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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회 화정 국가대전략 월례강좌

“핵 가진 북 변화 없는 한,  방어적 공세 취해야”

노재봉 전 국무총리 ‘다시 기로에 선 대한민국’

“핵 가진 북 변화 없는 한,  방어적 공세 취해야”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정부가 반미(反美)적 입장이기에 조율이 쉽지 않고 진통을 겪을 것이다. 하지만 중간선에서 타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노재봉 전 국무총리(사진)는 동아일보사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이사장 남시욱)가 10월 21일 ‘다시 기로에 선 대한민국’을 주제로 개최한 제27회 화정 국가대전략 월례강좌에서 이같이 말했다. 노 전 총리는 “북한 체제가 바뀌지 않는 한, 우리는 방어적인 공세를 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동맹의 힘이 필요하고 국민의 단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강연 주요 내용이다.


민족 갈등이 아니라 두 국가 간 갈등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지난해 10월 문재인 대통령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촛불혁명을 언급하며 프랑스혁명에 비유했다. 그 얘기는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새 질서를 만들겠다는 의미다. 당시 마크롱 대통령은 상당히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문 대통령은 새 질서를 만든다는 생각을 이전에도 피력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이 혁명을 통해 새 질서를 만들려 했다면 지금까지 상황으로 따져볼 경우 너무 서툴렀다. 무엇보다 시간을 놓쳤다. 혁명을 할 때는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내면 안 된다. 거기에 치명적 실수가 있었다. 1년 내 했어야 한다. 그걸 못해 혼란이 생겼다. 촛불혁명이 실패한 것을 북한은 편안히 보고 있다. 만약 제대로 촛불혁명을 했다면 북한에도 엄청난 부담이 됐을 것이다. 

촛불혁명이 성공한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꾸는 일이다. 그런데 계산 착오가 있었다. 시간을 끌다 보니 혁명 대상이 되는 조직과 사회구조, 경제구조에 저항할 수 있는 내성이 생겼다. 따라서 올해 남은 시간에 엄청난 속도를 내기 시작할 것이다. 



1991년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 국제법에 따라 남북한은 한 나라이면서 분단돼 있는 역사가 끝났다. 한반도에 2개의 엄연한 주권국가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민족관계가 아닌 국가 대(對) 국가 관계로 변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민족은 하나’를 들고 나오는 사람들은 남북에 각각 엄연한 국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대한민국과 북한에는 각각 헌법이 있고 국가조직들도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적은 국가 형태를 가진 북한이다. 

6·25전쟁은 내전이 아닌 국제전의 성격을 띠었고, 현재는 정전 상태다. 정전 조약 당사자는 유엔군과 북한, 중국이었다. 대한민국은 정전협정을 조인하지 않았다. 이것은 곧 한국이 북한 및 중국과 여전히 전쟁 상태에 놓여 있다는 의미다. 진보 진영에서는 민족 간 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지금까지 내려왔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함정이다. 역사적 인식이 잘못됐다. 남북 갈등은 민족 갈등이 아니라 두 국가 간 갈등이다. 

문화민족주의자들은 같은 언어 사용과 문화의 공통점을 내세워 하나의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국가는 세상에 없다.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문화가 다른 민족인가. 영국만 봐도 웨일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가 다르다. 주권국가라는 것이 먼저 세워진 뒤에야 영토 내 주민들에게 국민이라는 새 자격을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노태우 정부 말기 남북기본합의서에 처음으로 남북 양쪽의 국호가 나왔다. 그 합의서 전문에 남북관계는 국가 대 국가 관계가 아닌 특수 관계로 돼 있다. 물론 유엔 가입 전이다. 유엔에 가입한 후에도 거의 모든 남북합의서에는 남측과 북측 이렇게 나온다. ‘남측’이라는 국가가 어디 있나. 말이 안 되게, 서로 국가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북한은 지금 두 가지의 핵을 갖고 있다. 하나는 물리적 핵, 하나는 정치적 핵이다. 지금 당면한 현안은 북한의 물리적 핵 문제, 즉 한반도 비핵화다. 그렇지만 우리 정부는 그동안 한 번도 북한 비핵화 소리를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워싱턴 조야에서는 미국은 나가라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다. 

민족통일이라는 단어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민족이라는 말은 독일 낭만주의에서 파생된 독특한 개념이다. 국가를 구성하는 3요소는 영토, 주권, 국민 혹은 인민이다. 독일어 ‘VOLK’는 영어로 해석할 적당한 단어가 없어 ‘민족’이라는 뜻이 됐다. ‘VOLK’는 부족들의 합일체다. 즉 자연 발생적인 사회, 인위적 요소가 들어 있지 않은 인간의 집합체다. 그 집합에는 개체가 없다. 하나가 전체, 전체가 하나다. 이는 북한 헌법 제63조에 그대로 나온다. 여기서 하나는 유기체적 성격을 갖는다. 시민사회는 유기체적 존재가 아니다. 하나는 전체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에는 시민사회가 없다. 

근래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를 새로 규정하고 있다. ‘남과 북은 생명공동체’라는 놀라운 단어도 쓴다. 생명공동체는 큰일 날 소리다. 하나는 전체, 전체는 하나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생명공동체라는 말은 북이 죽으면 남이 죽고, 남이 죽으면 북이 죽어야 한다는 의미다.


방위비 분담 협상, 중간에서 타협할 것

지난주 진보 성향의 대학생들이 주한 미국대사관저에 침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현재보다 5배 늘려달라고 한 것에 대한 항의라고 했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정부가 반미적 입장이라 조율이 쉽지 않고 진통을 겪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 중간선에서 타협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다. 국제정치는 힘의 관계가 지배한다. 힘이 없는 국가는 생존을 위해 힘이 있는 국가와 협력하는 것이 근대 외교사의 상식이다. 대학생들의 대사관저 침입은 제3자 입장에서 보면 무례한 짓으로 여겨질 것이다. 

남북관계가 어수선한 지금 가장 기본은 남한과 북한은 국가 대 국가 관계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남북이 체제가 같으면 얼마든지 합의와 교류가 가능하다. 그렇지만 북한 체제가 바뀌지 않는 한 우리는 방어적 공세를 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동맹의 힘이 필요하고 국민의 단결이 필요하다. 지금은 내부의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 북한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을 목표로 삼아 매진해야 할 때다. 국가가 먼저 선 다음에 국민이 있다는 시민 교육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주간동아 2019.10.25 1211호 (p32~33)

  • 윤융근 화정평화재단  ·  21세기평화연구소 기자 yun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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