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05

2021.09.03

영변 원자로 재가동 소동은 “北, 나 좀 봐달라” 전술

연구로 2기는 폐쇄… ‘건설 중단’ 실험로 재추진 위한 저수지 공사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21-09-0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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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6월 27일 북한은 성 김 당시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이 참관한 가운데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했다. [동아DB]

    2008년 6월 27일 북한은 성 김 당시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이 참관한 가운데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했다. [동아DB]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이어 미국 북한 전문매체 ‘38노스’도 “북한 영변 핵시설 단지에 가동 징후가 있다”고 발표했다. 북한이 조 바이든 미국 정부로부터 뭔가 받아내기 위해 새로운 투쟁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한국 정부의 대응은 어떨까. 8월 30일 외교부 당국자는 “한미 공조로 북한 원자로 재가동 동향을 실시간 파악하고 있다”는 ‘하마 마나 한 소리’를 했다. 북한 핵 문제는 원자력공학과 대북 정보, 핵을 중심으로 한 군사력, 국제정치 등이 뒤엉켜 있다. 어려운 분야가 모여 있으니 오보도 적잖다. 왜곡·과장된 보도와 지식은 북핵을 해결하기 힘든 ‘괴물’로 만들어왔다. 그 탓에 북핵의 ‘핵’ 자만 들어도 “미국이 알아서 하겠지” “북한은 또 왜 저래” 식으로 ‘나’와는 무관하다는 ‘회피적 사고’가 퍼졌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인데, 북핵이 복잡한들 또 얼마나 복잡하겠는가. 30여 년간 두렵게만 봐온 북핵 실체를 최대한 설명해보고자 한다. 알면 해법도 어느 정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재처리 핵연료 생산 ‘5MW로’ 폐쇄

    핵폭탄(원폭)은 우라늄을 고농축하거나 저농축 우라늄을 원자로에서 태운 뒤 재처리해 만든다. 쉽고 경제적인 방안은 후자다. 재처리하려면 핵연료를 태울 원자로가 있어야 한다. 원자로에는 크게 ‘연구로’와 발전(發電)을 위한 ‘상업로’가 있는데, 재처리에 필요한 것은 연구로다. 상업로는 전기 생산에 특화돼 여기에서 나온 사용후 핵연료는 재처리하더라도 질 좋은 플루토늄이 적게 나온다. 상업로를 만들기 전 실증연구용으로 ‘실험로’를 만들기도 한다. 다만 실험로는 원자로 종류로 카운트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연구로는 재처리 연구용으로 가동하면 질 좋은 플루토늄이 다량 함유된 사용후 핵연료를 추출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은 연구로 1기와 상업로 24기를 운영하는 반면, 북한은 실험로 1기만 건설하고 있다. 이 실험로를 건설하기 전 북한은 연구로 2기를 보유한 바 있다. 첫째가 1965년 소련 지원으로 준공한 IRT-2000이다. 오래전 수명을 다해 현재는 폐쇄됐다. IRT-2000은 이승만 정권 시절 미국 원조로 도입한 한국 연구로 ‘트리가마크-2’에 견줄 수 있다. 트리가마크-2도 폐쇄돼 지금은 껍데기가 유물로 전시돼 있다. IRT-2000에 장전한 핵연료는 소련이 제공한 것이라 여기에서 나온 사용후 핵연료는 소련이 되가져갔다. 소련은 이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해 핵무기를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1986년 북한은 자력으로 연구로 건설에 성공했다. 국제사회가 ‘5MW(메가와트)로’라고 부르는 연구로다. 5MW로는 1986년 큰 사고를 낸 소련 체르노빌 원전과 비슷한 흑연감속로로서 플루토늄 추출에 매우 유리하다. 원자로에 들어가는 핵연료는 조금이라도 농축해야 하는데, 흑연감속로는 농축하지 않은 천연우라늄을 연료로 쓴다. 북한은 우라늄 광산이 있으니 천연우라늄을 만들어 5MW로에 태운 것으로 보인다.

    원자로를 가동하면 막대한 열이 나오므로 냉각수로 식혀야 한다. 2차 북핵 위기 때인 2008년 북한은 성 김 당시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이 참관한 가운데 5MW로에 냉각수를 공급하는 냉각탑을 파괴했다. 해당 연구로가 31년 동안 운영된 시점이었다. 조악한 연구로의 수명은 최대 30년쯤으로 본다. 북한은 이 연구로를 폐쇄해야 할 시점에 생색을 내며 ‘냉각탑 파괴쇼’를 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를 최대 242개로 추정한다. 5MW로를 31년간 운영해 장전할 수 있는 핵연료 양, 미국 경험을 토대로 그 정도 사용후 핵연료에서 추출할 수 있는 플루토늄 양을 역산한 결과다.



    8월 25일 북한 영변에 있는 원자로 5MW(메가와트)로의 냉각수 배출이 포착된 위성사진. [동아DB = 38노스]

    8월 25일 북한 영변에 있는 원자로 5MW(메가와트)로의 냉각수 배출이 포착된 위성사진. [동아DB = 38노스]

    파키스탄 기술로 농축 시도

    IAEA 회원국 소련의 지원으로 IRT-2000을 지은 북한도 IAEA에 가입해 핵사찰을 받았다. 사찰은 1986년 5MW로를 준공한 후에도 계속됐다. 그러던 1991년 소련이 붕괴하자 북한은 사찰단을 막고 5MW로에서 나온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고자 노력했다. 이후 1994년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회담에서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해 1차 북핵 위기를 조성했다. 김일성 주석을 상대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던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위협을 감당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그전까지 한국이 먼저 북한과 대화하고 미국은 그 후에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를 포기해버린 것.

    결국 강석주 북한 외무성 부상과 로버트 갈루치 미국 국무부 북핵특사가 만나 북·미 고위급 회담이 열렸다. 북한이 ‘통미봉남(通美封南)’에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북한은 5MW로의 가동·재처리를 중단하고 국제사회로부터 2기의 상업로를 지원받기로 했다. 상업로를 제공받기 전까지 미국이 매년 중유 50만t을 지원한다는 제네바합의가 이뤄졌다. 이러한 토대 위에 김대중 정부 시절 1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려 남북관계에 ‘그린 라이트’가 켜졌다. 그러나 북한은 곧 한미를 강타하는 ‘신의 한 수’를 던졌다.

    북한이 제네바합의로 동결된 것은 재처리일 뿐 우라늄 농축은 가능하다 보고 파키스탄과 접촉한 것이다. 인도는 캐나다가 공급한 원자로에서 나온 사용후 핵연료로 핵무기를 만들었다. 숙적 파키스탄은 그때 원자로가 없었기에 20여 년간 농축 기술을 개발해 1998년 고농축 우라늄탄 시험에 성공했다. 북한은 노동 등 장거리미사일 기술을 제공하고 농축 기술을 도입했다. 2002년 이를 눈치 챈 미국이 따지자 북한은 “제네바합의엔 농축 관련 규제가 없다”고 맞서며 2차 북핵 위기를 만들고 ‘핵 폭주’를 했다.

    2003년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에 이어 2005년 핵무기 보유 선언 후 제네바합의로 봉인한 5MW로에서 사용후 핵연료를 꺼냈다. 그러더니 2005년 6자회담에선 “북한 체제를 인정해주면 모든 핵무기를 없앤다”는 9·19 공동선언을 해 대화로 돌아선 듯한 착각을 심어줬다. 이 선언에서 북한 체제 인정이 먼저인지, 핵무기를 없애는 것이 먼저인지 합의가 없었기에 다툼이 이어졌다. 이듬해 북한은 대포동 미사일 발사와 함께 1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북한 제재를 결의하자, 2008년 북한은 수명이 다한 5MW로 냉각탑을 폭파하며 “제재를 풀고 우리 체제를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강온전술을 병행한 것이다.

    2012년 북한은 개정헌법을 통해 ‘핵보유국’을 자처했다. 4차 실험 때 수소폭탄 실험을 감행하고 2017년 6차 실험으로 핵무기 기술을 사실상 완성했다. 그 후 북한은 상업로 개발로 관심을 돌렸다. 2002년 제네바합의 파기로 중유 50만t 공급이 차단돼 에너지 부족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상업로에는 여러 유형이 있는데 가장 안전하고 경제적인 것은 한국이 다량 보유한 경수로 방식이다. 경수로는 저농축 우라늄을 연료로 쓴다. 북한은 파키스탄으로부터 도입한 농축 기술로 이를 만들어볼 수 있다. 2009년 4월 북한은 “경수로 발전소 건설을 결정하고 첫 공정으로 핵연료를 자체로 생산 보장하기 위한 기술개발을 지체 없이 시작할 것”이라는 외무성 성명을 발표하고 2010년 영변에 언론이 ‘실험용 경수로(Experimental Light Water Reactor·ELWR)’라고 표현한 실험로 건설에 들어갔다.

    소규모 실험로 건설에 10년 투자

    2019년 2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 미 정상회담. [AP=뉴시스]

    2019년 2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 미 정상회담. [AP=뉴시스]

    한국은 해외 기술을 도입할 수 있기에 실험로 없이 바로 경수로를 지었다. 북한은 그럴 수 없으니 실험로부터 짓기로 한 것이다. 북한 실험로는 한국의 가장 작은 경수로의 30분의 1도 안 된다. 한국 연구로와 비슷한 규모(30MW)다. 그럼에도 1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완공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IAEA와 38노스가 “영변에 냉각수를 저장할 저수지 공사가 펼쳐졌다. 그러나 냉각탑을 부순 5MW로나 실험로가 가동되고 있는 증거는 아직 없다”고 발표한 것은 실험로 미완성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그런데 한국 언론은 저수지 공사에만 주목해 “북한이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했다, 조 바이든 정부에 모종의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과장 보도해 긴장을 조성한다. 문재인 정부의 북핵 정책은 한마디로 ‘스냅백(snapback)’ 전략이다. 야구모자, 즉 스냅백 뒷부분에는 머리 크기에 맞춰 모자 너비를 바꿀 수 있는 똑딱이가 있다. 북한이 핵시설을 하나 없애면 제재도 하나 완화하는 것이 국제정치에서 스냅백 방식이다. 그러나 미국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미국은 “북핵 본질은 핵시설과 핵무기다. 둘을 모두 없애야 체제 보장을 해줄 수 있다. 핵시설 몇 개 없애는 스냅백 방식은 불가하다”며 핵 제거와 북한 체제 인정을 교환하자고 하는데, 언론은 이를 ‘빅딜’로 표현하고 있다.

    2018년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북한 체제 보장, 북핵 완전 폐기가 북·미 간 접점임을 재확인했다. 북·미 회담 전 두 차례 정상회담이 이뤄졌다.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특사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고 정의용 당시 국가안보실장도 문 대통령 특사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났다. 이 대목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눈여겨볼 것은 정 실장의 방북이다. 2018년 3월 방북 후 서울로 돌아온 정 실장은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으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고 언론에 발표했다. 김 위원장은 체제 보장 및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돼야 비핵화할 것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이후 정 실장은 바로 미국으로 가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을 만났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정 실장으로 하여금 북한이 말한 것을 백악관에서 직접 밝히게 했다. 정 실장은 “I(=정의용) told President Trump that, in our meeting, North Korean leader Kim Jong Un said he is committed to denuclearization”이라고 발표했다. 청와대는 이를 “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 지도자인 김정은 위원장과 면담에서 김 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음을 언급했다고 했다”고 번역했다. 정 실장은 김 위원장이 내건 비핵화 전제 조건은 빠뜨리고 비핵화 의지만 강조한 격이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전 대통령과 회담에 나선 것은 미국이 스냅백 방식을 택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흉물로 전락한 IRT-2000과 5MW로도 핵시설이니 이것을 폐기해 유엔 안보리와 미국의 제재를 일부라도 풀어보자는 것이다. 그와 결을 같이 해준 이가 문 대통령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그린 라이트가 반짝였으니 2019년 2월 김 위원장은 고무된 듯 전용열차를 타고 베트남 하노이로 갔다. 그런데 회담장에서 미국 측은 이미 폐쇄한 IRT-2000과 5MW로가 아닌, 강선 지역 농축시설과 북한이 공개하지 않는 재처리시설도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은 이를 두고 미국이 ‘영변 플러스알파’를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틈을 주지 않고 하노이를 떠나버렸다. 김 위원장은 조롱당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같은 해 6월 남·북·미 정상이 회동했으나 북한이 원하는 결론은 도출되지 않았다. 이후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책임을 돌려 ‘삶은 소대가리’라는 맹비난을 퍼부었다.

    실험로 만지작거릴 수밖에…

    최근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과 대립을 이어가는 가운데 아프가니스탄 문제 해결에 주력하고 있다. 북한 문제는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모양새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심하게 ‘당한’ 기억이 있다. 과감한 시도로 주목을 끌고 싶으나 중국·아프간 문제로 미국이 예민한 터라 부담스러울 것이다. 여기에 전력 부족도 심각하니 영변 실험로 건설을 재추진할 필요가 있는 것. 그렇기에 저수지 공사를 했는데, IAEA와 39노스는 그 의도를 분석하며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유지를 권유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어쩌지 못하고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으니 북한은 실험로나 만지작거릴 수밖에 없다. 다시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북한 핵무기의 정확한 파악 및 해체가 중요 의제가 될 것이다. 최근 30년간 북한은 심혈을 기울여 핵무기를 개발했지만 실익은 크지 않다. 북한이 요구한 체제 보장은 미국과 평화조약을 체결하지 않고 현 정전체제만 유지해도 사실상 가능하다. 당장 대북제재가 풀려도 서방이 투자하지 않으면 북한 경제는 일어나기 어렵다. 북핵 포기의 대가인 체제 보장 및 제재 해제가 주는 실익도 크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북한과 김 위원장의 은둔은 더 깊어지고 있다. 전형적인 양곤마(兩困馬)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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