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암호화폐 폭락하자 “이제 뛰어들어볼까”

비트코인, 이더리움 올 초 대비 90% 하락불구 美 나스닥은 선물시장 내년 초 열기로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8-12-17 11: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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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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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기는 1년을 채우지 못했다. 올해 초 개당 2000만 원을 호가했던 비트코인이 300만 원대로 가라앉았다. 9월 500만 원대를 간신히 유지하다 지속적으로 떨어져 2년 전 가격까지 갔다. 

    2위를 달리던 이더리움도 마찬가지. 올해 초에는 개당 100만 원가량에 거래됐지만, 지금은 10만 원대 방어도 쉽지 않아 보인다. 

    가격 폭락의 여파는 블록체인 기술 및 암호화폐 시장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은 오히려 암호화폐에 부쩍 관심을 보이고 있다. 폭락이 더는 없다고 보는 것일까.

    시장 기준이 흔들린다

    이더리움 가격도 개당 10만 원대 아래로 떨어졌다. [뉴스1]

    이더리움 가격도 개당 10만 원대 아래로 떨어졌다. [뉴스1]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가격 하락은 단순히 업계 1, 2위의 추락이 아니다. 암호화폐 시장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일단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으로 대표되는 선두그룹이 있고, 다양한 아이디어로 그 나름의 블록체인을 구축하는 후발주자 ‘알트코인’이 있다. 선두그룹이 떨어지면 투자시장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명한 사실. 하지만 암호화폐 시장은 그 정도가 심하다. 두 암호화폐가 다른 화폐를 구매하는 데 쓰이는 일종의 기축통화 기능을 하기 때문. 기축통화 가격이 떨어졌으니 암호화폐거래소 시세 창에는 가격 하락을 뜻하는 파란 화살표가 무수히 떴다. 

    물론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가격이 크게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올해 1월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암호화폐거래소 폐쇄까지도 목표로 하고 있다”는 발언 이후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암호화폐 가격이 급전직하했다. 개당 2000만 원대를 호가하던 비트코인은 1000만 원대로, 이더리움은 100만 원대를 넘보다 20만 원 선으로 내려앉았다. 이때 상당수 투자자가 빠져나갔다. 



    정부의 발언이 시장 위축의 신호가 됐으니, 일부 투자자는 불만을 표출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는 ‘정부는 국민들에게 행복한 꿈을 꾸게 해본 적이 있습니까’라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정부의 무분별한 개입으로 암호화폐 가격이 폭락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암호화폐 직접투자시장이 죽었다고 해서 기술에 관한 관심까지 꺼진 것은 아니었다. 한 달에도 수 번씩 블록체인 관련 포럼이 열렸고, 각 블록체인 업체는 투자자 유치와 자사 블록체인 홍보에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500만 원대에서 횡보세를 보이던 비트코인과 20만 원대를 유지하던 이더리움이 11월부터 다시 하락하자, 그나마 남아 있던 호의적인 여론도 돌아섰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올해 초 정부가 나서서 말리지 않았다면 피해자가 크게 늘었을 것’이라는 게시글이 줄을 잇는다. 업계 관계자는 “투자 유치가 어려워진 것은 차치하고, 투자금 대신 받은 이더리움이나 비트코인 가격이 계속 떨어지니, 블록체인 개발사도 손해가 큰 상황”이라고 밝혔다. 

    폭락장이 이어지자 올해 초 하락장에서 종종 언급되던 ‘암호화폐는 아무 가치가 없다’는 식의 주장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암호화폐가 새로운 개념의 화폐라지만 가격 변동이 너무 심해 화폐 기능을 하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또 다양한 암호화폐가 개발돼 희소성도 떨어지면서 게임의 사이버머니 수준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암호화폐는 버리고 블록체인의 높은 보안 기술만 발전시키자는 주장도 다시 등장하고 있다.

    암호화폐, 원래 가치 없는 것이었나

    하지만 전문가들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따로 발전시키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당초 암호화폐가 개인이 블록체인에 참여하는 대가로 받는 보상이기 때문. 최공필 금융감독원 블록체인 자문단장은 저서 ‘비트코인 레볼루션’을 통해 ‘블록체인을 유지하는 수많은 개인의 노력과 에너지 없이 어떻게 시스템적 기반이 유지될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암호화폐 없는 블록체인은 그저 구조화된 데이터베이스일 뿐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인센티브 없는 경제행위를 기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물론 블록체인의 보안성만 살리는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노드(참여자) 간 상호 감시의 특성은 유지하되, 이들의 익명성을 포기하면 된다. 이를 ‘프라이빗 블록체인’이라 부른다. 참여자가 한정돼 있으니 일반 블록체인에 비해 처리 속도도 빠르다. 하지만 프라이빗 블록체인에도 약점은 있다. 확장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참여자가 정해져 있어 외부 인사의 참여가 힘들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블록체인은 인터넷,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인트라넷에 가깝다. 

    그래서 양대헌 인하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4월 ‘제24회 정보통신망 정보보호 컨퍼런스’ 주제 강연에서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블록체인과는 무관하다”고 못 박았다. 불특정다수 간 신뢰 문제를 해결하고자 블록체인이 개발됐는데, 이미 서로 신분을 아는 사람 사이의 신뢰 문제는 블록체인 없이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욕심이 황금알 낳을 거위 배를 갈랐나

    올해 중반기 암호화폐 가격이 빠르게 떨어지던 시기, 서울 중구 암호화폐 거래소의 모습. [뉴스1]

    올해 중반기 암호화폐 가격이 빠르게 떨어지던 시기, 서울 중구 암호화폐 거래소의 모습. [뉴스1]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뗄 수 없는 관계라면, 현 상황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암호화폐는 아니더라도 블록체인 기술에는 긍정적 반응이 지배적이기 때문. 

    비트코인은 과도한 주도권 다툼이 폭락의 단초가 됐다. 블록체인의 기능이나 보안상 문제가 생기면 이를 고쳐야 한다. 작은 문제라면 일부 시스템을 손보면 되겠지만 문제가 크면 손댈 부분이 대폭 늘어난다. 각 블록에 모든 거래 내용이 저장되니 모든 블록을 전부 고쳐야 한다. 이 때문에 기존 데이터를 복사해 완전히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만들게 된다. 블록체인 참여자가 모두 새 시스템 도입에 합의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보통 이견이 발생한다. 이견이 심한 경우에는 아예 구(舊)버전과 신(新)버전으로 블록체인이 나뉜다. 비슷한 시스템의 새로운 암호화폐가 하나 더 생기는 것. 대표적인 예가 비트코인과 비트코인 캐시, 이더리움과 이더리움 클래식이다. 하드포크로 새 암호화폐가 생기면 기존 블록체인 참여자들도 현재 보유한 암호화폐만큼 새 암호화폐를 갖게 된다. 갑자기 비슷한 성격의 암호화폐가 늘어나니 가격 등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 

    이번 비트코인 가격 하락의 시발점은 비트코인 캐시 하드포크 사태에 있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비트코인 캐시 커뮤니티는 크게 채굴업자 중심의 ‘비트코인캐시ABC’(ABC)와 개발자 중심의 ‘비트코인SV’로 나뉜다. 이들은 네트워크 업그레이드(포크) 방향을 두고 부딪쳤다. 결국 이들은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하드포크를 시작했다. 비트코인에서 뛰쳐나온 비트코인 캐시가 다시 또 두 종류의 암호화폐로 갈라서게 된 것. 이들의 전쟁으로 비트코인 계열 암호화폐의 존속 불확실성이 높아지자 투자자는 대거 매도에 나섰고, 가격이 폭락했다. ABC 진영을 대상으로 한 법정 싸움도 불거졌다. 12월 6일 미국 특허관리업체인 유나이티드아메리칸코프는 ABC의 대표격인 로저 버 비트코인닷컴 대표와 우지한 비트메인 대표 등을 대상으로 미국 플로리다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ABC 진영이 네트워크를 장악하려 시세를 조작하고,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겼다는 것. 업계에서는 이 싸움이 길어질수록 비트코인 가격 회복에는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 보고 있다. 

    이더리움의 가격 하락은 이유가 약간 다르다. 이더리움의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은 9월 8일 홍콩에서 열린 ‘이더리움 인더스트리 서밋(Ethereum Industry Summit)’에서 가격 하락에 대한 질문 공세를 받았다. 그는 “이더리움의 폭락은 지난해 9월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벌써 3번째 큰 가격 등락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가격 등락은 억만장자들의 암호화폐를 둘러싼 도박에서 비롯된다. 이더리움 네트워크 참여자는 동요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더리움 네트워크 발전을 위해 노력 중이며 현 상황이 어떻든 마지막 결과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암호화폐, 아직 죽지 않았다

    기축통화가 흔들리면서 시장 전체의 불안감이 커져가지만 상당수 전문가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여전히 긍정적 시각을 보내고 있다. 조 듀랜 유나이티드캐피털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CNBC와 인터뷰에서 “블록체인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향후 세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거래에 블록체인이 관여하게 될 것이다. 다만 블록체인이 상용화되려면 약 10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하락장임에도 투자 상품 개발이 늘고 있다. 미국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증권거래소(나스닥)는 내년 일사분기 안에 비트코인 선물상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지난해 11월부터 나스닥은 비트코인 선물상품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조건을 충족하기 어려워 최근에야 투자 상품을 내놓게 된 것. 

    CFTC는 또 미국 재무부, 증권거래위원회(SEC)와 함께 12월 12일 회의를 열어 이더리움을 자산으로 인정할지 여부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CFTC는 앞으로 두 달간 이더리움의 기능과 기술, 블록체인 생태계에 관해 의견을 들을 예정이다.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장인 박성준 교수는 “최근 암호화폐 가격이 떨어진다지만, 세계 각국의 다양한 블록체인팀이 새로운 기술을 내놓고 있다. 지금이 시장 암흑기로 보일 수 있으나 사실은 옥석을 가리는 시기가 될 것이다. 제대로 된 기술이나 비전이 없던 암호화폐는 자연히 사라지고, 시장성을 가진 암호화폐만 살아남아 건강한 생태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업계도 실력 향상 및 블록체인 신뢰도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오명을 쓰고 있는 암호화폐공개(ICO)의 신뢰도를 보완한 투자금 유치 방안을 마련 중이다. 한국블록체인스타트업협회는 신규거래소공개(Initial Exchange Offering·IEO)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IEO는 암호화폐만 공개해 투자자를 모으는 ICO와 달리, 거래소가 새 블록체인의 암호화폐를 판매한다. 해당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거래소도 타격을 입기 때문에 일정한 블록체인 생태계를 구축한 업체만 참여가 가능하다. 가이드라인 내용은 공시제도 도입, 암호화폐 판매 한도 지정 등이다. 

    이외에도 투자자에게 지분형 암호화폐(Security Token)를 나눠주는 증권형토큰공개(Security Token Offering·STO)라는 자금 모집 방법도 생겼다. 투자자는 보유한 지분형 암호화폐의 개수에 따라 해당 프로젝트가 창출한 이윤의 일부를 배당받는 것은 물론, 경영권에도 개입할 수 있다. 주식시장의 기업공개(IPO)와 가장 가까운 투자금 모집 방식이다. 

    현재 가격 하락을 주도하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미래도 완전히 어둡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 교수는 “앞으로도 장기간 시장을 주도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봤다. 그는 “새 프로젝트가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위주의 시장을 보완할 수는 있겠지만, 완전히 패권을 가져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두 프로젝트도 시장 변화에 발맞춰 계속 발전을 거듭할 것이므로 당분간은 양강체제가 무너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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