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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방탄소년단은 왜 그래미 후보에도 못 올랐나

시대적 변화에 둔감한 ‘중년 백인 남성 클럽’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방탄소년단은 왜 그래미 후보에도 못 올랐나

[AP=뉴시스, Grammy Awards 홈페이지]

[AP=뉴시스, Grammy Awards 홈페이지]

11월 20일 한 일간지 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날 밤 내년 미국 그래미 어워드(그래미) 후보작이 발표되는데 방탄소년단(BTS)이 댄스 듀오/그룹 부문에 노미네이트된다는 걸 전제로 판세 예측을 부탁한다는 거였다. 만약 후보가 될 경우 경쟁자가 누구고 전체적인 추세가 어떻고… 이런 걸 분석한 후에야 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나는 고민 없이 답했다.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굳이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방탄소년단을 무시해서가 아니다. 그래미의 보수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방탄소년단은 그래미에 후보로 오르지 못했다. 예측이 적중한 것인데도 조금 씁쓸했다. 역시 그래미는 그래미였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1959년 시작된 그래미의 주최자는 ‘미국레코딩예술과학아카데미’(National Academy of Recording Arts and Science·NARAS)다. NARAS 회원은 음반제작자, 엔지니어, 방송국 PD, DJ 등인데 가입 요건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음반제작자의 경우 본인 명의로 12개 이상 레코딩 트랙(싱글을 포함한 레코딩 작품)을 갖고 있어야 하고, 최근 5년 내 최소 1개 이상 트랙을 발매했어야 한다. 이 트랙은 또한 온라인에서 스트리밍이나 다운로드가 가능해야 한다. 요컨대 어느 정도 경력이 있고 현재도 활동하고 있는 사람만이 회원이 돼 그래미에 투표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약 1300명 회원이 투표 자격을 갖고 있다.


그래미의 흑역사

[위키피디아]

[위키피디아]

문제는 이 회원들의 주류가 중년 백인 남성이라는 것이다. 이는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어서,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거나 무시한다는 비판으로 이어지곤 했다. 최근 불거진 사례만 살펴보자. 2016년 제58회 그래미에서는 비평계의 압도적 호평을 받았던 켄드릭 라마의 ‘To Pimp A Butterfly’가 테일러 스위프트의 ‘1989’에 밀려 올해의 앨범을 수상하지 못했다. 그 다음 해에는 비평가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비욘세의 ‘Lemonade’가 아델의 ‘25’에게 올해의 앨범을 내줬다.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음악에 닫혀 있고, 백인에게 친화적이며, 한물간 스타일의 음악에 기꺼이 트로피를 안겨준다는 비난이 따랐다. 

역사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가도 마찬가지다. 그래미에 헤비메탈 부문이 신설된 건 1989년이다. 그해에는 ‘베스트 하드록/메탈 퍼포먼스’라는 이름으로 시상했고 이듬해부터 ‘메탈 퍼포먼스’로 분리됐다. 당시 헤비메탈은 명실 공히 1980년대 후반의 팝을 대표하는 장르로 성장해 있었다. 건스 앤 로지스, 본 조비, 머틀리 크루처럼 한국에서는 LA메탈로 불리던 팀들이 있었고 메탈리카와 앤스랙스, 메가데스 같은 스래시 메탈 밴드가 록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했다. 

그래미는 분위기에 발맞춰 상을 새로 만들었다. 첫해 시상자는 앨리스 쿠퍼와 리타 포드로 둘은 무대에 올라 후보작을 발표했다. 메탈리카의 ‘…And Justice For All’, 제인스 어딕션의 ‘Nothing’s Shocking’ 등 다섯 작품이었다. 언론에서는 이미 메탈리카 아니면, 제인스 어딕션이 트로피 주인공이 될 것이라 예상하던 차였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을 뒤집고 제스로 툴에게 돌아갔다. 



1970년대 전성기를 누리던 이 영국 출신 포크 록 밴드의 수상은 행사장을 싸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수상을 확신하던 메탈리카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앨리스 쿠퍼는 당시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제스로 툴을 호명하자 2분간 정적이 흘렀고, 모두가 웃기 시작했다. 내가 농담하는 거라 생각했거든.” 제스로 툴의 리더 이언 앤더슨 또한 “레코드 회사에서는 당연히 메탈리카가 수상할 거라 믿어서 우리를 행사가 열리는 LA까지 데려가는 비행기 표 값도 아까워했다”고 말했다. 여론의 맹폭을 받은 그래미는 이듬해인 1990년에야 메탈리카에게 이 상을 안겼다. ‘…And Justice For All’이 1988년작이라 앨범으로는 못 주고 1989년 발표한 싱글 ‘One’으로 말이다. 


[GettyImages]

[GettyImages]

1990년대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 시기의 주요한 음악적 흐름은 둘이다. 얼터너티브와 힙합. 얼터너티브 앨범 부문은 1991년부터 수여되기 시작했다. 첫해의 주인공은 아일랜드 출신 가수인 시네이드 오코너였다. 문제는 다음 해였다. 1992년 그래미에서 얼터너티브 앨범 부문 후보는 R.E.M.의 ‘Out Of Time’과 너바나의 ‘Nevermind’를 비롯한 다섯 장의 앨범이었고, 이 중 R.E.M.이 트로피를 가져갔다. 얼터너티브라는 장르가 너바나에 의해 팝 영역에 안착한 걸 생각하면 의외의 결과였다.


푸대접 받은 헤비메탈, 얼터너티브, 힙합…

[GettyImages]

[GettyImages]

너바나가 1993년 발표한 마지막 정규 앨범 ‘In Utero’는 그래미가 사랑하는 대표적 아티스트 U2의 ‘Zooropa’에 밀렸다. 커트 코베인이 1994년 사망한 후 다음 해 발표한 유작 앨범 ‘MTV Unplugged In New York’으로 가까스로 트로피 주인이 될 수 있었다. 메탈리카와 너바나, 두 팀 모두 해당 장르를 변방에서 메인으로 끌어올린 상징적 존재임을 생각했을 때 너무 늦게 상을 받았다. 

몇 해 전 음악저널 ‘롤링스톤’은 1900년대의 가장 중요한 사건을 힙합의 대중화로 꼽았다. 닥터 드레, 스눕 독, 투팍, 노터리어스 B.I.G. 같은 쟁쟁한 스타를 배출한 힙합은 그 시기에 록과 더불어 청년 문화를 상징하는 두 개의 탑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반면 그래미는 힙합을 푸대접했다. 메탈리카와 너바나는 힙합에 비하면 극상의 대접을 받았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였다. 

1989년 ‘베스트 랩 퍼포먼스’로 힙합에 대한 시상을 시작한 이래 힙합 앨범을 온전히 평가하기 시작한 건 1996년 ‘베스트 랩 앨범’ 부문을 만들고서부터다. 7년이라는 간극이 있었다. 베스트 랩 앨범의 주인공은 늘 쟁쟁했다. 너티 바이 네이처, 푸지스, 퍼프 대디(디디), 제이 지, 에미넴, 아웃캐스트 등 힙합을 넘어 팝계의 중심에 선 아티스트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들 중 흔히 그래미 본상으로 불리는 주요 부문, 즉 올해의 앨범,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올해의 신인을 수상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2000년대 힙합을 대표하는 스타인 에미넴, 제이 지는 데뷔 후 지금까지 한 번도 본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카녜이 웨스트, 켄드릭 라마 등 2010년대 힙합 스타도 마찬가지다. 본상을 수상한 힙합 뮤지션을 찾는 게 더 빠를 정도다. 아웃캐스트(2004년 올해의 앨범), 차일디시 감비노(2019년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가 전부라 해도 좋다.


‘꼰대’들의 음악잔치

[GettyImages, AP=뉴시스]

[GettyImages, AP=뉴시스]

아메리칸 뮤직어워드,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모두 수상한 방탄소년단이 그래미에서 ‘물먹은’ 걸 놓고 인종 차별이라고 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본질은 새로운 흐름에 둔감한 그래미의 한계를 다시 한 번 증명했다는 것 아닐까. 

그래미는 올해 초 방탄소년단을 투표 자격을 갖춘 심사위원으로 초빙하는 등 변화를 향한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케이팝(K-pop)을 넘어 뉴 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10대의 영웅이 된 그들을 끝내 후보로조차 품에 안지 못했다. 

소셜미디어 시대 밀레니얼이 지루한 MLB 대신 NBA를 더욱 선호하는 것처럼, ‘안전하고 편안한’ 음악에 계속 투표하는 ‘중년 백인 남성’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 한 그래미는 권위를 스스로 갉아먹을 것이다.






주간동아 2019.11.29 1216호 (p74~76)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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