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69

..

서민 “백신 ‘말바꾸기’, 불리하면 기준 바꾸는 정권 습성 또 드러내”

  •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입력2020-12-15 11:04:07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서민의 야설-5〉

    • 백신 필요할 때 정부 당국자들은 일부러 늦게 구매하는 것처럼 위장

    • ‘문파’ 사이트, ‘상황이 급하지 않으니 백신이 없어도 된다’ 궤변

    • “잘못했을 때 자기들이 기준을 바꿔 잘못 안 한 걸로 한다”는 진중권 명언 적중

    *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의 ‘야설(野說)’은 격주 화요일 ‘주간동아’ 온라인 사이트에 게재됩니다. 제도 정치권 밖(野)에서 바라 본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서 교수의 날카로운 입담(說)으로 풀어냅니다. <편집자주>

    12월 8일(현지시각) 영국이 구입한 화이자·바이오엔테크 코로나19 백신이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해저터널 '유로터널'을 통해 이송되고 있다. [뉴시스]

    12월 8일(현지시각) 영국이 구입한 화이자·바이오엔테크 코로나19 백신이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해저터널 '유로터널'을 통해 이송되고 있다. [뉴시스]

    12월 13일 우리나라의 코로나 확진자는 1000명을 넘기며 사상 최다를 기록한다. 건조한 겨울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하기엔 정부의 대응이 영 아쉽다. 이미 11월 20일, 감염학회를 비롯한 11개 학술단체 전문가들이 ‘이대로 가다가는 하루 1000명을 넘는다’고 경고했고, 정은경 본부장도 비슷한 말을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거리두기 단계를 올리지 않았다. 이제야 3단계 격상을 검토 중인데, 이 조치가 시행되면 확진자 수는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 정부는 잽싸게 단계를 내리고, 다시 확진자가 늘어나고, 또 단계를 올리고, 이런 일이 앞으로도 상당기간 반복될 것이다. 상상만 해도 지겹지 않은가. 

    최근의 확진자 폭등에 국민 탓을 해선 안되는 게, 지난 1년간 우리 국민은 정부 지침을 순순히 따라줬고, 이것이야말로 정부가 자기 공인 양 자랑해온 K-방역의 실체였다. 하지만 앞으로 또 1년간 이 짓을 하라고 한다면, 그걸 참아낼 이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백신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우리에게 전 국민이 접종하기에 충분한 양의 백신이 있다면,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도 곧 끝나겠구나, 조금만 더 참자’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지 않겠는가.

    백신 필요할 때 거짓말만 하는 정부

    서민교수. [동아DB]

    서민교수. [동아DB]

    다른 나라들이 백신구매에 나선 것은 이 때문이었다. 백신개발이 한창이던 올해 5월부터 돈과 제정신을 가진 나라들은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가능성 있는 업체에 대한 정보를 얻었고, 결국 자기들이 맞을 백신을 선구매한다. 그들이 뭐가 좋을지 모른다며 3종, 4종씩 백신을 사들일 때, 돈은 있지만 제정신이 없는, 덤으로 능력까지 없는 우리 정부는 11월 말까지 백신을 단 하나도 계약하지 못하는 성과를 올린다. 지난 몇 달 동안 국내 전문가와 언론들이 “백신을 당장 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우리 정부는 “최대한 노력 중” “백신 확보 추진”이란 하나마나한 소리만 지긋지긋하게 반복했다. 심지어 어떤 고위공무원은 “백신 사재기하는 선진국들이 인류애가 없다”고 비판하기까지 했으니, 이분이 우리나라 방역 담당자가 맞는지 의심스럽다.

    그러던 11월, 화이자 백신이 임상시험에서 방어력 94%의 놀라운 성공을 거뒀다는 뉴스가 나온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신속 승인은 당연하고, 영국과 미국은 12월 초·중순경 화이자 백신을 접종한단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지난 세월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우리도 빨리 백신을 사야겠구나’는 마음을 먹는 게 맞지만, 우리 정부는 어떻게든 국민들을 속여 욕을 덜 먹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그들은 화이자 백신에 무슨 큰 부작용이라도 있는 것처럼 매도했고, “먼저 접종하는 나라들에서 안전성이 검증된 뒤에야 우리 국민에게 접종하겠다”면서 마치 일부러 백신을 늦게 구매하는 것처럼 위장하기도 했다. 소위 ‘문빠’ 사이트에서 ‘다른 나라가 모르모트가 되는 꼴’ ‘우리는 상황이 급하지 않으니 백신이 없어도 된다’ 같은 궤변이 떠돌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희대의 코미디는 보건복지부장관이면서 보건은 일반인보다 훨씬 모르는 박능후 장관의 다음 말이었다. “화이자나 모더나에서 빨리 계약을 맺자고 오히려 그쪽에서 재촉하고 있는 상황이다.” 화이자와 모더나 모두 내년 1년간 생산할 수 있는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이 계약된 상태, 지금 계약한다면 2022년이나 백신을 받을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화이자가 제발 백신 좀 사달라고 재촉한다니, 이건 너무 심하지 않았나?



    “상황이 불리하면 기준을 바꾸는 정권”

    영국에서 90세 여성이 세계 최초로 화이자 백신을 맞던 12월 8일에 맞춰 정부는 다음과 같은 기사로 ‘물타기’를 시도한다. “백신 4400만 명분 확보, 해외 제약사 4곳과 계약·합의.” 이 기사에 나온 제약사에는 백신을 만든 화이자와 모더나가 포함돼 있었다. 문 지지자들은 이 기사에 감격해 눈물지었지만, 세상 사람을 다 속일 수는 없었다. 결국 정부가 실제로 계약한 것은 아스트라제네카, 그것도 겨우 1000만 명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나마도 아스트라제네카는 효과도 떨어지는데다 임상3상 시험마저 실패해, 언제쯤 FDA 승인이 떨어질지 모르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 뒤 희한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정부와 친문 지지자들, 그리고 어용 지식인까지 갑자기 아스트라제네카야말로 효과 좋고 안전한 백신이라고 칭송한 것이다. 예컨대 김어준이 진행하는 뉴스공장에 나온 어떤 교수는 백신에는 당연히 있기 마련인 알레르기 반응이 마치 화이자만의 부작용인 것처럼 말했고, 웬만큼 사는 나라들은 다 갖추고 있는 영하 70도 보관방법을 문제 삼았다.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가 동시에 있다면 아스트라제네카를 쓰는 게 당연하다나. 음모론의 기수인 김어준도 한 마디 거든다. 아스트라제네카가 영국에서 만든 것이라 미국 FDA가 승인을 안해주는 것이 아니냐고. 이 황당한 말을 들었던 보통의 시청자는 기가 막혔을 것이다. 문빠 시청자들은 빼고.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정부는 백신을 늦게 산 이유를 안전한지 여부를 보고 난 뒤 사려다 그렇게 됐다고 말한다. 그런데 임상시험 결과 별다른 부작용이 없어서 미국 FDA에서 승인까지 받은 화이자 백신을 위험한 것처럼 매도하면서, 아직 임상시험도 끝나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심한 부작용까지 발생한 아스라제네카를 계약한다? 더 웃기는 일은 그 다음에 벌어진다. 원래 정부가 발표한 백신접종 일정은 내년 하반기였다. 그 경우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포기해야 될 수도 있는 법, 그래서 국민 생명보다 지지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한 마디 던진다. “백신 접종 일정을 앞당겨 보라.” 그러자 정부는 미국 FDA가 승인하지 않더라도 한국 식약처가 아스트라제네카를 승인한 뒤 국민에게 접종시키겠다고 발표한다. “미국 FDA는 미국 식약처일 뿐, 한국 식약처보다 더 나은 게 없다”는 말이 친문 커뮤니티를 장식한 것은 그 직후다. 지난 3월 말, 우리나라 진단키트가 미국 FDA로부터 긴급승인을 받았다며 자랑하던 건 다 잊은 걸까. 진중권 선생의 명언이 생각난다. “현 정권은 잘못을 했을 때 기준을 바꿔 자기들이 잘못 안 한 걸로 한다.”

    차라리 중국백신이라도 들여와라

    이상에서 본 것처럼 미국이나 영국 기업이 만든 백신의 도입은 요원한 상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발상의 전환을 제안한다. 차라리 중국백신을 들여오자. 물론 임상시험 결과조차 공개 못 하는 중국백신이 좀 찜찜하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무능한 정부를 선택한 국민이니, 이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지 않겠는가? 이 경우 현 정부의 오랜 로망인 ‘중국몽’도 실현될 수도 있다! 기사에 따르면 중국에선 100만 명 이상이 백신을 접종했지만 아직 심각한 부작용은 없다니, 언제 올지 모르는 아스트라제네카만 바라보는 것보단 이게 낫지 않겠는가?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