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82

2021.03.26

궤도 밖의 과학

‘우주 영웅’ 잔해 수습하는 법

수명 다한 우주 쓰레기, 지구 위협할 수도

  • 궤도 과학 커뮤니케이터

    nasabolt@gmail.com

    입력2021-03-3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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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 쓰레기 
청소선 탑승원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승리호’의 한 장면. [네이버영화 캡처]

    우주 쓰레기 청소선 탑승원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승리호’의 한 장면. [네이버영화 캡처]

    한국 최초로 우주 공간을 무대로 삼은 SF영화 ‘승리호’는 우주 쓰레기 청소선에 탑승한 선원들의 이야기다. 과학계에서 우주 쓰레기에 대한 정의는 깔끔하다. 그저 우주에 존재하는 인위적 쓰레기다. 우주 공간에 존재하는 잡동사니를 통틀어 우주 물체라고 부르는데, 이 중에서 혜성이나 소행성 잔해처럼 자연적으로 발생한 녀석들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우주 쓰레기다. 사람이 많아질수록 길바닥에 쓰레기가 늘어나는 것처럼 우주 쓰레기는 대부분 인류가 우주로 나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겨났다. 

    ‘승리호’에서는 우주 쓰레기가 꽤 값진 자원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 실제는 그렇지 않다. 지금도 지구 주위에는 수명을 다한 인공위성과 버려진 로켓 껍데기, 부식된 기계장치, 태양전지판 조각 등 다양한 잔해물이 떠다닌다. 우주 쓰레기의 가치를 논하기에 앞서 이것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를 알 필요가 있다. 

    우주 쓰레기는 기대만큼 느긋하게 돌지 않는다. 이것들이 지구 궤도를 도는 속도는 초속 8㎞이다. 발사된 총알 속도가 보통 초속 1㎞에 살짝 못 미친다고 봤을 때, 우주 쓰레기의 회전 속도는 총알보다 8배 이상 빠르다. 우주 쓰레기가 아무리 작고 가볍다고 해도 무시할 수 없다. 심지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우주 쓰레기가 동시에 돌고 있다. 혹시라도 부딪치면 그 충격이 엄청날 수 있다. 눈곱만 한 크기의 쓰레기도 야구선수가 던지는 공의 세기와 맞먹는다. 완두콩 크기 정도 되면 총알을 맞는 것과 같은 괴력을 발휘한다. 손바닥 크기 정도라면? 시속 200㎞로 달리는 대형 트럭과 부딪치는 것과 같다. 실제로 국제 우주정거장의 창문이 콩알만 한 우주 쓰레기 때문에 깨져 80여 장이나 교체해야 했다.


    우주 쓰레기 맞으면 사망할 수도

    7000t에 달하는 우주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두고 전 세계가 연구 중이다. [위키미디어]

    7000t에 달하는 우주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두고 전 세계가 연구 중이다. [위키미디어]

    상공의 우주 물체가 영원히 날아다니면 다행이겠지만, 언젠가는 지상으로 떨어진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얼음덩어리는 대기권에서 타서 없어지지만, 우주 쓰레기는 그렇지 않다. 이것들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인공 물체로, 언제나 목적은 우주로 향하는 것이다. 로켓이나 위성이 목표 궤도에 안전하게 도달하려면 반드시 대기권을 통과해야 한다. 다시 말해 온도가 수천 도까지 올라가는 대기권에서도 버티게끔 설계돼 있다. 심지어 그 상황을 이미 한 번 겪었다. 듣기 힘든 소음도 계속 듣다 보면 익숙해지는 것처럼, 지구로 돌아오는 우주 쓰레기들은 대기권이 견딜 만하다. 실제로 과거 지상으로 떨어진 우주 쓰레기로 피해가 발생한 적이 있다. 

    1960년대 쿠바 한 목장에서는 젖소들이 우주 쓰레기에 맞아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또 일본에서는 선박에 타고 있던 선원들이 우주 쓰레기를 맞아 다쳤다는 기록이 있다. 1997년 로티 윌리엄스라는 미국 여성은 위성에서 떨어져 나온 우주 쓰레기 때문에 어깨를 다쳤다. 2003년에는 컬럼비아 우주왕복선에서 떨어진 수소 저장 탱크와 비슷한 물체가 미국 텍사스주 닭 농장에 추락한 사건도 있었다. 2008년 퀸즐랜드주 남서부 농장에서는 한 농부가 로켓 부품을 발견하기도 했다. 비교적 최근인 2009년에는 영국의 한 가정집 지붕을 뚫고 우주 쓰레기로 추정되는 시커먼 금속 덩어리가 추락했는데, 40년 전 아폴로 12호를 싣고 발사된 로켓의 연료통인 것으로 밝혀졌다. 연간 대충 80t 이상의 우주 쓰레기가 지구로 돌아온다. 대부분 바다에 떨어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추락하는 우주 쓰레기보다 더 심각한 것이 있다. 1978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일하던 과학자 도널드 케슬러는 우주에서 벌어질 최악의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실제로 이런 상황이 벌어질까 불안에 떨던 사람들을 두고 ‘케슬러 증후군’이라 부르기도 했다. 2013년 개봉한 SF영화 ‘그래비티’의 도입부가 바로 케슬러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인공위성 하나가 다른 위성과 충돌하면서 우주 쓰레기가 만들어지고, 이것들이 연쇄적으로 충돌해 지구 주위가 온통 우주 쓰레기로 뒤덮이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경우 인류는 두 번 다시 우주 공간에 위성을 쏘아 올릴 수 없게 되고, 현재 우리가 누리는 모든 위성 기술도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과장이 심한 시나리오이긴 하지만, 현재 지구 주위를 돌고 있는 우주 쓰레기양은 약 1억7000만 개이며 무게는 7000t 이상 된다. 

    우주 쓰레기 처리는 통상적인 쓰레기 처리 방식과 차이가 있다. 보통 쓰레기는 분자 단위로 완전히 소멸시키거나, 새로운 형태로 재활용한다. 하지만 우주 쓰레기는 자체를 처리한다기보다 차지하고 있는 공간을 비우는 데 의미가 있다. 이를 위한 방식은 크게 ‘임무 후 폐기’(Post-Mission Disposal: PMD)와 ‘능동 잔해 제거’(Active Debris Removal: ADR)로 나뉜다. PMD 방식은 수명이 다하면 전자기 밧줄을 내리거나 풍선을 팽창시켜 발생하는 힘으로 자진해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다. ADR 방식은 청소 위성처럼 다른 무언가가 쓰레기에 다가가 손을 쓴다. 한 번에 한 개냐 여러 개냐에 따라, 그리고 접촉식이냐 비접촉식이냐, 미느냐 당기느냐에 따라 제거 방식도 다르다. 

    우주 쓰레기에 레이저나 전자빔을 쏴 맞히거나, 폴리머 계열의 거품을 분사해 무게 대 면적 비를 늘려 추락시키는 방법도 연구 중이다. ‘자살 위성’으로 불리는 것도 있다. 우주 쓰레기에 달라붙어 낙하산처럼 돛을 펼친 뒤 태양풍을 이용해 속도를 줄이면 고도가 점차 낮아져 대기권으로 떨어지는 방식이다. 미리 태양 돛(solar sail)을 달고 올라가면 임무를 마친 후 자진 폐기도 가능하다. 

    그물이나 작살을 이용해 강가에서 물고기를 잡듯이 우주 쓰레기를 포획할 수도 있다. 최소한의 연료로 많은 우주 쓰레기를 제거하는 기술은 미국 텍사스A&M대 연구팀에서 개발하고 있다. 투석기처럼 생긴 위성이 우주 쓰레기가 지나다니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 날아오는 우주 쓰레기를 포수처럼 바구니로 받아내고, 받아낸 우주 쓰레기의 속도를 이용해 회전하다 다른 우주 쓰레기를 다시 송구하는 방식이다. 원심력을 기가 막히게 이용해 효율성은 높지만, 잘못 받다 실수로 바구니가 부서지면 더 많은 우주 쓰레기가 생길 수 있다.


    각국에서 우주 쓰레기 처리 기술 개발 중

    최근 여러 나라가 우주 쓰레기 처리 문제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는 자국 벤처기업 ‘애스트로스케일(Astroscale)’과 함께 우주 쓰레기 청소 시연을 위한 로봇 위성을 발사한다고 밝혔다. 두 대의 우주선은 우주로 올라간 뒤 톰과 제리처럼 쫓고 쫓기는 추적게임을 통해 도킹과 해제를 반복하며 우주 쓰레기 청소의 가능성을 보여줄 계획이다. 러시아 우주 스타트업 ‘스타트로켓(Start Rocket)’ 역시 날씬한 사람 정도(약 50㎏) 무게의 원통형 청소 위성을 준비 중이다. 우주로 올라간 이 위성은 우주 쓰레기 밀집지역에서 끈끈한 물질을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처럼 방출한다. 이후 뒤엉킨 우주 쓰레기들과 청소 위성은 함께 지구 대기권으로 떨어지면서 숭고하게 불타오를 예정이다. 스위스 스타트업 ‘클리어스페이스(Clear Space)’가 개발한 로봇은 팔을 4개 갖고 있는데, 각각의 팔로 우주 쓰레기를 붙잡아 대기권에서 처리하게 된다. 핵심 기술이 예정대로 작동돼 우주 쓰레기를 성공적으로 처리한다면 앞으로 유럽우주국(ESA)을 비롯한 국가 차원의 범세계적 연구기관에서 이러한 서비스를 구매해 사용할 것이다. 

    지금까지 이야기로는 마치 우주 쓰레기가 우주 탐사를 방해하고,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악랄한 존재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쓰레기는 죄가 없다는 점이다. 비록 지금은 지구를 위협하는 존재로 여겨지지만, 우주 개발 초기만 해도 이들은 인류를 구원할 최첨단 영웅이었다. 단지 시간이 흘러 용처가 사라지고 잔해만 남았을 뿐이다. 가까운 미래에 영화 ‘승리호’처럼 자유롭게 우주 쓰레기를 회수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인류를 위해 최선을 다한 조각들을 경건한 마음으로 수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궤도는…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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