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59

2020.10.09

6.4m 이내에서 흉기 든 괴한 달려들 때 총검 응수가 軍 기본 수칙 [웨펀]

이근 대위가 ‘총검술 폐지 반대’하자 ‘엘리트 전투요원’의 국감증인 채택 거부

  •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입력2020-10-01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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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에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이근 예비역 대위. [피지컬갤러리 유튜브채널]

    유튜브에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이근 예비역 대위. [피지컬갤러리 유튜브채널]

    최근 ‘유튜브’에서는 그야말로 ‘이근 대위 신드롬’이 불고 있다. 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수였던 이창규 박사의 아들로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버지니아 군사대학(Virginia Military Institute)을 졸업하고 대한민국 해군사관후보생(OCS) 102기로 임관한 그는 대단히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청해부대 작전팀장

    그는 아버지의 권유로 미군 입대를 포기하고 한국으로 건너와 대한민국 해군 장교로 임관한 뒤 해군특수전전단(UDT/SEAL)에 지원해 국내에서 다양한 특수전 교육을 우수한 성적으로 이수했다. 청해부대 작전팀장으로 해적 소탕과 인질 구출 작전에서 공을 세웠고, 이후 세계 최강의 특수부대 미 해군 네이비씰(Navy SEAL)에 위탁 교육을 갔다. 

    그는 신규 지원자는 물론 위탁 교육을 온 해외 특수부대 요원들도 다수가 중도 탈락한다는 미 해군 네이비씰의 27주 과정의 BUDS(Basic Underwater Demolition/SEAL), 5주 과정의 JOTC(Junior Officer Training Course), 진정한 네이비씰 대원을 만들어 내는 고급과정인 19주 과정의 SQT(SEAL Qualification Training)을 수석으로 수료했다. 국내에는 단 5명뿐인 것으로 알려진 ‘윙슈트(Wingsuit)’, 즉 슈트를 입고 하늘을 활공하는 기술 자격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2014년 대위로 전역한 이후의 이력은 더 화려하다. 그는 국내외 주요 대테러부대는 물론 해군과 공군 정보부대 고공강하 교관으로 활약했고, 영국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민간군사기업(PMC) G4S에 팀장으로 스카우트되어 이라크 등 중동 지역에서 1년간 실전 경험을 쌓았다. 

    이후 귀국해 미 국무부 안보수사관으로 특채돼 활동하다가 청와대 대통령경호처 전술사격 교관을 지내고, 현재는 전술 컨설팅 업체에서 근무하며 다양한 방송에 얼굴을 비추고 있다. 이런 그를 놓고 정치권에서 때 아닌 논란이 벌어졌다. 그를 올해 국정감사의 증인으로 채택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여야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근 예비역 대위를 국정감사 증인으로 신청한 것은 야당인 국민의힘이었다. 이 당은 내달 법제사법위원회 군사법원 국정감사에서 총검술 폐지와 관련해 전문가인 이 대위의 견해를 들어보자는 취지로 상임위에 그를 증인으로 출석시킬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야당이 그를 증인으로 채택하려 한 것은 국방부가 지난해 7월, 총검술이 더 이상 현대전에서 의미가 없다며 이를 병기본 과목에서 폐지했기 때문이다. 당시 육군본부는 “미군도 2011년부터 총검술을 폐지하고 권총과 격투기를 이용한 근접전 훈련을 하고 있다”며 총검술을 시대에 뒤떨어진 교리로 평가 절하한 바 있었다. 

    그러나 군 당국의 발표는 거짓이었다. 미 육군은 현행 야전교범 FM 21-150 전투기술(Combatives)의 섹션 중 하나로 총검 돌격 코스(Bayanet Assault Course)라는 과목을 유지하고 있고, 최근 미 육군의 훈련 사진이나 미 해병대의 실전 운용 사례를 보면 착검과 총검술 교리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일명 ‘21피트 규정(The 21 foot rule)’을 근거로 군의 총검술 폐지를 반대해 왔다. 21피트 규정이란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경찰국 데니스 툴러(Dennis Tueller) 경사가 제시한 법칙으로, 현재 미국 사법당국 총기 사용 기본 규정으로 채택된 교리다. 21피트, 즉 6.4m 이내 거리에서는 흉기를 든 용의자가 달려오는 속도가 경관이 권총을 뽑아 사격하는 속도보다 빠르기 때문에 용의자가 6.4m 거리에 접근하기 전에 먼저 사격하라는 것이 이 법칙의 골자다. 즉, 근접 전투 상황에서는 권총 등 부무장을 뽑는 것보다 들고 있는 소총 그 자체로 격투전을 벌이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근 “총검술을 없애는 것은 잘못”

    미 육군의 총검술 훈련 모습. [U.S. Marine Corps 미국 해병대 홈페이지 제공]

    미 육군의 총검술 훈련 모습. [U.S. Marine Corps 미국 해병대 홈페이지 제공]

    전문가들은 근접전 상황에서 총기 기능 고장이 발생하거나 기타 여러 변수로 인해 사격이 제한되는 상황에서는 총검을 이용한 근접 격투술이 필수라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09년 5월, 이라크 바스라 지역에서 영국군 2개 분대 10명이 순찰 중 100명의 민병대에게 포위됐을 때 탄약이 떨어지자 착검 돌격해 백병전으로 민병대를 격퇴한 사례가 있는데, 영국군은 사후 전투 분석에서 총검술 교육이 잘 되어 있던 영국군 장병들이 총검술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민병대를 효과적으로 제압해 3명의 경상 피해만 입고 35명 사살, 9명 생포라는 전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한 바 있었다. 

    실전 경험이 풍부한 이근 대위 역시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한국군의 총검술 교육 폐지를 비판한 바 있었다. 그는 “총검술을 없애는 것은 잘못이다”라며 “없애기보다는 현대화 개발을 해야 한다. 실전에서 병기 기능고장이 발생할 경우 권총 뽑는 것보다 적을 찌르는 것이 더 빠르다”고 지적한 바 있다. 

    군이 총검술을 왜 없애려 하는지는 지금까지도 의문이다. 우리나라는 지형적 특성상 근접 전투가 많을 수밖에 없고, 이 때문에 북한은 창격술이라는 명칭으로 고등중학교 학생들에게까지 총검을 이용한 근접 전투를 교육하고 있다. 한국군 보병에게 부무장으로 권총이 주어지는 것도 아닌데 강화해야 할 근접 전투기술을 오히려 폐지한다고 하니 많은 전문가들은 도대체 군이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야당이 이 대위를 증인으로 채택하려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실전 경험이 풍부하고 세계 각국 정부와 PMC가 인정한 엘리트 전투 요원의 증언이 실전 경험 없이 글로만 전술을 배운 ‘행정군인’들의 잘못된 결정을 비판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대위의 국정감사 증인 채택은 여당의 강력한 반발로 무산 위기에 처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총검술 폐지에 반대하는 개인 유튜버와의 문답은 국정감사를 자극적이고 희화화 할 우려가 있다”면서 “이 대위의 인기에 편승해 국정감사장을 관심끌기 행사장으로 전락시켜서는 안된다”는 논리로 이 대위의 국감 증인 채택을 막았다. 세계 각국 특수부대가 인정한 ‘전문가’가 집권 여당의 한 마디에 ‘개인 유튜버’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여의도 정가에서는 이 대위의 국감 증인 채택 반대가 정치적인 계산에 따른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총검술 폐지는 현 정부의 정책 중 일부인데, 최근 젊은 층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전문가가 현 정부의 정책에 반대되는 입장을 내놓으면 정부와 여당에게 좋을 것이 없다는 정치적 판단이 있었다는 것이다. 

    여당이 이근 대위를 평가절하하며 비판적으로 보는 이유는 또 있다. 다름 아닌 그의 배경이다. 이 대위는 전역 후 세계 각국의 특수부대에서 전술 교관으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국제연합(UN)과 미 국무부에서 안보수사관으로 특수 임무를 수행했으며, 미국대사관과도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지난 2018년 모처에서 치러진 그의 결혼식에는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는 물론 미 대사관과 국무부, UN, 심지어 미 해군 네이비씰에서도 여러 명의 하객이 참석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미국, 특히 국무부와 특수부대, 정보기관과 높은 친화력을 자랑하며 미국의 특수요원으로 근무했던 이력이 있는 만큼, 여당 입장에서는 국정감사장에 세우기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이러한 소식이 포털 뉴스 서비스를 통해 전해지자 그야말로 ‘융단폭격’에 가까운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현 정부와 여당은 ‘소통’이라는 미명 하에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 ‘외부인’들을 종종 끌어들인다. 원전 정책을 결정하는 의사결정기구를 구성하는데 원전 전문가는 단 1명도 없고 시민단체 출신들만 잔뜩 초빙하는가 하면, 남북철도 연결 사업을 준비하는데 관련 분야 경험이 전혀 없는 방송인이 위원으로 위촉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이번 사례 역시 마찬가지다. 일선 장병들에게 근접 전투 기술로 총검술을 가르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이 분야 최고 전문가를 불러 의견을 듣겠다는데 자신들이 결정한 정책 방향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증인 채택에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정상적인 국가이고, 정상적인 의사 결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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