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86

2019.04.26

기획특집 | 짝퉁 막는 라벨의 세계

한국 화장품 흉내 낸 짝퉁을 어이할꼬

광저우 화장품 도매시장 곳곳에 엉터리 한글 써놓은 유사품 범람

  • 광저우=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9-04-29 11: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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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광저우의 대표적인 화장품 도매시장인 에바 플라자. 에바 플라자에서는 화장품은 물론, 포장지와 화장품 제조용 재료까지 판매하고 있다.

    중국 광저우의 대표적인 화장품 도매시장인 에바 플라자. 에바 플라자에서는 화장품은 물론, 포장지와 화장품 제조용 재료까지 판매하고 있다.

    중국의 여러 기업이 첨단산업 분야에서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아직 ‘Made in China=저가 또는 짝퉁’이라는 인식이 걷히지 않고 있다. 관세청이 2016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동안 수입통관 단계에서 적발된 지식재산권 침해물품 가운데 중국에서 수입된 것이 91%로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품목별로는 가방류와 신발류, 의류·직물류, 완구·문구류 순으로 많았다. 

    국내로 수입된 ‘짝퉁’ 말고도, 중국 내에서 유통되는 짝퉁의 규모는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중국 주요 도시에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유명 브랜드의 의류와 가방을 본뜬 짝퉁 제품을 판매하는 짝퉁시장이 별도로 형성돼 있다.

    화장품 생산·유통까지 원스톱 서비스

    최근 중국시장에서 짝퉁이 활개 치는 대표적인 분야가 화장품이다. 한류가 중국에서 크게 유행하면서 케이뷰티(K-beauty)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그 덕에 한국 화장품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 관세청의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2018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 화장품은 전 세계 136개국에 62억6019만 달러(약 7조1590억 원)가 수출됐는데, 이 가운데 42.4%인 26억5616만 달러가 중국으로 수출됐다. 뒤이어 홍콩이 13억1500만 달러(점유율 21%)로 2위를 기록했다. 중국과 홍콩으로 수출된 화장품이 전체 수출 물량의 63.4%로 한국 화장품 3개 중 2개가 사실상 중국 소비자에게 팔려나간 셈이다. 중국으로의 화장품 수출 물량은 2017년 대비 지난해 37.5% 증가할 정도로 해마다 큰 폭의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화장품 전체 수출 증가율 26.6%를 웃도는 수치다. 

    중국 소비자 사이에서 한국 화장품 수요가 비약적으로 늘면서 한국산 제품을 표방한 짝퉁 제품도 그것에 비례해 크게 늘고 있다. 짝퉁 한국 화장품 유통 실태를 파악하고자 광저우에 있는 화장품 도매시장 에바 플라자(EVA PLAZA)를 찾았다. 

    에바 플라자는 도소매 상인과 개인 고객에게 화장품을 판매만 하는 곳이 아니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과 제조업자개발생산(ODM)을 통해 화장품 제조와 납품까지 가능한 곳이다. 1층과 2층 화장품 도매 매장을 둘러보니 기초와 색조, 눈 화장류 제품은 물론, 두발과 목욕용 청결 제품까지 모두 구비돼 있었다. 마스크팩 제조를 위한 시트지와 다양한 화장품 용기까지 화장품 생산을 위한 모든 것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김건필 엔비에스티(NBST) 중국법인 대표(상무)는 “에바 플라자는 화장품 도매는 기본이고, 중국시장에 진출하려는 사업가가 돈만 들고 오면 원하는 제품을 바로 만들어 중국시장에 유통까지 대행해주는 원스톱 서비스가 이뤄지는 곳”이라고 말했다.

    한국 제품처럼 보이도록 엉터리 한글을 써놓은 각종 마스크팩 포장지들. [구자홍 기자]

    한국 제품처럼 보이도록 엉터리 한글을 써놓은 각종 마스크팩 포장지들. [구자홍 기자]

    에바 플라자 매장에서 비중이 가장 큰 화장품류는 단역 마스크팩이었다. 마스크팩을 전문적으로 주문·생산하는 한 매장 관계자는 “중국 소비자들이 한국 마스크팩을 무척 좋아한다”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 다른 화장품류에 비해 마스크팩 제조와 유통에는 상대적으로 돈이 적게 들어 한국산을 표방한 마스크팩이 중국 화장품시장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화장품 도매시장에서 ‘짝퉁’의 흔적을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한 매장에는 ‘보습 팩을 한다 저수지’ ‘섹시한 빛 보습 팩 복근 있다’ ‘효소팩 얼굴 근육을 심층’ ‘살아 있는 산소마스크 팩 및’ 등 어법에 전혀 맞지 않는 한글을 쓴 ‘무늬만 한국산’인 마스크팩이 다수 눈에 띄었다. 또 다른 매장에도 ‘건강하고 있다 밝은 빛’이라고 써 있는 마스크팩 포장지가 돋보이게 진열돼 있었다. 하단에는 ‘윤 보습 팩을 물 것 으로 보고 있다’처럼 의미를 전혀 알 수 없는 한글 단어가 나열돼 있었다. 다른 포장지에는 ‘연한 촉촉한 피부다’ ‘촉촉하고 투명하고 있다’ ‘피부에 스며들고 있다’라는 글귀가 써 있었다. 마스크팩 매장 관계자는 “한국 마스크팩이 인기가 많다”며 “원하는 디자인을 고르기만 하면 곧바로 만들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모양, 색깔 등 한국 제품과 비슷

    화장품 도매시장 곳곳에서는 한국 유명 브랜드의 제품과 디자인, 모양, 색깔 등이 비슷한 제품이 버젓이 판매되고 있었다. [구자홍 기자]

    화장품 도매시장 곳곳에서는 한국 유명 브랜드의 제품과 디자인, 모양, 색깔 등이 비슷한 제품이 버젓이 판매되고 있었다. [구자홍 기자]

    [사진 제공 · ㈜NBST]

    [사진 제공 · ㈜NBST]

    목욕용품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한 매장에서는 ‘려안 세가’라는 북한 맞춤법의 한글을 써놓은 제품을 진열, 판매하고 있었다. 중국 화장품 도매시장에서 엉터리 한글이 쓰인 화장품들이 이처럼 버젓이 진열되고 있는 까닭은 뭘까. 김건필 상무는 “한글이 쓰여 있는 것을 보고 한국 제품이겠거니 지레짐작해 구매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 화장품 매장에 북한식으로 표기한 목욕용품이 진열돼 있다. [구자홍 기자]

    한 화장품 매장에 북한식으로 표기한 목욕용품이 진열돼 있다. [구자홍 기자]

    “한글을 읽고 그 뜻까지 파악할 수 있는 중국 소비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고가 제품의 경우 꼼꼼히 따져보고 사지만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마스크팩이나 목욕용품은 큰 고민 없이 구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글 뜻을 잘 이해하는 한국인 눈에는 ‘엉터리’로 보이겠지만 중국 소비자 눈에는 ‘한국산’으로 보일 수 있다는 상술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포장지에 엉터리 한글이 적혀 있고 한국 제품인 척 판매되는 유사품 외에도 한국의 유명 브랜드 제품과 모양과 색깔이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 파는 경우도 적잖았다. 닥터자르트가 만든 ‘바이탈 하이드라 솔루션 마스크팩’의 경우 제품 포장 디자인이 유사해 혼동을 불러일으켰다. ‘Vital Hydra Solution’이 ‘Vitamin B’로 바뀌었을 뿐, 하늘색 원에 물방물이 맺힌 그림과 회사 로고가 새겨진 위치 등에 차이가 없었다. 더욱이 하늘색 원 안에 ‘비타민 마스크’라고 한글로 써놓아 한국 제품처럼 보일 정도였다. 

    네이처리퍼블릭의 인기 상품인 ‘알로에 베라 젤’ 역시 유사한 중국산 제품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특이한 점은 화장품 도매시장 매장이 대부분 한국 제품은 잘 보이지 않는 구석진 곳이나 바닥에 가까운 하단에 진열한 반면, 중국산 유사 제품은 눈에 잘 띄게 진열해놓았다는 점. 이 같은 제품 배치는 마진율과 관련 있다고 한다. 한국산 진품보다 중국에서 제조, 판매되는 유사품의 이익률이 훨씬 더 높은 것이다. 

    한국 화장품을 모방한 중국산 유사품이 난립하면 한국산 제품 판매량이 그만큼 줄어들 우려가 있다. 그렇다고 제품 포장지에 한글을 써놓고 판매하거나, 한국 제품과 비슷한 제품을 출시하는 것 자체를 막을 방법도 마땅치 않다. 중국 업체가 당국에 독자 브랜드를 상표 등록한 경우라면 더더욱 문제 삼기 어렵다. 그렇다면 중국 소비자들이 진짜 한국 제품과 한국 제품을 표방한 중국산을 구분할 수 있도록 도울 방법은 없을까.

    특수라벨을 통한 정품인증 효과

    제품에 QR코드가 담긴 라벨을 부착해 소비자가 직접 정품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QR 인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요즘 중국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 중 하나인 닥터자르트의 경우 특수라벨을 사용해 소비자가 정품 여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육안으로는 검게 보이지만 라벨에 휴대전화 플래시를 비추면 형형색색 빛을 내는 기능과 숨어 있던 문양이 플래시 움직임에 따라 이동하는 기능이 그것이다. 

    김 상무는 “한국산을 표방한 유사 제품이 난립하면 시장 확대의 혜택이 한국 업체에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산 제품의 지식재산권 침해를 막으려면 가품과 유사품 유통을 적발하는 노력 못지않게 한국산 정품 제품임을 중국 소비자들이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특수보안라벨 부착 같은 방법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짝퉁 온상 인쇄거리, 스타트업 요람으로 변신 중

    중국 광저우 하이주구 석계에 위치한 인쇄거리. 중국 당국의 대대적인 짝퉁 단속 이후 인쇄거리가 눈에 띄게 퇴조하고 있다. 사진은 폐업한 한 인쇄소의 모습. [구자홍 기자]

    중국 광저우 하이주구 석계에 위치한 인쇄거리. 중국 당국의 대대적인 짝퉁 단속 이후 인쇄거리가 눈에 띄게 퇴조하고 있다. 사진은 폐업한 한 인쇄소의 모습. [구자홍 기자]

    라벨과 포장지를 진품과 똑같이 만들어 팔면 소비자들이 제품을 구매해 사용하기 전에는 진품과 가품을 구분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중국 광저우가 짝퉁 제품의 온상으로 여겨지게 된 이유는 진품을 모방한 짝퉁 제품은 물론, 짝퉁을 진품처럼 보이게 만드는 포장지와 라벨까지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저우시 남단에 위치한 하이주구 석계에는 포장지와 라벨을 만드는 인쇄소가 밀집한 인쇄거리가 있다. 인쇄거리는 자동차가 지나가면 흙먼지가 일 정도로 도로 곳곳이 낙후돼 있었다. 인쇄소 건물에 진열된 다양한 라벨만이 꽤나 오래된 인쇄거리였음을 짐작게 했다. 이곳에서는 짝퉁 라벨과 포장지가 무분별하게 인쇄돼 한동안 ‘짝퉁의 온상’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2015년 중국 정부가 ‘짝퉁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정품 보호에 적극 나선 이후 거리 풍경이 크게 달라졌다. 중국 정부는 특허 침해 및 모조품 처벌 방안을 발표하면서 명칭 포장 장식에서 특정 브랜드를 연상케 하는 모조품이나 유사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을 엄격히 처벌토록 했는데, 이때 짝퉁 제품을 만든 기업은 물론, 진품처럼 보이게 포장지와 라벨을 만든 인쇄업자도 단속 대상에 넣었기 때문. 

    포장지와 라벨 인쇄업체가 짝퉁의 온상이 돼온 프로세스는 이렇다. 중국 같은 대형시장에 유통시키려면 도매상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이때 도매상과 결탁한 인쇄업자가 진품과 유사한 라벨을 공급해주면 도매상이 짝퉁 제품에 그것을 붙여 진품인 양 유통시켜 폭리를 취하는 것이다. 따라서 짝퉁 제품을 근절하려면 짝퉁 제품에 붙이는 라벨의 인쇄와 유통을 막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짝퉁과의 전쟁에 나선 중국 당국이 짝퉁 제품 생산업체는 물론, 짝퉁 제품에 부착된 라벨과 포장지를 인쇄해준 업자까지 처벌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후 중국 당국이 제품 유통 경로를 추적해 짝퉁 라벨과 포장지를 만든 인쇄소를 처벌하자 하나둘 문을 닫으면서 인쇄거리가 쇠락하고 있다. 

    인쇄거리에서 지업사를 운영하는 차이영빈 대표는 “과거에는 유명 상표를 모방한 라벨이나 포장지를 인쇄해주는 업체도 있었지만, 지금은 불법 인쇄를 해주는 곳은 없다”며 “작은 이익을 보려다 더 큰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진품을 구별해내려는 스마트한 소비자가 늘면서 짝퉁이 설 자리는 과거에 비해 크게 줄고 있다. 최종 소비자가 구매 직전 진품과 가품을 구분할 수 있는 특수보안라벨이 추가된 덕이다. 더욱이 NBST는 온오프라인에서 정품을 인증할 수 있는 특수보안라벨을 공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중국 로펌 등과 손잡고 짝퉁 단속과 관련자 처벌에도 적극 나서 고객사의 지식재산권 보호에 적극 앞장서고 있다.(자세한 내용은 22쪽 참조) 

    낡고 오래된 인쇄거리가 도시재생을 거쳐 스타트업 요람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낡고 오래된 인쇄거리가 도시재생을 거쳐 스타트업 요람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낡고 노후한 인쇄거리는 도시재생을 통해 변신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인쇄거리 한쪽은 이미 리모델링을 끝내고 참신한 디자인으로 세계시장에 진출하려는 ‘완구 스타트업’이 들어서 있었다. 짝퉁 천국의 오명을 벗고 스타트업의 요람으로 거듭나려는 중국의 노력은 광저우 인쇄거리의 변신에서부터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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