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32

2022.03.25

우크라이나 참상 생중계하는 위성사진

플래닛랩스, 맥사테크놀로지스, 스페이스X… 현대전은 위성 기술 전쟁

  • 이종림 과학전문기자

    입력2022-03-30 10: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건물과 연료탱크가 화염에 휩싸인 우크라이나 안토노프 공항을 포착한 월드뷰-2 위성 이미지. [맥사테크놀로지스]

    건물과 연료탱크가 화염에 휩싸인 우크라이나 안토노프 공항을 포착한 월드뷰-2 위성 이미지. [맥사테크놀로지스]

    한 달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위성 기술의 활약이 돋보인다. 인공위성 기업들은 지구 관측 위성으로 촬영한 러시아군 관련 고해상도 사진을 연이어 공개하고 있다. 이 이미지가 일반에 공개되고 인터넷에 게시되면서 전쟁에 관한 실시간 미디어가 형성됐다. 정밀해진 위성 이미지는 포격당한 우크라이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여론 압박에도 힘을 더하고 있다. 정보 수집과 통신망 운영 본거지가 우주로 이동함에 따라 첨단 위성기술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전쟁 참상 생생한 고정밀 위성 이미지

    3월 11일 우크라이나를 포격하는 러시아 포병대대. [맥사테크놀로지스]

    3월 11일 우크라이나를 포격하는 러시아 포병대대. [맥사테크놀로지스]

    러시아의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가 무참히 폭격당한 모습이 위성사진으로 생생히 포착됐다. 도심 곳곳은 물론, 국경지대에서도 화염과 연기가 피어오르는 위태로운 상황이다. 과거에는 이러한 장면을 미국 CIA(중앙정보국) 같은 국가정찰국이 비밀리에 촬영했다면 이제는 위성기술을 보유한 민간기업이 고화질 이미지로 촬영하고 있다. 사실상 전황이 생중계되는 셈이다.

    인공위성. [NASA 홈페이지]

    인공위성. [NASA 홈페이지]

    현재 우크라이나 상공에는 약 50개의 인공위성이 작동하고 있다. 인공위성은 통신, 위성항법시스템(GPS), 기상 관측, 방송, 과학 실험 등 사용 목적에 따라 분류되며 국제우주정거장도 일종의 인공위성이다. 높이에 따라 2000㎞ 미만인 저궤도, 2000㎞ 이상부터 3만6000㎞ 미만까지인 중궤도, 3만6000㎞ 이상인 정지궤도로 나뉜다. 정지궤도에서는 지구 자전과 인공위성이 지구를 도는 주기가 같기 때문에 지구에서 위성을 보면 마치 정지해 있는 것 같다. 이 정지궤도위성은 지상과 24시간 통신이 가능하기에 기상 관측, 방송 등 활용도가 높다. 위성 역할이 전쟁에서 부각된 것은 30여 년 전 걸프전이 시초였다. 1991년 걸프전 당시 미군은 GPS 위성의 도움으로 이라크군 핵심 시설을 빠르고 정밀하게 타격함으로써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우크라 위성사진 공유 촉구

    카펠라스페이스가 2월 24일 공개한 벨라루스-우크라이나 국경의 합성 조리개 레이더(SAR) 이미지. [카펠라 스페이스]

    카펠라스페이스가 2월 24일 공개한 벨라루스-우크라이나 국경의 합성 조리개 레이더(SAR) 이미지. [카펠라 스페이스]

    우크라이나의 부총리 겸 디지털혁신부 장관인 미하일로 페도로프는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되자 플래닛랩스(Planet Labs), 맥사테크놀로지스(Maxar Technologies), 에어버스SAS(Airbus SAS), SI이미징서비스(SI Imaging Services·SIIS), 블랙스카이글로벌(BlackSky Global), 아이스아이(Iceeye), 스페이스뷰(SpaceView), 카펠라스페이스(Capella Space) 등 위성기술을 보유한 민간기업들에 위성 이미지 공유를 촉구하는 탄원서를 보냈다. 적시에 자료를 제공받아 전략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실시간으로 전체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군대 이동이나 증강, 난민 흐름 등을 파악하는 주요한 정보원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특히 불빛이 없는 야간에는 위성 이미지를 통해 러시아군의 이동과 전황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페도로프 부총리가 실시간 고해상도 위성 이미지를 요청한 업체 가운데 미국과 유럽 기업 총 5곳이 위성 영상을 공개하고 있다. 카펠라스페이스와 한국 업체 SI이미징서비스 등 일부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요청에 응할 수 없다고 밝혔다. SI이미징서비스는 우주개발기업 쎄트렉아이의 자회사로 아리랑 2호와 3호, 3A호, 5호의 해외 영상 판매권을 갖고 있다. SI이미징서비스 측은 ‘스페이스뉴스’를 통해 “당분간 우크라이나와 공유할 정보가 없다”면서 “위성 자체 소유권은 정부에 있으며 이번 전쟁으로 정부의 사용이 늘어난 데다, 우크라이나 지역 촬영이 불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이미지를 촬영하는 위성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합성 조리개 레이더(Synthetic Aperture Radar·SAR) 위성은 물리적 특성을 감지하기 위해 지구 표면에 마이크로파 레이더 신호를 보낸다. 마치 박쥐가 어둠 속에서 탐색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신호를 보내고 반사돼 돌아오는 신호를 통해 지구 표면의 소규모 움직임을 포착하고 매핑(mapping)하는 기술이다. 광 데이터로는 불가능한 야간은 물론, 구름과 연기도 꿰뚫고 촬영할 수 있어 구름이 자주 끼는 우크라이나 기상 조건에서 특히 요긴하다. 군사적 이동이나 장비 활동, 연료 보급 작업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카펠라스페이스, 아이스아이, 에어버스SAS 등이 SAR 위성을 사용하고 있다.

    맥사테크놀로지스의 월드뷰 위성.
 [맥사테크놀로지스 홈페이지

    맥사테크놀로지스의 월드뷰 위성. [맥사테크놀로지스 홈페이지

    기존 광학 이미징 위성은 가시광선, 근적외선, 단파장 적외선 센서를 사용해 이미지를 생성한다. 플래닛랩스와 맥사테크놀로지스 위성이 여기에 해당한다. 플래닛랩스는 최근 우크라이나에서 수백 개의 위성 피드를 모니터링하는 전문 비공개 플랫폼을 출시했다. 우크라이나 보도에 자주 등장하는 위성사진을 촬영한 맥사테크놀로지스는 위성기술의 시조격인 업체다. 우크라이나 상황을 관측 중인 월드뷰-1, 2, 3 위성은 2007년 이후 발사돼 고도 496~770㎞에서 작동하고 있다. 이 위성들은 지표면에 있는 약 30㎝ 크기의 물체까지 구별할 수 있다. 아래쪽만 가리키는 기존 위성과 달리 월드뷰 시리즈 위성에는 회전 가능한 자이로스코프가 있어 정확한 위치를 포착할 수 있다.

    상업용 위성 표적 될 가능성 높아

    서방 정부는 대부분 자체적으로 정교한 위성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기밀이라 이미지를 공유할 수 없다. 또한 이라크전쟁 이후 대중의 신뢰가 흔들리면서 민간업체를 포함한 제3자의 이미지가 신뢰를 얻고 있다는 분석이다.

    사이버 보안 연구 업체 세크데브그룹(SecDev Group)의 로버트 머가 대표는 영국 BBC를 통해 “21세기 현대전은 공개적으로 사용 가능한 위성 이미지를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라며 “고정밀 위성사진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전 세계 대중에게 투명하게 공개됨으로써 정부에 대한 불신을 없애고, 전쟁 책임을 묻는 국제 여론전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위험 요인도 존재한다. 상업 기업이 분쟁 당사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상업용 위성이 합법적으로 군사 표적이 될 확률도 커진다. 구글은 최근 사용자가 생성한 핀이 미사일 공격과 연결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에서 사용자들이 제출한 모든 위치를 지도에서 제거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허위 정보가 유통될 가능성이 있고, 정보 조작도 잠재적인 위험이 되기도 한다. 딥페이크로 위조하거나 단순한 포토샵 사용만으로도 인공위성이 찍은 이미지를 조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성을 통해 지구 전역에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우주탐사기업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 [스페이스X 홈페이지]

    위성을 통해 지구 전역에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우주탐사기업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 [스페이스X 홈페이지]

    한편 이번 전쟁에서는 위성 이미지뿐 아니라, 위성 통신망도 중요한 수단으로 떠올랐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우크라이나 통신망이 공격받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로부터 위성 인터넷 기술인 스타링크를 지원받았다. 위성 인터넷은 케이블 없이 우주의 진공을 통해 무선 신호를 주고받아 인터넷 데이터를 전송하는 기술이다. 우주탐사기업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는 고도 약 550㎞ 저궤도에 소형 군집 위성을 띄워 광대역 인터넷망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지상 기지국에서 인터넷 전파를 우주로 쏘면 인공위성이 이를 받아 지상에 있는 사용자에게 중개해준다.

    위성 안테나 접시, 스탠드, 전원 공급 장치, 와이파이 라우터로 구성된 스타링크 키트. [스페이스X 홈페이지]

    위성 안테나 접시, 스탠드, 전원 공급 장치, 와이파이 라우터로 구성된 스타링크 키트. [스페이스X 홈페이지]

    스페이스X는 2015년 1월 처음 위성 인터넷 구축 프로젝트를 발표한 이후 올해 1월까지 1만2480개 위성을 발사하고 4900개를 활성화시켰다. 스페이스X는 향후 몇 년간 최대 4만 개 위성을 발사해 안정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스페이스X 측에 따르면 스타링크는 150~500Mbps 다운로드 속도를 지원한다. 한 달 이용료는 99달러(약 12만 원)이며, 서비스 초기에 판매 키트를 구입하는 데 499달러(약 61만7510원)를 지불해야 한다. 키트에는 삼각대, 와이파이(Wi-Fi) 라우터, 작은 위성 안테나 접시가 포함돼 있어 이를 이용해 광대역 신호에 액세스(데이터를 단말기 장치로부터 중앙처리장치로 송수신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할 수 있다. 아직까지는 미국 북부,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일부 국가에서만 한정적으로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일론 머스크 위성 인터넷 ‘스타링크’ 지원

    현재 우크라이나에 스타링크가 지원되고 있으나, 기술적 문제나 사이버 공격 발생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100% 안전하지만은 않다는 뜻이다. 위성 통신 서비스는 단순히 인공위성을 우주로 발사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데이터센터를 연결하기 위한 광섬유 케이블에 상당한 투자를 해야 하고, 수천 개 이상 위성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지상에 탄탄하고 안전한 인프라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위성 통신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스타링크 외에도 아마존, 텔레셋(Telesat), 원웹(OneWeb) 등은 지구 저궤도 위성을 통해 유사한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아마존은 2019년부터 위성 인터넷 서비스 카이퍼(Kuiper)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590~630㎞ 궤도를 도는 3236개 위성군을 구축할 계획이다. 우주 기반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자사의 클라우드 컴퓨팅 비즈니스인 아마존 웹 서비스(AWS)를 성장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영국 원웹은 스타링크와 달리 일반 소비자가 아닌 기업을 대상으로 위성 인터넷 서비스를 구축하고 있다. 1200㎞ 궤도에 648개 위성을 발사해 원격 제조나 백업 등 기업을 위한 네트워크 구축을 제공할 방침이다. 최근 한화시스템이 원웹의 위성·안테나 개발과 제작, 위성 간 통신기술 개발 사업에 참여하기로 했다. 텔레셋은 설립된 지 50년 넘은 캐나다 회사로, 현재 15개 정지궤도위성을 운용하고 있다. 향후 300개에 가까운 위성을 구성해 기업을 대상으로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라이트스피드(Lightspeed)로 불리는 이 서비스는 스페이스X나 아마존에 비해 저렴한 비용이 장점이다.

    마크 부엘 인터넷소사이어티 북미 부사장은 미국 인터넷매체 ‘복스’를 통해 “통신 독점 역사를 고려할 때 더 많은 회사가 위성 인터넷 경쟁에 뛰어드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향후 몇 년 동안 경쟁이 심화되면 서비스 품질은 향상되고 가격은 저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