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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 세계 질서 재편기, 한국 경제 활로 찾기

국가 간 갈등에서 정상회담 카드, 양국 실리 챙길 때 ‘반짝’ 약발

다른 지역 이웃 국가 간 갈등 해결 방식 봤더니

국가 간 갈등에서 정상회담 카드, 양국 실리 챙길 때 ‘반짝’ 약발

2013년 우크라이나 키예프 시민들이 러시아에 반발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신화  =  뉴시스]

2013년 우크라이나 키예프 시민들이 러시아에 반발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신화  =  뉴시스]

한일 갈등이 심각한 국면에 접어들면서 이웃 국가 간 갈등 해결 모델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새삼스레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한일 갈등은 지금까지 한국과 일본이 안보 및 경제 동맹국인 데다, 수백 년 동안 쌓여온 민족 감정까지 더해져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 해도 상대국의 국내 정치적 요인 때문에 실행에 옮기기 힘들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해법은 없고 봉합만 있을 뿐’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럼에도 최근 국제 갈등에서 힌트를 찾아 패스트트랙 코스를 밟아야 양국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토대로 다른 지역의 이웃 국가 간 갈등 해결 방식에서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지 알아봤다.


WTO 제소가 ‘만능키’ 될 수 없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카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무역분쟁에서 확인했듯이 양국의 갈등 수위를 낮추는 효과가 없다. 4월 WTO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무역분쟁에서 러시아 측 손을 들어줬다. WTO 분쟁처리 소위원회는 2016년 우크라이나산 상품에 대해 러시아가 취한 육로 운송 제한 조치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제21조에 따른 ‘국가안보상 예외’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두 나라의 무역분쟁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크라이나에서 반러 움직임이 확산되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산 제품의 수입을 규제하고 나섰다. 이에 우크라이나에서는 반대로 러시아 제품을 보이콧했지만 소비재 중심의 불매운동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2016년 7월 러시아는 기존 무역제재를 확대, 연장했다. 우크라이나의 주요 수출품인 농산물 등 식품류를 금수조치하는 것은 물론, 자국을 경유하는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로의 육상 운송을 막아섰다. 우크라이나는 대(對)중앙아시아 수출액이 50% 이상 격감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이에 견디다 못 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WTO에 제소한 것. 

하지만 WTO는 우크라이나의 뜻대로 판정하지 않았다. 크림반도를 빼앗긴 데다 동부지역에서 친러 반군과 내전을 벌이던 우크라이나가 이에 승복할 리 없었다. 우크라이나는 내전이 벌어지기 전부터 미국과 서방의 중재를 호소했지만 이 카드도 먹히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는 중재 호소를 듣지 않고 편파 판정을 일삼는 국제사회의 현실을 뼈저리게 실감했을 뿐이다. 

이웃 국가 간 무역분쟁이 각자의 정치적 셈법 속에서 극적으로 해결된 사례도 있다. 러시아와 터키가 그렇다. 시리아 내전이 러시아와 터키의 대리전 양상으로 치닫던 2015년 11월 24일, 시리아와 터키의 국경지대에서 러시아 공군 전폭기가 터키 공군 전투기에 의해 격추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러시아는 즉각 터키에 대한 경제제재에 돌입했다. 터키로의 전세항공기 취항을 금지하고, 터키산 농산품에 무기한 금수조치를 취했으며, 터키 노동자의 러시아 내 취업도 규제했다. 한 해 평균 300만 명 넘는 러시아인이 터키를 방문하고 600억 루블(약 1조1000억 원) 이상 쓴다. 러시아의 제재조치 후 터키의 관광 수입은 20% 가까이 줄었다. 



결국 터키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2016년 8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러시아를 전격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두 달 앞서 러시아 군용기 격추에 대해 사과하는 서한도 보냈다. 두 정상은 양국 무역 정상화는 물론, 시리아 내전에서의 협력을 약속했다. 결과적으로 러시아는 흑해 통로 보스포루스 해협에서의 안전 통행 유지라는 실리를 챙겼고, 에르도안 대통령은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는 돌파구를 마련했다.


‘과거사 청산 카드’는 자칫 장기전에 휘말려

2016년 8월 9일(현지시각)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신화  =  뉴시스]

2016년 8월 9일(현지시각)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신화  =  뉴시스]

강윤희 국민대 유라시아학과 교수는 “군용기 격추라는 우발적 사고로 갈등을 빚은 러시아와 터키 양국이 결국 실익을 찾아 타협한 것”이라며 “특히 터키 등 중동국가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노리는 푸틴 대통령과 쿠데타 진압 후 미국 등 서방의 압박에 맞서 돌파구가 필요하던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러시아와 갈등관계는 해소했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의 친러 행보를 견제하던 미국에 뒷덜미가 잡혀 경제적 이득을 얻었는지는 의문이다. 2016년 7월 터키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의 장기집권에 반발한 군부의 쿠데타가 발생한 뒤 미국인 억류 문제로 터키산 철강과 알루미늄은 관세 폭탄을 맞았으며 터키 리라화 가치는 40%가량 폭락했다. 

과거사 청산의 모범 사례를 보여준 독일은 최근 몇 년 사이 전쟁배상금 문제를 두고 그리스와 갈등하고 있다. 7월 급진좌파연합(시리자당) 소속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당시 그리스 총리는 독일 정부에 나치 독일의 침략에 대한 배상금 협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1년 4월 나치 독일은 같은 추축국 이탈리아를 도와 그리스를 침공했고 1944년까지 점령했다. 

2016년 그리스 의회 특별위원회는 배상금 규모를 3000억 유로(약 400조 원)로 추산했다. 그리스의 배상 요구에는 그 나름의 셈법이 작용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심각한 경제난에 빠진 그리스는 2010~2015년 3차례에 걸쳐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중앙은행,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등 이른바 트로이카로부터 2400억 유로(약 326조 원) 규모의 구제금융을 지원받았다. 트로이카의 핵심 국가는 독일. 독일은 지난해 기준 유럽연합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21%가량인 3조3000억 유로(약 4500조 원)를 차지하는 세계 4위 경제대국이다. 2017년 기준 유럽연합 회원국 중 가장 많은 200억 유로를 분담금으로 내는 유럽연합의 ‘물주’기도 하다. 트로이카의 구제금융 대가로 요구된 강력한 공공 부문 긴축에 대해 그리스 국민의 불만이 컸다. 이에 독일을 상대로 과거사 문제를 거론하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양국의 승강이는 뾰족한 타협점을 찾지 못해 장기화할 전망이다. 독일은 1960년 그리스와 협정으로 건넨 1억1500만 마르크(약 3000억 원)로 전쟁배상이 마무리됐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그리스가 거론하는 과거사 문제에 정면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7월 총선에서 신민당으로 정권이 교체된 그리스 또한 당분간 숨고르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유재원 한국외국어대 그리스학과 명예교수는 “나치 독일의 침략이라는 과거사 문제에 대해 그리스 국민의 반감은 좌우를 막론하고 매우 높다”며 “경제문제 해결을 내세운 중도우파 성향의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도 지난 정권들이 독일에 요구하던 배상 문제를 계속 이슈로 올리며 협상력을 유지할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주간동아 2019.08.09 1201호 (p24~25)

  •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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