품상을 받는다 해도 감독상은 엄청나게 많은 배우가 등장하는 전쟁영화를 원 테이크로 찍는 데 성공한 ‘1917’의 샘 멘데스 감독의 몫이라고 생각한 영화인이 많아서다. ‘그런데 그걸 봉준호가 가져간다? 그럼 작품상도 충분히 가능하단 얘기잖아!’ 

작품상 시상자로 제인 폰다가 등장한 순간 ‘설마’는 ‘확신’에 가까워졌다. 대배우 헨리 폰다의 딸이자 그 자신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명배우인 제인 폰다는 ‘백인들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도널드 트럼프의 성차별, 인종주의, 반(反)이민, 환경, 복지 정책에 반대의 기치를 높이 들어온 인물이다. 지난해 11월 1일에는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환경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다 82세 나이에 체포돼 유치장 신세를 마다하지 않아 ‘행동하는 여배우’의 대모로도 불린다. 그런 그가 전형적인 백인영화 ‘1917’에 상을 주러 나왔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주간동아 2020.02.14 1226호 (p4~6)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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