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78

2019.03.01

사회

혼인 파탄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중요

‘조현아 폭언 동영상’ 공개 파문으로 본 이혼과 재산권·양육권 분쟁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9-03-04 1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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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DB]

    [동아DB]

    “이 부순 건 다 뭐야?”(남편) / “네가 딴소리를 하니까 그렇지, 딴소리를 하니까! 네가 쓸데없는 소리를 하니까!”(아내) / “어떡할까 내가 그럼 지금, 어?”(남편) / “죽어! 죽어! 죽어! 죽어버려!!!!”(아내) -일명 ‘조현아 폭언 동영상’ 중에서

    이혼 소송 중 남편 박모 씨로부터 폭행 등 혐의로 고소당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자녀 앞에서 남편에게 고성을 지르고 욕설을 하는 동영상이 공개돼 파문이 일었다. 조 전 부사장으로 추정되는 동영상 속 여성은 남성에게 끊임없이 고함을 치고 아이에게는 영어로 화를 내며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이는 양손으로 귀를 막고 서 있었다. 

    이 영상은 박씨 측이 공개한 것이다. 그는 2월 19일 조 전 부사장을 특수상해, 아동복지법 위반(아동학대), 배임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고소장에는 조 전 부사장이 화가 난다며 자신의 목을 조르고, 폭언을 일삼았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이외에도 조 전 부사장이 자녀를 학대했다는 주장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소송에서 박씨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자 해당 영상을 찍어 언론에 공개한 것으로 추정했다. 

    조 전 부사장 측도 다음 날인 2월 20일 입장문을 내고 “모든 것이 박씨의 일방적 주장”이라며 “박씨가 알코올 중독에 빠지면서 결혼생활이 어려워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박씨는 21일 “알코올 중독자로 치료받은 사실이 없다”며 조 전 부사장 측의 주장을 재반박했다.

    폭언  ·  욕설 vs 알코올  ·  약물 중독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남편 박씨 측이 공개한 동영상의 한 장면. [KBS 뉴스 캡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남편 박씨 측이 공개한 동영상의 한 장면. [KBS 뉴스 캡처]

    이번에 공개된 동영상은 두 사람의 이혼 소송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영상에서 확인된 조 전 부사장의 폭언은 부부의 결혼생활이 심각한 위기에 이르렀음을 보여주기 때문. 그렇다면 조 전 부사장의 사례처럼 이혼 소송 중 부부간 주장이 첨예하게 맞서는 상황이라면 양육권은 누가 갖고, 재산 분할 과정은 어떻게 될까. 또한 양측 주장이 사실이라고 가정했을 때 폭언·욕설과 알코올·약물 중독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중한 귀책사유일까. 법률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이혼 전문 변호사인 최유나 법무법인 태성 변호사는 “단순 비교는 어렵다. 누가 먼저 혼인 파탄의 책임을 제공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법원에서 혼인 파탄 책임을 판단할 때는 폭언과 알코올 중독 각각의 문제를 놓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무엇으로 인해 혼인이 파탄에 이르렀는지를 봅니다. 예를 들어 아내의 폭언이 혼인 초부터 10년 넘게 지속돼 남편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알코올 중독에 이르렀다면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겠으나, 사실 이런 부분은 결혼생활 내내 녹음이나 녹화를 하는 게 아니기에 입증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전후관계를 입증할 명백한 증거가 있다면 모를까, 대부분은 양쪽 모두에게 잘못이 있다고 봅니다.” 

    손정혜 법무법인 혜명 변호사는 “만약 부부 중 한 명이 알코올 중독 증세로 일상적인 가정생활이 어렵고, 가사나 육아 업무를 소홀히 하거나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하지 못했다면 이 부분은 충분히 위자료 지급 사유가 되고 파탄 책임도 인정될 수 있다. 개선에 대한 본인의 노력 여하도 참작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양육권은 어떻게 될까. 가정폭력에는 물리적 폭행뿐 아니라 언어적 폭력(막말, 고함 등)도 포함된다. 손 변호사는 “지나치게 폭력적인 부분 또는 상황을 유발하거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아이들 정서에 안 좋은 것이 명백하지만 단편적 사실만으로 양육권자를 지정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아이가 있는 자리에서 반복적으로 폭언을 행사한 것은 아이의 정서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남편(박씨) 측이 아내에게 아이를 키울 자격이 없다는 점을 주장하고자 동영상을 제출한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이런 행태의 지속성을 입증할 수 있다면 위자료 지급 요소에 해당하고, 이혼 소송에서도 (조 전 부사장 측에) 불리하게 작용하겠죠.” 

    최 변호사도 “양육권은 별도의 가사 조사를 통해 전문가들이 아이와 부모를 상담하고 심리 상태 등을 면밀히 살핀 뒤 결정한다. 아이 처지에서 아이 본인의 의사, 부모의 경제력, 부모와 애착관계 등을 종합해 판단하기에 유책성이 있다고 해서 양육권을 어느 쪽이 가질지 섣불리 결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러나 해당 동영상을 보면 엄마(조 전 부사장)와 아이의 애착관계가 잘 형성돼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기에 아빠에게 양육권이 갈 개연성도 있다”고 말했다. 

    “동영상에 드러난 건 ‘왜 밥 먹기 전 뭘 먹었느냐’고 아이를 다그치는 모습인데, 우리는 그 말이 나온 맥락을 모르잖아요. 정말 엄마가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밥 먹기 전 딴 걸 먹었다고 그러는 건지, 아니면 남편이 아이를 제지하는 게 당연한데 왜 제지하지 않았느냐고 질책하는 건지 알 수 없어요. 그렇기에 법원에서 양육 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할 겁니다.”(최유나)

    아이 양육권은 누가 가질까

    “둘 중 누가 양육을 더 해왔는지, 부모와 애착관계 및 친밀관계, 부모의 정서 상태와 사회적 지위 등을 전체적으로 고려하기에 단편적인 동영상만으로 양육권자를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지속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남편의 주장이 입증된다면 해당 동영상이 조 전 부사장 측에 불리하게 작용할 공산이 크죠. 다만 부부싸움 중에 극렬하게 화가 나는 상황은 늘 발생할 수 있기에 남편을 향한 폭언이 엄마가 지속적으로 아이를 학대했다는 증거라고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집 안에서 평소 아내의 언성이 높았고 무섭게 말했다는 남편 측 주장에 대한 정황 증거 정도가 되는 거죠.”(손정혜) 

    아빠, 엄마도 아닌 제삼자가 아이의 양육을 맡을 가능성도 있을까. 최 변호사는 “정말 한 사람이 심각한 정신 질환을 앓고 있지 않은 이상 양육권은 웬만해서는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혹시 재벌가가 아닌 일반 가정이었다면 재산 분할 문제는 어떻게 될까. 최 변호사는 “유책성이 재산 분할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그래서 혼인 기간과 결혼할 때 양쪽에서 돈을 각각 얼마나 마련했는지, 특유재산이 있는지 등을 평가해 재산 분할 대상이 되는 재산은 두 사람이 공동으로, 혼인 기간 내 형성한 재산은 비율대로 나누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꼭 소득 차이로만 그 비율을 나누지는 않습니다. 가정주부였다 해도 일정 비율을 받습니다. 일반 가정의 경우 혼인 기간을 가장 중요하게 봅니다. 혼인 기간이 길면 5 대 5로 나누는 예가 많죠. 10년 미만이라면 객관적으로 누가 얼마를 벌었고, 가정에서 살림을 잘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따지게 됩니다.” 

    그는 “그런데 법원도 재벌가 사례는 별로 없어 기준이 딱 세워져 있지는 않을 것”이라며 “총자산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고, 그 안에서 분할 대상 재산을 확정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법원에서 지속적으로 이 정도 액수에서 합의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고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재벌가에서 이혼해 위자료가 얼마 나왔다는 판결을 살펴보면 대부분 합의에 가깝습니다. 판결로 가면 재벌 쪽은 이미지가 손상되니 합의하려 하고, 상대 측도 배우자의 특유재산이 많아 생각만큼 재산을 분할 받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일정 수준에서 합의가 이뤄지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인터뷰 | 김미영 서울가정문제상담소 소장
    삐빅-, ‘부모 실격’입니다동영상 속 모습, 혹시 당신이 아이를 대하는 모습은 아닌가요?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식전 간식을 먹었다는 이유로 아이를 다그치고 있는 동영상 속 모습. [YTN 뉴스 캡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식전 간식을 먹었다는 이유로 아이를 다그치고 있는 동영상 속 모습. [YTN 뉴스 캡처]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를 살아왔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일본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실격’의 첫 문장이다. 주인공 오바 요조의 고백처럼 ‘부모’라고 부르기에는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를 살아온’ 이가 이 세상에는 많다. 18년 동안 가정 문제를 상담하고 솔루션을 제공한 김미영 서울가정문제상담소장에게 일명 ‘조현아 폭언 동영상’을 보여주고 조언을을 들었다. 

    해당 동영상을 보면 엄마가 화를 내며 몰아세우자 아이가 귀를 막고 서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어떤 반응인가. 

    “아이를 양육하다 보면 부모가 아이에게 일시적으로 화를 내고 몰아세우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아이가 귀를 막는다는 것은 일종의 거부반응이다. 엄마의 그런 행동을 여러 차례 겪어 익숙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아동학대는 신체 폭력뿐 아니라 고함을 치고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의 정서적 폭력도 포함한다. 동영상에 등장하는 아이가 상당 기간 정서적으로 학대받은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엄마가 아이에게 영어로 “내가 저녁 먹기 전에 다른 거 먹지 말라고 했지? 너 들었어, 맞지?”라고 다그치는 대목이 나온다. 이를 훈육의 일환으로 볼 수는 없나. 

    “훈육이라고 하기에는 잘못된 태도와 방법이다. 유아는 정신적 발달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다. 식전에 간식을 먹지 못하게 하더라도 고함을 치거나 억지로 제지만 해서는 안 된다. 어떤 행동을 하면 안 되는 이유를 반복적으로 잘 설명해야 한다. 부모의 훈육이 강압적으로 이뤄지면 아이도 자연스레 그 방법을 따라 하게 된다. 폭력으로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다는 잘못된 학습을 하는 것이다.” 

    아이가 부모의 정서적 폭력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 

    “부모의 폭력은 아이와 정서적 애착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방해한다. 어릴 때 부모와 유대감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고 자란 후유증은 성인이 돼서도 이어진다. 아이가 타인에게 친밀감을 느끼지 못하거나 원만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성인으로 자라기 쉽다. 가장 큰 문제는 아이를 대상으로 한 폭력이 대물림된다는 것이다. 인지와 도덕 관점이 발달하고 있는 어린 시절에 겪은 폭력은 아이가 부모가 된 후에도 재현될 개연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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