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89

2021.05.14

G7 ‘하나의 중국’ 원칙에 시비, 中 무력 카드 꺼내나

사상 처음 세계보건총회 대만 참석 지지 표명… 2027년 대만 침공 가능성 제기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1-05-1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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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들이 5월 5일 회의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 홈페이지]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들이 5월 5일 회의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 홈페이지]

    ‘포르모자(Formosa)’는 포르투갈 선원들이 1544년 대만(臺灣)을 발견했을 때 붙인 명칭이다.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이다. 이후 포르모자는 서양사회에서 대만의 별칭으로 널리 사용됐다. 포르모자의 대만식 표현은 메이리다오(美麗島)다. 메이리다오는 1970년대 대만의 독립과 민주화를 상징하는 국민가요의 제목이기도 하다. 대만 민요를 시인 천슈시(陳秀喜)가 개사한 이 노래는 1971년 대만이 중국에 의해 유엔에서 쫓겨나고 1979년 미국과 외교관계가 단절되자 정권 붕괴를 우려한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정권이 국민들을 탄압하던 시절 널리 불렸다. 당시 일당독재였던 국민당 정권은 중국과 통일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정권 수호를 위해 국민의 자유를 억압했다. 이 때문에 메이리다오는 오랫동안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그러다 2016년 5월 20일 대만 독립을 지향해온 민주진보당(민진당) 출신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의 취임식에서 울려 퍼졌다.

    대만 고립 작전 펼치는 中

    대만 전체 인구는 2380여만 명으로, 2%는 고산족 등 원주민이고 나머지 98%는 중국 본토와 같은 한족(漢族)이다. 한족은 명말청초(明末淸初) 중국 푸젠성에서 이주한 사람들(70%)과 중국 남부에서 건너온 객가족(客家族·15%)을 주축으로 한 ‘본성인(本省人)’ 및 1949년 중국공산당에 패배한 후 섬으로 건너온 국민당 지지 세력인 ‘외성인’(外省人·13%)으로 구성돼 있다. 본성인은 푸젠성 방언인 민남어(閩南語)와 객가족 언어인 객가어(客家語)를, 외성인은 중국 본토 표준어를 사용한다. 본성인은 국민당을 지지하는 외성인에 맞서 1986년 민진당을 창당했다. 2000년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에 이어 2016년 두 번째로 차이 총통이 당선하면서 대만을 통치하고 있는 민진당은 중국과 통일보다 독립을 추진해왔다. 차이 총통의 아버지는 객가족 출신이고, 할머니는 원주민 파이완족 출신이다. 차이 총통의 취임식에서 국민들이 메이리다오를 부른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중국 정부는 차이 총통 취임 이후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력하게 내세우며 채찍(경제 보복)과 당근(차관 등 지원)을 모두 동원해 대만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는 전략을 펼쳐왔다. 이에 따라 대만과 수교국은 22개국에서 15개국으로 줄어들었다. 심지어 중국 정부는 올해 3월 남미에서 유일한 대만 수교국인 파라과이에 코로나19 백신 제공을 조건으로 대만과 단교를 제안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수교국들이 대만과 무역대표부를 설치하는 것도 막았다. 가이아나는 1월 대만과 무역대표부 설치에 합의했지만 중국 정부의 경제협력 중단 경고에 보름 만에 취소했다.

    중국 정부는 또 각종 국제기구에서 대만을 몰아내는 것은 물론, 옵서버 자격까지 박탈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실제로 대만 정부는 2009년부터 2016년까지 옵서버 자격으로 세계보건총회(WHA)에 참석했지만 이후 옵서버 자격을 상실했다. WHA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최고의결기관이다. WHO 194개 회원국은 매년 5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WHA에 대표를 파견해 주요 정책을 논의하고 각종 사업을 심사·승인한다. 올해는 5월 24일부터 6월 1일까지 열린다. 대만 정부는 지난해 WHA에 옵서버 자격을 신청했지만 중국 정부의 반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나의 중국’ 원칙이란 중국 본토는 물론 대만, 홍콩, 마카오 등을 모두 중국 영토로 규정하고 이를 대표하는 합법적 정부가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이라는 의미다. 이에 따라 중국공산당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국시(國是)로 내세우고 내전에서 패배한 국민당이 세운 중화민국(대만)과 통일을 지상과제로 설정해왔다. 중국 정부가 자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들에 대만과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용할 것을 강력히 요구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1972년 2월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의 방문을 계기로 미국 정부와 합의한 ‘상하이 공동성명’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관철시켰다. 상하이 공동성명의 핵심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을 대표하며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점을 미국이 인정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양국은 1979년 공식적으로 수교했다. 이후 역대 미국 정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해왔다.



    바이든 정부 反中정책 계승

    차이잉원 대만 총통(오른쪽)이 4월 15일 조 바이든 미국 정부의 비공식 특사들을 만나고 있다. [CNA]

    차이잉원 대만 총통(오른쪽)이 4월 15일 조 바이든 미국 정부의 비공식 특사들을 만나고 있다. [CNA]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는 자국에 버금가는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승리하고자 대만과 관계를 강화하면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흔들었다. 트럼프 정부의 모든 외교정책에 거부감을 보여온 조 바이든 정부도 유일하게 반중(反中)정책을 계승하면서 ‘하나의 중국’ 원칙에 도전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로는 주요 7개국(G7: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일본)이 5월 5일 외교장관 회의 후 발표한 공동성명에 “대만의 WHO 포럼과 WHA에 대한 ‘의미 있는 참여’를 지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을 들 수 있다. 대만의 WHA 참여에 대한 G7의 지지 표명은 이번이 처음이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국이 대만 문제에 대해 미국과 같은 입장을 보인 것도 사상 처음이다. 게다가 공동성명은 전문에서 당시 회의에 옵서버로 참석한 유럽연합(EU)의 외교 수장격인 조제프 보렐 외교·안보 담당 고위대표를 성명의 주체로 못 박았다. 미국의 의도는 G7과 EU가 반중 연합전선에 합류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공동성명에는 “대만해협 전체의 평화·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면서 “양안(중국과 대만)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또 “우리는 국제적 규범에 기초한 질서와 역내 안정을 해치고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는 독단적 행동에도 강하게 반대한다”며 “역내에서의 군사화와 강압, 위협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강조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5월 7일 이 공동성명을 바탕으로 대만을 WHA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여하게 해달라고 WHO 측에 공식 요청했다. 블링컨 장관은 “WHA에서 (대만의) 2380만 국민의 이익을 배제하는 것은 우리의 공통된 세계 보건 목표를 진전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위태롭게 할 뿐이라는 점을 WHO 지도부와 모든 책임 있는 국가는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정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준수한다면서도 이처럼 친대만 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대만에 대통령과 절친인 크리스 도드 전 상원의원과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 등을 ‘비공식 특사’로 파견했으며, 대만과 해안경비 협력 협정을 체결했다. 또 양국 관리의 교류를 확대하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브라이언 애글러 주프랑스 미국 대사 대리는 4월 30일 우즈중(吴志中) 대만 대표부 대표를 관저로 초청해 점심을 함께했다. 대만 언론은 미국과 단교 이후 미국 대사관저에서 대만 외교관과 만난 것은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바이든 정부는 대만에 각종 무기도 판매하고 있다. 중국의 ‘핵심 이익’이자 ‘아킬레스건’인 ‘하나의 중국’ 원칙에 도발적 시비를 걸고 있는 셈이다. 특히 바이든 정부의 중국 전략은 동맹국들을 거칠게 압박해 중국 배제에 동참하도록 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방식과 달리, 협력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국제질서를 강화하고자 한다. G7 외교장관 회의와 미·일 정상회담에서 대만 문제가 언급된 것도 이런 전략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시진핑 주석, 反中 연합세력에 경고

    중국 해군육전대(해병대)가 대만 땅을 가정해 상륙작전 훈련을 하고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 홈페이지]

    중국 해군육전대(해병대)가 대만 땅을 가정해 상륙작전 훈련을 하고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 홈페이지]

    중국 정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이 도전받자 무력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마샤오강(馬曉光) 중국 국무원 대만판공실 대변인은 “중국의 주권과 영토 완전성은 나뉜 적이 없고, 분할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도 “세계에는 하나의 중국이 있을 뿐이며, 대만 문제는 중·미 관계에서 가장 민감한 사안이므로 만약 미국이 대만 독립세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경우 중·미 관계는 물론,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엄중한 손해를 면치 못할 것임을 밝혀둔다”고 강조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각국이 일방주의나 패권주의를 가져서는 안 되고, 다자주의라는 이름으로 소집단을 규합해 이념 대결을 해서도 안 된다”고 밝혔다. 시 주석이 말한 ‘소집단’은 미국 중심의 반중 연합세력을 의미한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관변 학자와 군사 전문가 사이에서는 ‘시 주석 통치하에서 대만 회복을 이뤄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히 돌고 있다”며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을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중국 인민해방군 창군 100주년을 맞는 2027년이 중국의 대만 공격 시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가주석 임기를 폐지하며 장기집권 체제를 마련한 시 주석 입장에서 ‘대만 통일’은 역대 지도자를 단숨에 뛰어넘는 ‘역사적 업적’이 될 수 있다. 이렇듯 미국과 중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과 대만 문제를 놓고 힘겨루기를 하면서 대만해협의 파고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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