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71

2021.01.01

서민 “홍진영이 ‘친문’이었다면 사과 필요 없고 청원 쏟아졌을 것” [서민의 야설-6]

  •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입력2020-12-29 11:3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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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동아DB]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동아DB]

    “지금 생각하니 제게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습니다. 과한 욕심을 부린 것 같습니다. 지난날을 돌아보며 제가 또 다른 욕심을 부린 건 없었나 반성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조선대에서 쓴 11년 전 석사논문이 표절이라는 의혹이 불거진 11월 6일, 홍진영은 자신의 SNS에 사과글을 올렸다. 석 박사 학위를 반납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완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지, 그 뒤 ‘교수님이 문제없다고 했다’느니 ‘학위로 강의할 것도 아닌데’ 같은 말을 한 것이 네티즌의 공분을 샀다. 결국 홍진영은 석사논문이 표절이라는 조선대의 진상조사 결과가 나오자 다시 한번 진한 사과를 해야 했다. “표절을 인정하는 순간 다시는 무대에 오를 수 없을 것 같아 무서웠습니다…성숙하지 못했습니다. 어른답지도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녀의 사과를 보며 가슴이 뭉클했다. 저런 진솔한 사과를 본 것이 너무 오랜만이어서였다. 지난 4년간, 이 나라 위정자 사이에 사과가 있기나 했던가? 예컨대 코로나19라는 대역병이 도는 와중에도 검찰총장 찍어내기에 여념이 없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법원이 윤석열 총장을 다시 복귀시킨 12월 25일, “국민들께 불편과 혼란을 초래하게 된 것에 대해 사과말씀을 드린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기보단 검찰에 대한 경고에 더 많은 분량을 할애했고, 심지어 마지막은 전가의 보도인 ‘검찰개혁’으로 마무리했으니, 이걸 굳이 ‘사과’의 범주에 넣어야 할지 의문이다.

    홍진영의 사과와 조민의 침묵

    하지만 그런 형식상의 사과조차 하지 않은 이들이 있으니, 그건 바로 조국 패밀리다. 조국 교수가 법무부장관 후보로 지명된 2019년 8월 시작된 소위 ‘조국사태’는 2020년 12월 23일, 정경심 교수가 4년 징역형을 선고받으면서 일단락됐지만, 이 과정에서 ‘친문’이라 불리는 지지 세력의 반발은 상상을 초월했다. 

    수사 초기부터 그들은 검찰이 개혁에 반발해 그런 행동을 한다며 조국 교수를 옹호했고, 검찰청이 위치한 서울 서초동에 모여 ‘조국수호’를 외치기까지 했는데, 별반 가진 게 없는 일반인들이 비리를 저지른 ‘초엘리트’를 지키겠다며 시위를 벌이는 모습은 무척이나 생경했다. 심지어 조국이 죄가 없음을 강변하는 소위 ‘조국백서’라는 책까지 나왔으니, 이쯤 되면 사활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국 패밀리에게 적용된 혐의는 크게 3가지, 즉 입시비리와 사모펀드, 그리고 증거인멸이었지만, 친문들은 다른 혐의는 다 외면한 채 “겨우 표창장 하나 가지고 사람을 못살게 군다” “그렇게 먼지 나게 털면 뭐 하나 안 나올 사람이 어디 있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조국 패밀리의 혐의는 하나둘씩 사실로 입증됐다. 재판정에 나온 증인들이 하나같이 그들에게 죄가 있다고 증언한 것이다. 그런데도 친문들은 이를 다 편파보도 탓으로 돌렸고, ‘실제 재판에서 검사 측 논리가 다 박살나고 있다’며 선동하기도 했다. 그들의 바람과 달리 1심 재판부는 위 세 가지 혐의 모두 ‘유죄’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조국 패밀리가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렇다면 그간 거짓말로 선동한 세력들이 사과하는 게 마땅해 보이지만, 친문들이 보여준 건 사과가 아닌 분노였다. 사법부가 말도 안 되는 판결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들은 15개 혐의 중 11개가 유죄라는 판결내용은 싹 무시한 채, ‘설령 표창장이 위조라 해도 그게 4년형을 받을 만한 일이냐?’고 항변했다. 심지어 판결을 내린 판사들을 탄핵하자는 국민청원이 올라왔는데, 여기 동의한 이들이 벌써 40만을 넘었단다. 이 사태의 당사자인 조국 패밀리는 어떨까. 자신들로 인해 1년 반 동안 나라가 둘로 쪼개졌다면 최소한 미안한 마음은 가져야했지만, 그들의 반응은 ‘역시나’였다. 조국 교수는 SNS에 ‘이것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며 항소해서 다투겠다고 썼고, 뉴스공장에 나와 자신이 봉사활동을 한 게 맞다고 우겼던 조민 역시 사과는커녕 침묵하고 있다.

    트로트 가수 홍진영. [IMH엔터테인먼트 제공]

    트로트 가수 홍진영. [IMH엔터테인먼트 제공]

    홍진영은 당대의 히트곡 ‘사랑의 배터리’로 스타가 됐다. 표절은 분명 잘못이지만, 그녀의 학위가 오늘의 성공에 도움을 준 게 아니며, 그로 인해 피해를 본 이도 없다. 그런데도 그녀는 사과와 함께 모든 방송에서 퇴출됐다. 조국 딸 조민은 다르다. 그녀가 부산대 의전원에 합격해 의사면허를 목전에 둔 건 위조된 표창장과 직접 하지도 않고 받아낸 6개의 인턴 증명서가 결정적이었다. 조민 때문에 의사가 될 수 있었던 한 명이 불합격했으니, 피해자도 있다. 그런데도 조국 패밀리가 사과를 안한 채 버틸 수 있는 비결은, 그들의 거짓말을 진짜라고 우겨주는 수십만의 지지자들이 있어서였다. 늑대를 봤다고 혼자 우기면 양치기 소년이 되지만, 수십만이 같이 봤다고 우기면 그 늑대는 존재한 것이 되니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홍진영이 잘못했다. 왜 그녀는 일찌감치 문재인 지지선언을 하지 않았을까? 만일 그랬다면 홍진영은 친문들이 꼭 지켜야 하는 ‘개념 연예인’이 됐고, 친문들의 비호를 받았을 텐데. 그 와중에 홍진영의 논문이 표절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 보자.

    ‘친문’ 감싸기부터 청와대 청원까지

    1단계. 표절 가지고 왜 난리를 피우냐고 난리를 친다. “석사논문은 원래 다 베끼는 것이다. 그걸 표절이니 뭐니 하는 놈들은 논문 한 번도 안 써본 애들이다.” “표절 비율 74%면 홍진영이 26%나 썼다는 것 아니냐?” “인기가수가 논문을 쓰는 건 장려할 일이지 흠잡을 일은 아니다.” “그깟 논문표절로 나훈아에 필적하는 대가수를 끌어내리려 하다니!” 

    2단계. 표절을 주장하는 세력에 대한 음해가 시작된다. “홍진영이 추구하는 트로트 개혁에 반대하는 적폐들의 준동이다.” “홍진영의 인기를 시기하는 무리들의 소행이다.” “○○○ 팬클럽이 그런 거 아냐?” 

    3단계. 조선대 앞에 수십만이 모여 ‘진영 수호’를 외친다. ‘나도 표절범이다’는 구호가 난무하고, 홍진영의 것으로 추측되는 승용차를 물티슈로 닦는 이도 생긴다. 홍진영 같은 연예인에게 표절은 죄도 아니라는 ‘홍진영 백서’가 출간돼 절찬리에 팔린다. 

    4단계. 조선대가 홍진영의 논문이 표절이라고 발표한다. 진상조사위원회에 참가한 교수들의 명단이 공개되고, 이들을 해임하라는 청와대 청원에 수십만 명이 동의한다. 홍진영은 이게 다 자신의 운명이라며, 그깟 학위 없어도 된다고 한다. 김어준은 ‘트로트를 망치려는 사법부의 쿠테타’라고 말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홍진영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쓰고 보니 좀 황당해 보이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데. 그러니 뭔가 구린 게 있는 분들이여, 빨리 친문 선언을 하시라. 임기 말까지 앞으로 1년 남짓이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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