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40

2020.05.22

찜통 방호복 속의 고통

레벨D 방호복 입는 의료진의 ‘더위 고통’ 해소책 시급… 방호복 입고는 땀 닦을 수도, 물 마실 수도 없어

  •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입력2020-05-2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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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6일 대구동산병원에서 방호복을 착용한 의료진이 병동으로 들억가고 있다, [뉴시스]

    5월 6일 대구동산병원에서 방호복을 착용한 의료진이 병동으로 들억가고 있다, [뉴시스]

    “겨울에도 덥다고 느꼈어요. 여름에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미쳐버릴 것 같아요.” 

    2월 22일부터 3월 1일까지 대구에서 레벨D 방호복을 입고 ‘신천지 사태’에 임했던 간호사 A(31·여)씨의 말이다. 경기 양평군 한 병원에서 근무하는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의료진으로 차출돼 대구 남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러 온 시민들의 검체 채취를 보조하는 역할을 했다. 검사 대상자의 콧구멍에 면봉을 깊숙이 밀어 넣어야 하는데, 이때 대상자가 기침을 하는 경우가 잦다. 이 때문에 의료진의 개인 보호구 착용은 필수다.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지침에 따르면 검체 채취자는 N95 또는 KF94 동급 이상 보건용 마스크, 일회용 방수성 긴팔 가운 또는 전신 보호복, 일회용 장갑, 고글 또는 안면 보호구 등을 착용해야 한다. 이에 따라 선별진료소 의료진은 레벨D 방호복을 입는다. 

    방호복은 레벨A부터 D까지로 나뉜다. 레벨D는 방호복 중 가장 낮은 단계. 부직포로 제작되며, 얼굴과 손을 제외한 전신을 덮는다. 보통은 마스크, 고글, 덧신, 이중 장갑을 함께 착용한다. 이렇다 보니 일상복에 비해 활동성이 떨어지는 데다, 덥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2월 말~3월 초 대구 평균기온은 영상 5도 안팎. A씨는 “레벨D 방호복이 꽤 두꺼워 겨울외투를 입어야 하는 날씨에도 덥게 느껴졌다”며 “마스크 때문에 숨이 막히고 고글에도 습기가 차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스트레스 높아지고 피부병도 빈번

    기온이 크게 오르면서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일선 의료진은 ‘찜통 방호복’에 대한 걱정이 크다. 6월이 되지 않았는데도 평균기온이 20도에 육박하고 있고, 더욱이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더운 여름이 될 것이라는 기상청 전망까지 나왔다. 



    실내 감염을 막고자 주로 외부에 설치된 선별진료소에는 비상이 걸렸다. 김형갑(29)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회장은 “방호복 안에 속옷과 스크럽(얇은 면 재질로 된 의료복)만 입는데도 벌써부터 너무 덥다”며 “3시간마다 근무교대를 하지만, 5월 들어 날이 더워지면서 3시간을 버티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김씨는 “방호복이 바이러스가 통과할 수 없도록 촘촘하게 설계돼 있다 보니 보온이 너무 잘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세종시 선별진료소에서 주 2회 근무하고 있다. 

    실내 병동도 덥기는 마찬가지다. 간호사이자 스타트업 ‘널스노트’ 대표인 오성훈(28) 씨는 2월 29일부터 3주간 경북 청도대남병원과 안동의료원의 음압병동에서 자원의료봉사를 했다. 그는 “실내 병동 온도는 환자에게 최적인 25~26도로 고정돼 있다. 방호복을 입고 있으니 너무 덥게 느껴졌다. 땀이 나도 닦을 수 없어 정말 괴로웠다”고 말했다. 여름에도 실내 병동 온도는 25~26도 수준을 유지하기 때문에 에어컨이 가동된다 해도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의 고충은 줄지 않는다. 

    더구나 한여름 땡볕 아래서 방호복을 입고 있어야 한다면 어떨까. 오씨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고 말했다. 방호복을 입고 일할 때는 물조차 마실 수 없기 때문. 오씨는 “에어컨 바람 없이는 단 1시간도 버티기 어려울 것 같다”며 “한여름 바깥에선 반바지를 입고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나는데, 방호복을 입고 어떻게 버티겠느냐”고 우려했다. 

    여름이 되면 의료진이 더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 있다. 정철 삼성의료원 교수(예방의학 전문의)는 “불볕더위로 몸이 힘들어지면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게 된다”며 “특히 코로나19 확진자와 언제든 맞닥뜨릴 수 있는 선별진료소 의료진의 불안감과 스트레스가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피부병이 생길 가능성도 크다. 정 교수는 “방호복을 입고 일하다 보면 온몸이 땀범벅이 되는데, 땀이 마스크와 고글 등 피부와 접촉하는 부분을 자극해 피부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여름철에는 땀을 많이 흘려 탈수 증상이 오기 쉬운데 방호복을 입고서는 물을 마실 수도, 화장실에 갈 수도 없다”며 “고혈압이나 당뇨 등 기저질환이 있는 의료진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근무교대 자주 하고, ‘에어돔’ 설치도 고려해야

    선별진료소를 냉방이 원활한 실내로 옮길 순 없을까. 전문가들은 “바이러스를 차단하려면 환기가 원활해야 하기에 실내로 옮기는 것은 곤란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우주 고려대 감염내과 교수는 “병원 안에 선별진료소를 설치하면 바이러스가 병원 내부로 일파만파 퍼져 입원환자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안은 없을까. 정 교수는 “근무교대 주기를 지금보다 짧게 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방호복을 입고 근무하는 시간을 1시간 단위로 줄이고, 더위로 메스꺼움 같은 증상이 나타날 경우 즉시 교대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설명. 김 교수는 ‘에어돔’ 방식의 선별진료소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에어돔은 공기를 주입해 설치하는 천막을 가리킨다. 그는 “에어돔은 환기가 원활하면서도 냉난방을 할 수 있다”며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가 예상되는 만큼 정부 차원에서 이를 각 선별진료소에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5월 19일 전국 코로나19 선별진료소를 대상으로 에어컨 사용 지침을 내려보냈다. 지침에는 에어컨을 작동할 경우 반드시 헤파(HEPA)필터를 장착하고, 에어컨 바람이 의료진에서 환자 방향으로, 최대한 천장 쪽으로 가게 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헤파필터는 공기 중 방사성 미립자를 정화시키기 위해 개발된 공기정화 장치로,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비말을 걸러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윤태호 중대본 총괄방역반장은 “에어컨 바람이 최대한 천장 쪽으로 가게 하면 에어컨 바람이 비말에 닿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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