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20

2021.12.24

내년 투자 계획 세운 기업 11.7% 불과, 성장 잠재력 둔화 불가피

反기업 정서도 투자 의욕 꺾어

  •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입력2021-12-2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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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기업은 외환위기 이후에 투자를 줄이는 방식으로 위기에 대응해왔다. [GETTYIMAGES]

    한국 기업은 외환위기 이후에 투자를 줄이는 방식으로 위기에 대응해왔다. [GETTYIMAGES]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한국 경제의 체질 변화를 꼽자면 단연코 기업의 투자 감소일 듯하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는 2022년을 맞아 국내 기업 316곳을 대상으로 내년도 투자 계획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내년도 투자 계획을 세운 기업은 11.7%에 불과했다. 56.2%의 기업이 아직 검토도 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응답했으며, 투자 계획을 검토 중이라고 응답한 기업은 32.1%인 것으로 확인됐다.

    사실 한국 기업이 미래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방식은 투자를 줄이는 것으로 귀결돼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큰 전환점은 외환위기였다. 1991〜1995년 연평균 10.4%였던 설비투자 증가율은 1996〜2000년 2.3%,2001〜2002년 -1.8%로 나타났다. 높은 부채비율로 기업의 투자가 저하되면서 투자 형태가 보수적으로 변한 것이다. 기업은 영업 성과와 불확실성이 클수록 현금 보유 비중을 높이려는 경향을 지니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금융을 주력 사업으로 하지 않는 기업 부문은 내부적으로 창출해내는 자금이 기업 성장·발전에 필요한 투자 수요를 충당하기에 부족하며 기업 외부로부터 자금조달(external financing)이 필요한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실제 관련 데이터를 보면 의외의 현상이 확인된다. 한국은행 국민계정을 통해 기업의 투자 추이를 살펴보면 국내 비금융기업 부문의 외부자금조달액은 2009년 감소 추세를 보인 데 이어 2010년부터는 내부자금조달액을 하회하고 있다.

    투자 부진, 국가 성장 잠재력 저하

    반면 기업의 전체 자금조달에서 내부자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9년 47%에서 2016년 73%로 상승했다. 이러한 수치는 한국 비금융기업 부문의 내부자금조달이 투자 수요를 거의 충당할 정도까지 증가했으며, 동시에 투자는 정체 상태를 보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다시 말해 현재 많은 기업이 외부자금을 추가로 조달할 만큼 적극적인 투자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음을 알려준다.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면 기업의 현금 흐름이 증가해도 기업의 투자 확대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현재는 과거와 구분되는 투자의 구조적 변화도 요인으로 작용한다. 우선 자본의 한계생산성(다른 생산요소 투입량은 변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생산요소의 한 단위가 변화할 때 기업 산출량에 미치는 효과)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투자 수요가 둔화됐다. 아울러 수익 투자 기회 감소, 중국 부상, 기업가 정신 후퇴, 금융시장 구조 변화로 인한 금융 제약 강화, 불확실성 증대와 소비 부진 등도 설비투자를 감소시키고 있다. 또한 기술 혁신과 인적자본 확충 등을 통한 지식 기반 사회로 이행이 능동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물적자본 투입 위주의 성장전략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계도 지적된다.



    이상에서 확인한 국내 기업의 투자 감소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그 무엇보다 지대하다. 실제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성장 잠재력 둔화를 초래한 가장 큰 원인으로 기업의 투자 부진을 들 수 있다. 외환위기 전까지 두 자릿수를 기록하던 국내 투자 추이는 외환위기 이후 한 자릿수로 둔화됐다. 이러한 투자 부진이 단기적으로는 경제성장률을, 장기적으로는 국가 성장 잠재력을 저하한 것이다.

    투자 위축 이어질 듯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시작점은 기업의 투자 부진이었다. [GETTYIMAGES]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시작점은 기업의 투자 부진이었다. [GETTYIMAGES]

    기업의 투자 부진이 가져올 현상은 일본 사례를 보면 극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의 비금융기업 부문의 국내 부채는 1994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147% 수준인 데 반해 2015년에는 97%로 낮아졌다. 기업이 매출이 증가하지 않은 상황에서 차입 증가세를 낮추거나 부채를 상환하려면 다른 지출을 줄여야 하는데 그중 하나가 국내 투자다. 일본 경제는 1990년대 초 거품 붕괴 전 20년간 투자 증가율이 정점에서는 10%에 육박했고, 평균적으로 4.4%였다. 1990년부터 2017년까지는 0% 수준이었다. 투자 증가율의 5년 이동평균이 대부분 0보다 낮았고, 간헐적으로만 0을 상회하는 정도였다.

    이런 일본 기업의 저조한 투자 흐름은 낮은 생산성과 수익률로 이어졌다. 그리고 많은 제조 부문이 과거 높은 고용 수준을 유지할 여력이 없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제조업 고용이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줄었고 고용 위축은 또다시 소비 위축 등 내수경제 위축으로 이어졌다. 이런 상황은 기업이 더더욱 불확실성에 대비하고자 적극적인 투자를 또다시 주저하게 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결국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기업의 투자 부진에서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행히도 2022년 우리 기업이 직면한 상황도 과거처럼 또다시 투자 위축의 길을 선택하게 만들 것으로 전망된다. 미래 불확실성은 더욱 높아졌으며, 고령화로 새로운 소비 여력을 갖춘 소비층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조차 고령화되면서 자신의 노후 대비를 위해 적극적인 경제활동 의사마저 줄이고 있는 셈이다.

    기업 투자 활성화를 위해서는 기업의 투자 의욕을 꺾는 반기업적 정서를 완화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한국 경제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빠르게 정상 기조로 돌아가려면 기업들의 투자 의지를 저해하는 요소가 무엇인지부터 하나하나 정리해나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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