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73

2021.01.15

“미국 설득하는 모습 보여야 이란이 믿음 갖는다”

[허문명의 PICK] 이란 자금 원화계좌 개설 주도한 신재현 전 대사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입력2021-01-14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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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재현 전 에너지자원협력대사. [조영철 기자]

    신재현 전 에너지자원협력대사. [조영철 기자]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돼 억류 중인 한국 화학 운반선 ‘한국케미호’의 석방 협상에 진전이 보이지 않고 있다. 이란 외무장관은 1월 11일 한국 대표단에게 “환경오염 문제 때문”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현재 출금이 동결된 70억 달러(약 7조 원)가량의 자금 문제를 즉각적으로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겉으로는 해양오염을 내세우고 있지만 속으로는 돈 문제가 걸린 상황이다. 어떻게 7조 원이라는 막대한 돈이 한국에 묶인 것일까. 해결책은 없을까. 이란이 언급한 7조 원의 한국 계좌를 개설한 사람이 바로 신재현 서아시아경제포럼 회장이다. 이명박 정부 때 에너지자원협력대사를 지내며 2008년부터 10여 년간 30여 차례 이란을 방문한 국내 최고 이란통(通)이다. 1월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그를 만났다. 

    이란 돈 7조 원은 한국 기업들이 석유를 사오면서 원화로 지불한 것으로 안다. 무역 거래를 원화로 했다는 건 매우 이례적인데 어떤 배경이 있었나. 

    “우선 그 전 상황을 알 필요가 있다. 2008년 4월 에너지자원협력대사로 임명된 뒤 5월부터 이란을 드나들었다. 18~19번쯤 방문했을 무렵인 2010년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가 강화되면서 한국도 제재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청와대 지시를 받고 이런 사정을 설명하고자 테헤란을 찾았다. 이란 고위층들을 만나 ‘이란이나 한국이나 힘이 없는 처지 아닌가. 미국에서 제재하면 감내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만약 한국이 러시아나 중국 같은 큰 나라만 돼도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며 우리 사정을 설명했다.” 

    이란 사람들이 수긍하던가. 

    “외교란 것은 신뢰를 갖고 상대방에게 우리 처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통한다. 이란이 충분히 이해했다. 이란인은 제국(페르시아)을 경험해본 사람들답게 통이 크고 굉장히 현실적이다.”


    제재 뚫고 한-이란 관계 이어준 원화결제

    혁명수비대에 나포되는 한국케미호(위).
이란에서 ‘정부 위의 정부‘로 불리는 막강한 혁명수비대 군인들이 행진하고 있다. 호르무즈해협 순찰 임무를 맡은 혁명수비대 소속 해군이 주로 타국 선박을 나포해왔다.  [IRIB 뉴스 영상 캡처, IRNA]

    혁명수비대에 나포되는 한국케미호(위). 이란에서 ‘정부 위의 정부‘로 불리는 막강한 혁명수비대 군인들이 행진하고 있다. 호르무즈해협 순찰 임무를 맡은 혁명수비대 소속 해군이 주로 타국 선박을 나포해왔다. [IRIB 뉴스 영상 캡처, IRNA]

    그 직후에 원화결제 시스템 구축 합의가 이뤄졌다. 

    “미국 제재로 가장 큰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이란에 물건을 수출하던 한국의 소규모 기업들이었다. 무역 거래가 끊기면 바로 도산할 수도 있는 중소기업이 대충 조사해보니 300곳이 넘었다. 우선 이런 사정을 미국 쪽에 설명하고 우리 입장에 대한 양해를 구했다. 이란과 원화결제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설득했다. 달러 거래는 제제 대상이지만 원화결제는 제제를 피해갈 수 있어 묘안을 짠 것이다. 이명박 정부와 조지 부시 행정부가 상당한 신뢰관계를 갖고 있어서 미국도 이해해줬다. 

    무역 거래를 원화로 하는 시스템의 골자는 이란 중앙은행이 한국 금융기관에 계좌를 연 뒤 양국 간 거래로 발생하는 수입을 원화로 받고 원화로 쓰는 것이다. 이란에서 석유를 사오는 한국 기업들이 석유대금을 원화로 내고, 이란 쪽에서는 한국에서 물건을 사가거나 서비스를 공급받을 때 계좌에 있는 원화를 쓰는 방식이다. 



    2010년 9월 이란 중앙은행 대외담당 부총재가 서울을 방문했다. 낮 12시부터 밤을 꼬박 새워 이튿날 아침 7시까지 협상했다. 속전속결로 합의를 이뤄냈다. 10월 1일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에 계좌가 열리면서 결제 문제 때문에 위기에 몰렸던 국내 기업들은 기사회생했다. 이후 이란은 중국, 대만, 인도 등과도 비슷한 시스템을 구축했는데 협상 시작부터 종결까지 평균 3년씩 걸린 것을 생각하면 정말 파격적인 협상이었다. 

    원화결제 시스템 덕분에 양국은 제재에도 불구하고 석유 수출입을 포함한 각종 무역 거래를 유지할 수 있었다. 삼성과 LG 가전제품이 이란으로 불티나게 수출돼 한 해 6억 달러이던 수출액이 24억 달러(약 2조4000억 원)까지 늘어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란인의 감정을 풀어줘야

    이자가 0.1%로 책정돼 이란으로서는 좀 손해를 볼 수도 있는 협상이 아니었을까. 

    “이슬람 사람들이 이자에 별로 관심이 없기도 했지만, 사실 원화 잔고가 이렇게 쌓이게 될 줄은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한국 은행들에 쌓인 원화는 이란 유학생들의 학자금, 병 치료차 방한하는 이란인들 병원비, 기업 운영비 등 모든 용도에 쓸 수 있게 했다. 나중에 원화가 쌓이자 이란 쪽이 정기예금 금리라도 달라고 했지만 우리가 들어주지 않았다. 이란 쪽 감정이 쌓인 것은 이렇듯 여러 가지 일이 누적된 측면이 있다. 문제는 우리 쪽에서 계속 이란을 무시하다시피하고 정부에서 전혀 챙기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주한 이란대사관이 아직도 은행 계좌를 개설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주재 이란대사관도 국내에 계좌가 없다. 비엔나 협약에는 계좌를 열어주기로 돼 있다. 미국 뉴욕이나 유엔주재 이란 대사관들은 모두 미국 은행 계좌를 갖고 있다. 우리만 해결해주지 않은 것이다. 이란대사를 비롯한 대사관 사람들이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면서 외교부와 기획재정부 등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서로 일을 미루고 힘없는 민원인 취급을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매우 안타까웠다. ‘한국 사람들 해도 해도 너무 한다. 만나면 벽 보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는 하소연을 여러 번 들었다. 일국 대사관 사람들이 남대문시장에서 환전해 현금만 쓰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우리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있겠는가.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동결 자금 문제 등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친서를 두 번이나 보냈다. 우리 정부의 소홀한 태도가 이란인의 분노를 얼마나 샀는지 현장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 어떻든 지금까지 이란으로서는 묶여 있는 돈 해결이 가장 큰 현안이었다. 이란은 해결책 마련을 원했지만 우리 정부 어느 곳에서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이번 유조선 나포는 결국 돈 문제인가. 

    “이란 사람들의 속내를 여러 해에 걸쳐 들어온 나로서는 이번 일이 그냥 일어난 것은 아니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동안 쌓인 감정이 폭발한 것이라고 본다.” 

    선원들 안전이 걱정되는데.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아프면 치료도 잘해줄 것이다.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왜로 잡혀간 인질을 데려왔듯 정부가 현명하고 지혜롭게 해결해주기를 바란다.” 

    이란인의 신뢰를 살 만한 사람들이 나서야 할 것 같다.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팀이 가서 대화해야 길이 열린다. 미국에도 우리 처지를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일본이 이란과 거래를 많이 하는 나라인데 계좌에 이란 돈이 쌓여 있지 않다. 아베 신조가 총리 시절 문제를 해결해놓았기 때문이다. 처음 원화계좌를 개설할 때도 미국과 협의했다. 현재 상황을 잘 설명하면 미국도 이해해주리라 믿는다. 지금 이란인들은 때리는 시어머니(미국)보다 말리는 시누이(한국)가 더 밉다는 감정일 것이다. 이란 현지의 한 인사는 ‘그동안 우리 말에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는데 배를 나포하니 차관이 달려오고 관심을 갖는다’고 말하더라.” 

    그렇더라도 우리 배를 나포한 이란을 두둔할 수는 없다. 지나치게 이란 입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누구 편을 들기보다 이란이 지금 원하는 바가 뭔지 속내를 아는 게 중요하다. 이란도 한꺼번에 돈을 찾는 것은 무리이고 그럴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우리가 미국을 설득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 인간관계에서도 상대방이 무관심하고 노력을 안 할 때 감정이 상한다. 아무리 미국의 제재 국면이라고는 해도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꽤 있다. 지금 이란도 코로나19 사태로 고통받고 있는데 의료물품이나 백신 구입 비용과 관련해서는 성의 있게 나설 수 있는 것 아닌가. 우리 공무원들이 내 일 아니라고 손 놓고 있는 게 문제다.”


    한국인과 한국 문화 좋아하는 이란인들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왼쪽)과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차관이 1월 10일 테헤란 외교부 청사에서 회담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테헤란=AP 뉴시스]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왼쪽)과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차관이 1월 10일 테헤란 외교부 청사에서 회담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테헤란=AP 뉴시스]

    직접 겪어본 이란 사람들은 어떤가. 

    “2008년 5월 처음 테헤란에 갔는데 공기도 안 좋고 자동차들도 너무 낡았더라. 한눈에 보기에도 낙후했지만 급속하게 발전하는 게 보였다. 거듭 말하지만 이란 사람들은 제국을 경험했다. 시야가 넓고, 타인에 관대하며, 인간미도 있다. 테헤란은 영어학원이 서울보다 많다는 소리가 나올 만큼 국제도시다. 이란과 깊은 인연을 맺다 보니 주테헤란 일본대사가 비결이 뭐냐고 나에게 묻더라. 내가 잘해서라기보다 ‘한류’ 덕이 컸다.” 

    이란에서 한류가 인기라고 들었다. 

    “이란은 방송 채널이 적은 데다 술집도 없다. 저녁마다 드라마를 볼 수밖에 없다. 한국 드라마 ‘대장금’ 시청률이 90%였다. 에너지자원대사로 일할 때 이란 대통령 최측근인 비서실장을 서울에 초대했다. ‘대장금’에 나온 배우 한 분을 소개해주니 무척 감격해하더라. 한국 가전제품에 대한 선호도도 높다. 이란 미혼 여성들이 결혼 2~3년 전부터 혼수로 한국 전자제품을 사서 빈방에 쌓아놓는다고 한다. 이란을 마지막으로 간 게 2년 전인데 테헤란은 물론 지방 어느 곳을 가도 ‘코리안’이라고 하면 초등학교 아이들까지 나서서 함께 사진을 찍자고 달려들었다. 이란 사람들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한국을 좋아한다. 그런데 최근 수년 동안 이란인의 자존심을 우리가 많이 건드렸다. 체면을 살려줬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신 전 대사는 “인간관계도 그렇지만 외교관계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와 정성”이라면서 “단기적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란 내부를 깊숙이 아는 사람들이 대통령 특사로 가서 최소 한 달 동안 머물며 혁명수비대 사람들과 대화해야 한다. 사태를 종합적으로 풀어가려는 진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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