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3

2018.04.11

안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정면 비판

“북핵 두려워하면서 통일 논의하는 것은 난센스”

  • 입력2018-04-08 15: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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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용 대북 수석특사(앞줄 왼쪽)가 3월 5일 오후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정의용 대북 수석특사(앞줄 왼쪽)가 3월 5일 오후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한반도 문제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는 지금 문재인 대통령과 가까웠던 한 원로가 문 대통령의 한반도 정책을 심도 깊게 비판했다. 그와 나눈 대화를 문답으로 정리해 건네주자 숙고에 들어간 그는 문 정부가 추진하는 적폐청산을 거론하면서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며 인터뷰 게재를 거부했다. 이에 다시 논의한 끝에 익명을 전제로 다음과 같이 그의 생각을 정리하기로 했다.

    체제 유지한 통일은 없다

    통일이란 체제의 통일이다. 한쪽 체제가 무너져야 이뤄지는 것이다. 독일 통일은 동독 체제가 먼저 무너졌기에 평화적으로 이뤄졌고, 베트남 통일은 무력으로 한쪽 체제를 무너뜨렸기에 달성됐다. 한쪽 체제의 붕괴가 없는데 한반도가 통일되리라고 보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중요한 합의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는 이가 많은데, 이는 난센스다. 그 회담에서 북한이 우리를 상대로 비핵화를 약속할 리 없기 때문이다. 한다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우리 대북특별사절단에게 한 말을 반복할 것이다. 평양에서 돌아온 정의용 수석특사는 “북측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고 발표했는데, 이렇게 조건을 단 비핵화를 거론할 것이다. 

    그리고 북한은 뭔가를 받아내려 할 텐데, 우리는 줄 수가 없다. 문재인 정부는 5·24조치 해제 등을 검토하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정한 대북제재 위반이 되기 때문이다. 주고받을 게 없는데 중요한 합의가 나올 수 있겠는가.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징검다리 정도의 역할만 하게 될 것이다. 

    문 대통령 주변에는 북한학을 공부했거나 북한만 보는 이들만 포진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한반도 문제는 더 넓은 시각에서, 그리고 솔직하게 봐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 우리는 자력으로 독립을 이루지 못했다. 우리의 독립과 분단은 외세에 의해 결정됐다. 



    우리의 독립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국 수뇌들이 한 얄타회담의 결과물이고, 분단은 미·소가 일본군을 무장해제하고자 분할함으로써 이뤄졌다. 1950년 여름 대한민국은 사라질 듯했는데 미국의 의지로 회생했다. 그해 겨울엔 북한이 없어질 뻔했으나 중국의 개입으로 살아났다. 외세가 강하게 개입했기에 분단은 강력해졌고 현 정전체제가 자리 잡았다. 

    평화통일을 하려면 정전협정에 서명한 주체들 간 합의가 먼저 있어야 한다. 정전협정에 서명한 것은 미국(유엔)과 북한, 중국이고 우리는 하지 않았으니 우리에게는 정전체제 해제를 위한 협상에 참여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일각에서는 남북한이 종전선언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정전협정에 서명하지도 않은 나라가 종전선언을 할 수 있다고 보는가.

    통일은 역사에 맡겨라

    지난해 11월 7일 청와대 기자회견장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뉴시스]

    지난해 11월 7일 청와대 기자회견장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뉴시스]

    북핵도 정전체제의 결과물이니, 북·미·중의 합의가 있어야 실마리가 풀린다. 그들이 결정하면 우리는 따라가는 처지인 것이다. 이것이 싫다면 힘으로 외세를 극복해야 한다. 이는 무력을 써서 외세를 밀어내고 북한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무력을 사용하면 북한은 바로 핵을 사용할 터다. 이것이 현실인데 자꾸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통일이 임박한 양 꾸미고 있으니 더는 국민을 기만하지 말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한반도 문제에 관여한 모든 나라가 만족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정전체제 유지다. 정전체제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세력 균형이다. 지금 남북의 경제력 차이는 50 대 1이 넘는다. 이렇게 큰 차이가 나면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이 일어나니, 북한은 핵개발로 다시 세력 균형을 잡은 것이다. 그러한 북한에게 핵을 포기하라는 것은 그들의 체제를 포기하라는 의미가 된다. 

    한반도 균형이 깨지면 동북아의 세력 균형도 흔들리는데, 자국에 유리한 변동이 아닌 이상 주변국은 균형이 흔들리는 것에 반대한다. 북한이 붕괴되면 중국이 불리해지니, 중국은 북한을 지원한다. 평화통일은 우리의 의지로 하기 어렵고, 무력통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남북이 통일을 강조할수록 외세는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그래서 통일은 역사에 맡기라는 것이다. 통일은 하려 든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역사는 반드시 통일의 기회를 준다. 역사적 변동에 의해 통일 조짐이 보일 때 단호하게 그 틈을 확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에 전력하라는 이야기다. 

    독일 통일도 역사가 한 것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에도 서독에서는 통일이 임박했다는 것을 눈치 챈 사람이 적었다. 다만 당시 헬무트 콜 총리가 낌새를 알아채고 줄기차게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총비서를 설득해 역사를 전진시켰다. 그때 콜 총리가 소련에 지원을 결정한 금액이 약 300억 달러(약 31조7300억 원)였다.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참석차 한국에 왔던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도 아산정책연구원이 주최한 행사에서 통일은 역사에 맡기고, 통일이 일어났을 때 감내할 수 있는 역량부터 키우라고 했다. 역사는 반드시 기회를 준다. 그때에 대비해 강한 경제력부터 키워나가야 한다. 국민에게 이런 현실을 직시하게 해야 한다. 

    친미를 위해 반미를 해온 것이 북한이다. 북한은 자신들의 체제를 보장해줄 나라가 미국이라 보고 핵을 개발해왔다. 남쪽은 상대할 의사가 없었으니 이를 통미봉남(通美封南)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여섯 차례 핵실험을 했어도 미국은 반응하지 않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조여오기만 하니, 북한은 할 수 없이 한국을 끌어들였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북한을 너무 두려워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안전하게 치러야 한다는 강박과 한반도 운전자론을 의식한 탓으로, 북한의 제의를 받아들여 바로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했다. 그리고 특사를 보내 북·미 정상회담까지 열기로 했으니, 김정은의 도박은 성공한 셈이 됐다. 통남으로 통미의 기회까지 잡은 북한은 ‘봄이 온다’에 이어 ‘가을이 왔다’도 하자고 하는 것이다.

    친미 위해 반미하는 북한

    4월 3일 오후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북남 예술인들의 련환공연무대 우리는 하나’에서 남북 가수들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같이 부르고 있다. [뉴시스]

    4월 3일 오후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북남 예술인들의 련환공연무대 우리는 하나’에서 남북 가수들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같이 부르고 있다. [뉴시스]

    트럼프가 김정은과 회담을 덥석 받아들인 것은 계산이 있기 때문일 테다. 미국을 방문한 정의용 특사가 북한이 내세운 두 가지 조건을 빼고 북한이 비핵화하겠다고 전했으니, 안 만나줄 이유가 없다. 일이 잘못되면 그 책임을 김정은의 뜻을 제대로 전하지 않은 한국에게 넘기면 그만이다. 그러자 북한을 압박하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갑자기 ‘나도 있다’는 식으로 뛰어들었다. 

    중국은 북핵이 ‘양날의 검’이라는 것을 잘 안다. 북한이 핵을 개발해 미국과 한국을 상대로 세력 균형을 잡아주는 것은 중국 측에 유리하다. 그런데 그 핵 때문에 북한이 미국에게 가까워진 후 북·중 마찰이 일어난다면 북한은 거꾸로 중국을 위협할 수 있다. 중국이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북한이 친미국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김정은이 트럼프를 만난다고 하니 바로 김정은을 불러들여 환대한 것이다. 

    한반도 문제는 세력 균형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우리는 하나다’ 또는 ‘우리끼리의 시각’으로만 보면 계속 오판을 하게 된다. 우리는 미국의 시각도 바로 봐야 한다. 모든 패권국은 2등 국가가 급격히 추격해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 미국은 1990년 유럽 냉전의 종식으로 소련의 추격을 차단했다. 그 무렵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된 일본이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외치자 환율과 관세 등으로 압박해 일본을 ‘잃어버린 20년’에 빠져들게 했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미국은 긴 침체기에 들어갔다. 그동안 중국은 성장가도를 달려 2010년 국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일본을 제치고 G2 국가가 됐다. 2025년에는 미국까지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은 그러한 중국을 주저앉혀야 한다. 트럼프가 김정은을 만나주겠다고 한 것은 북한 카드를 대중(對中) 전략의 일부로 활용하겠다는 뜻이다. 시진핑은 그것을 알아차렸기에 김정은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여 변심하지 말라고 환대해준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아무리 노력해도 향후 수십 년 동안 미국을 앞지르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미국은 소련과 일본의 추격을 제압했을 때처럼 경제적 압박으로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려 한다. 중국과 무역전쟁을 하는 것인데, 이런 전쟁을 할 때면 미국은 반드시 자기편을 확인하고자 줄 세우기를 시킨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과 중국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처지에 몰리게 될 것이다.

    사상 유례없는 주한 미국대사의 공석

    지난해 11월 9일 중국 베이징에서 만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뉴시스]

    지난해 11월 9일 중국 베이징에서 만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뉴시스]

    문재인 정부를 바라보는 트럼프 정부의 시선이 곱다고 판단하면 오산이다. 대통령에 취임한 지 1년 4개월이 지났는데도 트럼프는 주한 미국대사를 임명하지 않고 있다. 주한 미국대사가 이렇게 오래 공석으로 있었던 적이 있는가.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도 한국에 더 있지 않으려 한다. 한국을 상대하는 미국의 양축이 주한 미국대사와 한미연합사령관인데, 이 자리에 오려는 이가 없다는 것은 한미관계가 좋지 않다는 증거다.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각을 세우지만, 중국과 가까이 하면서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겉으로는 미국과 가까운 척하지만 아직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는 제대로 배치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한미관계가 나빠지면 우리도 강한 압박을 받게 된다. 사드 문제로 발길이 끊긴 중국인 관광객 시장은 연 7조 원이다. 중국은 우리의 투자를 필요로 하는 나라이기에 말만 요란했지 실제로 차단할 교류가 많지 않았다. 

    미국은 다르다. 미·중 정상회담 때 트럼프가 환율조작국을 운운하자 시진핑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미국이 환율 문제를 꺼내면 안 그래도 부진한 한국 경제는 더욱 위태로워진다. ‘노’라고 외쳤던 일본처럼 장기침체에 들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중국이 북한을 버리지 못하듯이, 미국도 한국을 버리지 못한다고 지적하는 이들이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고통스럽게는 한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을 겪었기에 중국의 압박을 견뎌내고 반전의 기회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성장한 체제에 익숙해져 있어 경제가 나빠지면 견디기 어렵다. 우리는 북한이 아닌 것이다. 잃어버린 20년을 보낸 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친미노선을 걷자 일본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과 거리를 두면 위기가 닥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 핵무기에 인질로 잡힌 처지라는 점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북핵이 두려워 북·미 정상회담을 중개했다는 현실을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

    문 대통령은 안보와 경제 전문가는 아니다. 전략가도 아니다. 그러한 그가 남북정상회담에 정성을 다하는 것을 보면 문 대통령을 움직이는 세력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대통령을 이끌고, 또 대통령이 따라가면 국민이 힘들어진다. 통일의 기회도 그만큼 멀어진다는 사실을 국민이 바로 알았으면 한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른다고 통일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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