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20

2021.12.24

미래 먹거리 제약바이오, 흑호(黑虎)해 ‘종이호랑이’ 안 되려면

제약·백신주권 여전히 취약… 정부 R&D 지원 늘려야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21-12-2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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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한국 보건산업은 역대급 수출 규모를 기록했다. [사진 제공 · 유한양행]

    올해 한국 보건산업은 역대급 수출 규모를 기록했다. [사진 제공 · 유한양행]

    전 세계가 K-제약·바이오를 주목하고 있다. 올해 한국 보건산업은 역대급 수출 규모를 기록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11월까지 수출 금액은 기술 부문 11조4041억 원, 의약품 부문 8조3299억 원으로 총 19조7340억 원이며, 연말까지 20조 원을 무난하게 넘길 전망이다. 2022년 임인년 흑호(黑虎)해에는 제약바이오산업이 보건안보와 국부 창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흑호’로 군림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실상은 그리 녹록지 않다. 업계에서는 “제약바이오산업이 자칫 ‘종이호랑이’에 그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제약바이오산업을 한국 미래 먹거리로 제대로 육성하려면 혁신적인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제약바이오가 미래 먹거리 산업 중 하나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세계 시장규모가 1400조 원으로,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게 열려 있다. 미국 제약사 애브비(AbbVie)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휴미라(Humira)’의 연매출액은 24조 원으로 현대자동차 아반떼를 100만 대 판 것과 같은 효과다(표 참조). 제약바이오산업은 고용 효과도 뛰어나 매출 10조 원 발생 시 연관 일자리 13만 개가 창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약 개발 정부 지원, 임상 2·3상에 집중해야”

    업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가 제약바이오산업에 오히려 기회로 작용했다”며 “기술 수출은 이제 한국 제약바이오기업들에 자연스러운 비즈니스 모델이 됐고, 코로나19 사태에도 연구개발(R&D)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려가며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고 평했다.

    문제는 외형적 성장이 제약바이오 주권 확립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드 코로나 시대에 글로벌 제약사의 ‘백신 갑질’은 여전한 반면, 한국의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10%대에 머물러 있다. 필수 예방접종 백신 자급률도 50%를 넘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국 기업이 직접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고 생산·공급할 수 있어야만 제약바이오 주권을 확립할 수 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이 속도를 내려면 전폭적인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 민간기업에만 맡기는 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한미약품, 에스티팜, GC녹십자, KIMCo(한국혁신의약품컨소시엄) 등은 ‘차세대 mRNA 백신 개발 플랫폼 기술 컨소시엄’을 맺어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매달리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 유바이오로직스, 제넥신, 진원생명과학, 셀리드 등도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코로나19 치료제 개발도 한창이다. 대웅제약은 경구용 치료제 카모스타트(임상 3상), 부광약품은 클레부딘(임상 2상)을 개발하고 있다. 이 밖에도 크리스탈지노믹스, 제넥신, 엔지켐생명과학 등 14개 업체가 치료제 개발에 도전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들 제약사가 소기의 성과를 내려면 임상에 대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며 “백신바이오펀드 등을 조성해 정부 R&D 지원금(올해 1667억 원) 부족분을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약 개발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개발한 신약 중 연매출 500억 원을 넘는 제품은 현재 3개에 불과하다. 제약강국을 상징하는 ‘1조 원 매출’ 규모의 블록버스터 신약을 탄생시키려면 ‘글로벌 임상 3상’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글로벌 임상 3상에 들어가는 비용은 최소 2000억 원에서 1조 원 수준이다. 올해 8월 기준 한국에서 개발된 혁신 신약 파이프라인은 1477건으로 이 중 551건이 임상 단계에 있으나, 대부분 임상 비용 마련에 허덕이고 있다. 결국 많은 기업이 글로벌 임상 3상에 도전하기보다 안전한 기술 수출에 의존하는 형국이다. 기술 수출 확대의 그림자인 셈이다.

    우수한 파이프라인을 글로벌 신약 개발로 연결하려면 정부의 R&D 지원을 임상 2·3상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미국은 5조 원 규모의 민간펀드를 조성해 후기 임상에 집중 투자하고 있고, 싱가포르도 국부펀드로 제약바이오 부문에 20조 원 이상을 투입한다”며 “한국도 정부와 민간이 손잡고 5조 원 이상 메가펀드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원료의약품 확보 시급

    원료의약품 자국화도 시급한 상황이다. 2019년 기준 한국의 원료의약품 자급도는 16.2%이며 중국, 일본, 인도 등 3국으로부터 원료의약품의 55%를 수입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및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에 따르면 2019년 한국이 원료의약품을 수입하는 국가는 중국이 7억9696만 달러(약 9503억7480만 원)로 전체의 34%를 차지했다. 이어 일본이 2억8106만 달러(약 3351억6400만 원), 인도가 2억2114만 달러(약 2637억 원)를 기록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원료의약품 수급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인도가 의약품 수출 금지를 내리면서 미국과 유럽 등지에 필수의약품 부족 현상이 일어났다. 의약품이 국민 건강과 직결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원료의약품 자국화와 수입선 다변화가 필요하다. 업계에서는 “원료 제조를 위한 R&D 지원 및 세제 지원 확대 등을 통해 원료의약품 확보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은 “한국 제약사들이 1400조 원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과감한 실행력을 선보일 수 있게끔 정부가 적극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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