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39

2022.05.13

우크라이나發 안보 위기에 국산 FA-50 경전투기 飛上

고성능에 가격 경쟁력↑… 21세기 ‘프리덤 파이터’ 눈앞

  •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입력2022-05-15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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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50 경전투기. [사진 제공 · 공군, 한국항공우주산업]

    FA-50 경전투기. [사진 제공 · 공군, 한국항공우주산업]

    ‘N-156’은 1950년대 중반 미국 방위산업체 노스롭(현 노스롭그루먼)이 개발한 초음속 전투기 모델이다. ‘노스롭이 만든 156번째 설계안’이라는 뜻의 이름이 붙은 이 기체는 우수한 비행 성능에 작고 가벼운 덩치, 저렴한 획득·유지비용이 특징이다. 다만 본래 개발 목적이던 전투기보다 훈련기로서 먼저 히트한 모델이기도 하다.

    1950년대 태동한 초음속 항공기술

    1950년대는 초음속 항공기술이 태동하고 발전한 변혁기였다. 당시 강대국들이 전투기 개발에서 가장 중시한 요소는 속도였다. 1949년 개발돼 6·25전쟁에서 최강 전투기로 군림한 F-86 ‘세이버(Sabre)’는 최대속도가 마하 0.9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5년 뒤 배치된 F-100 ‘슈퍼 세이버(Super Sabre)’는 음속의 벽을 넘어 마하 1.1을 돌파했다. 이후 계속해서 쏟아져 나온 전투기들은 점점 더 빨라졌다. F-101 ‘부두(Voodoo)’가 마하 1.48을 기록한 데 이어 F-104 ‘스타파이터(Starfighter)’는 마하 2.0을 찍었다. F-106 ‘델타다트(Delta Dart)’와 F-4 ‘팬텀 II(Phantom II)’는 각각 마하 2.3을 돌파하더니 1950년대 말 기획된 XF-108 ‘레이피어(Rapier)’는 마하 2.6을 넘겼다.

    당시 전투기 개발의 또 다른 트렌드인 ‘미사일 만능주의’에 따라 기체는 더 커졌다. 높은 추력의 엔진과 함께 덩치 큰 미사일을 주렁주렁 매달아야 했기 때문이다. 1950년대 초 서방 세계의 주력 전투기로 활약한 F-86의 최대이륙중량은 8.2t 수준이었는데 후속기인 F-100 이후부터 10t을 가볍게 넘기기 시작했다. F-4는 28t, XF-108은 46t으로 더 무거워졌다. 전투기 가격도 성능 향상과 함께 가파르게 높아졌다. F-86 최후기형은 대당 가격이 18만 달러(약 2억3000만 원)였으나 전투기 세대교체가 이뤄진 뒤 나온 F-104는 그보다 4.7배 비싼 85만 달러(약 10억8000만 원)였다. F-4는 여기서 다시 3배 이상 폭등한 240만 달러(약 30억6000만 원)였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강대국들은 더 크고 빠르며, 더 높이 멀리 비행할 수 있는 고성능 대형 전투기를 속속 도입했다. 이러한 전투기들을 운용하는 국가는 초음속 비행 훈련이 가능한 고성능 고등훈련기를 찾기 시작했다. 1950년대 미 공군이 운용하던 제트엔진 기반의 고등훈련기로는 T-33과 T-37이 있었다. 기존 P-80 전투기와 플랫폼을 공유한 T-33은 비교적 저렴한 대당 10만 달러(약 1억2000만 원), 신규 개발한 T-37은 16만 달러(약 2억 원) 선에서 판매됐지만 모두 초음속 비행이 불가능했다. 훈련기치곤 사양이 과도하다는 말까지 나온 N-156 기반의 T-38은 상당히 고가인 75만 달러(약 9억5000만 원)에 출시됐다. 우수한 성능을 앞세워 미국과 서독(현 독일) 등 부유한 나라들에 판매됐다.

    T-38은 당초 훈련기로는 대단히 비싸고 ‘지나치게’ 높은 성능을 가진 모델이었다. 워낙 우수한 성능을 갖췄다 보니 경량 전투기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사실 노스롭이 N-156 모델을 설계할 때만 해도 훈련기가 아닌 전투기로 만들었다. T-38을 전투기화한 N-156F의 콘셉트는 싸고 튼튼하며 낮은 비용으로 운용할 수 있는 전투기였다. 미국 적성국가에 노획돼도 첨단기술 유출 우려가 없는 ‘저개발국용 전투기’로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2600여 대 이상 생산돼 37개국에서 쓰인 베스트셀러 전투기 F-5였다.



    美 우방국에 무상·염가 제공된 F-5

    냉전시대 미국이 우방국에 판매 및 제공한 F-5 전투기. [사진 제공 · 공군]

    냉전시대 미국이 우방국에 판매 및 제공한 F-5 전투기. [사진 제공 · 공군]

    F-5는 미 공군의 제식 채용 모델은 아니었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해외 우방국에 무상 공여 또는 염가 판매하기에 적합했다. 자유세계의 방위 태세에 기여한다는 뜻에서 ‘프리덤 파이터(freedom fighter)’라는 별명도 붙었다. 동시대 미군의 주력 전투기로 생산되던 F-4는 대당 240만 달러(약 30억6000만 원)였지만 F-5A는 60만 달러(약 7억6000만 원)에 구입할 수 있었다. 노스롭 공장 한 곳에서 매달 12대나 생산할 수 있을 정도로 구조도 단순했다. F-5A/B를 대대적으로 개량해 레이더를 탑재하고 엔진과 무장을 강화한 F-5E/F 버전은 1972년 등장 당시 가격이 210만 달러(약 26억8000만 원)로 껑충 뛰었다.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F-15A는 700만 달러(약 89억4000만 원), 이보다 저렴한 경량급 전투기로 기획된 F-16A는 460만 달러(약 58억7000만 원) 수준이었다. F-5E/F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국가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레이더 장착형 초음속 전투기를 가지려면 최선의 선택이었다. 한창 경제성장 중이었지만 국방예산은 넉넉지 않았던 한국도 이 시기 F-5 시리즈를 대량으로 도입한 나라다. 이처럼 N-156은 훈련기치곤 높은 성능과 가격 때문에 일부 부국만 운용한 훈련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높은 성능 덕에 경전투기로 주목받고 베스트셀러가 된 흥미로운 ‘기생역전(機生逆轉)’ 스토리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런 ‘역전 스토리’를 한국산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이 다시 써내려갈 조짐이 보여 주목된다. T-50은 노후 훈련기를 대체하기 위해 1989년부터 ‘KTX-2’라는 프로젝트명으로 개발되기 시작해 2001년 시제기가 출고된 최초 한국형 제트훈련기다. 당시 면허생산 도입이 진행된 F-16 제작사 미국 록히드마틴의 기술협력을 바탕으로 개발돼 2005년 한국 공군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T-50은 록히드마틴의 기술 지원을 바탕으로 하는 만큼 F-16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완성됐다. 당초 공군의 KTX-2 작전 요구 성능엔 초음속 비행 능력은 포함되지 않았다. 전반적인 목표 성능은 당대 동급 항공기와 유사한 수준으로 설정됐다. 다만 당시 사업에 참여한 국내 기술진의 강력한 요구로 개발 과정에서 전투기에 준하는 수준의 고성능 기체로 목표가 수정됐다. 그 결과 T-50은 21세기에 등장한 타국의 고등훈련기를 압도하는 높은 수준의 항공기로 태어났다.

    당시 고등훈련기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모델은 영국 호크(Hawk) 시리즈, 체코 L-39 시리즈였다. 여기에 러시아 YAK-130과 이를 기반으로 개발된 이탈리아 M-346 등도 주목받았다. 그러나 이 기종들은 성능만 놓고 보면 T-50과 비교 자체가 민망한 수준이다. 영국 호크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에 걸쳐 다양한 변종이 생산되며 1000대 넘게 팔린 고등훈련기 시장의 베스트셀러다. 다만 성능을 살펴보면 최대이륙중량 9.1t, 최대속도 마하 0.8 수준으로 기본형은 레이더조차 없었다. L-39 시리즈는 5t도 되지 않는 최대이륙중량에 최대속도는 마하 0.6, 무장 능력은 1t도 채 되지 못했다. T-50과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YAK-130이나 M-346은 이보다는 나았지만, 최대이륙중량 9.6t에 최대속도 마하 0.89, 최대 3t 정도의 무장 장착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마찬가지로 레이더는 별도 비용을 내야 장착할 수 있는 옵션이었다.

    ‘수준’이 다른 T-50

    하지만 T-50은 앞서 소개한 훈련기들과는 수준 자체가 다르다. 최대이륙중량은 12t이 넘고, 전투기에나 사용되는 강력한 F404 엔진을 탑재해 마하 1.5에 달하는 속도를 낼 수 있다. 2009년 이후 양산된 전술입문기 버전인 T/A-50은 기계식 레이더로는 최고 수준의 성능인 이스라엘제 EL/M-2032 레이더가 탑재되고 정밀유도무기 운용 능력이 추가됐다. 무장 능력도 4.5t에 달한다. 1960년대 T-38이 그랬던 것처럼 훈련기로선 과하지만 주력 전투기로 쓰기엔 다소 미흡한 포지션. 이에 따라 KAI(한국항공우주산업)는 FA-50이라는 파생형 개발을 추진했고, 현재는 이를 더욱 발전시켜 4.5세대 전투기 수준의 능력을 발휘하는 개량형까지 준비하고 있다.

    훈련기 최고 스펙을 가진 T-50 시리즈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내세운 경쟁 기종 M-346 시리즈에 밀려 각국 훈련기 사업에서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18년 미 공군의 차세대 고등훈련기 도입 사업에 초저가로 치고 들어온 T-7A에 밀리면서 흥행 실패작으로 남는 듯했다. 그러나 2020년 이후 상황이 급반전하기 시작했다. 과도하게 모험적인 설계가 많이 적용된 T-7A가 결함과 납품 지연 사태를 빚은 것이다. 여기에 미 의회와 공군을 중심으로 A-10 공격기 퇴역 논란이 확산되면서 상황이 흥미롭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F-16과 A-10을 모두 대체할 수 있는 F-35는 높은 유지비 및 복잡한 유지·보수 시스템이 필요한 스텔스 전투기다. 간단한 지상 공격 임무나 저강도 군사 작전에 투입하기에는 소위 ‘가성비’가 떨어진다. T-7A 납기가 지연되자 미 공군은 그 대안으로 ‘고등전술훈련기(ATT)’ 사업을 추진했다. 미 공군은 ATT 요구 조건으로 고등훈련기 기능은 물론, 무장 투발 훈련과 항공 전술 훈련, 가상적기 임무, 심지어 저강도 군사 작전에도 투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러한 요구 성능은 FA-50과 정확히 일치했다. 이 때문에 록히드마틴은 KAI와 ATT 사업 참여를 준비하면서 TF-50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2018년 T-X 사업에서 고배를 마신 T-50A를 개량한 모델이다. T-7A 개발에 극적인 반전이 없는 한 미 공군은 100~400대의 ATT를 구매할 전망이다.

    글로벌 군비 증강 속 기회

    폴란드가 우크라이나에 공여를 검토 중인 러시아제 미그(MiG)-29 전투기. [뉴시스]

    폴란드가 우크라이나에 공여를 검토 중인 러시아제 미그(MiG)-29 전투기. [뉴시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T-50 제조사 KAI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당초 KAI는 FA-50을 주로 저개발국가에서 추진하는 경량급 전투기 도입 사업에 제안했다. 하지만 이번 미 공군 사업과 말레이시아 경전투기 사업 등을 계기로 FA-50 성능을 크게 강화하는 방안이 추진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블록 20’ ‘블록 30’ 개량 등으로 불리는 해당 개량 프로그램을 통해 KF-21에 탑재되는 고성능 AESA(능동 전자주사식 위상배열) 레이더의 소형화와 고성능 항공전자장비 설치, 중거리공대공미사일 운용 능력과 공중급유 능력 부여, 다양한 정밀유도무기 운용 능력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 정도면 10~15t급 4.5세대 전투기 중 최강이라는 스웨덴 JAS-39 그리펜(Gripen)에 버금가는 능력이다. 그리펜은 대당 700억 원이 넘지만 FA-50의 현재 판매가는 300억~400억 원 수준이다. 성능이 대폭 개량돼도 그리펜보다 저렴할 것이다.

    현재 글로벌 방위산업 시장 상황은 과거 F-5가 대박을 쳤을 때와 매우 흡사하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의 군사적 팽창으로 세계 각국은 다시 군비 증강 길로 들어섰다. 이런 상황에서 재정 여력이 크기 않은 국가들이 저렴하면서도 우수한 성능을 갖춘 경량 전투기를 찾기 시작하며 FA-50이 급부상하고 있다. 가령 폴란드는 최근 FA-50 성능 개량 버전을 36개월 내 납품할 수 있느냐는 질의서를 KAI와 한국 정부에 보내왔다고 한다. 폴란드 공군이 운용하던 러시아제 미그(MiG) 전투기를 우크라이나에 공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데, 이를 대체할 항공 전력을 물색하는 것이다. 이미 경쟁사들은 기존 고등훈련기를 개량한 경전투기를 제작해 동유럽과 동남아시아 등 잠재 시장에 적극적으로 구애를 펼치기 시작했다. 한국도 정부 차원의 수출 전략을 수립해 항공산업 도약을 위한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FA-50 신화’가 그 도약의 첫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도록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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