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강남대로변 1층 상가의 저주

높은 임대료+임대 업종 제한 탓에 한 건물 건너 빈 점포 이어져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9-06-03 09:01:23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신논현역 사거리에서 바라본 강남대로. [구자홍 기자]

    신논현역 사거리에서 바라본 강남대로. [구자홍 기자]

    싸이 노래 ‘강남스타일’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후 서울 강남은 전 세계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됐다. 세계무대로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은 물론, 해외 유명 브랜드의 의류 매장이 강남대로변에 속속 자리 잡으면서 한때 강남은 글로벌 브랜드의 각축장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강남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임대료와 권리금이 상승하는 대표적인 성장상권으로 꼽히던 강남에 불 꺼진 사무실과 상가가 눈에 띄게 늘어나 침체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올해 1분기 상업용부동산에 대한 임대동향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강남대로 오피스 공실률과 논현역, 신사역 주변 중대형·소규모 상가 공실률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피스 공실률의 경우 강남 전체 공실률이 8.1%인 데 반해 강남대로 오피스 공실률은 15.9%로 2배 가까이 높았고,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논현역 주변 중대형 상가 공실률이 13.5%로 강남 전체 중대형 상가 공실률 8.3%를 크게 웃돌았다. 소규모 상가는 신사역 인근 공실률이 18.2%로 강남 전체 공실률 4.5%보다 4배 가까이 높았다.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 젊은이가 즐겨 찾는 젊음의 거리이자 대한민국 경제중심지로 부상한 강남에 불 꺼진 오피스와 상가가 이처럼 크게 늘어난 이유는 뭘까. 그 원인을 알아보고자 5월 29일 오후 강남대로를 찾았다. 

    ‘임대’ ‘2층 임대’ ‘건물주 직접 임대’ ‘지하 1층, 3층 임대’. 

    서울지하철 9호선 신논현역을 벗어나자마자 지하철 입구와 마주한 초역세권 건물에서부터 빈 상가가 눈에 띄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건물마다 나붙은 ‘임대’ 포스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들이 세입자를 구하려고 너나없이 앞다퉈 건물 외벽에 ‘임대’ 포스터를 써 붙여놓은 모습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건물마다 나붙은 ‘임대’ 포스터

    한 건물 건너 하나씩 빈 점포가 눈에 띄면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기도 했다. 배달음식점 전단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몇몇 상가의 모습은 심각한 불황을 피부로 느끼게 했다. 

    오후 시간임에도 적잖은 젊은이가 강남 대로변을 활발히 오갔다. 옷, 신발, 화장품 가게 등을 기웃거리며 쇼핑하는 젊은 여성이 특히 많았고,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아 데이트를 즐기려는 커플들도 눈에 띄었다. 강남대로를 활보하며 특색 있는 건물 앞에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외국인 관광객도 꽤 있었다.
     
    이처럼 평일 오후에도 많은 사람이 오가 활력이 느껴지는 강남대로변 오피스와 상가의 공실률이 높아지는 이유는 뭘까. 강남대로변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건물주의 배짱 임대가 근본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강남역 부근 대형건물 1층의 경우 수년 전까지 월세 7000만 원 하던 점포가 1억 원을 찍더니 1억4000만 원까지 올랐다. 안테나숍(유동인구가 많은, 사람들 눈에 잘 띄는 곳에 매장을 열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려는 전략적인 가게)이라고 해도 월매출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강남대로변에서 30년 가까이 부동산중개 업무를 해왔다는 그는 강남대로변 1층에 입점해 있던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이 최근 철수를 결정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건물주가 지금 같은 임대 조건을 고수하면 향후 몇 년 내 세입자를 찾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한류 영향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한창 강남에 몰려들 때는 임대료를 크게 올려도 화장품이나 의류업체들이 안테나숍을 유지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고 덧붙였다. 

    성형외과가 몰려 있는 신사역 사거리 상황도 마찬가지. 높은 임차료를 감당하지 못해 병원 문을 닫는 곳이 하나 둘씩 나타나고 있다. 신사역 부근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한 원장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여파로 중국 등 외국에서 오는 손님이 크게 줄었는데도 임차료는 계속 올랐다”며 “수입은 줄었는데 비용은 증가하니 버틸 재간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병원도 매출이 30%가량 줄었지만 그나마 병원 규모가 작아 견디고 있다. 병원 규모를 키우던 원장들은 폐업하거나 병원을 옮기려 한다”고 전했다. 

    온라인 금융이 활성화되면서 강남대로변에 입주해 있던 금융회사들이 지점을 폐쇄한 것도 강남대로변 건물의 공실률을 높이는 원인이 됐다. 신사역 주변 한 건물 세입자는 “모 보험사가 한 층을 통째로 써 재무설계사들이 오가는 통에 엘리베이터 타기도 쉽지 않았는데, 얼마 전 보험사가 문을 닫은 이후 건물 전체가 썰렁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해당 건물 안내문에는 보험사 이름이 아직 그대로 적혀 있어 직접 방문하기 전에는 공실 여부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는 “건물에 빈 사무실이 많다고 소문나면 세입자가 임차료를 낮춰 들어오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건물주들이 과거에 입주해 있던 회사의 로고와 간판 등을 그대로 두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일반적으로 상권은 크게 성장, 정체, 쇠퇴상권으로 구분된다. 구매력이 높은 젊은 층 유동인구가 많이 찾아오는 지역은 장사가 잘돼 임대료가 해마다 높아지는 성장상권으로 볼 수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젊은이들이 많이 오가는 서울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과 합정역 인근, 그리고 최근 제2롯데월드 개장 이후 젊은이와 외국인 관광객이 즐겨 찾는 송파구 방이동에 이어 오피스 밀집지역으로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역과 신사역 주변을 대표적인 성장상권으로 꼽는다.

    성장상권의 정체상권화?

    서울의 대표적 성장 상권으로 여겨지던 강남에도 불 꺼진 점포가 늘고 있다. 사진은 강남의 야경. [뉴스1]

    서울의 대표적 성장 상권으로 여겨지던 강남에도 불 꺼진 점포가 늘고 있다. 사진은 강남의 야경. [뉴스1]

    성장상권의 경우 세입자가 건물주에게 지급하는 임차료뿐 아니라 새 임차인이 이전 임차인에게 주는 권리금도 적잖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은 “권리금은 매출과 영업이익에 비례해 상승하기 때문에 상권의 성장성 여부를 판단하는 좋은 지표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임대료와 권리금 상승률이 높아 성장상권으로 꼽히던 논현역과 신사역 주변은 최근 권리금이 떨어지거나 무권리금 점포가 나오고 있다. 박모 K부동산중개업소 대표는 논현역과 신논현역 사이에 위치한 한 의류매장을 예로 들었다. 

    “4년 전쯤 월임차료 1400만 원에 2억 원의 권리금을 주고 들어왔다.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왔을 때는 장사가 좀 됐는데 지금은 매출이 임차료보다 적은 것으로 안다. 그런데도 권리금을 포기할 수 없어 적자를 보면서도 가게 문을 열고 있다.” 

    새로운 세입자를 들이지 않고 가게를 비우면 권리금을 받을 길이 없어 매월 수백만 원의 적자를 보면서도 가게 문을 연다는 얘기다. 권리금보다 적자폭이 커 더는 버티지 못하고 가게를 비우면 무권리금 점포가 된다. 몇 해 전 유명 연예인이 주점을 운영했던 곳이 대표적이다. 

    “월임차료 2400만 원에 1, 2층을 빌려 330㎡(100평) 규모로 주점을 운영했는데, 연예인의 인기로 한동안 장사가 잘됐지만 결국 장사가 안 돼 무권리금 점포로 나왔다. 무권리금이라는 말에 같은 조건으로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 몇 달을 못 버티고 금방 그만뒀다. 개그맨이 운영하던 포장마차도 마찬가지다. 개그맨이 가게를 접은 뒤로 여러 사람이 무권리금으로 장사에 나섰지만 오래 버티지 못했다. 여기는 임차료, 인건비 등 고정비가 너무 높아 웬만큼 장사가 잘돼도 버티기 쉽지 않다.” 

    고종완 원장은 “상권 변화에는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치는데, 최근 높은 구매력을 자랑하던 젊은 층의 지갑이 얇아진 것도 강남권 상권 침체의 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기획부동산업자의 횡포

    강남대로변에는 세입자를 구하는 빈 상가가 적지 않다. [구자홍 기자]

    강남대로변에는 세입자를 구하는 빈 상가가 적지 않다. [구자홍 기자]

    강남대로변 건물에 빈 점포가 많은 이유에 대해 한 부동산공인중개사는 기획부동산업자의 횡포 때문이라고 풀이하기도 했다. 

    “건물주에게 더 높은 임대료를 받게 해주고 부동산 중개 수수료도 받지 않을 테니 독점적으로 세입자를 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기획부동산업자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임대료는 자꾸 오르고 빈 점포는 늘어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강남대로변 상가 공실률이 높은 또 다른 이유로 ‘업종 제한’이 꼽힌다. G부동산중개업소의 한 부동산 컨설턴트는 “대로변 건물주들은 의류나 휴대전화 등 판매업종에 주로 임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며 “냄새가 나는 식음료업종에 대해서는 임대를 거부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 건물주는 은행 등 금융업종이나 글로벌 브랜드 프랜차이즈 외에는 임대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고수하는 통에 건물이 수년째 빈 상태다. 또 다른 5층 건물의 경우 건물 관리에 신경 쓰지 않겠다며 건물 전체 임대를 고집하는 바람에 수년째 비어 있다고 한다. 

    실제로 신논현역에서 신사역까지 대로변에 있는 건물의 경우 음식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로변에서 작은 골목으로 접어들자 밥집과 술집 등 먹자골목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강남대로의 경우 올해 1분기 오피스 공실률은 15.9%로 크게 상승했지만 중대형 상가와 소규모 상가의 공실률은 강남 전체 공실률 평균치를 밑돌고 있다. 그러나 2분기 이후에도 오피스 공실률이 떨어지지 않을 경우 주변 상가 공실률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기된다. 

    현재처럼 건물주가 높은 임대료와 특정 업종으로 임대를 제한할 경우 강남대로변의 빈 점포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강남에서 활동하는 한 부동산공인중개사는 이렇게 말했다. 

    “빈 점포는 다 이유가 있다. 장사해 임차료를 낼 사람 입장에서 그 정도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선에서 임대료가 결정돼야 하는데, 임대료 받을 사람이 ‘나는 월 1억 원 이하로는 임대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면 누가 들어오겠나.”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