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66

2020.11.27

배달원은 고용보험 싫다는데 정부가 몰아붙여

라이더들은 싫다는 데 정부는 고용보험 의무화 추진, 정규직 실업급여 재원 악화 우려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20-11-23 15: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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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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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에서 강하게 밀어붙이는 사안이라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대통령과 고용노동부 장관의 의지가 워낙 강해서 특수고용직 고용보험은 정부안대로 추진될 테니, 협조하라는 식이에요.” 

    최근 한 정부부처 주체로 열린 간담회에 참석한 배달대행업체 관계자 A씨의 얘기다. 간담회는 특수고용노동자(특고) 및 플랫폼 노동자의 고용보험 의무 가입 추진을 위해 관련 종사자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됐다. 

    A씨에 따르면 최근 들어 이런 간담회가 부쩍 많아졌다고 한다. 그는 “일주일에 2~3번은 간담회에 불려 가는데, 이름만 다르지 나오는 얘기는 다 비슷비슷하다”며 “업계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연 간담회지만, 정작 업계의 요구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또 다른 배달업 종사자 B씨도 “방향을 미리 다 정해놓고 밀어붙이기 식으로 한다는 인상이 강하게 든다”며 “고용보험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직업군마다 상황이 다른데도 기존의 고용보험 틀에 강제로 끼워 맞추려하고 있다”고 쓴 소리를 했다.

    “고용보험 혜택보다 부담 커”

    정부가 내년부터 음식 배달원(라이더), 택배 기사, 골프장 캐디 등 특수고용노동자(특고)를 고용보험 의무 가입대상에 포함하기로 하면서 관련 업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의견청취’ 과정을 거치고 있다. 하지만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업계 상황과 직업적 특성에 따라 정교하게 다뤄져야 하는데도 정부의 ‘답정너’ 행태에 특고 관련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는 것. 



    현재 고용전문가들은 특고 고용보험 의무 가입을 두고 ‘특고를 임금근로자와 동일한 기준으로 적용하는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입직과 퇴직이 힘든 임금근로자와 달리 특고는 근로자인 동시에 자영업의 성격을 띠는 만큼 일자리 구하기가 비교적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임금근로자와 동일하게 실업급여 등의 혜택이 주어지는 건 형평성 원리에 어긋난다는 목소리가 높다. 더욱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고용보험기금이 바닥난 상황에서 특고직의 실업급여 비용이 가중되면, 그 부담은 결국 임금근로자가 지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아이러니한 점은 특수고용노동자들 역시 고용보험 의무 가입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고용보험을 불필요한 족쇄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특히 배달업 종사자(라이더)들을 중심으로 고용보험 의무 가입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고용보험 가입을 ‘의무’가 아닌 ‘임의’로 바꾸길 요구한다. 고용보험 가입으로 인한 혜택보다 부담이 오히려 더 크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정부가 제시하는 특고 고용보험 보험료는 임금의 1.6%를 라이더와 사업주(배달대행업체)가 반반씩 분담한다. 여러 개의 플랫폼을 동시에 이용하는 라이더라면 각 사업장 별로 모두 고용보험에 가입해 보험료를 내야 한다. 예를 들어 A업체에서 200만원을 벌고, B업체에서 100만원을 벌었다면 라이더는 300만 원에 대한 고용보험료(0.8%)를 내고, 각 지사들도 각각 200만원, 100만원에 대한 보험료(0.8%)를 부담해야 한다. 

    고용보험의 주 혜택인 실업급여는 2년 이상 근무자 중 1년 이상 고용보험에 가입한 자, 2주간 실직 상태 혹은 한 달 간 근무일수가 10일 미만일 경우에 받을 수 있다. 정부안에 따르면 특고직은 비자발적 실업이 아니더라도, 소득 감소로 인해 자발적으로 이직하는 경우에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여러 플랫폼을 동시에 이용하는 라이더의 경우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모든 업체의 일을 다 그만둬야 하는데 대부분의 라이더들은 “몸이 아프거나 힘들 때 일을 줄일 수는 있겠지만, 얼마 안 되는 실업급여를 받자고 라이더 일 자체를 다 그만둔다는 건 현실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라이더가 비자발적으로 해고당할 가능성도 미미하다. 최근 몇 년 사이 라이더 수요가 급증하면서 배달전문 업체들 간의 라이더 확보 쟁탈전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고용보험에 회의적인 투잡 라이더들

    본업(정규직)이 따로 있는 상태에서 라이더로 ‘투잡’을 뛰는 경우라면 더더욱 고용보험 가입에 회의적이다. 경기도에서 버스운전사로 활동하는 최모 씨는 “주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초과 수당을 받지 못하게 돼 주말 저녁에만 2~3 시간 정도 배달을 하고 있는데, 나중에 배달일을 그만두더라도 버스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한 라이더 고용보험으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며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배달일을 하는 사람들까지 고용보험 대상자로 집어넣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최씨처럼 투잡하는 라이더들이 적지 않다. 배달대행업체 관계자는 “저녁 혹은 주말에만 라이더로 뛰는 인원이 30% 정도 된다”며 “이들이 없으면 주말 배달을 소화하기 힘들 지경”이라고 말했다. 

    배달업을 본업으로 하는 경우도 고용보험 가입을 꺼리긴 마찬가지다. 특히 이들은 고용보험 가입으로 인해 소득이 그대로 드러나는 걸 부담스러워한다. 한 배달대행업체 관계자는 “라이더들 중에는 기초생활수급자나 신용불량자 등 생계가 불안정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소득이 그대로 드러날 경우 기존에 받던 혜택을 못 받게 되는 건 아닌지, 불안해하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만약 이들이 고용보험 가입을 꺼려 배달업에서 이탈해 버리면 업계는 라이더 수급에 있어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업체들이 부담해야할 보험료도 상당하다. 현재 배달업 종사자는 전국적으로 10만 여명으로 추산된다. 한 배달대행업체 관계자는 “배민라이더스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회사가 적자에 시달리는 상태에서 라이더 보험료까지 부담할 여력이 될지 모르겠다”며 “보험료 충당을 위해 보험료를 올리면 결국 그 비용은 소비자 주머니에서 나오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의무 아닌 선택으로 방향 바꿔야”

    11월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이재갑 고용노동부장관. [동아DB]

    11월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이재갑 고용노동부장관. [동아DB]

    정부안대로 일반 근로자와 특고 종사자의 고용보험 재정을 통합해서 운영할 경우, 실업급여 재정수지가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최근 발간한 ‘2021년 고용부 예산안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빠르면 2년 뒤, 늦어도 4년 뒤부터는 이들이 연간 낸 보험료보다 실업급여 등으로 지출하는 금액이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일반 근로자들과 기업들이 낸 보험료로 특고의 고용보험 적자를 메우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국회 보고서에서는 두 가지의 시나리오가 존재한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기존 산재보험에 가입한 9개 업종 특고 노동자들이 평균 이직한 비율, 보험료를 일정 기간 내서 수급 자격을 갖춘 비율 등을 통해 추산했을 때다. 특고 고용보험 제도의 수입(보험료)에서 지출(실업급여·출산전후급여)을 뺀 금액이 2021년 1897억 원, 2022년 2146억 원으로 2년간 늘어나지만 2023년 470억 원, 2024년 162억 원으로 크게 줄고, 2025년에는 –176억 원이 된다. 처음에는 보험료가 쌓이지만 갈수록 보험료보다 실업급여가 더 많아진다는 뜻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특고 노동자가 일반 근로자들만큼 실업급여를 신청해 받는다고 가정하고 추산한 경우다. 이때는 수입보다 지출이 더 많아지는 시점이 2023년으로 당겨진다. 이에 대해 고용부는 “5년간 전체로 보면 적자가 발생하지 않아 다행”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경영계는 이 추세대로 실업급여 지출이 늘어나면 적자가 심해질 수밖에 없고, 결국 일반 근로자들의 보험 주머니에서 특고의 적자를 메우는 상황이 벌어질 것으로 점쳐진다. 

    특히 일반 근로자는 회사에서 해고를 당했을 때만 실업급여를 주지만, 특고는 소득이 줄었을 때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라이더의 경우 비자발적 이직(해고) 또는 이직 전 3개월 임금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이상 감소할 경우 실업급여가 지급된다. “라이더들이 일부러 콜을 잡지 않아 소득의 20% 이상을 줄일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고용부 관계자는 “고의성 여부는 현실적으로 확인이 어려운 부분이고, 실직 이유를 일일이 확인하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이처럼 특고직 고용보험 일괄 적용은 경영계나 노동자나 모두에게 ‘양날의 칼’로 비춰진다. 따라서 고용관련 전문가들은 특고직의 고용보험 의무 가입을 시행하더라도 임금근로자와 특고의 계정을 분리하거나, 의무가 아닌 ‘선택’으로 방향을 바꿔야한다고 지적한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특고를 보호하는 방법으로 고용보험 하나만 고집한다는 게 문제”라며 “이들의 직업적 특성을 고려해 좀 더 세부적인 지원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코로나19가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특고 고용보험 의무 가입은 고용보험의 고갈만 앞당길 뿐”이라며 “무조건 의무가입만 주장할 게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특고에 대한 실태파악부터 제대로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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