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19

2021.12.17

中 보복에 대만 위안둥그룹 ‘휘청’

反中 정치인 후원 이유로 표적 단속… ‘政經 분리 원칙’ 폐기 신호탄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1-12-21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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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중 정치인 후원으로 위기를 맞은 쉬쉬둥 대만 위안둥그룹 회장. [CNA]

    반중 정치인 후원으로 위기를 맞은 쉬쉬둥 대만 위안둥그룹 회장. [CNA]

    대만 위안둥그룹(遠東集團) 창업자인 쉬유샹(徐有庠·1911~2000) 전 회장은 자수성가한 중국 출신 기업인이다. 1937년 친구 2명과 함께 중국 상하이에 식품업체를 설립한 쉬 전 회장은 방직공장을 짓는 등 사업을 크게 확장했지만, 공산당이 중국 대륙을 장악하자 1949년 대만으로 이주했다. 당시 쉬 전 회장은 방직공장 장비를 모두 해체해 대만으로 옮겼다. 이후 그는 대만에서 방직업을 계속하며 석유화학·시멘트·유통·금융·건설·운송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재벌 반열에 올랐다. 위안둥그룹은 계열사가 100여 개에 달하고 연매출은 7200억 대만달러(약 30조6720억 원)나 된다.

    쉬 전 회장은 1996년 상하이에 방직공장을 설립하며 중국 대륙에 진출했다. 죽기 전 중국에서 다시 사업을 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현재 쉬 전 회장의 장남 쉬쉬둥(徐旭東) 회장이 이끄는 위안둥그룹은 중국에 28개 계열사를 두고 사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위안둥그룹은 중국에 진출한 대만 기업 가운데 모범 사례라는 말까지 들어왔다.

    닭 죽여 원숭이를 놀라게 하다

    중국 상하이 푸둥 지구에 자리한 위안둥신세기 공장. [CNA]

    중국 상하이 푸둥 지구에 자리한 위안둥신세기 공장. [CNA]

    이런 위안둥그룹이 최근 중국 정부의 ‘철퇴’를 맞아 휘청거리고 있다. 상하이시와 장쑤성 등 중국 5개 지방정부는 위안둥그룹 계열사인 아시아시멘트와 위안둥신세기(방직 등 섬유업) 등의 중국 사업장을 대상으로 환경보호, 토지 사용, 직원 건강, 생산 안전, 소방, 세무, 제품 품질 등 전 분야에 걸쳐 조사를 벌인 끝에 11월 22일 4억7400만 위안(약 881억2600만 원) 벌금과 세금 추징 조치를 내리고 유휴 임대 토지를 회수했다.

    대만 업무를 담당하는 중국 국무원 대만판공실 주펑롄 대변인은 “위안둥그룹에 대한 제재 조치는 대만 독립 강경 분자에게 정치 자금을 제공한 것과 관련 있다”며 ‘표적 단속’임을 분명히 밝혔다. 주 대변인은 “우리는 대만 기업이 대륙에 투자하는 것을 환영하고 기업의 합법적 권익을 보호하겠지만, 대만 독립을 지지하면서 양안(중국과 대만)관계를 파괴하는 이가 대륙에서 돈을 버는 것은 절대로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위안둥그룹이 처벌을 받은 이유는 대만 독립을 지향해온 집권 여당 민주진보당(민진당)을 후원했기 때문이다.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위안둥그룹은 대만 민진당 최대 후원자로,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5800만 대만달러(약 25억 원)를 민진당에 기부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대만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위안둥그룹은 2020년 대만 총선 당시 민진당 후보뿐 아니라 친중 성향 제1야당인 국민당 후보들에게도 후원금을 제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제재 조치를 내린 것은 대만의 대표적인 반중 정치인으로 유명한 쑤전창 행정원장(한국 국무총리 격)이 2018년 지방선거에서 신베이 시장 후보로 출마했을 때와 2016년 총선에서 역시 반중파인 쑤 원장의 딸 쑤차오후이가 후보로 출마했을 때 각각 기부금을 보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쑤 원장을 비롯해 여우시쿤 입법원장, 우자오셰 외교부장 등 3명을 이른바 ‘대만 분리주의자’로 규정해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자국과 홍콩, 마카오 방문 금지 조치를 내린 바 있다. 행정원장은 총통, 부총통에 이어 대만 정부 서열 3위다. 쑤 원장은 그동안 대만 독립을 적극적으로 주장해온 강경파다. 대만 언론은 중국 정부가 위안둥그룹에 제재 조치를 내린 것은 ‘살계하후’(殺鶏嚇猴: 닭을 죽여 원숭이를 놀라게 함)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정부 블랙리스트에 오른 대표적인 반중 정치인 쑤전창 대만 행정원장. [CNA]

    중국 정부 블랙리스트에 오른 대표적인 반중 정치인 쑤전창 대만 행정원장. [CNA]

    대만 기업 중국 투자액 33.4% 감소

    중국 정부의 강경 조치에 놀란 위안둥그룹과 쉬 회장은 대만 독립을 반대하는 입장을 내놓는 등 눈치를 살피고 있다. 쉬 회장은 11월 29일 대만 ‘연합보’에 기고한 글을 통해 “최근 수년간 양안관계 관련 여론조사에서 ‘현상 유지’ 응답이 최다인 것처럼 나도 양안관계가 현상 유지되기를 희망한다”며 “나는 ‘92공식’(1992년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합의)과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하는 등 대만 독립을 반대해왔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대만 기업들은 항상 양안의 평화와 정상적인 교류를 희망해왔다”면서 “대만 경제발전은 중국시장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말 그대로 반성과 사죄의 뜻을 중국 정부에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쉬 회장이 중국 정부에 ‘백기’를 든 것은 위안둥그룹의 중국 계열사들이 자칫하면 망할 수도 있어서다. 위안둥그룹 사태는 중국 정부가 2016년 주한 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위해 부지를 제공한 롯데그룹을 제재한 것과 유사하다. 당시 중국 정부는 자국에서 사업을 해온 롯데그룹 계열사에 각종 벌금 부과 및 규제 조치를 내렸고, 롯데그룹은 사실상 중국에서 철수했다.

    그런데 문제는 중국 정부의 이런 조치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이번 조치는 중국 정부가 그동안 추진해온 개혁·개방 정책에 따라 양안 간 교류에서 유지돼온 ‘정경(政經) 분리 원칙’의 폐기 신호탄이 될 수 있다. 대만 정부가 1989년 대중(對中) 투자를 공식적으로 허용한 이후 양안 기업들의 교류와 협력은 급증했다. 경제개발 초기 외부 자금 및 기술이 절실하던 중국 정부는 대만 기업과 화교 기업인들에게 각종 혜택을 제공하는 등 투자를 적극 환영했다. 심지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999년 대만과 가까운 푸젠성 성장 대리로 재임할 때 대만 기업인들에게 “양안관계에서 어떤 일이 발생해도 푸젠성 정부는 법에 따라 대만 기업의 정당한 이익을 보호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까지 중국 대륙에 진출한 대만 기업은 12만여 개에 달하고, 이 가운데 1199개 기업이 대만 증시에 상장돼 있다. 중국에 진출한 대만 기업인은 100만여 명에 달한다. 하지만 양안관계가 최근 들어 악화하면서 경제협력이 줄어들고 있다. 대만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대만 기업의 중국 투자액은 26억1000만 달러(약 3조1000억 원)로 전년 대비 33.4% 감소했다.

    서방 제재 동참 기업 보복 법 제정

    그렇다면 중국 정부가 대만 기업에 강경한 카드를 꺼내 든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눈엣가시’인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민진당으로 향하는 자금줄을 끊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공산당 서열 4위인 왕양 정치국 상무위원은 12월 7일 ‘양안 기업인 회의’에 보낸 축사에서 “대만 기업인들은 ‘하나의 중국’ 원칙과 ‘92공식’을 지켜야 한다”며 “대만 기업인들은 대만 독립 세력과 단호히 선을 긋고, 조국의 완전한 통일 추진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실현에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왕 상무위원의 이 축사는 대만 기업인들에게 ‘대만 독립 세력과 관계를 끊으라’는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중국 정부는 앞으로 차이 총통과 민진당을 후원하는 대만 기업들에 제재 조치를 가할 것이 분명하다.

    또 다른 이유는 대만 경제력을 약화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연합보’ 등 대만 언론은 중국에서 ‘궁대론’(窮台論: 대만을 궁핍하게 만든다)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공산당 강경파는 대만이 중국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구입해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불만을 표출한다. 왕상수이 베이징 항공항천대 교수는 “대만이 중국에서 이득을 얻으려면 반드시 통일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중국 정부는 2월 대만산 파인애플 등 과일에서 유해 생물이 나왔다며 수입을 중단한 바 있다. 우자쉰 대만 중화경제연구원 대륙연구소 부소장은 “중국 정부가 자국 경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대만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 부문이 농산물”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가 대만 개별 기업들을 겨냥한 것도 ‘궁대론’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제재 조치는 앞으로 다른 나라 기업들에도 확대 적용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6월 미국 등 서방의 제재에 동참한 기업들을 상대로 자국에서 소송을 벌이는 등 보복 조치가 가능한 근거를 담은 ‘반(反)외국 제재법’을 제정한 바 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미국, 유럽연합(EU) 등 각국 기업은 언제든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가운데 대만 정부는 중국 정부의 전략에 맞서 자국 기업들에 대만으로 리쇼어링(reshoring: 제조업의 본국 회귀)할 것을 적극 권유하고 있다. 왕메이화 대만 경제부장은 “대만 기업들이 정치적 위험에 빠져서는 안 된다”며 “대만은 매우 투명한 법치 국가이므로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이 대만으로 돌아와 투자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강조했다. 대만 정부에 따르면 2019년 이후 지금까지 243개 기업이 중국에서 대만으로 ‘유턴’하면서 300억 달러(약 335조5620억 원) 이상 투자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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