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30

2022.03.11

文 “원전 주력 활용” 발언은 ‘탈원전 실정 지우기’

[이종훈의 政說] 5년 만에 탈원전 입장 번복… 실패 인정 정공법 필요

  • 이종훈 정치경영컨설팅 대표·정치학 박사

    입력2022-03-1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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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하고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원전의 가동을 중단하여 탈원전 국가로 가겠습니다.”

    2017년 3월 26일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대구·경북 비전’ 발표 기자회견 자리에서 한 말이다. 문 대통령은 당선 직후인 2017년 6월 19일 고리원전 1호기 영구정지 기념식에 참석해 “고리 1호기의 가동 영구정지는 탈핵 국가로 가는 출발”이라고 말했다. 이어 “준비 중인 신규 원전 건설계획은 전면 백지화하겠다. 원전의 설계 수명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책임론 우려해 실정 지우기

    문재인 대통령이 2월 22일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동아DB]

    문재인 대통령이 2월 22일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동아DB]

    5년이 지난 2월 25일 문 대통령은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현안 점검회의’를 주재하며 건설이 지연된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의 조속한 가동을 주문했다. “원전이 지속 운영되는 향후 60여 년 동안은 원전을 주력 기저전원으로서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해당 발언이 탈원전 정책의 포기로 받아들여지면서 증권가에서는 원전 관련주가 치솟는 일까지 벌어졌다.

    “탈원전 정책을 포기한 것이 아니냐”, “임기 말 바꾸기 면피성 발언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지자 박수현 대통령국민소통수석은 방송에 연달아 출연해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을 얘기했을 때도 60년 동안 2084년까지 원전 비율을 천천히 줄여 가겠다는 의미였는데, 마치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원전을 다 없애는 것으로 이해를 하고 보도하지 않았느냐”라고 말했다. 박 수석은 1월 3일 한 방송에 출연해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탈핵 정권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은 물론 당선 이후에도 여러 차례 단호하면서도 반복적으로 ‘탈원전’과 ‘탈핵’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하지만 최근 박 수석은 “탈원전, 탈핵 정권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명백한 ‘말 바꾸기’가 아닐 수 없다. 필자는 문 대통령의 이번 발언을 ‘실정(失政) 지우기’로 해석한다. “60년 동안 주력 기저전원으로서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는 기록을 남겨두는 전략인 것으로 보인다.



    “탈핵 추진하지 않았다”

    월성 원전 관련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2021년 2월 12일 강민석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월성 원전 1호기 폐쇄는 대통령 공약사항이고 정부의 주요 정책 과제로 선정돼 공개적으로 추진됐던 사안”이라며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라고 검찰을 비판했다. 당시 청와대가 검찰 수사에 개입했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듯한 발언이다. 2021년 7월 6일 당시 윤석열 대선 주자는 “정치에 참여하게 된 것은 월성 원전 사건과 무관하지 않고, 정부 탈원전과도 무관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월성 원전 사건이 고발돼서 대전지검이 전면 압수수색에 나서자마자 감찰과 징계 청구가 들어왔고, 어떤 사건 처리에 대해서 음으로 양으로 굉장한 압력이 들어왔다”라는 이유에서다. 수사에 대한 외압을 확인해준 발언이다.

    월성 원전 수사에 대한 청와대의 초기 입장은 공약이행 곧 통치행위이기 때문에 법적 판단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검찰이 관련자들을 기소했고 실형 선고 가능성이 높아지자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말 실정 지우기에 적극적이라는 것은 실패에 대한 자각은 있다는 뜻이다. 차라리 실패를 인정하는 정공법이 더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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