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美 반중 포위망 구축 동참의 함의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 투입 양해할 수도… 中 협박에 굴복 말아야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2-05-29 10: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윤석열 대통령(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월 2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환담하고 있다.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월 2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환담하고 있다. [대통령실]

    최근 들어 주한미군 오산 공군기지에 배치된 최신예 고공정찰기 U-2S 드래건 레이디(Dragon Lady)가 남중국해와 대만 인근까지 빈번하게 날아가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U-2S는 최대 25㎞ 고도에서 7∼8시간 비행하며 150㎞ 떨어진 지상과 해상 표적을 정밀 감시하고 통신을 감청할 수 있다. 오산 공군기지에서 대만까지 거리는 1600㎞로 항공기로 2시간이면 날아갈 수 있다. 북한군 움직임을 감시해온 U-2S가 대만 인근까지 정찰에 나선 이유는 중국 인민해방군이 각종 군용기를 대거 동원해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을 침범하는가 하면, 항공모함을 비롯해 각종 함정의 실탄 사격 훈련과 상륙 훈련을 실시하는 등 대만에 대한 무력 압박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제7함대 항모 전단과 각종 함정은 물론, 괌 주둔 공군과 주일미군 등을 투입해 대만을 지원한다는 전략을 마련해놓았다. 미국은 이와 함께 일본 자위대 병참 등 후방 지원도 받는다는 방침이다. 게다가 미국은 주한미군까지 투입하는 방안도 상정하고 있다. U-2S가 대만 인근까지 날아가 정찰 임무를 수행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美, 동맹국 정상회담서 대만 문제 공동성명에 포함

    대만 F-16 전투기(아래)가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한 중국 H-6K 폭격기에 경고하고 있다. [MND]

    대만 F-16 전투기(아래)가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한 중국 H-6K 폭격기에 경고하고 있다. [MND]

    미국 역대 정부는 이런 전략에도 중국이 대만을 침공했을 때 대만을 방어한다고 언급하지 않는 등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 정책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기존 전략을 깨고 세 차례나 중국이 무력 통일을 감행할 경우 대만을 군사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5월 23일 일본 도쿄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 참석해 “대만 방어를 위해 군사적 개입을 할 의향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다. 그것은 우리가 한 약속”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이 대만을 강압적으로 점령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미국은 중국이 대만에 무력을 사용할 수 없도록 일본 등 다른 나라와 함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8월과 10월에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반면 미국 백악관과 국무부, 국방부 등은 대만에 대한 군사 개입은 없다면서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을 해명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바이든 대통령은 대만관계법에 따라 대만에 자기방어 수단을 제공한다는 우리의 약속을 강조한 것”이라고 밝혔다. 대만관계법은 미국이 1979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 단교하고 상호안보조약을 폐기하는 대신, 대만의 안전을 보장하고자 제정한 국내법이다. 이 법에는 중국이 대만을 무력 침공할 때 대만 방어에 필요한 무기와 군사기술을 제공한다는 조항은 있지만 미국의 군사 개입과 관련된 내용은 없다.

    그런데도 미국 정부는 일본 등 인도·태평양 지역의 동맹국들과 정상회담 등에서 대만 문제를 공동성명에 포함해왔다. 바이든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공동성명에는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국제사회의 안보와 번영을 위한 필수불가결 요소이며, 양안(중국과 대만) 문제의 평화로운 해결을 촉구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4월 16일 백악관에서 당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후 발표한 공동성명도 같은 내용이었다. 미·일 정상의 공동성명에 대만이 명시된 것은 1969년 당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사토 에이사쿠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 이후 처음이었다. 미국 정부가 공동성명에 대만 문제를 포함시키는 이유는 인도·태평양 지역 동맹국들과 함께 대만을 군사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중국 측에 보여주려는 의도 때문이다. 중국이 대만에 대한 무력 통일 의지를 보임에 따라 미국이 이에 대비하기 위해 마련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동·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 훈련 예고

    순환배치된 주한미군 기갑여단이 탱크 기동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미 육군]

    순환배치된 주한미군 기갑여단이 탱크 기동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미 육군]

    미국 정부는 또 다른 동맹국인 한국에도 대만 문제에 협력할 것을 요청해왔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해 5월 21일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한미 정상 간 공동성명에 대만이 표기된 것은 사상 처음이었다. 친중 성향이라는 말을 들어온 문 전 대통령의 의도는 싱가포르 합의와 판문점 선언을 공동성명에 포함하기 위해 미국의 중국 견제 요청을 ‘명목적’ 수준에서 받아들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정의용 외교부 장관도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중요하다는 매우 원론적이고 원칙적인 내용만 공동성명에 포함했다”고 밝힌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은 5월 21일 정상회담 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 및 번영의 핵심 요소로서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도 강조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문재인 정부가 미국 정부와 각각 발표한 공동성명은 전체 내용을 볼 때 본질적으로 다르다. 무엇보다 바이든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은 한미동맹을 한반도를 넘어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한미 양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적극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와 달리 미국이 추진하는 반중(反中) 포위망 구축에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볼 수 있다. 두 정상이 공동성명에서 “민주주의와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 촉진, 부패 척결 및 인권 증진이라는 양국 공동의 가치” 등을 언급하면서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을 강조한 부분은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성명에는 또 “두 정상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인권 상황에 관한 상호 우려를 공유하면서 전 세계에서 인권과 법치를 증진하기로 약속했다”는 표현도 들어 있다. 중국의 홍콩과 신장웨이우얼(위구르) 및 티베트 등에 대한 인권 탄압을 비판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점은 한미가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연합연습 및 훈련의 범위와 규모를 확대하기 위한 협의를 개시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군은 앞으로 동·남중국해 등에서 미군과 함께 항행의 자유 훈련 등을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 공동성명은 “남중국해 및 여타 바다에서 평화와 안정, 합법적이고 방해받지 않는 상업을 유지하고, 항행·상공 비행의 자유와 바다의 합법적 사용을 포함한 국제법을 존중한다는 약속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한국 해군은 동·남중국해에선 미국 해군 등과 항행의 자유 훈련을 실시한 적이 없다.

    中 “승냥이가 오면 사냥총으로 맞으리라”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번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대만해협과 남중국해가 명시된 것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때 미국 정부가 주한미군을 투입할 수 있는 근거 또는 명분이 될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이번 공동성명에 따라 주한미군을 대만이나 남중국해 등에 투입하는 일을 양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폴 러캐머라 주한미군 사령관은 이미 지난해 5월 상원 군사위원회 인준 청문회에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강조한 바 있다. 러캐머라 사령관의 이런 언급은 주한미군을 대만이나 남중국해에 파견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글로벌 태세 검토(Global Posture Review·GPR)’에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포함시켰다. 특히 미국 정부는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한국에 군사 지원을 요청할 수도 있다. 미국의 전략은 인도·태평양에서 가용할 수 있는 동맹국들의 전력을 최대한 투사해 중국의 대만 무력 통일 의도를 저지하겠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에 6·25 전쟁까지 거론하면서 강력하게 반발한 것도 미국 정부의 이런 전략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5월 24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 측이 중국에서 회자되는 노래를 들어보길 원한다”며 ‘친구가 오면 좋은 술이 있고, 승냥이가 오면 사냥총으로 맞으리라’는 노래 가사를 소개했다. 이 노래는 중국 영화 ‘상감령’(1956)의 삽입곡 ‘나의 조국’이다. ‘상감령’은 중국이 6·25 전쟁에서 가장 큰 승리를 거뒀다고 주장하는 상감령 전투를 그린 영화다. 중국 정부가 이런 노래 가사를 언급한 것은 미국과 정면 대결도 불사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중국이 ‘북한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다는 경고라고도 볼 수 있다.

    왕 대변인은 “대만 문제는 중국의 내정이며. 다른 나라가 간섭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면서 “유관 측에 엄중한 교섭을 제기했다”며 윤석열 정부도 비판했다. ‘엄중 교섭 제기’는 외교 경로를 통해 윤석열 정부에 공식 항의했다는 뜻이다.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한국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노리개가 되거나 최대 무역 상대국의 감정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신창 상하이 푸단대 미국연구센터 부소장은 “만약 한국이 대만과 관련해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 대가를 치르는 쪽은 분명 한국 자신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동북아 화약고인 대만과 북한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가운데 윤석열 정부는 중국의 ‘협박’에 굴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