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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中 이례적 인민 불만으로 시진핑 체제에 균열 발생

세계만방에 노출시킨 공산당 체제 결함…1인 책임론 커질수록 균열 심해지고, 방역 성공하면 체제 더 굳어질 수도

  • 임명묵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 저자

中 이례적 인민 불만으로 시진핑 체제에 균열 발생

코로나19 발생지로 알려진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 [위키피디아]

코로나19 발생지로 알려진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 [위키피디아]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발병한 코로나19(소위 ‘우한폐렴’)가 지난 7년 동안 누구도 흔들지 못했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권위를 흔들고 있다. 그 7년 동안 시진핑이 무찔러온 적들을 떠올려보면 바이러스의 힘이 정말 놀랍게 느껴질 정도다. 시진핑은 중국 최고지도자로서 전임자들이 남겨놓은 막강한 정적들, 베이징 권위에 저항하는 지방 당 관료들을 성공적으로 눌러왔다. 그는 거기에 더해 노동자들의 파업, 위구르인을 비롯한 소수민족의 저항, 홍콩 시위대까지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저항도 철저히 분쇄했다. 무엇보다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무역전쟁에서도 자신의 권위를 지켜냈다. 그 많은 사람도 상처 내지 못했던 시진핑의 권위를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부식시키고 있는 것이다.


대륙을 통치하는 공산당의 조직 관리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월 10일 오후 베이징 병원 등을 찾아 코로나19 예방·통제 업무를 지도했다고 중국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신화=뉴시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월 10일 오후 베이징 병원 등을 찾아 코로나19 예방·통제 업무를 지도했다고 중국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신화=뉴시스]

이번 바이러스는 다행히도 치사율이 이전의 유사 질병처럼 강력하지는 않지만, 그것에 대처하는 시진핑 체제, 나아가 중국 공산당 체제의 모순을 온 세계에 노출했다. 정말이지 이 바이러스는 시작부터 확산, 대처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국가의 부정적 이미지에 부합하는 모습을 모두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이러스의 위협을 최초로 알린 의사는 지방 당국에 의해 오히려 처벌받았고, 지방 당국은 사실을 알면서도 과실을 만들고 싶지 않아 은폐를 시도했다. 그 와중에 바이러스는 춘절이라는 민족 대이동과 맞물려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도저히 이를 숨길 수 없을 때가 돼서야 베이징 당국은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대도시 우한과 그 인근 지역을 전면 폐쇄하기에 이르렀다. 이후에도 우왕좌왕하는 당국의 혼란스러운 모습은 물론, 끝없는 언론통제, 패닉 상태에 빠진 시민들로 가득 찬 고속도로 모습, 졸지에 중국 전역에서 ‘기피 대상’이 돼버린 후베이성 사람들의 분노가 이어졌다. 중국 인민 입장에서는 현 체제에 어떤 큰 문제가 있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는 이런 위기가 최고지도자를 향한 직접적인 불만으로 이어지는 것은 꽤 이례적인 일이다. 개혁·개방 이래로 중국 공산당은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한 혼란스러운 사회를 이끌면서 숱한 재난과 위기에 맞닥뜨려왔다. 사실 그때마다 중국 사회가 흔들리고 어떨 때는 국가가 휘청거리기도 했지만, 베이징 당국의 권위가 본질적으로 약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 비법을 알려면 먼저 대륙을 통치하는 중국 공산당의 조직 관리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은 성 하나가 어지간한 국가와 맞먹는 크기를 자랑하기에, 공산당은 성급 지도자들에게 막대한 자율권을 부여하고 승진을 미끼로 그들을 경쟁시키는 식으로 국가를 통치한다. 따라서 개별 성의 각 지도자는 경제성장과 사회안정을 이루고 성이 가진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중앙에 자신의 치적을 보여줄 수 있다. 반면, 위기를 발생시키고 심지어 발생한 위기에 부적절하게 대처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승진에서 손해를 보거나 심하면 처벌까지 받을 수 있는 구조다. 

베이징의 당 중앙은 이러한 구조 하에서라면 권위를 지키는 데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특정 지역이나 부처에 위기가 발생한 경우 먼저 책임자를 문책해 인민의 불만을 무마할 수 있다. 또한 거대한 중국 대륙 전체를 통치하는 중앙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막대한 자원을 동원해 개별 위기에 투입할 수 있다. 그럼 자연스럽게 사태 초반 일개 성이 대처할 때보다 훨씬 빠르게 가시적인 결과가 나타난다. 중국 인민 입장에서는 베이징의 당 중앙이 실생활에서 거리감마저 느껴지는 그 무엇이지만, 적어도 위기로부터 인민을 지켜주는 책임감을 갖춘 존재라는 신뢰를 가질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는 셈이다.


사스 위기를 기회로 만든 후진타오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은 2003년 사스 위기 극복을 통해 권력을 공고히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화=뉴시스]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은 2003년 사스 위기 극복을 통해 권력을 공고히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화=뉴시스]

시진핑의 전임자인 후진타오 시대에 공산당의 이 같은 대처 방법은 빛을 발했다. 2003년부터 2013년 3월까지 10년을 통치한 후진타오의 임기는 재난과 함께해온 10년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많은 사고가 있었다. 임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그는 광둥성 남부에서 발생한 신종 바이러스인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싸우면서 권력을 공고화할 수 있었다. 사스가 맹위를 떨치던 2003년 후진타오는 전임자 장쩌민이 국가주석과 당 총서기는 물려줬지만 ‘진정한’ 최고직인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만큼은 유지하고 있어 반쪽 지도자에 불과했다. 이에 그는 장쩌민과 그의 계파가 구시대적이라고 할 법한 폐쇄적인 대처로 사태를 일파만파 키우고 있다고 비판하며 국무원 위생부 부장과 베이징 시장을 경질했다. 이후 베이징 중앙이 나서 정보를 공개하고 사스와의 전면전을 시작했으며, 이후 중국을 위협하던 사스 위기는 도리어 중국 공산당 시스템의 강력함을 입증하면서 진압됐다. 최근 코로나19와 관련해 사스 사태가 회자되는 이유기도 하다. 



그러나 사스는 시작에 불과했다. 후진타오 시대 중국은 덩샤오핑과 장쩌민 시대에 마련된 기반을 바탕으로 정말 무시무시한 속도로 성장했다. 중국은 해가 바뀔 때마다 급변하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후진타오의 임기 후반인 2010년에는 일본마저 앞지르면서 세계 제2 경제대국이 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창출된 엄청난 부는 자연스레 그 크기에 비례한 부정부패도 낳았다. 톈안먼 사태 이후 정치 참여가 배제된 중국인들이 오직 부만 좇으면서 사회·문화적 아노미가 펼쳐진 것도 중요한 이유였다. 

그 결과 다양한 천재지변이 후진타오 시대에 기승을 부린 부패 문제와 맞물리면서 ‘치명적인 인재(人災)’로 나타났다. 부실공사로 지은 학교가 지진으로 단숨에 매몰된 2008년 쓰촨 대지진의 충격, 만연해 있던 횡령과 부패가 결국 인명 사고로 이어진 2011년 원저우 고속열차 사고 등이 대표적인 예다. 물론 이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당시 후진타오의 러닝메이트였던 원자바오 총리는 현장을 방문해 인민을 위무했으며, 문제를 일으킨 이들을 파면하거나 투옥해 불만을 잠재웠다. 쓰촨 대지진 당시 중국 정부는 각지에서 수많은 인력을 동원해 구호와 복구에 힘쓰며 중국의 건재함을 알렸다. 어찌 됐든 ‘중국식 위기관리’는 그 나름 잘 돌아갔던 셈이다. 

하지만 이런 대처도 중국 공산당 체제가 안고 있는 여러 결함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했다. 개별 사고가 발생하면 기존 방식, 즉 현장을 방문해 유족을 위로하고 책임자를 문책하는 방법으로도 베이징의 권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비슷한 유의 사고가 연이어 일어나자 중국인들이 그것이 결국 ‘그때뿐인’ 일종의 기만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중국인들이 인터넷으로 연결되고, 당이 온전히 통제하지 못하는 공적 소통의 창구가 생기면서 이런 문제는 더욱 커졌다. 이제 중국인들은 단순히 자기 성의 일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전국적인 뉴스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토론할 수 있 된 것이다. 이런 모든 흐름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둔화되던 중국 성장률과 갈수록 늘어가는 지역격차, 빈부격차, 환경문제 등과 맞물려 후진타오 정권, 나아가 공산당 통치 자체에 대한 불만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


덩샤오핑 이래로 가장 강력한 지도자

2008년 쓰촨 대지진 때 중국 정부는 각지에서 수많은 인력을 동원해 구호와 복구에 힘쓰며 중국의 건재함을 알렸다. [신화=뉴시스]

2008년 쓰촨 대지진 때 중국 정부는 각지에서 수많은 인력을 동원해 구호와 복구에 힘쓰며 중국의 건재함을 알렸다. [신화=뉴시스]

시진핑은 당에서 이런 위기의식이 고조돼가는 가운데 부상했다. 더욱 많은 결정권을 아래로 이양하고, 정보를 더욱 개방하며, 역량이 크게 신장한 시민들과 권력을 분점하자는 일각의 주장을 그는 철저히 무시했다. 아마 시진핑은 개혁·개방 이후 중국에서 일어난 숱한 사고와 재난이 당의 통제력이 떨어졌기에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후진타오 시대 중국의 부패 규모는 국가 잠재력을 갉아먹을 정도로 엄청난 것으로 추산됐고, 집단지도 체제하에서 지도적 권위를 확보할 수 없던 후진타오는 정치 인맥의 복잡한 사슬을 끊고 원하는 개혁을 모두 추진하기에는 힘이 너무 약했다. 

따라서 시진핑은 정반대의 정책을 취한다. 실력자들의 복잡한 이면 협상 무대가 돼버린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그는 ‘동업자 가운데 대표’가 아니라 ‘압도적 일인자’로 자리매김했다. 2012년 즈음에 중국이 처한 여러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당내 지도부의 합의가 시진핑의 동료들로 하여금 그들의 자율권을 반납하게 했을 것이다. 그렇게 확보한 막강한 권력을 통해 그는 수많은 결정권을 자신의 손에 집중시켰다. 가장 큰 패배자는 전통적으로 총서기의 러닝메이트이자 동등한 파트너로 여겨지던 국무원 총리, 리커창이다. 집권 전부터 자유주의적 면모를 많이 보여온 리커창은 시진핑 노선과 궁합이 잘 맞았을 것 같지 않다. 이후 시진핑은 자신의 통제권에 저항하는 관료들을 ‘부패와의 전쟁’을 통해 숙청하고, 자신이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측근들을 전면배치했다. 

집권 1기에 이처럼 강화된 시진핑 정권의 기반은 그가 집권 2기에 맞이하게 될 대내외적 도전을 헤쳐 나가는 데 결정적 자산이 됐을 것이다. 당의 연임 제한을 철폐해 다시금 일인 지도자로서 존재감을 과시한 시진핑은 홍콩 시위대부터 미국 대통령에 이르는 수많은 사람이 제기하는 위협에 맞섰다. 비슷한 일이 장쩌민이나 후진타오 시대에 일어났다면 최고지도자가 확보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훨씬 좁아졌을 것이다. 안정된 권력을 바탕으로 시진핑은 각지에서 ‘강한 중국’의 힘을 과시할 수 있었으니, 집중된 권력은 그 값을 톡톡히 해냈다. 

하지만 세상의 많은 일이 그렇듯, 진짜 위기는 언제나 미처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오기 마련이다. 이 경우에는 우한의 한 야생동물시장이 그런 ‘예상치 못한 곳’이었다. 이 시장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는 바이러스가 우한 시민과 나아가 후베이성 사람들에게 퍼지고 있었다. 물론 그 후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다. ‘덩샤오핑 이래로 가장 강력한 지도자’ 시진핑은 얄궂게도 다른 무엇도 아니고 바이러스로 인해 전임자도 마주하지 않았던 위기를 맞게 된 이다. 

이 바이러스에 대한 책임 공방이 시진핑을 향하는 이유는 정말 간단하다. 문제의 원인이 시진핑에 있으리라고 추정하는 게 무척이나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후진타오는 사스를 대처하면서 기존의 폐쇄적인 관행을 손보고 중국의 위기 대응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하지만 시진핑은 후진타오 시대에 이완된 권력을 다시 팽팽하게 조이기 위해 결정권을 모두 자신의 손에 집중시켰다. 바이러스를 은폐하고 초동 대응에 실패해 엄청난 비판을 받고 있는 저우셴왕 우한시장이 자신은 권한이 없으며 상부의 허가를 기다려야 하는 처지라고 고백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디지털 기술로 전 인민을 감시, 통제하는 사회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여전히 사회의 일거수일투족을 지도자 개인이 알고 능동적으로 대처하기에는 중국은 너무나 거대한 나라인 것이다. 결국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큰 사회와는 맞지 않는 지도부의 경직성이 지금의 재난을 낳았다. 이 사실을 모두가 아는 지금 허수아비 총리 리커창을 보내봤자, 과거 원자바오가 갔을 때처럼 인민들에게 위무가 될 리 없다.


시진핑 주석이 마주할 두 개의 길

코로나19가 확산하자 중국 정부는 병원 건설에 돌입했고, 착공한 지 10일 만인 2월 3일 병상 1000석의 임시 격리병동인 훠선산 병원을 개원했다. [신화=뉴시스]

코로나19가 확산하자 중국 정부는 병원 건설에 돌입했고, 착공한 지 10일 만인 2월 3일 병상 1000석의 임시 격리병동인 훠선산 병원을 개원했다. [신화=뉴시스]

그렇다면 ‘바이러스 이후’ 국면에서 시진핑은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될까. 역사를 살펴보면 전염병을 비롯한 여러 재난과 위기가 국가 및 사회의 향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예가 많다. 설령 하늘이 재난을 내렸다 해도, 그것에 영향을 받고 대응해야 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기 때문이다. 당장 후진타오의 권위를 공고히 해준 사스가 그랬고, 옛 소련을 뒤흔든 체르노빌 사고도 대표적인 예다. 이렇게 역사를 뒤흔든 재난은 하나같이 기존 시스템의 모순을 노출해 사람들에게 변화의 동력을 불어넣곤 했다. 따라서 이번 위기 또한 사스 때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통치 양식에 어떠한 변화의 바람을 가져오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이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상존한다. 역사를 바꾸는 위기의 힘이라는 것이 사회가 기진 기존 관성에 힘을 보태주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986년 옛 소련은 체제 전반이 위기를 맞고 있었고, 2003년 중국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리더십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순간에 발생한 원자력발전 사고나 호흡기 질환은 사회가 이미 향하고 있던 곳으로 사태를 크게 진전시키는 것에 불과했을 뿐, 추세를 반전시켰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해석할 수 있다. 예컨대 콜레라 위기는 사회개혁가, 토목기술자, 중앙정부가 힘을 키우던 영국에서는 대대적인 상하수도망 투자와 공중보건 시스템의 확충으로 이어졌지만, 그런 조건을 갖추지 못한 다른 비서구 사회에서는 오직 비극만 만들어냈다. 

그런 이유로 이번 바이러스가 시진핑 정권의 권위에 균열을 내긴 했으나, 권력 향배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시진핑은 어쩌면 두 개의 가능성을 모두 인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1인 지도체제는 그에게 막강한 권한을 줬지만 동시에 모든 책임을 감내하도록 만들었다. 시진핑의 권위가 타격받기를 기다렸던 정적들이 이번 일을 기회로 본격적인 책임을 묻고, 그 결과 일인지도 체제 자체가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이 첫 번째 가능성이다. 바이러스가 초래한 정치 위기가 계속 악화하면 그의 3기 연임 시도 또한 물거품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두 번째 가능성도 있다. 시진핑 시대 중국 사회가 향하고 있던 방향이 철저한 권위주의화이고, 그 관성이 생각 외로 강력하다면 이번 바이러스 위기는 오히려 그 흐름을 더 거세게 만들 수도 있다. 방역에 성공한 시진핑은 자신에게 감히 도전한 정적들을 철저히 숙청하고, 당과 지도부 권위에 대해 불경한 이야기를 일삼는 중국 누리꾼들을 향해 ‘적절한’ 처분을 지시할지도 모른다. 다시 한 번 당-국가 체제의 무소불위함이 입증되고, 시진핑은 또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더욱 엄격한 통제책을 개발하도록 주문할 수도 있다. 

앞으로 바이러스 확산 추세가 꺾이고 위기 진원지인 우한에서 이번 사태가 잦아들더라도 안심하기에는 이를 수 있다. 이제는 진부한 표현이 됐지만, 바이러스 위기는 중국과 세계가 앞으로 마주하게 될 커다란 변화의 흐름에서 그저 ‘시작의 끝’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 흐름이 과연 어느 곳을 향하는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주간동아 2020.02.21 1227호 (p22~25)

임명묵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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