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12

2021.10.29

넷플릭스는 ‘적당한’ 성과 낸 직원 ‘두둑한’ 퇴직금 주고 해고

[강지남의 월스트리트 통신] 가망 없다 한 일 도전 성공 거듭… “자유롭게 일하되 책임지라”

  • 뉴욕=강지남 통신원

    jeenam.kang@gmail.com

    입력2021-11-03 10: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스마트TV 리모컨에 넷플릭스 전용 버튼이 따로 있다. [사진 제공 · 넷플릭스]

    스마트TV 리모컨에 넷플릭스 전용 버튼이 따로 있다. [사진 제공 · 넷플릭스]

    10월 26일 낮(현지시각)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앞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초록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80명의 사람이 나타났다. 이들은 이 박물관의 한국관, 파크애비뉴의 뉴욕한국문화원, 맨해튼 32번가 코리안타운을 둘러본 뒤 실내 행사장으로 옮겨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뽑기’ ‘딱지치기’ 등 게임을 벌였다.

    한국관광공사 뉴욕사무소가 개최한 ‘오징어 게임과 함께하는 뉴욕 속 한국여행’ 행사로, 1등 상품으로는 한국행 왕복 항공권이 주어졌다. 뉴욕 주요 미디어가 행사 소식을 앞서 보도했고, 참가 신청자가 일주일 만에 3000명을 넘어설 정도로 이 행사는 사전부터 큰 화제였다. 비가 오다 말다 하는 궂은 날씨에도 행사 내내 참가자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오징어 게임’이 글로벌 히트를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된 것을 뉴욕에서도 십분 체감하는 요즘이다. 필자를 포함한 뉴욕의 한국인들은 “‘오징어 게임’ 정말 재미있다”는 인사와 함께 “진짜로 영희가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냐” 같은 질문을 자주 받는다. ‘뉴욕타임스’는 ‘달고나 캔디 만드는 법’을 소개했다. 브루클린에서는 전봇대에 붙어 있는 오일남 할아버지 사진이 눈에 띄었는데, 모 패션 브랜드가 ‘오징어 게임’ 이미지를 도용한 광고물이었다.

    넷플릭스 측에 따르면 9월 17일 ‘오징어 게임’ 공개 이후 23일간 전 세계 1억3200만 가구가 이 드라마를 최소 2분 이상 시청했다. 이는 역대 최고였던 ‘브리저튼’의 기록(8200만 가구)을 깬 것으로, 이 중 89%가 이 드라마를 75분 이상 봤으며, 또 66%가 9편의 에피소드를 모두 봤다고 한다. 모두 합하면 지구촌 사람들은 ‘오징어 게임’을 시청하는 데 14억 시간을 썼다.

    미국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내부적으로 ‘오징어 게임’의 가치를 약 9억 달러(약 1조 원)로 평가하고 있다. 이 드라마 제작비(2140만 달러)의 42배에 달하는 경제적 가치를 거둔 셈이다. 이러한 초대박에 화답하듯 넷플릭스 주가도 날개를 달았다. 10월 21일 현재 넷플릭스 주가는 664달러로 한 달 만에 12% 상승했다.



    넷플릭스는 190개 이상 국가에서 2억 명 넘는 가입자에게 27개 언어로 서비스하는 세계 최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ver the Top·OTT) 기업이다. 동시에 연간 50억 달러(약 6조 원) 이상을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투자하는 글로벌 엔터테인먼트업계 큰손이기도 하다. 아카데미 시상식과 에미상 등을 수차례 수상하며 뛰어난 작품성 또한 여러 차례 입증했다.

    온라인 DVD 대여업체였던 넷플릭스는 어떻게 글로벌 콘텐츠 제작 및 유통 거인으로 거듭났을까. 넷플릭스의 24년에 걸친 타임라인을 보면 가장 많이 읽히는 키워드는 ‘혁신’이다. 넷플릭스는 세상이 시도하지 않은 것, 남들이 가망 없다고 한 것에 도전을 거듭했고 성공을 반복해왔다.

    10월 26일(현지시각) 한국관광공사 뉴욕사무소가 개최한 ‘오징어 게임과 함께하는 뉴욕 속 한국여행’ 행사 모습. [사진 제공 · 강지남]

    10월 26일(현지시각) 한국관광공사 뉴욕사무소가 개최한 ‘오징어 게임과 함께하는 뉴욕 속 한국여행’ 행사 모습. [사진 제공 · 강지남]

    넷플릭스 전 세계 시청률 1위를 기록한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넷플릭스 화면 캡처]

    넷플릭스 전 세계 시청률 1위를 기록한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넷플릭스 화면 캡처]

    온라인 DVD 대여점에서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으로

    1997년 실리콘밸리에 자리한 퓨어소프트웨어의 최고경영자(CEO) 리드 헤이스팅스는 마케팅 담당 부사장 마크 랜돌프와 카풀을 하는 사이였다. 당시 회사 매각을 추진하던 헤이스팅스는 출퇴근길 차 안에서 랜돌프의 창업 아이디어를 가감 없이 평가해주곤 했다. 야구 배트, 서핑보드, 개 사료, 샴푸 우편 배송 등 랜돌프의 갖가지 아이디어에 “사업성 없다”고 거듭 말하던 그는 온라인 비디오 대여 아이디어에는 흥미를 느꼈다. 집 근처 비디오대여점 블록버스터(Blockbuster)에서 영화를 빌려보곤 하던 헤이스팅스는 40달러 연체료를 물어낸 적이 있었다. 이 일로 그는 “고객을 내가 멍청한 짓을 했구나 후회하게 만드는 방식을 수익 모델로 삼으면서 어떻게 고객의 충성을 기대할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품었다. 랜돌프는 자신의 회고록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2020)에서 당시 헤이스팅스가 회사 매각 후 모교인 스탠퍼드대로 돌아가 더 공부하려 했지만, 마음을 바꿔 자신과 함께 새로운 사업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썼다.

    헤이스팅스와 랜돌프는 처음엔 비디오(VCR)를 우편 배송하려 했다. 하지만 비디오는 무게 때문에 우편 배송료가 비쌌다. 그래서 DVD를 택했다. 1998년 4월 이들은 800개의 DVD 타이틀을 가지고 넷플릭스 홈페이지(netflix.com)를 오픈했다.

    처음엔 DVD 판매에 집중하다 이듬해 구독 서비스를 출시했다. 월간 대여 횟수 제한도, 반납 기한도, 연체료도 없는 파격적인 구독 모델이었다. 원하는 만큼 보다 우편으로 반송하면 고객이 요청한 다음 DVD를 보내줬다. 하지만 당시는 DVD가 대중화되기 전이었다. DVD 플레이어를 보유한 가정이 드물었다. 넷플릭스는 이런 한계를 마케팅으로 뚫고 나갔다. DVD 플레이어나 DVD 플레이가 가능한 노트북컴퓨터 판매 기업과 제휴를 맺고, 넷플릭스 무료 이용권을 제품에 끼워 배포했다.

    2000년 회원의 영화 선택 및 평점 데이터를 바탕으로 앞으로 볼 영화를 추천해주는 개인화된 맞춤 서비스를 선보였다. 2005년에는 프로필 기능을 도입했다. 하나의 회원 계정으로 프로필 여러 개를 만들어 각각 관리할 수 있는 기능이다. 이처럼 넷플릭스는 현재 스트리밍 서비스의 기본 골격을 DVD 대여 시절 구축했다.

    넷플릭스는 서비스 개시 8년 만인 2006년 500만 가입자를 돌파했다. 2007년 10억 번째 DVD를 텍사스에 사는 고객에게 배송했다. 미국 전역에 42개 유통센터를 만들고 익일 배송 시스템도 갖췄다. 사업이 궤도에 오른 이때, 넷플릭스는 변화를 꾀했다. 세계 최초로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다. 다양한 제조업체와 파트너십을 맺어 TV뿐 아니라 X박스, 닌텐도위, 플레이스테이션, 아이폰 등 다양한 기기에서 넷플릭스를 볼 수 있게 했다. 2009년 가입자 1000만 명을 돌파했으며 2010년 캐나다, 2011년 중미 및 남미에 진출했다. TV 리모컨에 넷플릭스 버튼이 생길 정도로 북미 소비자의 일상에 뿌리를 내렸다. 2012년 영국을 시작으로 유럽에 진출했고, 2500만 가입자를 넘어섰다.

    초창기 넷플릭스는 우편으로 영화 DVD를 배송했다. [사진 제공 · 넷플릭스]

    초창기 넷플릭스는 우편으로 영화 DVD를 배송했다. [사진 제공 · 넷플릭스]

    ‘자유와 책임’으로 ‘신속한 혁신’ 거듭

    2013년 넷플릭스는 중대한 변혁 시기를 맞는다. 이해 첫 번째 오리지널 콘텐츠 라인업(‘하우스 오브 카드’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헴록 그로브’ ‘못말리는 패밀리’)을 발표했다. 이 중 ‘하우스 오브 카드’는 에미상에서 3개 상을 수상했다.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로는 최초 수상 기록이다. 2014년 가입자 5000만 명을 돌파했다. 2015년에는 넷플릭스 최초 오리지널 장편 영화 ‘국적 없는 짐승들’, 최초의 비영어 오리지널 시리즈 ‘클럽 디 쿠에르보스’, 최초 아시아 오리지널 시리즈 ‘테라스 하우스’를 선보였다. 2016년 한국을 포함해 130개국에 신규 진출했으며, 다운로드 기능을 도입해 오프라인 상태에서도 넷플릭스 시청이 가능하게 했다.

    이후 승승장구는 많은 이가 기억하는 대로다. 넷플릭스 가입자는 2017년 1억 명, 2020년 2억 명을 넘어섰다. 2018년과 2020년 에미상에 가장 많은 후보를 올린 스튜디오로 꼽혔으며, 2019년에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 상을 수상했다.

    넷플릭스는 전 세계인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소비 습관을 크게 바꿔놓았다. 이제 우리는 주말에 볼 영화를 빌리러 비디오대여점에 가는 대신 넷플릭스 애플리케이션(앱)에 접속하고, 영화관에 가는 대신 넷플릭스에서 단독 개봉하는 신작 영화를 집 안에서 즐긴다. 매주 한두 편씩 보던 드라마를 한꺼번에 몰아보는 빈지 워칭(binge watching)도 넷플릭스가 가장 먼저 시작했다. 또한 전 세계 콘텐츠를 수급하고 다양한 언어로 자막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해외 콘텐츠에 대한 접근 역시 매우 수월해졌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글로벌 한류 트렌드 2021’에 따르면 해외 시청자의 한국 콘텐츠 주 시청 채널은 단연 넷플릭스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소비하는 해외 시청자의 63~64%가 시청 채널로 넷플릭스를 꼽았다.

    코로나19 사태는 넷플릭스가 팽창하는 기회로 작용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OTT 소비가 늘었고, 이에 2019년 말 1억6700만 명이던 넷플릭스 가입자 수가 2020년 말 2억300만 명으로 22% 증가했다. 2020년 매출은 66억4400만 달러(약 7조7700억 원)로 전년 대비 21.5% 성장했다.

    넷플릭스의 끊임없는 혁신과 빠른 성장의 원동력으로는 ‘자유와 책임(freedom & responsibility)’으로 요약되는 넷플릭스의 기업문화가 꼽힌다. 넷플릭스는 ‘적당한 성과를 내는 직원은 두둑한 퇴직금을 주고 내보낸다’는 원칙을 고수할 만큼 성과가 뛰어난 인재만 선호한다. 최고 인재로만 구성된 팀을 만들고, 보고체계나 휴가일수 등 자잘한 통제를 없애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일하게 한다.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회장은 저서 ‘규칙 없음’(2020)에서 “우리는 회사 내 모든 직원이 각자 판단에 따라 의사를 결정할 때 가장 빠르고 가장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책의 공저자 에린 마이어 인시아드(INSEAD: 유럽경영대학원) 교수는 “자유와 책임 문화는 최고 인재를 끌어들여 통제를 훨씬 줄일 수 있게 만든다. 그렇게 되면 웬만한 회사들이 따라오기 힘들 정도의 신속함과 혁신이 가능해진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넷플릭스 특유의 ‘자유와 책임’ 기업문화는 콘텐츠 제작 현장에도 적용돼 많은 히트작을 낳는 데 기여했다. ‘오징어 게임’ 황동혁 감독도 넷플릭스와 작업에 대해 “상업적으로 금기시되던 소재를 더 자유롭게 마음껏 펼쳐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OTT 경쟁 격화… 구독료 단일 매출 구조 위험할 수 있어

    이처럼 지금까지 넷플릭스는 매우 혁신적이었고 성공적이었다. 그러면 앞으로도 넷플릭스는 혁신을 계속 이어가며 탄탄대로를 달릴까. 지난해부터 이 대목과 관련해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넷플릭스 성장 속도가 느려지고 OTT 경쟁이 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넷플릭스 신규 가입자 수가 둔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2분기 가입자는 전년 동기 대비 8.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오징어 게임’ 효과가 일부 반영된 3분기에는 9.4% 증가로 다소 회복됐지만, 여전히 지난해 증가율 22%에는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또 3분기 신규 가입자 440만 명 중 미국과 캐나다 신규 가입자가 7만 명에 불과하다. 안방시장의 성장세에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이는 물론 OTT 경쟁이 격화됐기 때문이다. 월트디즈니의 디즈니플러스 외에도 아마존 프라임비디오, 애플TV플러스, 파라마운트플러스, 훌루(Hulu), 피콕(Peacock), HBO맥스 등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는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이미 미국 가구의 87%가 1개 이상 스트리밍 서비스에 가입한 상황이라 신규 가입자 확보는 앞으로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2019년 11월 서비스를 개시한 디즈니플러스는 북미 및 유럽지역에서 벌써 1억1600만 명 가입자를 확보했다. 최근 시장조사 전문기관 디지털TV리서치(Digital TV Research)는 2026년 디즈니플러스가 전 세계에서 2억8400만 명 가입자를 확보해 가입자 2억7100만인 넷플릭스를 제치고 1위 OTT 지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최근 일본에 진출한 디즈니플러스는 11월 한국, 홍콩, 대만 등에서도 서비스를 시작하며 아시아시장을 적극 공략할 예정이다.

    OTT 경쟁의 격화는 신규 가입자 확보를 어렵게 하는 것 외에도 넷플릭스에 크게 두 가지 부담을 안겨준다. 우선 콘텐츠 확보 비용의 증가다. OTT 사업에 진출한 월트디즈니가 넷플릭스와 콘텐츠 공급 계약을 중단하면서 넷플릭스는 이미 ‘블랙 팬서’ ‘아이언맨’ 같은 마블 콘텐츠를 잃었다. 직접 OTT 사업을 하는 미디어가 넷플릭스에 자사 콘텐츠를 제공할 가능성은 낮다. 넷플릭스는 최근 소니픽처스엔터테인먼트(소니)와 소니 영화의 독점 라이선스를 제공 받는 계약을 체결하면서 계약금을 10억 달러(약 1조1700억 원)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OTT 사업에 직접 나서지 않는 소니를 붙잡으려고 여러 OTT 업체가 경쟁해 계약금이 매우 높아졌다는 후문이다.

    라이선스 콘텐츠를 사오는 대신 ‘오징어 게임’ 같은 오리지널 콘텐츠를 늘리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왜냐하면 시청자들은 마블 시리즈나 ‘프렌즈’ ‘더 오피스’ 같은 스테디셀러를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미국 ‘포브스’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통합 정보분석 기업 닐슨이 520억 분의 스트리밍 콘텐츠 시청 형태를 추적한 결과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시청 시간은 3%에 불과했다. ‘포브스’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는 며칠 또는 몇 주간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뒤 잊힌다”고 지적했다.

    나머지 하나는 넷플릭스가 오로지 가입자들이 내는 구독료에만 매출을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입자가 늘지 않으면 매출 및 수익이 성장하지 않는 구조로, ‘오징어 게임’ 같은 히트작을 쉼 없이 선보이면서 신규 가입자를 계속 확보해나가야 하는 게 넷플릭스의 숙명인 것이다. 반면 미디어, 영화, 테마파크, 소비재 등 다양한 사업 부문을 영위하는 월트디즈니는 OTT 사업 성과가 부진하더라도 다른 부문의 성과로 극복할 수 있다.

    ‘헤이트플릭스’ 이슈부터 해결해야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가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초록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올해 3분기 실적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넷플릭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가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초록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올해 3분기 실적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넷플릭스]

    최근 넷플릭스는 혁신 카드로 오리지널 게임 제작을 꺼내 들었다. 헤이스팅스가 “넷플릭스 경쟁자는 HBO라기보다 포트나이트(Fortnite: 온라인 비디오 슈팅게임)”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소비자의 여가 시간을 놓고 OTT보다 게임이나 유튜브 등과 경쟁해야 한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넷플릭스는 7월 게임 프로듀서이자 페이스북에서 AR/VR 콘텐츠를 담당했던 마이크 버듀를 게임 개발 담당 부사장으로 영입하고, 9월 옥센프리(Oxenfree)라는 내러티브 게임으로 유명한 독립 게임 개발사 나이트스쿨스튜디오(Night School Studio)를 인수했다. ‘오징어 게임’을 비디오 게임으로 제작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검토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게임 역시 구독 서비스에 포함시켜 모든 가입자가 추가 비용 없이 즐길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버듀 부사장은 최근 “넷플릭스 게임에는 광고도, 인앱 구매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앞서 ‘헤이트플릭스(Hateflix)’ 이슈부터 해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미국에서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운동이 벌어졌을 때 넷플릭스는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친애하는 백인 여러분’ ‘미국 수정헌법 제13조’ 등 인종차별 문제를 다룬 오리지널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제작해온 이력으로 많은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최근 트랜스젠더 비하 이슈가 불거지며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발단은 데이브 셔펠의 코미디 쇼 ‘더 클로저’에서 셔펠이 한 트랜스젠더 비하 발언을 삭제하지 않고 방영하기로 결정한 일이었다. 내부 직원들이 이에 반발했고 사측이 한 직원을 내부 데이터 유출을 이유로 해고해 사태가 더 커졌다. 넷플릭스 직원들은 온라인 파업을 벌였으며, 로스앤젤레스 넷플릭스 본사 앞에는 헤이트플릭스 플래카드를 든 시위대가 몰려왔다. 이 이슈가 ‘모두를 위한 콘텐츠(something for everyone)’를 지향하는 넷플릭스의 브랜드 정체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제기된다.

    넘치는 스트리밍 서비스 때문에… “오히려 좋아하는 영화 보기 어렵네”

    넷플릭스가 아직까지 운영 중인 DVD 대여 서비스 홈페이지 메인 화면. [넷플릭스 화면 캡처]

    넷플릭스가 아직까지 운영 중인 DVD 대여 서비스 홈페이지 메인 화면. [넷플릭스 화면 캡처]

    넷플릭스와 얽힌 일화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비디오 체인점 블록버스터(Blockbuster)가 넷플릭스 인수 기회를 놓친 일이다. 2000년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는 IT(정보기술) 버블 붕괴로 자금난을 겪자 존 안티오코 블록버스터 CEO를 찾아가 넷플릭스 인수를 제안하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헤이스팅스는 저서 ‘규칙 없음’에서 “당시 블록버스터는 전 세계에 900개 가까운 비디오대여점을 거느린 홈 엔터테인먼트업계의 독보적 강자였다”면서 “(블록버스터 사무실을 나오며) 처진 어깨가 영 올라가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두 회사의 처지가 역전되는 데는 세월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2004년 9094개 매장과 8만4300명 직원을 거느렸던 블록버스터는 넷플릭스가 촉발한 온라인 및 스트리밍 서비스로 휘청거리다 2010년 파산을 신청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현재 미국 오리건주 벤드(Bend)에 지구상에서 유일한 블록버스터 매장이 하나 남아 있는데, 넷플릭스에서 그 사연을 다룬 다큐멘터리 ‘최후의 블록버스터(The Last Blockbuster)’를 찾아볼 수 있다.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는 물론 드라마,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까지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 시청하는 것이 보편화됐지만, 오히려 영화광들은 불만이 높아졌다. 동네 비디오대여점이 씨가 마른 데다, OTT 간 경쟁 심화로 라이선스 비용이 올라가면서 각 OTT 업체가 제공하는 영화 편수가 줄어드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OTT 전문 매체 ‘스트리밍 옵서버’에 따르면 넷플릭스가 스트리밍하는 영화 편수는 2014년 이래 약 40% 감소해 3800개 미만이라고 한다. 넷플릭스는 보유 편수를 늘리기보다 오리지널 콘텐츠 등 신규 콘텐츠 제작에 집중하고 있다.

    한편 넷플릭스는 현재도 DVD 대여 서비스를 일부 이어가고 있다. 디브이디닷컴(dvd.com)을 통해 DVD 1개씩을 무제한으로 빌려주는 온라인 구독 서비스를 제공한다(월 구독료 9.99달러, 연체료 없음). 주요 고객은 영화 마니아와 인터넷 인프라가 열악한 시골 지역 주민이라고 한다. 하지만 디브이디닷컴 매출이 넷플릭스 전체 매출의 1%에 훨씬 못 미치고, 구독자도 빠르게 감소하는 추세라 언제까지 이 서비스가 유지될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헤이스팅스도 “DVD 배송 서비스를 당장 없앨 계획은 없지만, 언젠가 사라질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dvd.com’s days are surely numbered)”고 말한 바 있다.

    현재 미국에서 1000만 명 넘는 가입자를 보유한 OTT는 최소 10개 이상이다. 그만큼 라이선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내가 구독하는 OTT가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서비스하지 않는’ 일이 일상다반사다. 이 때문에 미국의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선 “좋아하는 영화들을 보려면 서너 개 OTT에 동시 가입해야 하는 거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가성비’ 높은 한국 콘텐츠 최고”… 넷플릭스 한국 투자액 1조3200억 원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으로 제작비의 42배에 달하는 경제적 가치를 거뒀다. [넷플릭스 화면 캡처]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으로 제작비의 42배에 달하는 경제적 가치를 거뒀다. [넷플릭스 화면 캡처]

    2016년 한국에 첫 진출한 넷플릭스는 이듬해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를 독점 공개했다. 이 영화는 넷플릭스가 처음 투자한 한국 영화로, 극장이 아닌 온라인 플랫폼에서 개봉한 영화 중 최초이자 유일하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이후 넷플릭스는 ‘킹덤’ ‘좋아하면 울리는’ ‘승리호’ ‘인간수업’ ‘스위트홈’ 등 많은 한국 작품에 투자해왔다.

    9월 29일 열린 ‘넷플릭스 파트너 데이’에서 넷플릭스는 지난 5년간 한국 콘텐츠시장에 7700억 원을 투자해 5조6000억 원 경제적 파급 효과와 1만6000개 일자리 창출 효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또 넷플릭스는 올 한 해에만 5500억 원을 투자해 13편의 오리지널 한국 콘텐츠를 선보인다. 누적 투자액은 1조3200억 원이다. 이 중 ‘오징어 게임’ ‘D.P.’ ‘킹덤: 아신전’은 이미 공개됐고, 앞으로 우주를 배경으로 한 공유·배두나 주연의 드라마 ‘고요의 바다’, 초자연적 현상을 그린 유아인·박정민 주연의 드라마 ‘지옥’ 등이 공개될 예정이다.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 투자에 많은 관심을 갖는 요인으로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작비와 높은 글로벌 인기가 꼽힌다. 넷플릭스가 투자하는 미국 드라마의 회당 제작비는 100억 원이 넘지만, 한국 드라마의 회당 제작비는 20억~30억 원 수준이다. ‘오징어 게임’도 회당 제작비가 22억 원에 그쳐 할리우드 제작사들을 놀라게 했다. 한편 한국 콘텐츠는 넷플릭스의 글로벌 인기 순위에서 자주 상위권에 오른다. 글로벌 OTT 콘텐츠 순위를 집계하는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10월 24일 기준 넷플릭스 TV 쇼 10위 안에 한국 콘텐츠가 3편이 포함됐다. ‘오징어 게임’(1위)과 ‘마이 네임’(5위), ‘갯마을 차차차’(9위)다. 10월 17일 미국 ‘포브스’는 “‘오징어 게임’ 이후에도 퀼리티 높은 한국 드라마가 전 세계에서 많은 인기를 얻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포털에서 ‘투벤저스’를 검색해 포스트를 팔로잉하시면 다채로운 투자 정보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