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55

2020.09.04

집값 올라 건강보험료 내야 하는 어르신들 “생활비 쪼개라니 당황스럽네요”

집값 상승으로 과세표준 넘긴 노인들, 건보 피부양자 자격 박탈 후 지역 보험료 물어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입력2020-08-24 15:4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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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W아파트에서 30년 넘게 산 박모(77) 할머니는 요즘 건강보험료 부담 때문에 선풍기 한 대로 더위를 견디고 있다. 할머니가 사는 아파트 공시가격은 지난해 10억2900만원으로 나왔다. 전년 대비 2억1300만원이 올랐다. 할머니는 지난해 11월까지 건강보험료를 별도로 내지 않았다. 직장을 다니는 자녀의 피부양자로 등록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 할머니가 피부양자 자격을 잃은 것은 집값 상승 때문이다. 할머니 아파트의 재산세 과세표준은 지난해 12월 피부양자 박탈 기준인 5억 4000만 원을 넘었다. 이 할머니는 연금을 받고 있다. 소득이 있는데다 집값이 올라 건보 지역가입자로 편입돼 올해 들어 매월 30만원의 건강보험료를 내고 있다. 할머니는 “30년 넘게 살고 있는 집인데 갑자기 집값이 뛰어 건강보험료를 계속 내라고 한다”며 “연금을 포함한 월수입이 90만 원 정도인데 그 수입의 30%를 보험료로 내려면 냉방비라도 아껴야 한다”고 말했다.

    #2. 서울 송파구 잠실동 W아파트에서 30년 가까이 산 김모(72) 할머니도 보험료 부담이 생겼다. 김 할머니는 소득이 전혀 없다. 그런데도 지난해 12월부터 30만원이 넘는 건강보험료를 다달이 내라는 통지를 받고 있다. 지난해 아파트 공시가격이 2억5000만원 넘게 오르며 재산과표가 9억원을 초과해 피부양자 자격을 잃었기 때문이다. 재산과표가 9억원을 초과하면 소득이 전혀 없어도 피부양자 자격이 사라진다. 할머니는 “자식들에게 용돈 받아쓰는데 보험료까지 보태달라고 해야 하니 매번 염치가 없다. 너무 오래 살았나 보다”고 푸념했다.

    건강보험료 부담 때문에 여름에도 냉방비를 아끼며 생활하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게티이미지]

    건강보험료 부담 때문에 여름에도 냉방비를 아끼며 생활하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게티이미지]

    강화된 부과 기준과 집값 폭등이 맞물려 피부양자 자격 상실

    갑작스럽게 오른 집값 때문에 자녀의 건강보험에 피부양자로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어르신들이 늘고 있다. KB부동산시세에 따르면 현 정부 출범 후 3년여 동안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60% 가까이 상승하고 공시가격도 덩달아 크게 올랐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 공시가격은 14.75%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2007년 28.5% 이후 13년 만에 최대 상승 폭이다. 이 때문에 올해는 피부양자 자격을 상실하는 건강보험 가입자가 지난해보다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그동안 자녀의 건강보험에 피부양자로 돼 있던 어르신 상당수가 집값 폭등으로 보험료 부담을 떠안게 된 것이다.

    지금의 보험료 부과체계는 2018년 7월 1일부터 적용돼 왔다. 그 이전에는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는 재산과표(주택 공시가격의 60%)가 9억원 이하였다. 2018년 7월 1일부터는 그 기준이 ‘5억4000만원 이하’로 강화됐다. 재산과표가 5억4000만원을 넘어도 연소득이 1000만 원이하라면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할 수 있지만 연소득에는 이자, 배당, 사업, 근로, 연금 등 종합과세소득을 합산한 금액이 적용돼 그 요건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특히 사업자로 등록된 사람은 사업소득이 1원이라도 있으면 피부양자로 이름을 올릴 수 없다. 임대사업소득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임대수입에서 비용 등을 제한 과세 대상 소득이 1원이라도 발생하면 피부양자가 될 수 없다. 

    지역건강보험 부과 기준이 강화된 데다 최근 3년간 집값이 폭등하다 보니 갑자기 건강보험료를 내야하는 가입자들이 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가 강화된 2018년 7월 1일자로 피부양자 자격을 상실한 인원은 7000명 정도”라며 “앞으로는 집값이 폭등한 만큼 재산과표가 크게 올라가 피부양자 자격을 잃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피부양자 자격을 상실하면 지역가입자로 편입돼 건강보험료를 별도로 내야 한다. 직장가입자는 근로소득을 기준으로 건강보험료가 책정되고 그 중 절반을 직장에서 떠안지만 지역가입자는 소득 뿐 아니라 재산과 자동차도 보험료 산정 기준에 포함되고 혼자 내야 하기에 보험료 부담이 더 크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퇴직 후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소소하게 받는 연금이나 임대소득보다 더 많은 건강보험료를 낼 수도 있다”며 “재산과표가 6억 원인 주택과 구입한 지 5년 된 3000cc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고 월 소득이 90만 원이면 지역 건강보험료가 한 달에 30만 원 정도 부과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소득이 아닌 재산에 건강보험료를 매기는 지금의 부과 체계가 국민복지와 가계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연금 수령 늦추는 것이 유리

    내년엔 건강보험료 부담이 더 커질 전망이다. 올해 집값이 대폭 오른 만큼 내년도 공시가격과 재산과표도 올라가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2단계 부과체계 개편이 시작되는 2022년부터는 피부양자 자격 요건이 한층 강화된다. 연간 합산소득이 2000만원을 넘으면 피부양자 자격이 상실되고,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는 재산과표도 ‘5억4000만원 이하’에서 ‘3억6000만원(공시가격 6억 원, 시세 8억~9억 원) 이하’로 낮아진다. 전문가들은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이미 9억 원을 넘어섰기에 2022년에는 재산과표 3억6000만 원을 넘어 피부양자 자격을 잃는 어르신이 대폭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서울 아파트 공시가격이 문재인 정부 3년간 크게 올랐다. [뉴스1]

    서울 아파트 공시가격이 문재인 정부 3년간 크게 올랐다. [뉴스1]

    자산운용 전문가들은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노년층이나 퇴직을 앞둔 1주택자는 건강보험료 폭탄에 대비해야 한다”며 “재산과표가 3억6000만 원을 넘은 주택을 매도하거나 연금 받는 시기를 최대한 늦춰 2022년 이후 합산소득이 연간 1000만 원을 넘지 않게 하라”고 조언한다. 퇴직 후 3년간 전 직장에서 부담하던 수준으로 건강보험료를 낼 수 있는 ‘임의계속 가입신청’ 제도도 충분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임금 수준이 낮고 취업이 쉬운 일자리를 구해 근로기간을 늘리는 것도 좋은 대비책이다. 근로기간에는 직장가입자로 보험료 부담을 줄일 수 있고 일을 그만두더라도 3년간은 임의계속 가입신청을 통해 기존 보험료만 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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