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37

2022.04.29

“유럽 전체 핵 인질 노린 푸틴의 핵 위협, ‘공포탄’ 아니다”

서방 군사 전문가들 “우크라이나戰 승리·나토 확대 막기 위해 사용 가능성↑”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2-05-0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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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군이 4월 20일 세계 최대 대륙간탄도미사일 사르마트를 시험발사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

    러시아군이 4월 20일 세계 최대 대륙간탄도미사일 사르마트를 시험발사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

    ‘러시아의 RS-28 사르마트(Sarmat)는 미국 미사일방어(MD)체제를 뚫을 수 있는 세계 최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다. 길이 35.3m, 직경 3m, 무게 208t, 최대속도 마하 20, 최대 사거리 1만8000㎞인 사르마트는 다탄두 미사일로, 메가톤(Mt: TNT 100만t의 폭발 규모)급 핵탄두를 15개까지 탑재할 수 있다. 핵탄두 위력은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보다 2000배나 크다. 러시아군은 사르마트 1기로 미국 텍사스주 전체를 완전히 초토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액체연료를 사용하고 격납고(silo)에서 발사하는 3단계 미사일인 사르마트는 최신형 극초음속 탄두(HGV)를 탑재할 수 있으며, HGV는 지구상 어느 곳이든 1시간 안에 타격할 수 있다.

    메가톤급 핵탄두 15개 탑재 사르마트

    러시아군은 4월 20일 북부 아르한겔스크주 플레세츠크 우주기지에서 사르마트 미사일을 처음 시험발사해 6000㎞ 떨어진 극동 캄차카 반도의 목표물을 정확히 명중했다. 러시아군은 이 사르마트 미사일을 올가을 시베리아 크라스노야르스크주에 위치한 전략로켓부대에 실전 배치할 예정이다. 러시아군의 이번 계획은 옛 소련 시절 생산한 ICBM인 R-36M(나토명 SS-18 사탄)을 사르마트 미사일로 교체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는 사르마트 미사일을 ‘사탄2’라는 암호명으로 부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사르마트 미사일 시험발사 성공과 관련한 대국민 연설에서 “전 세계에 유일무이한 이 무기는 러시아군의 전투력을 강화하고 외부 위협으로부터 안보를 확실히 보장할 것”이라며 “러시아를 위협하려는 적들로 하여금 다시 생각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군이 사르마트 미사일을 시험발사한 것은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지역에 대한 ‘제2단계’ 작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하고 나흘 후인 2월 28일 푸틴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전략로켓군, 북해함대, 태평양함대 등 핵 운영부대가 전투 준비 태세에 들어갔다고 발표했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제1단계’ 작전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때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무기 등 대규모 군사 지원을 하는 미국을 견제하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1단계 때와 달리 이번에는 미국을 직접 겨냥해 ICBM 시험발사라는 실질적인 핵 위협을 했다는 점이다.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은 ‘상호확증파괴(MAD)’ 전략에 따라 ‘공포의 균형’을 유지해왔다. MAD는 적이 ICBM 등으로 핵 공격을 감행할 경우 남아 있는 핵전력으로 상대방에게 보복하는 것을 말한다.

    러시아는 그동안 미국에 핵전력 우위를 점하고자 ICBM에 여러 개 탄두를 탑재하는 다탄두(MIRV)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다. MIRV는 ICBM이 대기권에 진입하면 탄두 여러 개가 각자의 표적을 향해 날아가는 분리탄두를 말한다. 러시아군이 사르마트로 모든 MD체제를 뚫을 수 있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사르마트라는 이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르마트는 기원전 6~기원전 4세기 우크라이나 일대와 러시아 남부를 지배하던 민족이다. 러시아도 사르마트족처럼 우크라이나를 복속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 위해 이런 명칭을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가 미국보다 전술핵 우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왼쪽에서 세 번째)을 비롯한 러시아군 수뇌부가 미사일 발사를 지휘하고 있다. [크렘린궁]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왼쪽에서 세 번째)을 비롯한 러시아군 수뇌부가 미사일 발사를 지휘하고 있다. [크렘린궁]

    그렇다면 러시아군 또는 푸틴 대통령은 핵을 실제로 사용할 수 있을까. 러시아군의 핵무기 사용을 지시하는 최종 결정권자는 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이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러시아도 핵 가방을 들고 대통령을 24시간 수행하는 요원이 있다. 푸틴 대통령이 4월 8일 블라디미르 지리놉스키 자유민주당 당수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 핵 가방을 든 요원이 서방 언론 카메라에 포착됐다. 러시아 대통령의 핵 가방은 러시아어로 ‘체게트(Cheget)’로 불린다. 이 가방에는 핵무기가 탑재된 미사일 발사 버튼과 핵 공격 암호 등이 들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푸틴 대통령의 의도는 마음만 먹으면 핵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이려는 것이다. 실제로 푸틴 대통령의 ‘입’이라는 말을 들어온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미 두 차례나 핵 사용을 위협한 바 있다.



    핵무기 사용 조건은 러시아의 핵 독트린에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푸틴 대통령이 2020년 6월 2일 서명한 ‘핵 억지력 분야 국가정책 원칙’에 따르면 △러시아나 동맹국의 영토를 공격하려는 적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한 확실한 정보가 입수됐을 경우 △적이 러시아나 동맹국 영토에 핵무기나 다른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했을 경우 △적이 러시아의 중요한 국가 및 군사시설에 대해 핵 보복 공격을 불가능하게 했을 경우 △국가 존립 자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재래식 무기를 이용해 공격했을 경우 등에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 특히 페스코프 대변인이 “푸틴 대통령이 전술핵 사용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언급한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핵무기는 전략핵과 전술핵으로 구분된다. 국가 기반 시설 등 광범위한 지역을 파괴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전략핵은 폭발력이 메가톤급이며 ICBM,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장거리 폭격기에 탑재된다. 반면 전술핵은 특정 군사적 표적이나 제한된 목표만 타격하는 소형 핵무기로 폭발력은 보통 0.1kt에서 수십kt이다.

    러시아는 미국에 비해 전술핵 분야에서 상당한 우위를 보여왔다. 미국과학자연맹(FAS)이 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의 핵탄두는 모두 4477개이며, 이 가운데 실전 배치된 전략 핵탄두는 1588개다. 나머지 전략 핵탄두 977개와 전술 핵탄두 1912개를 저장고에 보관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3708개 핵탄두를 보유한 가운데 전략 핵탄두 1644개를 실전 배치하고, 전략 핵탄두 1984개와 전술 핵탄두 130개를 저장고에 비축하고 있다. 또 독일, 이탈리아, 터키, 벨기에, 네덜란드 등 나토 5개 회원국의 6개 기지에 B-61 핵폭탄 등 전술 핵탄두 100개를 실전 배치 중이다. 양국의 핵전력을 비교하면 러시아가 미국보다 전술핵을 월등히 많이 보유하고 있다. 양국의 전술 핵무기는 2010년 체결된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의 적용을 받지 않고 이를 규제하는 국제적인 합의도 없다. 러시아가 지속적으로 전술 핵무기 사용 의도를 보여온 것도 이 때문이다.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하면 러시아는 발트해에서 활동이 봉쇄될 수 있다.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하면 러시아는 발트해에서 활동이 봉쇄될 수 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이 4월 14일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에 가입하면 발트해 연안에서 더는 ‘비핵 지대’를 얘기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점도 마찬가지다. 메드베데프 부의장이 이런 경고를 한 이유는 군사적 중립국인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에 가입하면 발트해에서 모든 해상 활동을 봉쇄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유럽에서 겨울철에도 이용할 수 있는 부동항은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사이에 위치한 역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밖에 없다(지도 참조). 칼리닌그라드에는 러시아 발트함대의 사령부가 있다. 지금까지는 핀란드와 스웨덴이 중립을 유지해 러시아 해군 함정이 자유롭게 통행해왔지만, 양국이 나토에 가입해 다른 회원국과 함께 발트해 봉쇄에 나설 경우 항행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러시아는 이미 2018년부터 칼리닌그라드에 전술핵과 재래식 탄두를 모두 장착할 수 있는 이스칸데르-M 탄도미사일을 실전 배치해왔다. 최대속도 마하 6~10, 사거리 500㎞인 이스칸데르-M 미사일은 독일 베를린 등 유럽 주요 도시들을 타격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공식적으로 이곳에 핵무기를 배치할 경우 유럽 전체가 러시아의 ‘핵 인질’이 될 수도 있다. 러시아는 또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동쪽으로 60㎞ 떨어진 벨고로드 지역에도 이스칸데르-M 미사일을 배치했다.

    美 동맹국 보호 담은 기존 핵 독트린 유지

    미국은 미국엔 전략핵, 유럽엔 전술핵이라는 ‘이중 핵 카드(Double Nuclear cards)’를 꺼내 든 푸틴 대통령의 핵 위협이 ‘공포탄’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스콧 베리어 국방정보국장은 최근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푸틴은 핵무기를 사용하면 나토에 대해 비대칭적 군사 우위 확보가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1945년 이후 유럽에서 일어난 최대 공격인 우크라이나 전쟁이 핵무기 사용으로 확대될 위험이 있다”면서 “어느 누구도 전술핵 사용 위협을 가볍게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 정부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타이거 팀(Tiger Team)’을 가동해 비상계획 마련에 나선 상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적국의 핵 공격에 대한 억지와 보복 목적으로만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이른바 ‘단일 목적(sole purpose)’ 공약을 폐기하고 동맹국 보호를 담은 기존 핵 독트린을 유지하겠다고 결정한 것도 러시아의 핵 위협 때문이다. 서방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계속 수세에 몰리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한 나토의 확대를 막기 위해 핵전쟁을 감행할 수도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푸틴이 전술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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