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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2.0? No, 문재인 4.0!

높은 국민 호응 속 산뜻하게 출발 … 장관 인사청문회  ·  주요 정책 입법 여부가 시험대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7-05-26 16:5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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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14일 오전 5시 27분. 북한이 평안북도 구성에서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 상황실로부터 이 사실을 보고받은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오전 6시 8분 문재인 대통령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했다. 문 대통령은 “국가안보실장이 직접 보고토록 하라”고 주문했다.

    당시 국가안보실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한 김관진 실장이었다. 5분 뒤 김 안보실장이 문 대통령에게 직접 관련 내용을 보고했다. 이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회의가 열렸고 여기엔 문 대통령과 임 비서실장을 제외하고 김 안보실장, 윤병세 외교부 장관, 한민구 국방부 장관, 홍영표 통일부 장관, 이병호 국가정보원장 등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한 인사들이 참석했다.



    김관진 직보에 담긴 두 가지 의미

    문 대통령 취임 나흘 만에 열린 NSC의 모습은 몇 가지 점에서 시사점을 던졌다. 첫째, 대선후보 시절 보수 지지층에서 문제 삼았던 문 대통령의 ‘안보 불안감’을 상당 부분 불식했다는 점이다. 신속한 NSC 소집과 직접 주재는 물론, 김 안보실장에게 직보(直報)토록 함으로써 안보에는 여야와 전·현 정부 출신의 구분이 없다는 점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안보실장의 대통령 직보가 갖는 또 다른 의미는 문재인 청와대에는 박근혜 정부의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같은 ‘왕 실장’이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대통령이 직접 나서 분명히 했다는 점이다. 대통령에 대한 보고체계를 비서실장으로 단일화하지 않고 필요와 현안에 따라 해당 분야 책임자가 직접 대통령에게 보고토록 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 한 중진의원은 “문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젊은 재선의원 출신인 임종석 비서실장을 발탁한 것은 김 전 비서실장 때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반면교사적 성격이 있다”고 풀이했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비서관으로 문 대통령과 함께 근무했던 한 인사는 “2003년 문 대통령이 민정수석비서관을 맡고 있을 때 민정수석실 현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할 필요가 있으면 해당 현안에 대해 가장 잘 아는 비서관, 행정관이 직접 대통령에게 보고토록 했다”고 회고했다.

    3선 의원과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전병헌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 임명은 청와대의 파격 인선에 담긴 문 대통령의 구상과 맥이 닿아 있다. 임 비서실장-전 정무수석 라인업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기존 정치문법과 인사원칙에서 크게 벗어난 파격 인사라는 평가가 많다.

    민주당 한 초선의원은 “임 비서실장보다 정치 경력이 많은 전 정무수석을 임명한 것은 연공서열을 넘어 소임에 걸맞은 인사를 임명하려는 문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임 비서실장은 친화력이 뛰어나 조정자 구실을 잘할 수 있지만, 원내교섭단체만 4개에 이르고 의석을 가진 주요 5개 정당이 존재하는 여소야대 상황에서 협치하려면 3선, 원내대표 이력에 정치력을 겸비한 전 정무수석이 적합한 인사”라고 말했다.

    국민의당 한 관계자도 “의원의 선수(選數)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여의도 정치풍토에서 재선보다 3선 의원 출신인 정무수석의 얘기가 야당에게 더 통할 개연성이 크다”며 “전 정무수석 임명은 좋은 선택일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국민 눈높이 맞춘 통합  ·  화합형 인사

    문 대통령의 각종 인선에 호평이 이어지는 배경에는 참여정부의 인사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노력 덕분이란 해석이 많다. 노무현 정부에서 인사 때마다 빠지지 않고 제기되던 논란이 ‘코드 인사’였다. 코드 인사는 측근 중심, 정실 인사라는 비판으로 이어졌고, 코드가 맞지 않는 이를 배척하는 뺄셈 정치, 뺄셈 인사라는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인사는 ‘코드’ 대신 ‘파격’ ‘탕평’ ‘발탁’ 등 좋은 뜻의 단어가 앞에 붙고 있다. 이종훈 시사평론가는 “노무현 정부 초기 공격적 코드 인사와 달리, 문 대통령은 낮은 자세로 기대 이상의 참신한 인사를 선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선후보의 정책을 책임졌던 장하성 고려대 교수를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에 앉히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요직을 거친 김동연 아주대 총장을 경제부총리에 임명한 것, 그리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함께 10년 가까이 유엔에서 일한 강경화 유엔 사무총장 특보를 외교부 장관으로 발탁한 것 등을 대표적인 통합형 탕평 인사로 꼽았다.

    김홍국 경기대 겸임교수도 “통합·화합형 인사를 전면에 배치하고, 주요 인사는 대통령이 직접 인선 배경을 설명하는 것은 소통에 목말라하던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모습으로 비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비(非)고시 출신인 강경화 특보를 외교부 장관으로 내정하면서 외교부 출신인 정의용 주제네바 한국대사를 국가안보실장으로 임명했다. 정 안보실장 임명은 외교부의 인사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데 효과를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정의용-강경화 라인업 구축으로 청와대가 간접적으로 외교부에 대한 장악력을 높일 것이란 해석도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전고등검찰청 검사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지검장에 깜짝 임명한 직후 이금로 법무부 차관, 봉욱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임명한 것도 강 장관, 정 안보실장 임명처럼 정교한 인사 프로세스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검찰 출신인 조국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으로 임명되고, ‘돈봉투 만찬 사건’을 계기로 서울중앙지검장과 법무부 검찰국장이 사표를 내 검찰 내부가 뒤숭숭한 상황에서 기수 문화를 파괴하는 인물을 전진 배치해 충격을 줬다. 하지만 곧바로 대검차장과 법무부 차관에 전임자보다 기수가 하나 아래인 간부를 임명해 조직 안정을 꾀하는 등 검찰 내 반발세력에게 반격의 빌미를 주지 않았다.



    국민 87%, ‘문재인 대통령 잘할 것’

    검찰 출신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윤 지검장 인사는 전무후무한 검찰 인사”라며 “고검장급을 지검장급으로 낮춰 인사를 단행하고, 그것도 청와대가 직접 나서 인선 배경을 발표한 것은 웬만한 특수한 상황 아니면 이뤄지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국장 인사를 먼저 단행한 뒤 대검차장과 법무부 차관을 임명했는데, 막 나가는 듯하면서도 한 발 빼는 절묘한 인사 수순”이라고 덧붙였다.

    노무현 정부 초창기에는 강금실이라는 상징적 인물을 법무부 장관에 앉혀 기수 파괴 등 검찰개혁을 주도케 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이번 문재인 정부는 실무자리에는 개혁적 인사를 앉히면서도 안정형 인선을 함께 단행함으로써 완급을 조절하고 있는 것이다. 법조계 또 다른 인사는 “과거 노무현 정부는 사자의 용맹함만 갖춘 아마추어적인 측면이 있었다면, 현 문재인 정부는 사자의 용맹함에 여우의 지혜를 겸비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인사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파격’과 ‘균형’에 지나치게 무게를 두다 보면 실제 업무 집행 과정에서 손발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기대와 염려가 교차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정치권 한 인사는 “노무현 정부 시절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젊은 여성, 비검찰 출신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그것이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며 “강 장관 후보자가 업무능력은 검증됐을지 몰라도 외교부라는 큰 조직을 장악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5월 10일 대통령 취임 이후 25일까지 보름 동안 문 대통령이 보여준 소탈한 소통 행보는 국민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19일 발표한 문 대통령의 직무 수행 전망 조사에서 응답자의 87%가 ‘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잘 못할 것’이란 응답자는 7%에 그쳤다. 역대 대통령 취임 초 같은 조사에서는 이명박 79%, 박근혜 71%였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이하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하지만 준비된 듯한 고도의 이미지 정치를 구사해온 문재인 정부가 구체적인 정책을 펼칠 때도 지금 같은 세련됨을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해선 아직도 회의적인 시각이 적잖다.

    특히 최근 4대강 감사 지시에서는 세련됨보다 과거에 매달리기 이미지가 더 많이 보인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가 감사원에 감사 지시를 하는 것 자체가 독립성을 훼손하는 일이고, 이미 역대 정부에서 3차례나 감사한 사안을 다시 감사하는 것이 과하다는 얘기다. 그만큼 4대강 감사가 취임 초 급하게 서둘러야 할 사안이냐는 것이다. 물론 개인 비리는 건드리지 않고 정책과정의 잘못을 반복하지 말자는 교훈을 얻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결국 정책의 잘못을 밝히려면 최종 결정권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해 죽음까지 이르게 한 데 대한 보복으로 이 전 대통령에게 칼끝을 겨눈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또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와 강 장관 후보자의 위장전입 문제, 윤 지검장 발탁을 위해 서울중앙지검장을 고검장급에서 지검장급으로 낮춘 편법 등은 현재의 파격 이미지에 묻혀 부각되지 않지만 나중에는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성공의 길 또는 고난의 가시밭길

    여기에 문 대통령 당선에 공이 있다고 생각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의 강력한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지도 관건이다. 최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법외 노조 철회를 위한 실천 과제 가운데 하나로 국정기획자문위원회를 상대로 한 ‘팩스 투쟁’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노동계도 2015년 민중총궐기 등 혐의로 1년6개월째 복역 중인 한상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의 석방을 요구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김홍국 겸임교수는 “문 대통령 취임 이후 선보인 각종 소탈한 탈권위적 소통 행보는 문 대통령의 결심만으로도 할 수 있는 것들”이라며 “각 부 장관의 인사청문회와 추경 예산안에 대한 국회 논의 과정, 그리고 대선 공약 이행을 위한 입법 과정 등은 대통령과 여당이 혼자 결심한다고 이뤄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닌 만큼, 야당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매끄럽게 원하는 정책 목표를 달성해내느냐에 따라 문재인 정부가 성공의 길, 아니면 고난의 가시밭길로 들어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상진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이제 겨우 시급히 해결해야 할 몇 가지 적폐를 건드린 수준”이라며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정부가 출범한 만큼 이제 막 구성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어떤 정책을 어떻게 추진해나갈지 국정운영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여소야대 상황에서 야당과 협치하며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나가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면서 “야당과 갈등해 소모적인 정쟁에 휩싸이면 국민이 요구하는 중요한 국정 과제 이행이 지체되고 그럼 높은 국민적 기대가 금세 실망으로 뒤바뀔 개연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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