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45

2022.06.24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文 전 대통령에게 다섯 가지를 묻는다

[이종훈의 政說] “국가 안보와 직결됐다”지만 석연치 않은 부분 남아

  • 이종훈 정치경영컨설팅 대표·정치학 박사

    입력2022-06-2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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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DB]

    [동아DB]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첫 보도가 나온 때는 2020년 9월 23일 오후 1시 30분쯤이다. 국방부가 당일 밝힌 사실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9월 21일 오후 12시 51분 무렵 소연평도 남방 1.2마일 해상에서 해양수산부(해수부) 소속 어업지도선 선원 1명이 실종됐다는 신고가 해양경찰에 접수됐다(표 참조). 둘째, 신고 접수 후 오후 1시 50분부터 해양경찰 및 해군함정, 해수부 선박, 항공기 등 20여 대의 구조 세력을 투입해 실종 해역을 중심으로 집중 수색했으나 실종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셋째, 군 첩보에 의하면 9월 22일 오후 실종자가 북한 해역에서 발견된 정황이 포착돼 정밀 분석 중이다.

    회의 7시간 후 文에 보고했다는 靑

    공무원이 피살된 시점은 국방부 보도자료가 나오기 전날인 9월 22일 오후 9시 40분쯤이다. 군 당국은 그 직후인 오후 11~12시 피살 사실을 국방부 장관과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 보고했다. 청와대에서는 9월 23일 오전 1시 관계장관회의가 열린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는 언제 보고가 이뤄졌을까. 청와대 측이 당시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과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대통령 대면보고를 했다고 밝힌 시점은 9월 23일 오전 8시 30분이다. 군 당국이 국방부 장관과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 피격 사실을 보고하고 8~9시간 뒤다.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해 관계장관회의까지 소집해 오전 1시 전후에 논의했지만 보고는 7시간 뒤에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상식적이지 않다.

    앞서의 국방부 보도자료에 피격 사망 사실에 관한 내용이 일절 없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북한군이 사격하고 시신을 불태웠다는 사실은 2020년 9월 23일 오후 월북설이 보도를 탄 후, 다음 날 오전 국방부가 정식으로 확인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어선이 전복되더라도 당일 즉시 보도가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야간 수색 결과 성과가 없으면 다음 날 아침 해당 사실과 함께 해군, 해경이 수색을 재개했다는 보도도 나오기 마련이다. 유독 서해 공무원 실종 당시에는 사건 발생 후 이틀이 지나도록 보도가 나오지 않았다. 사건 발생 초기 누군가 보도를 경계하며 적극적으로 정보 유출을 막은 것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불러일으킨다.

    실종 확인 직후 정상적으로 보고가 이뤄졌다면 문 전 대통령은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 실종자를 찾으라고 지시를 내렸어야 한다. 첫 보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전제하더라도 해당 공무원이 북한 해역에서 발견됐다면 그 시점에는 보고가 이뤄졌어야 한다. 대통령에게 제때 보고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북한 해역에서 해당 공무원이 발견되고 6시간가량 지나서야 피격이 이뤄졌다. 2020년 9월 22일 오후 9시 40분쯤으로, 중대 사건으로 전환된 시점이다. 청와대 측 설명에 따르면 이때도 대통령에게 보고가 이뤄지지 않았다. 사실이라면 노 전 비서실장과 서 전 안보실장은 보고 누락이라는 직무유기를 한 셈이다. 문 전 대통령 역시 보고를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설령 월북으로 추정돼도 그 시점에는 북측 해역으로 흘러간 실종자임을 전제하고 경고 기동이나 방송 등 국민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섰어야 한다.



    공교롭게도 관계장관회의가 열릴 즈음인 2020년 9월 23일 오전 1시 30분 문 전 대통령의 비대면 유엔총회 연설이 시작됐다. 피격 사건 직후다. 보름 전인 9월 8일 문 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다. 10월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당연히 유엔총회 연설에도 종전 선언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상황에서 북측이 한국 공무원을 사살하고 시신을 불태웠다. 대형 악재가 아닐 수 없다. 여론이 북한 성토 분위기로 급변하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런데 월북한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월북자에 대한 처분권은 기본적으로 북측에 있기 때문이다. 책임을 북측으로 돌리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월북 의사 첩보 진실성 흔들

    만약 앞서의 의도대로 문 전 대통령과 청와대가 움직였다면 의구심은 대부분 해소된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순서다. 공무원 실종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대통령과 비서실, 안보실이 기민하게 대응해 보도 통제부터 한 뒤 상황 전개를 지켜보면서 사건을 최소화하려 했다. 그런데 북측이 예상치 못한 총격을 가하면서 대중에게 알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봉착했다. 문 전 대통령 책임론이 제기되는 것은 막아야 했기에 대통령에게는 사전에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정리한 것 아니냐는 얘기다.

    문 전 대통령은 유족 측 요구에도 관련 자료 공개를 거부했다. 오히려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해 봉인했다. 본인이 제때 보고를 받았고, 적절한 지시를 내렸으며, 월북으로 결론 내린 증거가 명확하다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공개했어야 할 자료다. “국가 안보와 직결된 내용이 많다”지만 잘못이 드러날 가능성 때문은 아닐까라는 의문도 든다.

    문재인 정부는 월북 판단 근거로 4가지를 들었다. 첫째, 당시 공무원이 구명조끼를 착용했다. 둘째, 그는 신발을 벗어뒀다. 셋째, 소형 부유물을 이용했다. 넷째, 북측에 월북 의사를 표시했다. 도박 빚이 많았고 정신공황 상태였다는 부가설명도 덧붙였다. 이 가운데 가장 확실한 근거로 든 것이 감청을 통해 확보했다는 ‘북측에 월북 의사를 표시했다’는 첩보다. 그런데 이것조차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의사 표현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결정적 증거 기능을 상실한 상태다.

    문 전 대통령과 노 전 비서실장, 서 전 안보실장은 다음 질문에 답을 내놔야 한다. 첫째, 문 전 대통령은 언제 첫 보고를 받았는가. 둘째, 문 전 대통령은 적절한 조치를 취했는가. 셋째, 문 전 대통령은 왜 자료를 봉인했는가. 넷째, 유엔총회 연설 때문에 월북으로 몰아간 것 아닌가. 다섯째, 월북으로 결론 내린 이들은 대체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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