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54

2020.08.28

中 홍수 피해로 밀 수확량 17% 감소, 식량 위기에 ‘먹방’ 시청도 금지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0-08-23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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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린성의 옥수수 경작지를 시찰하고 있다. [CGTN]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린성의 옥수수 경작지를 시찰하고 있다. [CGTN]

    헤이룽장(黑龍江)·지린(吉林)·랴오닝(遼寧) 등 동북 3성은 중국의 대표적인 곡창지대다. 이 지역은 중국의 옥수수와 콩(대두)의 주산지이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식량은 중국 전체 생산량의 25%를 차지하며 곡물 수확이 감소하면 중국뿐 아니라 국제 곡물시장 가격에 영향을 미칠 정도다. 중국 국가곡물유류정보센터는 올해와 내년에 2500만t의 옥수수가 부족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는 전년 부족량(1200만t)의 두 배가 넘는 규모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중국은 최근 미국으로부터 옥수수를 대거 사들이고 있다. 미국 농무부는 지난 7월 14일 중국이 옥수수 176만2000t을 구입했다고 발표했다. 거래 금액은 2억3200만 달러에 달한다. 중국 정부가 1991년 1월 9일 옛 소련으로부터 372만t의 옥수수를 구입한 이래 29년 만에 최대 규모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 7월 10일에도 136만5000t(1억8000만 달러)의 옥수수를 사들였다. 중국 정부가 지난 1월 미국 정부와 체결한 1단계 무역합의를 이행하기 위해 미국산 농산물 구매량을 늘리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옥수수 생산량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은 식량자급률이 95%에 달할 정도로 높지만 옥수수와 대두 등 일부 곡물들은 외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80년 만의 대홍수

    중국의 한 식당에서 손님들이 잔반줄이기 표지판 옆에서 식사하고 있다. [CNA]

    중국의 한 식당에서 손님들이 잔반줄이기 표지판 옆에서 식사하고 있다. [CNA]

    중국에선 남부를 중심으로 지난 6월 초부터 두 달째 계속 되고 있는 80년 만의 대홍수로 엄청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 세계 최대 수력발전 댐인 싼샤(三峽)댐의 수위가 크게 올라가면서 ‘붕괴설’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 7월 22~24일 피해 지역과 정반대인 지린성을 시찰했다. 시 주석은 지린성 쓰핑시 리수현에 있는 국가바이완무(百萬畝) 옥수수 표준화 생산기지 시범구와 농기계 회사 등을 방문해 증산을 독려했다. 중국 정부는 2017년 이곳에 100만무((畝:1무는 약 200평) 너비의 국가녹색식품 원료(옥수수) 경작 단지를 만들었다. 이곳에선 219개 마을의 8만3981가구가 옥수수 생산에 참여하고 있다. 당시 중국 관영 언론 매체들은 “시 주석이 이곳을 방문한 것은 백성들을 배불리 잘 먹게 하고 식량 안보를 다져 중국의 밥그릇을 튼튼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특히 시 주석은 지난 8월 11일 “음식 낭비 현상이 가슴 아프다”면서 국가 차원에서 잔반(殘飯·먹고 남은 음식)을 남기지 말 것을 지시했다. 시 주석은 또 “음식 낭비를 단호히 막고, 이를 법으로 제정해 준수하게 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시 주석은 “중국의 식량 생산이 매년 풍족하지만, 식량 안보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면서 “올해 코로나19 영향도 있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시 주석의 음식 낭비를 막으라는 지시에 중국 전역이 관련 캠페인으로 들썩이고 있다. 의회격인 전국인민대회(전인대)는 입법 절차에 착수했다. 전인대 상무위원회 법제위원회는 음식 낭비 관련 입법 업무를 위한 팀을 구성해 구체적인 법안 작성에 들어갔다. 중국 사회과학원의 통계에 따르면 중국인 한 명당 끼니마다 평균 93g의 음식을 남기는 것으로 집계됐고 끼니 대비 잔반 비율은 11.7%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5년 기준으로 중국에서 낭비된 음식물은 1800만t으로 이는 최대 5000만 명이 1년간 먹을 수 있는 양이다.

    광판운동과 N-1 운동

    중국의 한 식당에서 종업원이 손님들에게 잔반 줄이기 운동을 설명하고 있다. [VCG]

    중국의 한 식당에서 종업원이 손님들에게 잔반 줄이기 운동을 설명하고 있다. [VCG]

    시 주석의 지시에 따라 중국 전역에서 식당들은 ‘광판운동’(光盤行動)을 벌이고 있다. ‘광판’은 음식을 담은 접시를 깨끗이 비운다는 뜻이다. 또 식당들은 음식 절약을 취지로 ‘N-1 운동’에 나서고 있다. 식당에 방문한 손님이 3명이면 음식을 2인분만 시키자는 것이다. 광판운동과 N-1 운동 포스터가 식당들에 나붙는가하면, 잔반 무게별로 벌금을 부과하는 식당까지 나타났다. 후난성 창사시의 구내식당은 식판을 반납할 때 무게를 달아 잔반 무게가 125g을 넘으면 1위안(약 171원)의 벌금을 물리는 등 잔반 벌금제를 실시하고 있다. 쓰촨성 시안시에 있는 한 식당은 종업원들을 대상으로 손님의 잔반량에 따른 벌점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 음식점은 종업원들에 대한 월말 평가에 적정량 주문 항목을 포함시켰다. 손님이 식사를 마친 후 식당 관리자가 잔반량을 체크해 남은 음식이 있으면 담당 종업원에게 감점을 준다. 종업원 인사 고과가 손님의 잔반량에 달린 셈이다. 



    그런가하면 중국 방송사들은 시 주석의 지시 탓에 이른바 ‘먹는 방송’(먹방)을 금지하고 있다. 중국 국영방송 CCTV는 음식 낭비 사회 현상을 비판하며 폭식을 주제로 한 일부 먹방 프로그램을 직접 언급하면서 더 이상 이런 방송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CCTV는 “먹방은 한국에서 유래된 외래문화로 과식은 음식을 낭비하는 것이며 좋은 식습관이 아니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게다가 더우인(틱톡의 중국 버전), 콰이서우 등 중국의 유명 동영상 공유 플랫폼에서 ‘먹방’, ‘대위왕’(大胃王·대식가) 등을 검색하면 음식 먹는 장면들은 삭제된 상태이고 대신 “식량을 아끼자, 식량 낭비 금지, 합리적인 식사문화”라는 문구가 뜬다.

    시 주석의 잔반 줄이기 지시는 무엇보다 최근 두 달 가까이 중국 전역을 강타한 폭우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대규모 수해로 곡물과 돼지고기 가격이 폭등해 식탁 물가가 치솟자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려는 의도라고 분석할 수 있다. 실제로 중국 남부지역은 대규모 홍수로 농경지가 대부분 침수돼 곡물 생산이 크게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저우쉐원 중국 국가응급관리부 부부장은 “올해 남부 창장(長江·양쯔강)과 화이허(淮河) 유역의 장마철 강수량이 759.2mm로 장마가 62일간 이어지는 등 1961년 이래 최고를 기록했다”면서 “홍수로 603만2600헥타르 규모의 농지가 피해를 입고 114만800헥타르의 농지에서는 수확물이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또 사료용 옥수수와 돼지고기 값이 급등하고 있다. 옥수수 선물 가격은 t당 2366위안(40만4000원)으로 전년 대비 20% 폭등해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돼지고기의 7월 도매가격도 kg당 48위안(8200원)으로 5월 38.5위안( 6600원)보다 24.6%나 올랐다. 게다가 곡물 가격 상승으로 중국 정부의 곡물 수매량도 줄어들었다. 중국 국가양식·물자비축국에 따르면 중국의 지방정부들은 지난 6~7월에 밀 4100만t을 수매했다. 이는 지난해 동기 대비 17.2% 떨어진 규모다.

    마오쩌둥 전 주석 전략 벤치마킹

    중국 남부지역에서 농부들이 물에 잠긴 경작지를 둘러보고 있다. [CGTN]

    중국 남부지역에서 농부들이 물에 잠긴 경작지를 둘러보고 있다. [CGTN]

    시 주석이 ‘잔반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은 1960년대 말 마오쩌둥 전 주석이 주창했던 ‘전쟁 대비, 기근 대비, 인민을 위한다’(備戰 備荒 爲人民)는 전략을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중국은 가뭄을 비롯한 자연재해와 옛 소련의 군사 위협 등으로 국가적 위기에 직면했었다. 마오는 명나라의 태조 주원장이 전쟁을 대비해 식량을 미리 비축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위기 상황일수록 준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도 마오처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식량 안보를 고려해 잔반 줄이기를 지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코로나19로 인해 각국에서 농산물 수출을 제한하자 중국 정부는 식량 수입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는 미국 정부가 자국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농산물 수출을 제한하거나 금지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고 있는 듯하다. 헤이룽장성의 한 농업투자회사 분석가는 “미국이 중국에 농산물 공급을 중단하면서 식량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며 “식량전쟁은 무역전쟁보다 더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홍콩의 친중국계 신문인 밍바오는 “코로나19 사태, 남부지방의 홍수피해, 메뚜기 떼 창궐 등으로 중국의 식량 안보가 불확실성에 직면했다”면서 “미·중 갈등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식량 안보 문제에 대비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사회과학원(CASS)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곡물 부족은 도시화 가속화 및 농촌인구 고령화에 따른 현상이라며 오는 2025년까지 1억3000만t의 곡물 부족 사태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향후 5년 내 8000만 명의 농촌 주민들이 도시로 이동하고, 농촌에서 주민 4명 중 1명은 60세 이상의 고령자로 분류될 것으로 예상했다. 보고서는 또 쌀, 밀, 옥수수 등 3가지 주요 곡물의 경우 2025년까지 공급이 수요보다 2500만t 부족할 것이라며 이는 수입 물량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중국 역대 황제들은 백성들을 배불리 먹이는 것을 무엇보다 중시했다. ‘붉은 황제’인 시 주석도 14억 명을 먹여 살려야 하는 식량 안보 문제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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