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08

2021.10.01

대장동 게이트 ‘보험’ 든 ‘깃털’ 뽑혔으니 화살 ‘몸통’ 향할 차례

누가 성남의뜰 지배·배당 구조를 짜게 했나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21-10-0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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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29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수사진이 경기 성남시 화천대유자산관리 본사를 압수수색한 자료들을 옮기고 있다. [동아DB]

    9월 29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수사진이 경기 성남시 화천대유자산관리 본사를 압수수색한 자료들을 옮기고 있다. [동아DB]

    경기 성남시 대장동 부동산 비리 의혹이 점차 커지고 있다. 부정부패 사건 관계자들은 의혹이 불거지면 각자도생해야 한다. “내가 아니라 아무개가 실세다. (그렇게 하도록) 그가 강요했다”며 책임을 전가하고, 핑계가 궁해지면 ‘혹시나’ 하고 들었던 ‘보험’을 꺼내 들게 마련이다. 도마뱀처럼 상대에게 자기 꼬리를 던져줘 위기를 모면하려는 것이다. 다만 꼬리 토막이 너무 많아지면 사람들은 도리어 “얼마나 큰 도마뱀(부정부패)이기에 자른 꼬리가 이렇게 많냐”며 의문을 갖는다. 불을 끈다고 퍼부은 게 알고 보니 휘발유더라는 것이다.

    ‘사업판’엔 여야 없다

    정치판과 사업판은 따로 논다. 정치적으로 치고받던 이들도 대박 칠 사업이라면 망설이지 않고 ‘한배’를 탄다. 그리고 만족감이 크면 ‘동업자’ 의식까지 생긴다. ‘방해’를 피하려는 사업가는 여야 정치인을 모두 끌어들인다.

    대장동 개발사업을 주도한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이사이자 관계사 천화동인 1호 대표 이한성 씨. 이 대표는 관계자 중 가장 많은 배당금 1208억 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화영 전 열린우리당 의원(17대 국회) 보좌관을 지낸 인물이다. 이 전 의원은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물론, 이재명 캠프 좌장격인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이해찬 전 대표의 측근으로도 알려졌다. 이 지사 밑에서 경기도 평화부지사를 지냈고 현재 경기도 출자기관 킨텍스 대표다. 이화영 전 의원과 이한성 대표, 화천대유 최대주주 김만배 씨는 성균관대 동문이기도 하다. 측근이 연루되자 의혹은 다시 이재명 지사를 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자 새로운 꼬리 토막이 던져진 것일까. 천화동인 3호 대표로서 101억 원을 배당받은 김명옥 씨(김만배 씨 누이)가 2019년 윤석열 전 검찰총장 부친 명의의 서울 연희동 주택을 매입했다고 밝혀진 것.

    2015년 법조기자였던 김만배 씨는 잘 알고 지내던 박영수 특별검사(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를 월 1500만 원에 화천대유 고문변호사로 영입했다. 이듬해 그는 특검이 됐는데 이 과정에서 박지원 국가정보원장(당시 국회의원) 추천이 주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영수 전 특검은 윤석열 당시 검사를 수사팀장에 지명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개명 후 최서원)를 ‘경제 공동체’로 묶어 기소했다. 2015년 화천대유는 박 전 특검의 딸을 직원으로 채용했으며, 그 딸이 지금 퇴직 절차를 밟고 있다고 한다. 분양을 끝낸 시행사나 자산관리회사는 임직원을 내보내고 정산한 후 해체해야 하기 때문이다.

    호흡이 맞았던 이들은 법인을 없앨 때 상당한 보상을 주고 내보냈다가 새 사업을 할 때 다시 불러들일 수도 있다. 상당한 보상은 다음에 차릴 법인에서도 충성을 끌어내는 동인이 된다. 화천대유는 대장동 개발사업으로 배당금 577억 원을 받고, 두 필지 아파트 분양으로 3000억 원, 성남도시개발공사(성남도공)로부터 싸게 받은 세 필지를 건설회사에 매각해 또 3000억 원 매출을 올렸다. 다만 이러한 이익은 화천대유라는 법인이 받은 것이니 개인이 함부로 가져갈 수 없다. 일정한 근거를 만들고 배정받아 가져가야 한다. 문제가 생기는 것을 막고자 이 과정에서 납세도 성실히 한다.



    화천대유가 임직원들에게 퇴직 시 ‘5억(기본퇴직금)+α(성과급)’를 지급하겠다는 약정서를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무소속 곽상도 의원의 아들 곽병채 씨는 50억 원을 받았으니 이 약정이 ‘근거’일 수 있다. 그에게 배정된 ‘+α’는 45억 원인 셈이다. 실수령액은 28억 원이니 22억 원은 세금으로 원천징수된 것으로 보인다. +α로 받은 금액이 너무 많다는 지적에 화천대유 측은 “(곽씨가) 건강을 상할 정도로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라며 이를 증명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모든 관계자가 받을 +α 액수가 똑같다고 보면 오산이다. 화천대유에서 임원으로 퇴직한 이는 100억 원 가까이 받았다고 하니, +α는 이현령비현령이다. 김만배 씨 등 주주는 +α를 더 많이 가져갈 수 있는 것이다. 곽씨는 현역의원 아들이기에 남보다 큰 +α를 줬을 수도 있다. 화천대유는 계약 취소된 대장동 아파트 한 채를 박영수 전 특검의 딸에게 분양가에 매도했는데, 이 아파트 호가는 현재 분양가의 2배가량이다. 화천대유 측은 개인정보 침해가 우려되고 현재 퇴직 절차를 밝고 있다는 이유로 박 전 특검의 딸에게 배정되는 +α가 어느 정도 규모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

    곽상도, 박영수 엮은 김만배

    대장동 개발에는 천화동인 4호 대표로서 1007억 원을 배당받은 남욱 변호사도 개입했다. 남 변호사는 2009년 대장동 민간개발 문제로 기소됐으나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그는 대장동 게이트 핵심 인물로 지목돼 출국 금지된 유동규 전 성남도공 기획본부장과 함께 2013년 위례신도시 개발에 참여했다. 이들은 ‘위례자산관리’라는 법인을 만들었는데, 남 변호사 부인인 전직 MBC 기자도 이사로 참여했다. 2013년 곽 의원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이었다. 2016년 곽 의원이 20대 국회의원에 당선하자 남 변호사 부부는 개인이 후원할 수 있는 최고 금액 500만 원을 각각 후원했다고 한다. 김만배 씨는 20년 가까이 법조기자로 활동했으니 어지간한 법조인을 두루 안다고 봐야 한다. 아버지 곽 의원의 권유로 아들 곽씨는 공모 절차를 밟아 화천대유 1호 사원으로 입사했다. 박영수 전 특검의 딸이 화천대유에 입사한 것도 김만배 씨와 박 전 특검의 관계 때문이다.

    그러나 부패한 사업가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들어놓은 ‘보험’이 의혹의 주류일 수는 없다. 대장동 게이트의 본류는 따로 있다. 대장동 개발을 추진한 법인은 화천대유와 성남도공이 참여한 ‘성남의뜰’이다. 성남의뜰은 공공기관이 아니니 민간법인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도 말 많던 대장동 땅을 수용했는데, 그 비결은 성남도공이 성남의뜰 지분의 ‘50%+1주’를 가졌던 데 있다. 공공기관이 50% 이상 지분을 가진 업체는 토지를 수용할 수 있는데, 이에 따라 성남의뜰은 오랫동안 분쟁을 빚고 이해관계가 얽힌 대장동 땅을 저렴한 가격에 빠르게 수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성남의뜰을 실제 운영한 것은 성남도공이 아니라 1% 지분을 가진 화천대유였다. 그 비밀은 보통주에 있다. 성남의뜰에 참여한 하나은행 등 금융회사들은 법적으로 시행을 맡을 수 없다. 그 때문에 성남의뜰 측은 이들에게 우선주를 배당했다. 우선주는 의결권이 없으니 성남의뜰 경영에는 참여하지 못하는 대신 배당은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그리고 50%+1주로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진 성남도공에도 1800억 원이 배당되도록 하는 우선주를 줬는데, 이것이 대장동 게이트의 최대 의문점이다.

    9월 1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관련 의혹에 대해 해명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동아DB]

    9월 1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관련 의혹에 대해 해명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동아DB]

    ‘성남의뜰’ 설계자는?

    1% 지분을 가진 화천대유와 SK증권을 통해 신탁으로 6%를 투자한 천화동인만 보통주를 갖고 성남의뜰을 경영했다. 우선주에는 보통주보다 높은 배당을 주는 것이 일반적인데 성남의뜰을 만든 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성남도공은 1800억 원만 받을 수 있도록 우선주 배당을 제한한 반면, 보통주를 가진 측에는 사실상 무제한 배당을 허용했다. 화천대유와 천화동인은 주소지는 물론, 전화번호도 같으니 사실상 동일 법인으로 봐야 한다. 덕분에 이들은 4040억 원을 배당받았다. 누가 성남의뜰의 지배·배당 구조를 이렇게 설계했을까.

    의문은 그것뿐이 아니다. 화천대유는 성남의뜰로부터 수의계약으로 싼값에 다섯 필지를 분양 받았다. 그중 세 필지는 건설사에 3000억 원에 되팔고, 두 필지는 아파트 분양으로 역시 3000억 원 수익을 올렸다. 여기에서 거둔 수입이 배당금에 필적할 정도다. 관심은 자연스레 이러한 수의계약이 가능케 한 이에게 쏠릴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대장동 개발은) 5503억 원을 시민 이익으로 환수한 성공적 공영개발”(9월 14일 국회 기자회견 발언)이라는 이재명 지사의 주장은 되레 의심을 받게 된다. 이러한 구도는 인허가권을 가진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이 허용해주지 않으면 작동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1원의 부당이득도 취한 바 없다”는 이 지사의 주장이 사실일지라도, 화천대유가 특혜를 받는 식으로 성남의뜰 지배·배당 구조를 짜도록 허용했다면 이는 배임일 수 있다. 실제 성남의뜰을 설계한 이를 밝히려면 수사가 필요해 보인다. ‘보험 약발’과 ‘깃털’에 쏠렸던 관심이 줄어들면 관심은 몸통을 향할 수밖에 없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고 조만간 특검이 꾸려질지도 모른다. 특검은 법무부 장관의 결심이나 국회 의결로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천화동인 5호 소유주 정영학 회계사는 9월 27일 검찰 참고인 조사 과정에서 녹취록과 자필진술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해당 녹취록에는 대장동 개발이익금 분배에 대한 논의, 정계와 법조계 로비 정황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대장동 게이트의 진실, 그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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