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38

2020.05.08

웨펀

군 리더 부동자세에 경계도 기강도 무너져

軍 경계 뚫리고 기강 풀려도 리더십 변하지 않는 이유

  •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입력2020-05-0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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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군 함정 부사관 1명 실종 동해항-속초항 이동중. [뉴스1]

    해군 함정 부사관 1명 실종 동해항-속초항 이동중. [뉴스1]

    3월 중순 해군이 발칵 뒤집혔다. 해군 제1함대 소속 한국형 호위함 강원함에서 실종된 부사관 1명이 육상기지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기 때문이다. 숨진 부사관은 강원함이 작전 수행 도중 기상 악화로 잠시 기지로 피항(避港)했을 때 육상 업무를 보고 오겠다며 배에서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사관은 다음 날 강원함이 다시 출항할 때까지 함정으로 복귀하지 않았지만, 강원함은 출항 후 수 시간이 지난 뒤에야 해당 부사관이 배에 없다는 사실을 인지했고, 함정 전체는 물론 육상기지까지 수색을 벌인 끝에 숙소에서 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완벽한 병력 관리 실패

    모든 구성원이 각자 맡은 임무를 분담해 작전을 수행하는 군 조직에서 실시간 인원 파악은 대단히 중요하다. 모든 부대는 지휘통제실에 병력 상황판을 두고 몇 명이 근무에 투입됐고, 몇 명이 작업을 나갔으며, 몇 명이 휴식 중인지 실시간으로 확인하게 돼 있다.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모든 구성원이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이는 부대가 인지하지 못한 결원이 생기면 임무 수행에 큰 차질을 빚기 때문이다. 

    사고를 당한 부사관이 배에서 내릴 당시 강원함은 피항하고 있었다. 기상이 나빠 잠시 기지로 복귀했지만, 바다에 일이 생기면 즉각 부두를 박차고 나가야 하는 작전배치 상태였다. 그런 배에서 병력이 내리고 하루 동안 보이지 않았는데도 강원함은 물론, 해당 부사관의 직속상관마저 승조원 한 명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완벽한 병력 관리 실패다. 

    최근 우리 군에서 ‘실패’라는 단어가 너무 자주 들린다. ‘작전 실패’ ‘경계 실패’ ‘병력 관리 실패’ ‘기강 관리 실패’ 등등 거의 매일 들려오는 군내 사건·사고 소식은 국민을 놀라게 하는 정도를 넘어 분노와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작전 실패 논란은 지난해 6월 강원 삼척항으로 목선이 ‘대기 귀순’하면서 불거졌다. 당시 북한 목선은 해군이 철통 사수를 외치던 대한민국 영해를 유유히 휘젓고 다니다 삼척항 앞바다에서 하룻밤 지내고 항구에 접안까지 했다. 고속정 1선과 유도탄 고속함, 2선의 초계함과 호위함, 공중의 해상초계기, 바닷가의 해안 감시 레이더에 이르기까지 우리 바다를 입체적으로 철통처럼 지킨다던 군의 경계 작전 전력은 북한 목선이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수백km를 내려오는 것을 발견조차 하지 못했다. 완벽한 작전 실패였다.



    작전 실패에 장비 탓, 기상 탓

    공군사관학교 전경. [뉴스1]

    공군사관학교 전경. [뉴스1]

    완벽하게 뚫린 군의 경계 작전에 분노한 국민에게 군은 장비 탓, 기상 탓을 하고 나왔다. 장비가 구형이라 작은 목선을 잘 탐지하지 못하고, 파도가 높아 소형 목선이 파도에 가려졌다는 것이다. 모두 거짓으로 들통났지만, 경계 작전에 실패하고 국민을 속인 이 중대한 죄에 대한 책임은 말단 병사와 간부들이 져야 했다. 

    작전 실패는 바다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해군과 육군의 작전 실패는 북한 목선이 들어와 드러났을 뿐이지, 적기가 오지 않아 걸리지 않은 작전 실패 사례는 공군에서도 있었다. 유사시 적기가 출현하면 긴급 출격해야 하는 공군 전투기 조종사들이 비상 대기 상태에서 음주 파티를 벌인 것이다. 

    수도권 상공 방어 최일선에 있는 제10전투비행단 소속 조종사들은 비상벨이 울리면 5분 내에 출격해야 하는 ‘얼러트(Alert)’ 대기 중에 비상대기실에서 술을 마셨다. 육지에서 음주운전도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데, 인구밀집지역인 대도시 경기 수원 한복판에 있는 공군기지에서 ‘음주 출격’이 발생할 뻔한 것이다. 엄청난 인명 피해를 일으킬 수 있는 위험천만하고 무책임한 이 범죄 행위에 대해 공군이 내린 처분은 ‘경고’였다. 

    군은 작전만 실패한 것이 아니다. 경계도 실패했다. 삼척항 목선 대기 귀순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인 지난해 7월 서해를 담당하는 제2함대사령부 탄약고 근처에 거동 수상자가 나타났다. 이 거동 수상자는 야간 초소 경계근무 도중 총과 방탄 헬멧을 놓고 인근 자판기에 음료를 사러 갔다. 경계근무를 하는 병사가 음료수를 사겠다고 근무지를 이탈한 것도 중죄지만, 더욱 가관인 것은 제2함대 당직근무자의 대응이었다. 

    이 당직근무자는 사건을 축소하려고 무고한 병사에게 허위자백을 지시했고, 상급기관에 보고하는 것도 미뤘다. 말단 병사는 경계근무 도중 무기를 유기한 채 근무지를 이탈하고, 영관급 간부는 사건을 은폐·조작해 상급자를 속이는 등 후진국 민병대나 반군에서도 보기 힘들 법한,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 뒤로 계속 터질 경계 실패의 서막에 불과했다.

    계속 터질 경계 실패의 서막

    정경두 국방부장관. [국방부 제공]

    정경두 국방부장관. [국방부 제공]

    올해 1월에는 70대 노인이 해군기지 정문을 아무런 제지 없이 통과한 뒤 부대를 배회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노인은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발각됐는데, 이 노인이 서성인 곳은 해군 최고 보안시설 가운데 하나인 잠수함사령부가 있는 진해기지였다. 3월에는 시위대 2명이 해군 제7기동전단이 주둔하는 전략기지인 제주해군기지에 침입했다. 이들이 2시간 넘게 기지를 활보하는 동안 해군은 이들의 존재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또 며칠 뒤에는 수도 서울의 하늘을 지키는 수방사 방공여단 예하 방공진지에 만취한 민간인이 침입했다. 나물을 캐던 그는 방공진지 외곽 철조망 아래로 땅을 파고 침입해 진지를 활보했지만, 군이 그의 존재를 알아챈 것은 1시간이 지난 후였다. 

    최근 몇 달간 주요 군부대를 무단 침입한 사람이 만취자나 노인이 아니라 북한군 특수부대원이었다면 해군 함대 사령부는 박살났을 것이다. 우리 해군의 전략 자산인 잠수함과 이지스함은 출항조차 못 하고 수장됐을 테고, 서울 상공에 적기가 나타나도 지대공미사일과 공군 전투기는 대응조차 못 했을 것이다. 

    무너진 것은 작전체계와 경계태세만이 아니다. 군대가 아니라 민간회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그야말로 규율과 기강이 초토화된 정황이 전후방 각지에서 거의 매일 들려오고 있다. 영관·위관급 장교는 물론, 부사관의 음주운전과 근무지 이탈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대령은 보안시설인 지휘통제실에 몰래 도청장치를 설치해 회의 내용을 엿듣고, 중령은 면허 취소 수준인 만취 상태로 자가용을 운전해 민간인 상업지구에서 위험천만한 질주를 하다 적발됐다. 대위는 새벽에 부대 밖에서 만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고 나체 상태로 시내 한복판에서 자다 경찰에 연행됐고, 같은 부대 소속의 중위는 동료들과 노래방에서 민간인 여성을 강제 추행해 입건됐다. 

    군 기강 붕괴는 마치 계급 간 경쟁처럼 이어졌다. 장교에게 질세라 일부 부사관은 병사와 내기 탁구를 한 뒤 졌다는 이유로 병사를 폭행했고, 또 다른 부사관은 부대에서 만취 상태로 놀다 상관인 남성 장교를 집단으로 강제 추행하기도 했다. 병사들은 부대에서 휴대전화로 음란물을 돌려보거나 억 원대 도박을 하고, 일부는 최근 엄청난 사회적 물의를 빚은 ‘N번방 사건’에서 운영진으로 활동하며 강력범죄에 동참한 사실이 적발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나열한 것은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난 사건 가운데 일부에 불과하다. 지금 대한민국 국군은 전후방을 막론하고 기본적인 병영생활부터 상하 계급 간 위계, 경계 작전과 보안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정상적인 군대라고 볼 수 없을 만큼 무너져 있다. 불과 2~3년 만의 일이다.

    주적 아닌 대화와 협력의 대상

    60만 대군이 이토록 처참하게 무너진 것은 군 수뇌부가 지난 3년간 적(敵)을 없애고 전우(戰友)를 없앴기 때문이다. 이 기간 군의 정훈교육에서 북한은 대한민국 안보를 위협하는 주적(主敵)이 아니라 대화와 협력의 대상이 됐다. 싸울 적이 없어졌으니 기강이 해이해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전투 행위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고 통제와 위계를 중시해야 할 군대에서 지나치게 개인만 강조하다 보니 전우가 사라졌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급자는 ‘데스노트’로 얼마든지 날려버릴 수 있고, 몇몇이 입만 맞추면 ‘드래건볼 모으기’로 사성장군도 날려버리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국군이다. 적이 없고(무적·無敵), 위계가 없으며(무위·無位), 군령이 없는(무령·無令) 그야말로 오합지졸이다. 

    기강이 무너진 군대는 제아무리 첨단무기를 갖고 있어도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세계 4위 공군력을 자랑하던 남베트남군은 군화가 없어 타이어 조각을 발에 묶고 다니던 적들에게 속절없이 무너졌고, 한때 전 세계를 호령하던 영국군도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트럭에 나무판자를 덧대 전차 모양을 만들고 돌진해온, 한 줌도 안 되는 독일군에 놀라 줄행랑을 쳤다. 

    영국 명장 버나드 몽고메리 장군은 북아프리카 제8군사령관으로 부임한 직후 해이할 대로 해이해진 군 기강에 격분하며 불호령을 내렸다. 그는 “군기 빠진 군대는 전투에서 절반은 지고 시작하는 것”이라며 “죽더라도 깨끗하고 멋진 시체가 되는 것이 영국군의 전통이자 명예”라는 말로 군 기강 잡기에 집중했다. 장병들은 그를 ‘신병교육대 선임하사’ ‘잔소리하는 시어머니’라고 부르며 비난했고, 당시 윈스턴 처칠 총리를 비롯한 본토 정치인들 역시 몽고메리 장군에게 보직해임 등의 위협을 하며 기강 잡기 중단을 요구했다. 그러나 몽고메리 장군은 자신의 신념대로 밀어붙였고, 그의 리더십 아래서 재정비된 영국군은 첫 출전부터 ‘사막의 여우’ 에르빈 롬멜의 무적 군단을 격파하며 아프리카 전장을 지배하는 군대로 다시 태어났다.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신성한 임무

    지금 대한민국 국군은 그 어느 때보다 리더십 변화가 요구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유고설이 흘러나오고, 중국의 군사적 팽창이 심각한 위협으로 부상하는 등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상황이 매우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군 기강 와해 소식은 국민으로 하여금 분노를 넘어 불안을 느끼게 하고 있다. 

    물론 장병 개개인의 인권과 존엄성은 중요하다. 그러나 군인은 개인이기에 앞서 국민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신성한 임무를 부여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그 신성한 임무를 빈틈없이 수행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규율과 강력한 신상필벌(信賞必罰)이 필요하다. 지금 대한민국 국군에게는 엄격한 규율과 강력한 신상필벌을 통해 무너진 기강을 바로잡을 리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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