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59

2020.10.09

“추 장관 아들 조사 과정의 비호 행위는 특검 수사 대상”

  • 김종민 (변호사, 전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입력2020-09-30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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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 장관 아들 사건의 본질은 권력형 부패, 대통령도 지적한 권력의 사유화

    • 추 장관 개입 여부, 아들 비호 위한 진술과 증거 조작 모두 특검과 국정조사 대상

    추미애 법무부장관. [뉴스1]

    추미애 법무부장관. [뉴스1]

    ‘사건은 사건으로 덮어 버리면 망각 효과를 얻는다.’ 

    우리 공무원을 총살한 북한의 만행을 규탄하는 시기에 느닷없이 발표된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수사 결과를 보면 이런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추 장관 아들 수사 결과에 비난 여론이 일면 북한 만행이 잊혀질지도 의문이지만 추 장관 아들 수사도 이 단계에서 덮고 넘어갈 수 있을까.

    ‘부실’ 또는 ‘고의 은폐’

    추 장관 아들 서씨의 휴가 특혜 의혹 규명은 간단한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 9개월간 수사를 끌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검찰은 사건 배당 후 3개월 이내 사건처리를 원칙으로 한다. 그 기한 내에 처리되지 않는 사건은 특별히 관리된다. 매년 실시되는 검찰 사무 감사에서도 3개월을 넘긴 장기미제 사건은 수사검사의 근무평정을 위한 중요한 기초자료로 평가받는다. 그런 사실을 잘 아는 검찰이 별다른 이유 없이 수사를 9개월(269일)간 진행한 끝에 무혐의 결정을 내린 이유는 무엇인가. 수사가 지연되는 사이 사실 관계를 객관적으로 증명해 줄 국방부 자료와 미 2사단 부대 일지가 없어지거나 빛을 보지도 못했다. 이 자료가 세상에 다시 나오는 날 검찰 수사는 그대로 ‘부실’ 또는 ‘고의 은폐’로 판명될 것이다. 

    검찰의 조서누락이나 부실 수사 의혹도 있지만 이 수사에서 논란의 핵심은 추 장관 본인의 존재 자체였다. 검찰 수사가 멈춰 서고 주저해야 할 이유가 없었지만 검찰을 지휘하고 검사인사권을 갖고 있는 집권 여당 대표 출신의 법무부장관 앞이기 때문인지 현실은 간단치 않았다. 추 장관은 9월13일 처음으로 사과 입장을 밝혔지만 궁색한 자기변명과 부인으로 일관했고 “내 아들은 절차를 어기지 않았다”며 무혐의 수사를 암시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엄격한 잣대로 보면 공무집행방해 또는 직권남용 소지가 다분한데도 검찰 수사는 거기까지 미치지 않았다. 

    이런 판을 예상한 듯 추 장관은 검찰 역사상 볼 수 없었던 인사 전횡과 조직 파괴로 검찰을 철저히 무력화시킨 장본인이다. 문재인 정권의 살아 있는 권력수사에 관여했던 검사들은 예외 없이 좌천시켰고 그 중 상당수 검사는 검찰을 떠났다. 형사부와 공판부 강화를 명분으로 직접 수사 부서를 대거 없애며 검찰의 팔다리를 잘라 버렸고 윤석열 검찰총장을 철저히 고립시키며 식물총장으로 만들었다. 



    무혐의 수사 종결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민주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법치주의다. 법치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법률제도가 정당하고 권위를 갖추었다고 인식되고 그것이 일반 시민 뿐 아니라 힘 있는 권력자에게도 공평하게 적용된다는 국민의 신뢰다. 그 법이 누구에게 적용되는지를 따지지 않고 법치주의를 말할 수 없다. 추미애 장관 아들의 군 복무 특혜 의혹을 둘러싼 논란은 과연 법은 누구의 편이고,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근본적인 물음을 우리 사회에 던지고 있다. 검찰개혁을 외치는 집권 여당 대표 출신 법무부장관의 공정과 정의는 과연 무엇인지 국민들이 또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불편부당 엄정공평은 검찰이 갖추어야 할 제1의 덕목이다. 국가형벌권이라는 막중한 권한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아 행사하는 검찰이 공정하게 이를 행사하지 않을 때 그 정당성의 토대가 무너진다. 가장 근본적인 의미의 법치주의는 우리의 법은 정당하고 통치자가 아닌 법이 주권자라는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한다. 법을 따르는 까닭은 그 법과 법집행기관이 공정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보좌관이 다 했고 나는 모른다”

    정의의 여신상. [동아DB]

    정의의 여신상. [동아DB]

    추 장관 본인이야 아들 휴가 의혹에 대해 “보좌관이 다 했고 나는 모른다”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이 사건의 본질은 권력형 부정부패다. 정치적 부패의 특징 중 하나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이 무너져 양자 사이에 혼동이 초래되는 것이다. 자신이 도덕적이라고 말하는 삶의 방식을 온전히 따르지 않으면서 도덕을 말하는 것은 훨씬 부도덕하다. 당시 지휘관과 동료 사병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부인과 물 타기로 일관했던 것도 그 때문인가. 

    문재인 대통령도 저서 ‘검찰을 생각한다’에서 “정권의 유지․존속과 개인의 이익을 위한 권력의 사유화를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특권층이 반칙을 저질러도 용납되던 시대, 반칙해서 얻은 승리가 용인되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역설한 바 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 그 가족을 둘러싼 불법과 비리에 이어 터져 나온 추 장관 아들 관련 비리 의혹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런데 추 장관 본인의 해명과 집권 민주당의 행보는 국민의 상식과 한참 떨어져 있다. 아포리아는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것이 없는 막다른 곳에 다다랐음’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다. 대한민국의 정의와 법치주의가 진정 아포리아 상태에 빠진 것인가. 

    추 장관은 이미 검찰의 독립과 정치적 중립에 치명적인 역사적 오점을 남겼다.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할 검찰을 직권남용 수준의 인사농단으로 정치권력에 예속시켰고 수사지휘권 발동을 통해 정권의 직접 수사개입이라는 나쁜 선례도 남겼다. 정권이 총동원된 ‘추미애 장관 구하기’는 공정과 정의라는 공동체의 가치를 훼손하고 국민의 분열과 냉소를 불렀다. 늦었지만 추 장관은 지금이라도 장관직 사퇴를 포함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법무부장관으로서 부끄럽지 않으려면 국민 앞에 서지 말아야 한다. 

    추 장관이 물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이 사건이 덮어지진 않을 것이다. 이 사건을 무혐의 처분하는 과정에서 추 장관과 측근 검사들의 개입 여부, 진술과 증거를 은폐하거나 왜곡한 관련자들, 당직사병과 지휘관에 대한 여권 인사들의 모욕 행위 등은 모두 국정조사나 특검 수사 대상에 오를 수 있다. 추 장관을 봐주거나 감싸기를 시도하는 것은 자충수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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